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상세정보

상세정보

사고전서 (41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Guy, R. Kent, 1948- 양휘웅, 1973-, 역
서명 / 저자사항
사고전서 / 켄트 가이 지음; 양휘웅 옮김
발행사항
서울 :   생각의나무,   2009  
형태사항
397 p. : 삽화 ; 24 cm
원표제
(The) emperor's four treasuries : scholars and the state in the late Ch'ien-lung era
ISBN
9788984989245
서지주기
참고문헌(p. 385-397)과 색인수록
일반주제명
Learning and scholarship -- China
주제명(지명)
China -- History -- Qianlong, 1736-1795
000 01051camcc2200325 c 4500
001 000045508315
005 20120917162221
007 ta
008 090206s2009 ulka b 001c kor
020 ▼a 9788984989245 ▼g 03910
035 ▼a (KERIS)BIB000011550428
040 ▼d 223009 ▼d 211009
041 1 ▼a kor ▼h eng
082 0 4 ▼a 001.2/0951 ▼2 22
085 ▼a 001.20951 ▼2 DDCK
090 ▼a 001.20951 ▼b 2009
100 1 ▼a Guy, R. Kent, ▼d 1948- ▼0 AUTH(211009)84332
245 1 0 ▼a 사고전서 / ▼d 켄트 가이 지음; ▼e 양휘웅 옮김
246 0 ▼i 한자표제 : ▼a 四庫全書
246 1 9 ▼a (The) emperor's four treasuries : ▼b scholars and the state in the late Ch'ien-lung era
260 ▼a 서울 : ▼b 생각의나무, ▼c 2009
300 ▼a 397 p. : ▼b 삽화 ; ▼c 24 cm
504 ▼a 참고문헌(p. 385-397)과 색인수록
630 0 0 ▼a Si ku quan shu ▼x History
650 0 ▼a Learning and scholarship ▼z China
651 0 ▼a China ▼x History ▼y Qianlong, 1736-1795
700 1 ▼a 양휘웅, ▼d 1973-, ▼e▼0 AUTH(211009)89429
900 1 0 ▼a 가이, 켄트, ▼e
945 ▼a KINS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001.20951 2009 등록번호 111531526 (25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교육보존C/동양서 청구기호 001.20951 2009 등록번호 111531645 (16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사고전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 ‘사고전서’ 편찬의 전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풀어줄 수 있는 노작이다. <사고전서> 편찬과정을 통해 건륭제시대의 학자와 국가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책의 저자 켄트 가이는 <사고전서>가 건륭제가 벌인 탄압의 결과물이라는 기존의 학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고전서>의 편찬은 당시의 학자와 국가, 건륭제의 이해가 모두 반영된 복합적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 책은 국가의 출판사업을 통해 18세기 후반기를 살았던 당대 학자들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편찬과정에서 벌어진 한학파(고증학자)와 송학파(성리학자) 사이의 첨예한 논쟁과 갈등, 대립과 반목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동양정신의 기념비적 집성 ‘사고전서’의 가려진 전설
이 책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사고전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
‘사고전서’ 편찬의 전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풀어줄 수 있는 노작이다.


국내최초로 소개되는 ‘사고전서’의 총체적 풍경과 이해

이 책은 ‘사고전서’ 편찬의 전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노작으로, ‘사고전서’ 편찬과정을 통해 건륭제시대의 학자와 국가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책의 저자 켄트 가이는 ‘사고전서’가 건륭제가 벌인 탄압의 결과물이라는 기존의 학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고전서’의 편찬은 당사 학자와 국가, 건륭제의 이해가 모두 반영된 복합적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국가의 출판사업을 통해 18세기 후반기를 살았던 당대 학자들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편찬과정에서 벌어진 한학파(고증학자)와 송학파(성리학자) 사이의 첨예한 논쟁과 갈등, 대립과 반목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책, 『사고전서』

『사고전서』 편찬사업을 발의하는 조서는 1772년 2월 2일에 반포되었다. 황제는 자신이 통치에 영감을 얻기 위해 항상 과거의 글들을 읽어왔고, 고대의 경전에 담긴 개념을 습득하고 적용하기 위해 날마다 부지런히 애써왔노라고 단언했다. 조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의 재위 초기부터 경전과 정사류의 판본은 정부의 비용으로 인쇄되어 중국 전역에 배포되었다. 그러나 지난 시기에 간과되었던 말이나 행동을 안내하는 데에 유용한 다른 책들이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따라서 총독, 순무, 학정들은 부하들에게 지시하여 각자의 관할구역 내에 있는 장서들을 조사하고, 조정의 관료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발견한 모든 가치 있는 책들의 저자와 내용을 기입한 목록을 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1772년 겨울 건륭제는 각 성과 현의 관리들에게 그들이 관장하는 모든 서고에 보관된 희귀본과 귀중본을 조사하여 보고하고, 필사하여 그 성과물을 북경으로 보낼 것을 명령함으로써, 『사고전서』의 편찬사업이 시작되었다. 1773년 3월에는 각지에서 보내온 책들을 수납하고, 또 그 책의 내용을 평가하기 위한 행정기구가 북경에 창설되었고, 그 사업을 위한 실무진도 구성되었다. 이 사업에는 수많은 조정의 주요인사들과 당대 학술계의 명사들이 참여했다. 22년에 걸쳐 완성된 『사고전서』는 청 제국에 있던 10,680종의 책을 사부(사고: 경전, 역사서, 철학서, 문학서)로 나누어 그에 대한 해제를 작성하고, 3,593종의 책을 필사한 방대한 총서이다. 그 성과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총 36,500책으로 구성된 7질의 필사본 『사고전서』. 이 총서는 황실도서관에 포함되기 위해 사고관에서 선정한 책의 모음집이다. ② 이 총서에 수록된 책의 제목과 저자들의 목록집. 『사고전서간명목록(四庫全書簡明目錄)』이라는 제목의 이 목록집에는 다소 축약된 해제가 포함되어 있다. ③ 『사고전서』의 축약본. 『사고전서회요(四庫全書?要)』라는 이 총서는 총 11,170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고전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들만을 수록하고 있다. ④ 134종의 작품이 수록된 『무영전취진판총서(武英殿聚珍板叢書)』. 이 총서는 『사고전서』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을 활자로 인쇄했다. ⑤ 목록해제집인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현대의 영인본으로 총 4,490쪽에 달한다.

이러한 방대한 총서였던 ‘사고전서’가 만들어지던 18세기 조선의 호학군주 정조는 ‘사고전서’를 구하고자 하였고, 사신들은 정조의 명대로 이 사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구해올 방도를 다각도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정조의 바람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고전서’는 건륭제 자신이 개인적 열람을 위한 것으로, 총 7질만 제작되었다. 이러한 오해는 정조 당시뿐이 아니라, 최근에도 재현되고 있다. 그 일례로 문화방송에서 절찬리에 방영되었던 '상도'의 한 장면에서 임상옥이 천은 3냥을 주고 ‘사고전서’를 사오는 장면이 있다. 이는 ‘사고전서’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해 비롯된 일인데, 이 드라마는 한류열풍을 타고 중국, 대만, 홍콩 등지에서도 방영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사고전서’는 역사시간에 배워 익히 들어보았으나 한 권짜리 책으로 아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고전서’가 많은 곳에서 이야기되고 인용되는 것에 비해 이 정도로 인식되는 것은 놀라울 정도인데, 이 책은 그러한 ‘사고전서’에 대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보다 명료하게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고전서』 편찬과정과 검열운동

바로 그때 『사고전서』의 원고 다섯 질이 완성되었다. 황제는 새로 만들어진 도서관에서 임의대로 책장을 넘기다가 많은 오류와 탈락부분을 찾아냈고, 결국 화신을 기구의 수장으로 임명하여 책을 검사하고 오류를 수정하게 했다. 신설기구는 약 한 달간 작업을 했고, 그후 많은 것이 다시 이루어져야 하는 상태임이 분명해졌다. 황제와 화신은 모두 이 문제에 대한 전 총찬관 기효람의 죄가 “말루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7월 말에 기윤은 사죄문을 제출했고, 필요한 오류의 수정을 위해 몸소 조수들과 함께 만주로의 여행길에 오르겠다고 제안했다.

‘사고전서’는 호학의 군주인 건륭제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이 사업은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의 업적과 필적할 정도로 혹은 그 이상으로 엄청난 지적 사업이었음에 분명하다. 건륭제는 관과 개인이 소유한 방대한 서적의 수입을 명하였으며, ‘사고관’이라는 기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건륭제는 ‘사고전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탈자에 상벌제도를 도입하여, 관리감독하였으며 그 원고를 자신이 직접 검토할 정도로 이 사업에 매진하였다. 저자 켄트 가이는 황제가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서적수집사업을 후원하고, 당대 최고의 재능을 가진 사람을 조정으로 끌어모았으며, 학문적 평판과 그 후원의 정도에서 모든 전례를 압도한 것은 역사상 가장 문명화된 제국에서 건륭제 자신이 지식인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정당성을 입증해준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고전서’의 편찬은 잔혹한 검열운동으로 인한 학문에 대한 탄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는 ‘사고전서’가 서지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과였지만, 1770년대 후반과 1780년대 초반에 조정에서 진행된 검열운동으로 2,400여 종의 책들이 파괴되었고, 400~500여 종의 책들은 공식적 명령으로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래 중국의 문단에 대한 최악의 범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청말기부터 시작된 반만운동의 여파도 이러한 인식에 일정 정도 기여했는데, 20세기의 비평가들은 종종 『사고전서』 편찬사업을 1770년대와 1780년대에 중국을 뒤흔든 대규모 검열 내지 탄압운동을 감추기 위한 위장, 심지어는 핑계로까지 묘사하였다.
켄트 가이는 중국에 있는 모든 불온서적들을 수집하려는 노력이 만약 지식인들 대다수의 저항을 받았다면 커다란 진전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금서의 수가 늘어나고, 불온서적을 소지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널리 알려질수록, 신사층이 신고한 건수가 늘어났다. 이처럼 신사층의 고발이 늘어나고 조사과정에서 보인 관리임용 후보자들의 역할을 보면, 지식인들이 검열운동에 적극 가담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관직 안팎의 지식인 모두가 금서로 지정되어 북경에 보내는 책의 대부분을 색출했고, 책의 내용을 비난했으며, 조사하고 평가하였다. 그렇다고 그것이 황제의 의도에 아첨하거나, 저항한 것은 아니었다.
켄트 가이는 검열이 만주족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과거에 있었던 만.한 사이의 갈등을 없애고 만주족의 관습과 유산 및 전통에 대한 한족의 경멸을 나타내는 역사기록들을 삭제하기 위해 이루어졌고, 한족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결국 검열운동은 신사.관료.황제의 이익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발전했고, 거의 어느 한쪽에 의해서 지배적으로 주도되지 못한 채 이루어졌다. 켄트 가이는 이 점에 주목하여 청대의 황제, 관료, 학자들과의 복합적 관계를 조명하는 데 연구의 초점을 두고 있다.

『사고전서』의 편찬: 만주족 지배층과 한족 지식인의 관계

20세기의 비평가들이 건륭제와 사고관 찬수관들에게 퍼붓는 가장 극심한 비난 중의 하나는 그들이 학술계에 사상적 통제를 가하려고 한 점과, 부분적 내지 전면적 검열을 통해 자기 ‘학파의 노선’과 반대되는 작품들을 파괴하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사실 『총목제요』에 무언가가 표현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학문과 문학에 대한 황제의 견해였다. 『총목제요』는 황제의 관심과 학문적 확신으로 한 올 한 올 짜서 만든 복잡한 무늬의 태피스트리와도 같았다. 『사고전서』에 대한 문헌교정 작업은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노력을 통해 협동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총목제요』의 종합적 범위와 백과사전 같은 세부사항 역시 수많은 학술전문가들이 정치권력 내에서 협조할 수 있어야만 완성될 수 있었다.

건륭 연간의 ‘사고전서’ 편찬사업은 이미 이전부터 시행되었던 중앙집권적인 황실의 도서수집 전통을 잇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정치적 통합은 식자층 엘리트의 이익과 중앙정부의 이익이 정교하게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건륭조 조정이 『사고전서』 편찬사업을 성공시킨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국역사상 가장 방대한 서적수집이 이루어졌고,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유용한 목록이 작성되었다. 사고관에서 쏟아낸 이 성과는 청 조정의 업적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작품이자, 18세기 학술의 수준과 생명력을 입증한 것이었다. 게다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학자들을 정치계급으로 통합함으로써, 건륭조(乾隆朝) 정부는 명말과 청조의 여러 황제들이 회피했던 목적을 달성했다. 이와 같은 성과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켄트 가이는 ‘사고전서’ 편찬과정의 일부에서 나타난 학자들과 국가 사이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볼 때, ‘건륭 연간의 문자탄압’으로 알려진 검열운동의 기존 견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검열운동의 기존 해석들은 검열을 만주족 통치자들이 한족 신하들의 삶과 사상을 보다 확고하게 통제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간간히 충돌이 없지 않았으나, ‘사고전서’의 편찬사업과 뒤이어 계속된 검열운동은 한족 엘리트와 만주족 통치자의 협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이 켄트 카이의 일관된 관점이며, 켄트 가이는 이 협력작업에 참여한 다양한 구성원들의 동기, 그 작업이 수행된 기간, 18세기 중국의 역사에서 그 작업이 끼친 결과를 탐구하는 것을 이 책의 목적으로 밝혔다.
켄트 가이는 18세기의 검열을 단순히 황제독재의 사례로서만 보려는 것이 아니라, 검열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태도에 의해 결정된 역사적 사건으로서 보려는 것이었다. 그 목적은 건륭제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검열운동을 시작한 황제의 책임에 대해서 완전히 면제할 수 없겠지만, 검열운동이 빚어낸 인간적.학문적 비극이 모두 황제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도 있다. 18세기 중국의 사상세계는 한 사람이 지배하기에는 너무도 크고 복잡했으며, 너무나도 다양했다. 그 시대의 야만성과 과잉은 18세기가 이와 같은 복잡한 사상세계를 가졌던 것이 사실임을 증명해준다.
이렇듯 이 책은 독자들이 18세기 후반의 사상가들이 당시의 시대적.정치적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였으며, 또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주고 있으며, 아울러 켄트 가이가 시도한 사상사가 아닌 사상가들의 역사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보다 생동감 있게 당대의 지적 풍경을 그려낸다. 이러한 생동감 있는 입체적 설명이 이 책의 장점이며, 그러한 설명은 비단 청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사회의 제양상과 지식인사회와 권력관계의 문제를 조명하는 데에도 심도깊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할 수 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켄트 가이(지은이)

1948년 캘리포니아주 롱 비치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워싱턴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0년 예일대학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하버드대학 동아시아지역학과에서 석사를 취득했으며, 1980년 하버드대학 역사학과에서 청대사 전공으로 박사를 취득했다. 청대의 정치, 법률, 학술, 문화, 사상 등 다양한 주제로 여러 편의 논문을 썼으며 저서로는 &lt;사고전서&gt;('조셉 레벤슨 상' 수상작)와 &lt;중국의 법률통치상의 한계(The Limits on the Rule of Law in China)&gt;가 있다.

양휘웅(옮긴이)

197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현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과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을 계속 수학했으며,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번역기획공동체 ‘窓’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성리학에서 고증학으로』,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 『삼국지 강의』(공역), 『사고전서』, 『황종희 평전』, 『건륭제』, 『만주족의 역사』, 『예교주의』, 『고대국가 부여의 역사: 고고학과 역사적 기억』(근간)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한국어판 서문 = 6
감사의 말 = 8
1 서론 = 23
2 황제의 발의 = 37
 청대 이전의 정책 및 특권 = 41
 청대의 상황 = 49
 건륭 연간 조정의 출판과 검열 = 63
 1771년의 조서 = 75
3 학자들의 반응 = 81
 18세기의 고증학 = 85
 주균 학단 및 그들의 중요성 = 98
 주균의 건의 = 109
4 건륭 연간의 학자와 관료:『사고전서』의 편찬 = 127
 건륭 연간의 정책 결정: 사고전서관의 설립 = 131
 분교관과 그들의 기여 = 146
 책의 수집과 평가 = 157
 용서하기 위해 찾아내다: 오자목록과 청조의 행정 = 168
 결과물 = 182
5 해제 작성자들에 대한 검토: 학파와 『총목제요』 = 205
 『사고전서』와 한학: 소진함의 초고 = 211
 『사고전서』와 송학: 요내의 초고 = 235
 송학의 기원과 중요성: 가설 = 257
6 취모구자(吹毛求疵): 털어서 먼지 찾기 = 261
 운동의 기원(1772년 2월~1774년 9월) = 265
 문자탄압의 성장(1776~1782) = 277
 사례 연구: 강서 축씨가에 대한 처리 = 300
 검열의 체계화(1780~1782) = 309
 역사와 역사서 편찬에 드리워진 18세기의 검열 = 320
7 결론 = 325
옮긴이의 말 = 338
미주 = 343
참고문헌 = 385
찾아보기 = 398

관련분야 신착자료

윤지선 (2026)
고려대학교. D-HUSS사업단 (2025)
한국일본학회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