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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 | ▼a 97889709079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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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 | ▼d 211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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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952.031092 ▼b 2010z1 | |
| 100 | 1 | ▼a 이종각 ▼0 AUTH(211009)25734 |
| 245 | 1 0 | ▼a 이토 히로부미 : ▼b 원흉과 원훈의 두 얼굴 / ▼d 이종각 지음. |
| 260 | ▼a 서울 : ▼b 동아일보사 , ▼c 2010. | |
| 300 | ▼a 391 p., 도판 [2]장 : ▼b 삽도, 연보 ; ▼c 21 cm. | |
| 504 | ▼a 참고문헌: p. 389-391 | |
| 600 | 1 4 | ▼a 伊藤博文, ▼d 1841-1909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2.031092 2010z1 | 등록번호 111573101 (2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2.031092 2010z1 | 등록번호 111583745 (2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3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2.031092 2010z1 | 등록번호 111583746 (20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원흉과 원훈의 두 얼굴을 지닌 문제적 인물, 이토 히로부미. 이 책은 베테랑 기자 출신으로 일본 전문가인 저자가 이토 히로부미에 관한 자료들을 망라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조사 발굴해서 엮은 것이다. 이를 통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이토 히로부미의 파란만장한 68년 생애를 냉정하게 재구성했다.
우리가 잘 몰랐던, 그리고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이토 히로부미의 행적들을 살펴봄으로써, 일본은 어떻게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루고 제국으로 나아갔으며, 한국은 암흑의 식민지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는지 그 역사의 이면을 짚어본다.
‘한국 식민지화의 원흉’ vs ‘일본 근대화의 원훈’. 이토 히로부미는 지난 100년간 한일 양국에서 가장 상반된 평가를 받아온 문제적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 한일 강제합병 100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안중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가 단죄한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정말 무엇을 알고 있는지 자문하고 기억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운명이 엇갈린 결정적 시기에 그가 있었고, 그의 생애는 일본의 국운(國運)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베테랑 기자 출신으로 일본 전문가인 저자가 이토 히로부미에 관한 자료들을 망라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조사 발굴해서 엮은 것이다. 이를 통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이토 히로부미의 파란만장한 68년 생애를 냉정하게 재구성했다.
우리가 잘 몰랐던, 그리고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그의 행적들을 살펴봄으로써, 일본은 어떻게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루고 제국으로 나아갔으며, 한국은 암흑의 식민지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는지 그 역사의 이면을 짚어본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 한일 강제합병 100년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이토 히로부미 혹은 이등박문!
1907년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통감 재직 중 순종으로부터 ‘친왕(親王)’의 예우를 받았다!
1932년 서울 한복판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 ‘박문사’가 세워졌다!
1939년 이토 히로부미 30주기에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은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사죄했다!
우리는 과연 우리 근현대사의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뜬금없는 얘기로 시작해보자. 한 나라의 지폐 도안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대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일본의 지폐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메이지 시대(1868~1912년) 인물들 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만엔권에는 교육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 5천엔권에는 여성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 1천엔권에는 과학자 노구치 히데요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 모두 메이지 시대에 활약한 인물들이다. 구권(1984~2004년)도 그리 다르지 않다. 1만엔권은 후쿠자와 유키치로 지금과 같고, 5천엔권은 교육사상가 니토베 이나조, 1천엔권은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초상이 담겼다. 현재의 지폐를 도안하면서 여성과 과학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했을 뿐, 도안 인물들의 주요 활동 시대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지폐 초상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한국 지폐들이 조선시대 인물 일색이라는 해묵은 비판을 되풀이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지폐 도안 인물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대의 일면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다. 조금 과장하자면, ‘지폐를 보면 그 나라가 보인다’. 그 점에서 보면, 일본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 구성은 일본인들이 메이지 시대를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인 시대로 보는지 방증한다.
그렇다면 메이지유신의 원훈(元勳)이자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받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왜 일본 지폐 도안에 없을까? 현재 지폐에 없을 뿐, 예전 지폐에는 그의 초상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1963년부터 1984년까지 무려 21년간,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1천엔권 지폐에 말이다. 이것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일본 내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극적인 최후를 맞은 탓에 삼척동자도 이름을 알 정도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가장 유명한 일본인’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평가는 일본에서의 평가와는 반대편 극단에 있다. ‘일제 식민지배의 원흉’이란 한마디로 모든 게 요약된다. 입장은 명쾌하고, 이견은 없다.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안중근 의사가 단죄한 일제 침략의 원흉’이라고 정리하고 말아도 괜찮은 것일까?
이토 히로부미 혹은 이등박문, 그 ‘불편한 진실’
2010년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0년, 일제에 의해 한국이 강제합병된 지 100년을 맞이하는 해다. 올 초에는 순국 100주기를 맞이해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재조명하고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출판물, 영상물, 공연물, 행사들이 잇따랐다. 하지만 안중근의 영웅적 면모를 되새기는 움직임이 붐을 이룬 것과 달리, 그가 온몸을 던져 숨통을 끊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관심에 가깝다.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지 10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침략의 원흉’이란 낙인에서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혹시 치욕의 역사를 잊고 싶어 하는 집단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100년 전 한국’을 제대로 알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서 영웅의 의거와 삶을 기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영웅의 의거로도 돌리지 못한 역사의 물줄기, 그 한 축을 알아야 지난 100년의 한국과 일본을 알 수 있고, 나아가 미래를 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차원에서도 그렇다.
《이토 히로부미》(이종각 지음, 동아일보사 발행)는 한 세기 전 우리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던 문제적 인물 이토 히로부미(1841~1909)의 생애를 그린 평전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일본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신분상승을 이룬 인물로 여겨진다.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지방의 벽촌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분단계를 차례로 밟아가 하급무사가 되었으며, 메이지유신 이후 관선 효고 현 지사, 내무경, 내각총리대신(네 차례), 추밀원 의장(세 차례), 귀족원 의장, 초대 한국통감, 입헌정우회(정당) 총재 등을 역임했다. 메이지 천황에게 공작의 작위를 받았고, 대한제국 순종에게 친왕(親王)의 예우를 받았으며, 구미(歐美) 각국에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로 대우받았으니, 만인지상(萬人之上)이란 말이 그보다 적절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극적인 신분상승을 이룬 인물이자 극단적 평가를 남긴 인물을 그리기 위해 이 책은 이토 히로부미(와 주변 인물들)에 관한 방대한 사료들을 토대로 그의 68년 생애를 재구성한다. 양이(洋夷)를 위해 서슴없이 칼을 들던 하급무사의 모습에서부터, 죽음을 무릅쓴 영국으로의 밀항 유학과 중도 귀국, 서구의 발전상에 큰 충격을 받아 양이를 버리고 근대화에 매진하게 된 일, 메이지 헌법을 기초해 근대 일본의 기틀을 세운 공적, 그를 만인지상의 위치로 이끈 탁월한 현실감각과 국제적 안목 그리고 주선가(周旋家)로서의 모습, 안중근에 의한 극적인 최후를 동년배 원로들이 부러워한 까닭, 죽음 이후 그의 아들과 안중근의 아들의 화해극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새로운 사실과 면모들을 만날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소식을 듣고, 순종은 국운이 다했다고 탄식했으며, 고종은 이토가 한국의 자부(慈父,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았다면서 이토를 죽은 그 ‘흉한’이 한국인이란 사실이 부끄럽다고 개탄했다는 충격적인 자료도 볼 수 있다. 이토가 죽은 뒤 서울 한복판(장충단공원 동쪽, 현재의 호텔신라 자리)에 그를 기리는 절 박문사(博文寺)가 건립되었으며, 이토 사후 30주기를 맞아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 이토의 아들을 만나 사죄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도 자세히 서술되고 있다.
베테랑 기자 출신으로 일본 전문가인 저자는 기존에 출간된 이토 히로부미 관련 책들이 비난과 미화 어느 한 쪽에 치우친 한계점을 직시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의 생애를 그리고자 했다. 또한 풍부한 사료들을 토대로 많은 일화와 쉽게 보기 힘든 자료 및 도판들을 싣고 있다.
비난과 미화의 이분법을 넘어, 미래의 반면교사로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격동의 막말유신(幕末維新, 도쿠가와 막부 말기와 메이지유신) 시기를 지나온 이토 히로부미의 파란만장한 여정은 그 자체로 ‘근대 일본의 탄생’을 보여준다. 일본인들이 메이지 시대를 나라의 국운(國運)을 바꾼 시대로 평가하며, 이토는 메이지 시대의 원훈이자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받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의 생애를 읽으면, 서구 열강의 위협과 개방 및 근대화란 공통된 시대적 요청에 발빠르게 대응해 국운을 상승 반전시킨 일본과 달리, 고답적인 쇄국의 길을 걸은 한국의 행보가 아프게 다가온다.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원흉의 얼굴과 함께 원훈의 얼굴도 균형 있게 다룬 이 책을 읽어야 한다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올해는 엄혹한 질곡의 10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해다. 한 세기 전 쓰라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치열해진 경제전쟁의 포화 속에 당당한 미래를 예비하기 위해 터닝포인트가 되는 중요한 때다. 이를 위해서 이 책은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미래는 역사의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며, 이토 히로부미를 객관적으로 짚어보는 것은 하나의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 원흉의 얼굴뿐 아니라 원훈의 얼굴도 기억하자.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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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목차
프롤로그 = 9 제1장 밑바닥에서의 출발 리스케, 이토 가의 양자가 되다 = 16 이토의 인생에 전기가 된 '흑선내항' = 20 행운: 요시다 쇼인 문하에 = 23 "이토는 '주선가'가 될 것" = 26 제2장 막말유신의 풍운 속에 요시다의 처형과 구루하라의 자살 = 32 영국 공사관 방화에 가담하다 = 36 자진해서 국학자를 암살하다 = 38 결혼 그리고 '준 무사'로 신분상승 = 42 제3장 영국 유학과 사고의 전환 '조슈 5', 영국으로 밀항 = 46 런던행 배에서 죽을 고비를 맞다 = 49 영국을 경험하고 '양이'를 버려 = 53 죽음을 각오하고 중도 귀국 = 56 4국 함대 포격… 강화회담 통역으로 = 60 막부 타도 위한 '삿초동맹' 시동 = 64 첫 아내와 이혼하고 우메코를 선택하다 = 67 제4장 도약의 기회, 메이지유신 일약 효고 현 지사에 오르다 = 76 폐번치현 주장으로 좌천되다 = 79 재정제도 시찰 차 미국 출장 = 83 이와쿠라 사절단 부사로 구미 시찰 = 84 이토, 사절단에 두 거물 동행을 제안하다 = 87 외교 문외한 이토의 치명적 실수 = 90 조슈파 리더 기도, 이토를 맹비난하다 = 92 사절단, 일본 근대화 필요성을 절감하다 = 96 제5장 주선가로서 능력 발휘 정한론을 둘러싼 정변 = 102 사이고, "조선에 사절 보내면 폭거가 일어날 것" = 105 정한론자 기도, 구미 순방에서 생각 바꿔 = 108 '주선가' 이토의 암약 = 110 오쿠보, 정한파와의 대결을 결심 = 113 이토의 기책: 천황에게 두 안을 상주 = 116 이와쿠라, 각의 결정 반대안을 상주 = 119 정한파 패배: 이토, 참의 겸 공부경에 = 122 오쿠보, 정권 주도권 장악 = 124 이노우에, 강화도조약 협상 부사로 = 127 제6장 행운, 유신 3걸의 잇단 죽음 사이고의 반란: 세이난전쟁 = 134 사이고는 자살, 기도는 병사 = 138 오쿠보 암살 이후 권력의 중심에 = 142 이토, 이노우에 문제로 진퇴양난 = 145 천황, 어쩔 수 없이 중신들에 굴복 = 148 제7장 평민에서 초대 총리대신으로 유럽에서 1년여 동안 헌법 연구 = 154 베를린에서 독일 헌법을 모델로 삼다 = 156 이토, 갑신정변 처리 전권대사에 = 161 내각 발족: 천황, 초대총리로 이토를 지명 = 164 헌법 제정을 주도하다 = 169 '메이지 헌법' 제정 공로로 최고 훈장을 받다 = 174 귀족원 의장에서 다시 총리로 = 178 제8장 한국과의 악연 총리로 청일전쟁 지휘 = 182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청일전쟁의 서곡 = 186 일본 승리, 다시 리훙장과 강화협상 = 190 일본, 삼국간섭에 굴복 = 195 이노우에, 주한 공사를 자청 = 198 이토, 이노우에 후임으로 무장 미우라 임명 = 200 미우라, '여우사냥'을 지휘하다 = 203 우범선, 왕비 사체 소각을 지시 = 206 석방된 미우라, 이토에 노골적으로 불만 토로 = 213 흔들리는 '이토 체제' = 215 이토, 총리 사직하고 서울 처음 방문 = 217 제9장 고종과 대신들을 협박, 공갈 러시아 방문과 '만한교환론' 협상 = 222 인천 앞바다에서 러일전쟁 시작 = 225 이토, 러일전쟁 중 한국 특파대사로 = 228 러일전쟁 승리로 한국에서의 우월권 확보 = 231 헌병 동원해 을사늑약 체결 = 236 제10장 초대 한국통감으로 통감 수락 조건으로 군 지휘권 요구 = 244 조슈 번 출신이라는 행운 = 247 메이지 천황의 두터운 신임 = 250 외교뿐만 아니라 한국 국정 전반에 간섭 = 252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 퇴위 강요 = 256 한국에 대한 이토의 인식: '야만' '무능' '나태' = 262 제11장 통감 이토, 한국의 친왕이 되다 사실상 인질로 간 영친왕의 일본 유학 = 266 일본 황태자 방한 추진 = 268 태자태사로 영친왕 교육 담당 = 272 영친왕의 "잘들 있소"에 상궁들 통곡 = 276 영친왕에 대한 메이지 천황의 관심 = 277 조선어를 배운 일본 황태자 = 282 노회한 이토, 상궁을 교묘히 이용 = 283 엄비, 데라우치 총독에게 언성 높여 항의 = 285 이토, 순종 순행 강요 = 287 한국병합안에 쉽게 동의한 이토 = 294 자진해 통감 사퇴 = 299 이토, 타고난 건강과 호색 = 302 제12장 죽음의 만주행 죽음을 예감하다 = 310 '천하의 경륜'을 의식한 만주행 = 315 안중근, 이토의 만주 일정을 신문에서 확인 = 320 "당했다. 누가 쏘았는가" = 322 "코리아, 우라(한국 만세)" = 327 이토의 죄상 15개조 = 330 제13장 이토가 죽은 뒤 원로들, 이토의 죽음을 선망 = 340 고종, "이토는 한국의 자애로운 아버지" = 345 영친왕 '동궁 대우'는 흐지부지 = 350 안중근을 극형으로 몰고 간 일본 = 353 영친왕과 방자의 정략결혼 = 357 서울 한복판에 이토 기리는 절 세워져 = 362 안 의사의 친일파 아들, 박문사에서 '화해극' = 370 안준생, 이토 아들에 "아버지 대신 깊이 사과" = 372 백범, 안준생 친일에 통분하며 극언도 = 375 에필로그 = 379 맺는말 = 382 연보 = 386 참고문헌 = 3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