목차
책을 내면 = 3
일러두기 = 8
서장(序章)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왜곡된 역사교육 = 31
제1절 역사를 잃으면 영토도 잃고 자기도 잃는다 = 32
제2절 정복국가 금(金)ㆍ청(淸)나라를 세워 중국을 식민지배해 온 여진ㆍ만주족은 한국인과 같은 종족 = 34
1. 우리 민족의 명칭은 한민족이 아닌 천손족(天孫族) = 34
2. 고구려인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던 말갈(여진ㆍ만주)족 = 42
3. 말갈(여진ㆍ만주)족은 고구려ㆍ백제인의 후예들 = 47
제3절 4차례에 걸친 수(隋)나라의 고구려 침략 원인 = 50
1. 고구려에 대한 수ㆍ당의 71년 전쟁 도발과 부정되어 온 30만 대군을 몰살시킨 위대한 승리 = 51
2. 고구려 침공전의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 = 52
3. 고토 수복을 명분으로 한 수(隋)나라의 고구려 침공 = 56
4. 고구려의 요서지역 선공은 조작된 기록 = 59
제4절 고구려 영토는 중국의 고토이므로 당(唐)나라에 복속시켜야 한다는 중국인들 = 62
제5절 고토 수복을 명분으로 한 당(唐)나라의 고구려 침공 = 66
제6절 일본에 의해 조선과 대한제국의 침략 명분으로 악용된 임나일본부 = 70
제7절 왜곡된 역사인식은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부를 수밖에 없다 = 71
1.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불러 왔고 불러올 역사왜곡 = 71
2. 중국의 침략을 불러왔고 또 불러올 역사왜곡 = 74
3. 중국의 역사 왜곡을 돕는 한국의 역사학계 = 75
1) 사대주의사학파 = 75
2) 조선총독부사학파 = 76
3) 사대주의ㆍ조선총독부사학파를 극복하려는 민족사학파 = 77
4) 중국의 침략을 불러왔고 불러올 역사학자들 = 78
제8절 민족의 멸망을 막기 위하여 = 79
제1장 한반도 소국으로 왜곡되어 온 중국을 식민지배한 백제사 연구 = 83
제1절 『양서(梁書)』에 기록된 백제의 식민지 = 84
제2절 『송서(宋書)』에 기록된 백제의 식민지 = 99
제3절 『남사(南史)』의 백제 식민지 기록 = 105
제4절 『통전(通典)』의 백제 식민지 기록 = 107
제5절 백제의 중국 지배에 대한 기존 학설 = 108
제6절 백제 식민지 요서군과 진평군 등의 위치 연구 = 109
1. 요서군(遼西郡)의 위치 = 109
2. 진평군(晉平郡)의 위치 = 110
1) 송(宋)나라 진안군(晋安郡)에서 개명된 진평군(晉平郡) = 110
2) 서진(西晋)때에 건안군에서 분리된 진안군(晉安郡) = 113
3) 삼국시대 오(吳)의 회계군에서 분리된 건안군(建安郡) = 115
4) 백제의 식민지 진평군(晉平郡)의 위치 = 116
3. 백제 식민지 광양ㆍ광릉ㆍ청하ㆍ서하군 등의 위치 = 122
1) 백제의 식민지 서하군(西河郡)의 위치 = 122
2) 백제의 식민지 광양ㆍ광릉ㆍ청하군의 위치 = 124
3) 백제 식민지가 중국에 있었음을 실증해주는 백제와 북위의 전쟁 기록 = 128
4) 백제 식민지가 중국에 있었고, 위만조선과 낙랑군 등의 한사군이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실증해주는 낙랑태수와 조선태수 = 134
4. 중국을 식민지배한 백제를 입증하는 유물ㆍ언어ㆍ풍습 = 139
제7절 백제는 수많은 제후왕들을 거느린 황제국 = 140
제8절 중국에 있는 영토를 잃고 한반도로 철수하는 백제 = 141
제9절 원삼국시대, 삼한시대에 대한 소고 = 142
제2장 한반도 북부와 압록강 북쪽의 소국으로 왜곡되어 온 대제국 고구려의 실제 영토 크기 연구 = 145
제1절 고구려 강역이 축소 왜곡 된 이유 = 146
제2절 축소ㆍ왜곡 된 건국 초기의 고구려 영토 = 147
1. 축소ㆍ왜곡 된 건국 초기의 고구려 서ㆍ북부 영토 = 147
1) 모본왕의 중국 정벌로 본 고구려 초기의 서부 영토 = 147
2) 태조대왕의 요서지역 축성으로 본 건국 초기의 고구려 서부 영토 = 151
3) 중국 요동ㆍ요서군과 고구려의 요동ㆍ요서 = 155
4) 요동군 위치로 본 건국 초기의 고구려의 서부 영토 = 158
2. 축소ㆍ왜곡된 고구려의 동부 영토 = 161
1) 읍루(말갈)를 복속시킨 추모왕 고주몽 = 161
2) 북옥저를 통합한 추모왕 고주몽 = 163
3) 동부여를 통합한 대무신왕 = 164
4) 동옥저를 통합한 태조대왕 = 165
5) 서옥저, 동옥저, 북옥저, 읍루, 동부여의 위치 고증 = 166
(1) 동옥저의 위치 = 166
(2) 읍루(◆U6339◆婁)와 동부여의 위치 = 167
(3) 북옥저의 위치 = 169
6) 『삼국사기』와 『후한서』 『삼국지』의 기록 차이 = 170
제3절 축소ㆍ왜곡된 고구려 남부 영토 = 171
1. 축소ㆍ왜곡된 고구려 전기의 남부 영토 = 171
2. 개마국을 통합한 대무신왕 = 174
3. 낙랑국 위치로 본 고구려 초기의 남부 영토 = 176
1) 낙랑군(樂浪郡)으로 오인되어 온 낙랑국(樂浪國) = 176
2) 한나라 낙랑군과 별개의 지명인 고구려 낙랑 = 180
제4절 한사군과 요동군의 위치로 본 고구려 전성기의 서부 영토 = 183
제5절 부여 영토 위치로 본 고구려 서북부 영토 = 185
1. 『사기』 「화식열전」의 기록으로 본 부여의 위치 = 185
2. 현도군의 위치로 본 부여의 영토 위치 = 188
3. 『신당서』와 『자치통감』으로 본 고구려 서북부 영토 = 189
제5절 축소ㆍ왜곡 된 고구려의 북부 영토 = 194
제6절 현도군 고구려현과 고구려와의 관계 = 299
제3장 잃어버린 1,000년 제국 부여를 찾아 가지 전에 = 203
제1절 한(漢)나라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옥갑을 중국 황제로부터 상납 받아 사용하는 부여의 제왕들 = 204
제2절 부여의 한문표기 = 212
제3절 북부여, 동부여, 후기 부여, 졸본부여, 남부여 = 213
제4절 부여(夫餘) 건국에 관한 기록들 = 214
제5절 고구려 건국사 관한 기록들 = 216
제6절 부여사가 부정ㆍ축소되어 온 이유 = 216
제7절 사라져버린 북부여ㆍ후기 부여 1,000년 역사 = 218
제4장 고구려 시조 주몽으로 왜곡되어 온 후기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연구 = 221
제1절 동명왕의 부여 건국에 관한 서기 88년의 기록 = 222
1. 『논형(論衡)』 「길험편(吉驗篇)」의 기록 원문 = 222
2. 후기 부여 동명왕의 탄생 기록 = 223
3. 후기 부여 동명왕의 성장 기록 = 226
4. 후기 부여 동명왕의 탈출 기록 = 231
5. 『논형』의 동명왕에 대한 기록 종합 해석 = 236
6. 동명왕이 왜 후기 부여의 시조인가? = 238
7. 후기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은 누구의 자손인가? = 240
8. 『논형(論衡)』 「길험편(吉驗篇)」기록의 신뢰성 문제 = 241
제2절 『위략』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 244
제3절 『수신기』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 247
제4절 『후한서』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 250
제5절 『양서』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 252
제6절 『북사』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 256
제7절 『수서』의 후기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 260
제8절 『법원주림』의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 262
제9절 연남생묘지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 263
제10절 『통전(通典)』의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 266
제11절 후기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의 모국과 동명왕이 건넌 강은 어느 강일까? = 267
1. 『위략(龍略)』의 오기(誤記) = 269
1) 동명왕의 모국 이름을 달리 기록된 이유 = 270
2) 동명왕이 건넌 강 이름이 달리 기록된 이유 = 271
2. 『수신기 (據神記)』의 오기 (誤記) = 271
3. 「후한서(後漢書)」의 오기(誤記) = 272
4. 『양서(梁書)』의 오기(誤記) = 273
5. 『수서 (隋書)』의 오기 (誤記) = 273
제12절 동명왕에 대한 한국 측 기록들 = 275
제5장 후기 부여의 시조 동명왕(동명성왕)으로 조작되어 온 추모왕 주몽의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 879
제1절 고구려 건국에 대한 광개토대왕비 비문 연구 = 280
1. 광개토대왕비의 고구려 건국 기록 원문 = 280
2. 고구려 시조 고주몽은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 = 281
3. 「북부여 고토 수복」 을 국시로 내건 고구려 건국 = 283
4. 해모수의 아들로 조작된 하느님(하나님)의 자손 고주몽 = 289
5. 망명 과정으로 변조된 추모왕 고주몽의 영토 순시 = 292
6. 추모왕 고주몽의 고구려의 건국 = 298
7. 고구려인들의 사후세계관 = 299
8. 광개토대왕비의 고구려 건국 기록 종합해석 = 302
제2절 모두루묘지의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 304
제3절 연남생묘지의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 309
제4절 『위서(魏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 311
1. 『위서(魏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원문 = 312
2. 『위서(魏書)』의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탄생 기록 = 313
3. 『위서(魏書)』의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성장 기록 = 318
4. 『위서(魏書)』의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탈출 기록 = 324
5. 『위서(魏書)』의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건국 기록 = 338
6. 『위서(魏書)』의 고구려ㆍ동부여 통일 기록 = 346
7. 『위서(魏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종합 해석 = 350
제5절 『주서(周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 356
제6절 『북사(北史)』의 고구려 건국 기록 = 358
제7절 『수서(隋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 364
제8절 『통전(通典)』의 고구려 건국 기록 = 366
제9절 주몽의 탈출 방향으로 본 부여의 위치 = 371
제6장 잃어버린 1,000년 제국 부여의 역사를 찾아서 = 373
제1절 부여가 서기전 222년 이전에 건국된 국가임을 증언하는 『사기』 「화식열전」 = 374
제2절 동명왕의 부여 이전의 부여는 어떤 왕조였을까? = 381
제3절 동명왕이 건국한 부여 이전의 국가 북부여 = 383
제4절 『삼국유사』 『삼국사기』 에 숨겨진 북부여의 건국년도를 찾아서 = 392
1.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 고주몽의 출생년도 = 393
2. 추모왕 고주몽의 출생년도로 본 동부여 금와왕의 출생년도 = 396
3. 금와왕의 출생년도로 본 동부여의 건국년도와 해부루왕의 출생년도 = 397
4. 해부루왕의 출생년도로 본 후기부여의 건국년도와 동명왕의 출생년도 = 398
5. 해부루왕의 출생년도로 본 해모수왕의 북부여 건국년도 = 399
6. 『사기』 「화식열전」의 기록으로 본 북부여의 건국년도 = 399
7. 조작된 기록 속에 숨겨진 해모수왕의 북부여 건국년도 = 400
제5절 고구려 시조로 조작된 동명왕과 고구려의 초기 국호 졸본부여 = 405
제6절 북부여가 중국 사서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 = 410
제7절 북부여의 멸망과 동부여의 건국 = 412
제8절 동부여 금와왕의 탄생 = 420
제9절 부여로 오인되어 온 동부여의 멸망 = 429
제7장 북부여ㆍ후기 부여 1,000년 역사를 말살시킨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 437
제1절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기록 원문 = 438
제2절 동명성왕으로 변조된 고구려 시조 추모왕 = 439
제3절 자식을 얻기 위해 제천제를 지내는 전통 = 442
제4절 북부여 역사를 말살하기 위한 역사 왜곡 = 445
제5절 고구려 건국신화를 조작시켜 360년의 북부여 역사를 말살시킨 「삼국사기」의 기록 = 450
1.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탄생신화 원문해석 = 451
2.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 주몽의 아버지로 왜곡되어 온 단군조선의 후계왕조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 463
제6절 추모왕 고주몽의 성장 = 465
제7절 후기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이 건넌 강을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 고주몽이 건넌 강으로 변조시킴으로써 후기 부여의 건국사는 말살되고 = 473
1. 추모왕 고주몽의 도강(渡江)에 관한 『구삼국사』와 『동명왕편』의 기록 해석 = 473
2. 고주몽의 도강(渡江)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 해석 = 481
3. 고주몽의 도강(渡江)에 관한 『삼국유사』의 기록 해석 = 489
4. 동명왕의 후기 부여 건국사를 말살한 『삼국사기』, 『삼국유사』, 『구삼국사』, 『동명왕편』의 기록 연구 = 490
1)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의 시호를 동명왕으로 왜곡 = 490
2) 후기 부여의 시조 동명왕이 건넌 강을 고구려 시조 추모왕 고주몽이 건넌 강으로 왜곡 = 495
5. 동명왕의 후기 부여 건국사를 말살한 조선총독부학파 = 497
1) 동명왕의 후기 부여 건국사를 말살하기 위한 이병도의 궤변 = 498
2) 역사 기록을 조작하여 부여 건국사를 말살하는 이병도의 왜곡된 실증사학ㆍ문헌고증학 = 500
(1) 동명왕의 후기 부여 건국 기록을 주몽의 고구려 건국 기록으로 왜곡 하는 이병도 = 501
(2) 탁리ㆍ고리를 고구려로 조작하여 동명왕의 후기부여 건국사를 고구려의 건국사로 왜곡 하는 이병도 = 502
(3) 동명왕이 건넌 강 이름을 조작하여 동명왕의 후기부여 건국사를 고구려의 건국사로 왜곡하는 이병도 = 505
(4) 이병도의 역사 조작 이유 = 509
제8절 고구려의 건국 = 511
제9절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기록 종합 해석 = 523
제10절 『삼국유사』의 고구려 건국 기록 종합 해석 = 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