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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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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31 2010z9 1 | 등록번호 111607653 (17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31 2010z9 1 | 등록번호 111607654 (2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3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931 2010z9 1 | 등록번호 151295440 (10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4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931 2010z9 2 | 등록번호 151307032 (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중 | 반납예정일 2026-04-08 | 예약 예약가능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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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31 2010z9 1 | 등록번호 111607654 (2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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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931 2010z9 1 | 등록번호 151295440 (10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931 2010z9 2 | 등록번호 151307032 (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중 | 반납예정일 2026-04-08 | 예약 예약가능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김영수의 <완역 사기본기> 1권. 총 52만 6,500자로 쓰여진 <사기>는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한다는, 중국 '25사' 정사 가운데 최고의 역사서로 꼽힌다. 전설시대 제왕들인 오제로부터 아래로는 사마천 자신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5,000년 중국사의 5분의 3을 다룬 3,000년 통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본기.표.서.세가.열전'의 다섯 체제가 기전체로 서술되어 있다.
<사기>의 원문을 한자 병기 없이 100퍼센트 한글로 옮겼다. 설명이 필요한 인명, 지명, 서책명 등은 찾아보기 쉽게 각 편마다 표로 정리했으며, 용어 풀이와 주요 사건도 덧붙였다. 또한 역사의 진실과 그에 함축된 드라마를 확인하기 위해 역사 현장을 직접 답사했다. 이 과정을 통해 생생한 현장 사진과 사마천의 현장답사를 되짚어보는 천하유력도, 역사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상세한 상황별 지도를 본문에 담았다. 총 27컷의 지도와 명인들의 초상화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 이 책은 김영수 역자의 《완역 사기 본기》 1권의 개정판으로서, 표지를 바꾸어 새롭게 출간된 것입니다. 본문 내용은 기존의 것과 동일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닫힌 고전에서 열린 텍스트로
흔히들 인문학은 ‘당대의 삶과 현실 사회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는, 살아 숨쉬는’ 학문이라고들 한다. 고전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새롭게 태어난 고전이라면 열린 텍스트로 당대의 삶 안에서 성립되어야만 그 의미가 되살아난다. 고전은 단지 고전이기 때문에 당연히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들이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완독하리라, 작정하는 타이틀이다. 이 같은 정서를 반영이라도 하듯, 그간의 동양고전 목록을 얼추 살펴보면 사마천의 《사기》는 빠지지 않는 타이틀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한국 출판계에 출간된 번역본도 많았다. 굳이 한 권을 더 보태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 물음은 이 책, 김영수의 완역 《사기》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들어 있는가? 탈고전화를 통해 고전을 잘 살렸는가?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김시천 교수의 말이 화두처럼 와 닿는다. 김영수는 20년 넘게 《사기》를 연구해왔으며, 《사기》의 완역본을 위해 이 같은 맥락에서 고민을 거듭한 학자다. 그 결과 본문을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나아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장치를 마련했다.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누구라도 완독하기 어려운 고전을 위한 차별화
역사란 시간과 공간의 학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공간의 영역에 속하는 역사 현장은 시간을 뛰어넘어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유적이든 유물이든 구전이든 전승이든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는 흔적의 한 자락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사마천의 역사적 책임감을 책에서 구현하기 위해 입체적 편집이 되도록 애썼다. 예를 들면,
1. 한자 병기 없이 한글로 기술한 《사기》 본문의 번역문
2. 김영수의 20년 연구 결과가 녹아 있는 해제
3. 역사 속의 그날을 오늘로 되짚어보는 생생한 현장 사진
4. 한눈에 들어오는 왕조들의 복잡한 제왕 세계도
5. 중국의 3,000년 역사 공간을 가늠해볼 수 있는 풍부한 지도
6. ‘주’와 ‘찾아보기’를 대신해서, 명언.명구 풀이, 인명, 지명, 서명을 정리한 표
7. 사마천의 답사길을 되짚어보는 천하유력도
8. 사마천과 한나라 무제의 생애를 비교해볼 수 있는 상세한 연보
김영수 《사기》 완역본의 구성에 대하여
사마천의 《사기》는 총 130편으로 본기(12편), 표(10편), 서(8편), 세가(30편), 열전(7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역본 시리즈는 본기 2권, 표 1권, 서 1권, 세가 3권, 열전 8권으로 구성될 예정이며, 그 첫 권으로 본기 1권이 출간되었다.
본기 1권의 구성은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총서문 격인 <보임안서>와 <권130 태사공자서>, 두 편의 글이 실렸다.
* <보임안서>-임안에게 드리는 답장은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글이 아니다. 이는 《한서》 <권62 사마천전>에 실린 편지글로, 궁형(죄인의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을 당한 사마천이 감옥에서 나와 황제의 신변에서 기밀이나 문서를 담당하는 중서령으로 있을 때, 친구인 임안에게 보낸 답장이다. 사마천의 정신세계와 그간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으며, 집념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명문이다.
* <권130 태사공자서>는 《사기》의 맨 마지막 편으로, 《사기》를 저술하게 된 경위와 나머지 총 129편의 취지와 개략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기》의 총서문 격의 글인 셈이다.
따라서 김영수의 완역본에서는 글의 성격상 이 두 편을 묶어 완역본의 총서문으로 삼았다.
2부에서는 《사기》본기 총 12편 가운데 모두 5편을 실었다.
《사기》 열전의〈역생육고열전〉 부분으로, 송나라 때 간행된 황선부 간본이다. 현존하는 판본 가운데 활자가 가장 우아하고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 | 권2 하본기夏本紀 | 권3 은본기殷本紀 | 권4 주본기周本紀 | 권5 진본기秦本紀
이 책에 대하여
절대 역사서《사기》의 출현
총 52만 6,500자로 쓰여진《사기》는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한다는, 중국 ‘25사’ 정사 가운데 최고의 역사서로 꼽힌다. 《사기》는 ‘통사’라는 점에서 한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단대사인 다른 정사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전설시대 제왕들인 ‘오제’로부터 아래로는 사마천 자신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5,000년 중국사의 5분의 3을 다룬 3,000년 통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본기.표.서.세가.열전’의 다섯 체제가 기전체로 서술되어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역사는 물론 중국 문화와 중국인을 알려면《사기》를 건너뛸 수 없다.
한글로 기술한 《사기》본문의 번역문
《사기》의 문장은 당시로서는 파격이라 할 정도로 통속적이었다. 속담과 격언 그리고 생생한 고사성어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원문을 한자 병기 없이 100퍼센트 한글로 옮긴 이유다. 설명이 필요한 인명, 지명, 서책명 등은 찾아보기 쉽게 각 편마다 표로 정리했으며, 용어 풀이와 주요 사건도 덧붙였다.
42일, 1만 9,376킬로미터
《사기》의 팩트fact는 사마천이 역사현장을 직접 발로 밟아가며 확보한 것이다. 42일, 1만 9,376킬로미터, 이 수치는 옮긴이 김영수가 ‘본기’ 현장을 답사하는 데 투자한 총 시간과 거리다. 김영수는 역사의 진실과 그에 함축된 드라마를 확인하기 위해 15년 넘게, 100여 차례 역사 현장을 직접 답사했다. 이 과정을 통해 확보한 생생한 현장 사진과 사마천의 현장답사를 되짚어보는 천하유력도(사마천의 답사 지도), 역사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상세한 상황별 지도를 본문에 실었다.
지도는 총 27컷이 실렸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천하유력도(20쪽) | 서남 지역 답사(21쪽) | 북쪽 변방 답사(22쪽) | 강남과 강회 답사(23쪽) | 한 무제의 흉노 정벌도와 이릉 사건(66쪽) | 상고시대 부락 연맹간의 투쟁을 잘 보여주는 탁록 전투도(202쪽) | 요·순·우의 삼묘 정벌도(212쪽) | 황하·장강 유역 전설시대의 원시사회 부락 분포도(226쪽) | 우공구주 지도(267쪽) | 하나라 강역도(269쪽) | 하후 제계가 유호씨를 정벌한 감 전투도(283쪽) | 상의 강역도(311쪽) | 명조 전투도(326쪽) | 무정의 토방, 공방 정벌도(334쪽) | 목야 전투도(390쪽) | 주의 강역과 제후 분봉도(393쪽) | 주공의 동방 정벌도(396쪽) | 견융의 침입과 서주의 멸망도(414쪽) | 춘추시대도(420쪽) | 전국시대도(425쪽) | 수갈 전투도(440쪽) | 선진 시기 주요 전쟁도(448쪽) | 효산 전투도(501쪽) | 하서 수복도(518쪽) | 이궐 전투도(524쪽) | 장평 전투도(528쪽) | 진 통일 강역도(532쪽)
사기의 주석서와 판본에 대하여
《사기》에 대한 전문적인 주석서는 남조시대 송나라 배인裴駰의 《사기집해史記集解》가 그 길을 텄다. 당나라 때 질적 도약을 보이는 주석서 편찬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이 《사기집해》와 당나라 때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史記正義》를 합쳐 흔히들 “삼가주”라 부른다. 삼가주는 《사기》 주석서를 대표하는 주석의 지침서와 같은데, 북송 이후 이 세 사람의 주석이 《사기》 본문 아래 나란히 제시되어 인쇄 출간됨으로써 《사기》와 그 주석이 널리 보급되어 《사기》 연구에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청나라 때 양옥승梁玉繩의 《사기지의史記志疑》가 《사기》 연구의 한 획을 그었다. 근현대에 와서는 타키가와 카메타로瀧川龜太郞의 《사기회주고증史記會注考證》이 출현하여 《사기》 연구의 제2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존하는 《사기》 판본으로는 북송 순화淳化 연간(990~994년) 국자감에서 간행한 것의 일부가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남아 있다. 남송시대 1194년부터 1196년까지 약 3년에 걸쳐 면밀한 고증을 거치고, 여기에 삼가주를 함께 넣어 간행한 소희 연간의 황선부黃善夫 간본은 현존하는 판본들 중에서 활자가 가장 우아하고 훌륭한 판본으로 꼽힌다. 1936년 상무인서관에서 출간한 백납본百衲本 24사 중 《사기》는 바로 이 황선부 간본을 영인한 것이다. 1949년 신중국 이후 중화서국中華書局은 《사기》 원문에 문장부호를 달고 현대 활자로 찍은 소위 표점교감본 《사기》 대중 보급판을 출간했는데, 이때 사용한 판본은 역시 삼가주를 함께 넣어 청나라 동치 연간 금릉서국에서 간행한 장문호교정본張文虎校正本이다. 1983년 타이완 굉업서국宏業書局에서 낸 표점교감본 《사기》(재판)도 마찬가지다. 현재 《사기》를 읽거나 연구할 때 대본으로 삼는 판본은 거의 대부분 이들 표점교감본이다.
김영수 완역본은 이들 표점교감본을 기준으로 삼고, 여기에 최근 중국 《사기》 연구의 대가인 한조기韓兆琦 교수가 편저한 《사기전증史記箋證》(전9책, 江西人民出版社, 2004)을 대조해가며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에 실린 명인들의 초상화에 대하여
이 책에는 명인들의 초상화가 많이 실려 있다. 이들의 출처에 대해 설명을 간략하게 덧붙인다. 명인이나 위인들의 초상화를 모은 책을 도상집 또는 화상집이라 한다. 이는 상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사마천도 장량의 전기인 권55 <유후세가>에서 장량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러한 전통은 한대에 시작되어 송대에 성현도가 나타났고, 목판인쇄술이 발달한 명대에 오면 목판본 책자로 제작하는 경향이 활발해졌다고 본다. 지금까지 남아서 전하는 초상화는 대부분 명나라 이후에 인쇄를 통해 남은 것들이다. 그중 제왕과 성현들의 초상화 300여 폭을 담고 있는, 일종의 백과사전 격인 《삼재도회》가 대표적인 서책이다.
20년 연구 결과가 녹아 있는 각 권의 해제와 다양한 부속물에 대하여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한 사마천은 고독 속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사기》를 완성했다. 사마천의 심경과 의도를 잘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부속물을 마련했으며, 사마천의 생애와 한나라 무제의 생애를 비교해볼 수 있는 상세한 연보를 실었다. 특히 김영수의 해제는 《사기》를 문헌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역사책으로서의 평가도 놓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수많은 연구자들의 성과를 섭렵하고, 밀도 높게 구성된 해제는 《사기》를 오늘날의 고전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각 권의 해제를 살펴보면,
《사기》의 문헌 비교분석
<오제본기>는 《상서》를 비롯하여 지금은 이름만 남은 <오제덕>과 <제계성>을 기본 사료로 삼고, 여기에 《국어》《좌전》《세본》《장자》《맹자》《한비자》《전국책》《여씨춘추》《예기》《회남자》 등의 자료를 한데 녹여 완성한, 그 규모가 대단히 방대한 3,000 년 중국사의 서막이다. -권1 <오제본기>
… 선양을 강조하기 위한 극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물론 《죽서기년竹書紀年》.《한비자韓非子》 같은 문헌에는 선양이 아닌 비정한 권력 투쟁으로 묘사되어 역대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덕 있는 통치자를 갈망하는 백성들의 염원을 반영하여 선양을 부각시켰다. -권1 <오제본기>
명나라 만력 연간에 간행된 《춘추정의》 판본.
참고한 기록을 보면, 사마천이 다른 기록들보다는 《국어》를 상대적으로 더 믿었다고 할 수 있다. …〈주본기〉의 기록이 상대적으로 상세한 것은 《주서》 등 관련 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활용한 자료들에 근거해서 살펴보면 〈주본기〉의 경우, 유왕 이전은 《국어》에서, 평왕 이후는 《춘추》에서, 위열왕 이후는 《전국책》에서 많이 채용하였다. 이에 따라 문장 형식에서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권4 <주본기>
역사책으로서의 평가
역사 서술의 형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처음에는 단순한 연대기적 서술 위주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그러하고, 중국의 《춘추》도 그러하다. 중국에는 편년체인 《춘추》와 달리 단순한 연대순 기술에서 벗어나 봉건국의 개별사를 연대순으로 편제한 《국어》와 《전국책》도 있었다. 이는 다수의 정치적 단위, 즉 여러 나라가 특정한 시기에 공존할 경우 그들 사이에서 전개되는 복잡한 사건들을 단일한 연대기적 순서의 틀에 넣어 기술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권130 <태사공자서>
특히 항우는 천자에 오르지 못하였음에도 본기에 편입됨으로써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기》를 비판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이 부분을 거론한다. …《사기》의 체제를 거의 그대로 모방한 《한서》는 항우를 열전으로 격하시켰다. 이는 반고가 사마천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사마천은 역사에서 표상이 아닌 사실을 중시하였는데, 항우와 여후가 본기에 편입된 것은 이 때문이다. - <본기>
유적 발굴에 따른 《사기》의 사료적 가치 입증
〈은본기〉는 《시경》〈상송〉으로부터 시조 설의 자료를 취하였고, 탕 이후는 기본적으로 《상서》와 《시경》의 기록을 취하였다. 이 밖에도 내용을 분석해 보면, 《국어》《좌전》《세본世本》《대대례大戴禮》〈제계편〉과 《일주서》《묵자》《맹자》《여씨춘추》 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다양한 고서들을 참고하고 인용하되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 대목에서는 사마천이 당시 통용되던 문어체로 치환하여 자신의 문장으로 융합시켰다. -권3 <은본기>
〈은본기〉는 대량의 문자를 기록한 갑골이 나온 은나라의 마지막 수도 은허殷墟의 발굴을 계기로 공백이 많은 중국 상고대사의 위아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한 예로 갑골문 연구의 대표적인 학자인 왕국유王國維는 〈은대 복사에 보이는 선왕 선공에 대한 고찰殷卜辭中所見先公先王考〉이라는 논문과 그 속편에서 〈은본기〉, 〈삼대세표〉와 갑골문에 기록된 은대 제왕의 이름과 세계를 비교 고찰한 결과, 모든 인물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사마천이 인용하거나 참고한 자료가 대부분 진실되고 정확한 것이었음이 입증되었다. -권3 <은본기>
응용 역사학의 관점에서
이런 주의 봉건제도를 현대의 기업에서 스타벅스나 맥도널드와 같은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비유하는 학자도 있다. 체인점(제후)은 본사(주 왕실)의 햄버거나 커피 같은 특정 상품(주 왕실의 제도와 문화)을 반드시 팔되 본사에 권리를 위임하고 간판을 사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주의 봉건제도와 흡사하다고 본 것이다(쉬저윈, 《CEO를 위한 중국사 강의》 참고). -권4 <주본기>
연구에 따르면 진에 재상직이 마련된 이후 이름이 남은 25명의 재상들 중 국외 출신이 17명에 평민 출신이 9명이나 되었다. 본국 출신은 단 한 명의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는 타국과 비교해볼 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놀라운 수치다. 이렇듯 적극적이고 대외 개방적인 문화 풍토가 있었기에 효공과 상앙의 전면 개혁이 가능하였고, 나아가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 이 때문에 <진본기>는 인물 묘사에서 뛰어난 서술 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권4 <주본기>
《사기》를 둘러싼 중국의 행보
하나라와 관련하여 중요한 고고학 유지들로는 하남성 언사偃師 이리두二里頭 유지를 비롯하여 하남 용산문화 유지 및 하남성 등봉登封 왕성강王城崗, 산서성 하현夏縣 동하풍東下馮 유지 등이 있다. 특히 이리두 유지에 대한 발굴로 소위 ‘이리두 문화’가 확인되었으며, 이 문화에 대한 탄소14 연대 측정에 따라 이리두 유지는 대략 기원전 1900년에서 기원전 1400년 사이에 걸쳐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연대는 문헌 기록상 하나라의 연대 범주에 든다. 발굴된 주요 유물로는 동작銅爵(동술잔), 옥과玉戈(옥으로 만든 창), 녹송석을 상감한 짐승 얼굴 모양의 동으로 만든 장식 등이 있다. -권2 <하본기>
하나라 역사에 관하여 근대 중국 학술계의 ‘고사변파古史辯派’를 대표하는 고힐강顧頡剛 등은 철저한 문헌 고증과 고대 기록에 대한 전반적인 의문에 근거하여 《사기》 〈하본기〉의 기록과 우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를 나타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관변 학자들은 고사변파를 ‘고대의 역사를 무조건 의심하는 파’라는 의미의 ‘의고파疑古派’로 몰아붙이는 한편, 고고학 발굴 성과를 근거로 하나라의 존재를 확신하고 나섰다(‘의고파’는 원래 ‘고사변파’의 별칭이었지만 최근 관변 학자들이 이를 부정적인 의미로 으레 사용하고 있다). -권2 <하본기>
‘용어 풀이’와 ‘주요 사건’에 대하여
용어 풀이와 주요 사건은 본문을 밀도 높게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김영수는 단지 낱말이나 문구의 뜻만을 풀이하지 않는다. 근간이 되는 출처를 밝히고, 비교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참고 문헌을 덧붙여 소개하고, 나아가 문헌에 근거하여 《사기》 원문의 연도, 수치상의 오류를 바로잡고, 다양한 설이 있는 문구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용어 풀이’를 살펴보면,
‘노신초사勞身焦思, 거외십삼년居外十三年, 과가문불감입過家門不敢入’
‘노심초사 13년을 밖에서 살면서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하였다.’ 우가 치수사업을 위하여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객지 생활을 한 것에 대하여 역대로 많은 논평이 따랐다. 객지 생활을 한 기간부터 몇 차례나 들어가지 못하였는가, 등에 대하여 이런 저런 설이 있었다. 《맹자》에서는 우가 집 문 앞을 세 번이나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하였다는 ‘삼과기문이불입三過其門而不入’을 언급하여 후대에 영향을 주었다. - 권2 <하본기>
출전과 참고문헌
‘용국위성用國爲姓’
‘나라 이름을 성씨로 삼다.’ 고대 성씨의 사용례를 보여주는 것으로, 《노사路史》 〈국명기國名紀〉에는 ‘나라를 씨로 삼는다’는 대목이 네 번이나 인용되었다. 당초 구분되었던 성과 씨가 후대로 가면서 구분 없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2 <하본기>
‘삼년불언三年不言’
‘3년 동안 말하지 않다.’ 이 고사는 중국 역사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통치자의 전형적인 통치술 가운데 하나다. 통치자가 즉위 후 3년씩이나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는 말은 실제로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주도면밀하게 조정의 분위기를 살피며 큰일을 준비하였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일화가 있는데, 춘추시대 초나라의 대신 오거가 장왕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3년을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는 새는 어떤 새인가?” 이 수수께끼에서 유래한 ‘불비불명不飛不鳴’의 고사성어도 장왕이 즉위 후 3년 동안 정사는 돌보지 않고 놀기만 한 데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도 비슷한 일화를 남겼다. - 권3 <은본기>
‘갑자일甲子日’
주 무왕이 상을 정벌한 날로 〈주본기〉에는 기원전 1046년인 무왕 11년, 주나라 달력으로 2월 갑자일 새벽으로 나온다. 이 내용은 《주서》 《상서》 《한비자》 등 역사 문헌에만 그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1976년 섬서성 임동에서 무왕의 상 정벌을 기록한 서주시대 청동기인 ‘이궤利簋’가 발견되면서 이와 같은 내용의 명문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문헌 기록과 일치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 권4 <주본기>
다양한 해석과 이설
‘팔천八遷’
‘여덟 번 도읍을 옮겼다.’ 상의 시조 설로부터 건국자 탕에 이르기까지 도읍을 여덟 번 옮겼다는 설은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자주 도읍을 옮긴 까닭은 ‘자연재해설’부터 ‘정치적 고려설’ 등으로 다양하다. - 권3 <은본기>
‘이월갑자매상二月甲子昧爽’
‘2월 갑자일 동틀 무렵’이란 이 대목은 주 무왕이 상을 정벌한 시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역대로 숱한 논란과 연구가 있었다. 이 사건은 《사기》 외에 《상서》《주서》《한비자》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1976년 섬서성 임동에서 출토된 ‘이궤利簋’라는 청동기 명문에 ‘武征商, 唯甲子朝’란 대목이 확인됨으로써 무왕이 이 날짜에 상을 정벌하였음이 입증되었다. 이 청동기는 무왕이 상을 정벌한 뒤 8일째 되던 날, 우사右史 리利에게 청동을 하사하자 리가 이것으로 주조한 예기다.
고사성어의 근거
‘일중불가식이대사日中不暇食以待士’
‘한낮이 되도록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선비들을 접대하다.’ 《상서》〈무일〉에 나오는 대목이다. 권33 〈노주공세가〉에도 주공이 봉지인 노魯로 떠나는 아들 백금에게 자신은 “한 번 목욕하다가 머리카락을 세 번 움켜쥐고 나왔고, 한 끼 식사하다가 먹던 것을 세 번이나 뱉어내고 나올” 정도로 선비들을 맞이하는 데에 소홀함이 없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일목삼착一沐三捉, 일반삼토一飯三吐’라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나왔는데, 문왕의 인재 대접도 같은 맥락이다. - 권4 <주본기>
《사기》 원문과 죽간, 목간, 표점교감본에서의 수치상의 오류
‘10년, 열왕이 세상을 뜨고 동생 편이 즉위하니 이가 현왕이다.’
《사기》 판본에는 7년이 10년으로 나와 있다. ‘七 ’과 ‘十’이 혼동된 경우가 적지 않은데, 고증에 의하면 7년이 맞다. - 권4 <주본기>
‘전국에 총 41개의 현이 생겼다.’
상앙의 변법에 따라 전면 개혁이 실행되었고, 지방도 크고 작은 현을 단위로 하는 체제로 개편되었다. 원문에는 41개 현이라 하였으나 〈상군열전〉 등에 따르면 31개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 권4 <주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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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사마천(지은이)
역사학의 성인 ‘사성史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 지금의 샨시성陝西省 한청시韓城市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교육 아래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갖추어나갔다. 스무 살 때는 아버지의 권유로 약 3년에 걸쳐 천하의 역사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팩트의 진실성과 그에 함축되어 있는 역사적 의미를 체험하는 뜻 깊은 행보를 실천으로 옮겼다. 이때의 경험은 3천 년에 걸친 방대한 역사서 《사기》의 출로를 모색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20대 중후반 예비관료인 낭중郎中으로 선발되어 궁중에 들어와 당대의 숱한 인재들과 교류하는 한편 황제 무제武帝를 지근에서 모셨다. 36세 때 아버지 사마담이 세상을 떠나자 3년 상을 치른 후 38세 때인 기원전 10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부 문서와 기록을 책임지는 태사령太史令이 되었다(이해에 고조선이 멸망했다). 마흔이 넘으면서 사마천은 아버지 대부터 수집해놓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서를 저술하 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원전 98년 젊은 장수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황제의 처남이자 장군인 이광리李廣利를 무고했다는 죄목으로 옥에 갇혔다. 상황은 악화되어 반역죄에 몰려 사형이 선고되 었고, 사마천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역사서를 마무리하기 위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하여 죽음을 면했다. 50세 무렵 감옥에서 풀려난 사마천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진 처절한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역사서 저술에 몰두했다. 약 3년에 걸친 옥살이와 궁형은 역사서의 방향과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사마천은 이 수모와 고독 속에서 인간과 세상, 권력과 권력자, 인간의 본질에 대해 철저하게 숙고하는 한편, 나아가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와 같은 근원적 의문을 던지며 3천 년 통사를 완성했다. 이로써 《사기》는 역사에서 인간의 역할을 누구보다 깊게 통찰한 인류 최고의 역사서로 거듭날 수 있었다. 궁형은 사마천 개인에게는 더할 수 없는 불행이었지만 인류에게는 비할 데 없는 값진 선물로 남은 ‘역설적 악역’이었다. 궁형으로 인한 수염 없는 그의 초상화가 그 의미를 일깨운다. 한편 사마천의 죽음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병사, 자살, 행방불명, 처형 등 여러 설이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맴돌고 있다. 사가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해를 대략 기원전 90년 무렵으로 추정한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김영수(옮긴이)
지난 30여 년 동안 사마천(司馬遷)과 《사기(史記)》, 그리고 중국을 연구하고 30년 가까이 중국 현장을 150여 차례 이상 탐방해 온 사마천과 《사기》에 관한 당대 최고의 전문가이다. 저자는 지금도 사마천과 중국의 역사와 그 현장을 지속적으로 답사하며 미진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와 역서로는 《완역 사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1 : 사마천, 삶이 역사가 되다》《절대역사서 사기 -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2》가 있다. 최근에는 《용인 66계명》《리더십 학습노트 66계명》《리더의 망치》《성공하는 리더의 역사공부(원제 : 《리더의 역사공부》)《리더와 인재, 제대로 감별해야 한다》《《사기, 정치와 권력을 말하다》《사마천 다이어리북 366》《인간의 길》《백전백승 경쟁전략 백전기략》《삼십육계(개정증보판)》《알고 쓰자 고사성어(개정증보판)》《사마천 사기 100문 100답》과 ‘간신(奸臣)’ 3부작인 《간신 : 간신론》 《간신 : 간신전》 《간신 : 간신학》 《정치, 역사를 만나다》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오십에 읽는 사기》《제왕의 사람들 》《난세에 답하다》《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제자백가, 경제를 말하다》 《사마천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막료학》 《모략학》 등이 있다. ▶저자 연락처 페이스북 _ Young Soo Kim 유튜브 _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 블로그 - ‘김영수의 사기세계’ 밴드 _ ‘좀 알자, 중국’
목차
[volume. vol.1]---------- 목차 《사기》총 130편 편명 일람 = 4 사마천 연보 = 6 사마천 천하유력도 = 20 역자 서문|시공을 초월한 절대 역사서와 조우하다 = 24 서문 보임안서 - 임안에게 드리는 답장 해제 = 49 보임안서 한국어 번역문 = 59 답장이 늦어진 연유를 말하다 사마천,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해명하다 이릉 사건의 전모를 밝히다 《사기》저술의 동기와 목적을 말하다 마무리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74 관련 인명표 = 79 관련 지명표 = 82 관련 서명 일람표 = 83 권130 태사공자서 - 태사공 사마천의 총 서문 해제 = 87 권130 태사공자서 한국어 번역문 = 109 아버지 사마담까지 사마씨 집안의 내력을 밝히다 아버지 사마담의 학문과〈논육가요지〉를 말하다 사마천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사기》의 저술 동기를 밝히다 '본기' 12편의 요지를 밝히다 '표' 10편의 요지를 밝히다 '서' 8편의 요지를 밝히다 '세가' 30편의 요지를 밝히다 '열전' 69편의 요지를 밝히다 저술의 시대적 배경과 '자서'의 요지를 밝히다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152 주요 사건 = 156 사마천 가계도 = 158 사마천∼사마휘 가계도 = 159 사마휘∼풍ㆍ동ㆍ마ㆍ사, 4성 세계도 = 160 관련 인명표 = 161 관련 지명표 = 165 관련 서명 일람표 = 169 본기 - 본기 해제 = 173 권1 오제본기 - 다섯 제왕의 기록 해제 = 187 《사기》대일통 역사관 구조도 = 190 권1 오제본기 한국어 번역문 = 201 황제의 치적을 알리다 제전욱의 치적을 알리다 제곡의 치적을 알리다 제요의 치적을 알리다 제요가 후계자를 선정하다 순이 후계자 수업에 들다 순의 실적과 즉위를 밝히다 순의 내력과 인품을 말하다 순의 가족에 대해 말하다 순의 덕과 교화를 말하다 제순, 22인의 인재를 임명하다 인재들의 업적과 제순의 죽음을 말하다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228 주요 사건 = 234 관련 인명표 = 235 관련 지명표 = 240 관련 서명 일람표 = 243 권2 하본기 - 하나라의 기록 해제 = 247 권2 하본기 한국어 번역문 = 261 우의 내력을 밝히다 우는 치수사업으로 노심초사하다 우는 치수사업으로 구주를 확정하다 우의 치수사업으로 구산이 개통되다 치수사업을 완료하고 통치구역을 확정하다 고요와 통치에 대하여 담론을 나누다 우에게로 대권이 넘어가다 하 왕조, 부자계승으로 전환하다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288 주요 사건 = 292 하 왕조 세계도 = 294 관련 인명표 = 295 하ㆍ은 시대 관련 지명표 = 298 관련 서명 일람표 = 303 권3 은본기 - 은나라의 기록 해제 = 307 권3 은본기 한국어 번역문 = 319 시조 설과 선왕의 계보를 밝히다 탕이 이윤을 등용하다 걸의 폭정으로 탕이 혁명을 일으켜 천하를 평정하다 탕의 죽음으로 후계자들이 대를 이어 다투다 반경과 무정이 중흥하여 은나라를 크게 다스리다 은이 쇠하여 멸망하다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340 주요 사건 = 346 은의 선왕 계보도와 은 왕조 세계도 = 348 관련 인명표 = 349 하ㆍ은 시대 관련 지명표 = 355 관련 서명ㆍ문장 일람표 = 360 권4 주본기 - 주나라의 기록 해제 = 365 권4 주본기 한국어 번역문 = 379 주의 기원과 고공단보의 덕행을 밝히다 주 왕조의 기틀을 닦다 무왕이 상을 정벌하다 무왕이 구주의 장관을 소집하여 통치하다 주공의 섭정과 성왕과 강왕의 치세를 밝히다 목왕이 통치하여 안녕을 되찾다 여왕의 폭정으로 국인이 반정하다 봉화놀이로 서주가 멸망하다 동주의 시작과 쇠퇴를 밝히다 전국시대가 시작되고 주는 멸망하다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432 주요 사건 = 442 주 왕조 세계도 = 450 관련 인명표 = 452 관련 지명표 = 461 관련 서명ㆍ문장 일람표 = 468 권5 진본기 - 진나라의 기록 해제 = 473 권5 진본기 한국어 번역문 = 483 진, 선조들의 계보를 밝히다 제후국이 된 진, 중원과 접촉하다 목공의 외부 인재 기용으로 진이 발전하다 춘추 후기에서 전국 중기까지 진의 부침을 밝히다 효공과 상앙이 전면 개혁을 단행하다 통일을 위한 외교 책략을 마련하다 천하 통일을 향하여 나아가다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534 주요 사건 = 545 진 왕조 세계도 = 551 관련 인명표 = 552 관련 지명표 = 570 관련 서명표 = 579 참고문헌 = 580 [volume. vol.2]---------- 목차 《사기》총 130편 편명 일람 = 4 역자 서문 수천 년의 시간과 공간을 활보하다 = 6 본기 【권6 진시황본기―진시황의 기록】 해제 = 21 권6 진시황본기 한국어 번역문 = 35 진시황 친정 이전의 정치적 상황 진시황의 친정과 6국 통일 통일 후 각종 제도 개혁 천하 순시와 각석비의 건립 고금 논쟁과 분서 토목건축 사업과 갱유 마지막 천하 순시 진시황의 죽음과 그 무덤 이세황제의 즉위와 실정 아방궁 완성과 농민 봉기 조고의 발호와 진의 멸망 사마천의 논평 〈과진론〉 역대 왕들의 계보와 장지 반고의 논평〈진기론〉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116 주요 사건 = 134 진시황 연부 = 142 전국 제후국의 병함 과정표 = 155 진의 중앙정부 조직표 = 156 진의 지방 관제표 = 157 관련 인명표 = 158 관련 지명표 = 168 관련 서명표 = 175 【권7 항우본기―항우의 기록】 해제 = 179 권7 항우본기 한국어 번역문 = 191 항우의 집안과 초기 경력 항량의 봉기와 죽음 거록 전투와 항우의 활약 항우의 입관과 홍문연 항우의 함양 도살과 분봉 제후들의 반발과 초한쟁패의 시작 패왕별희 항우의 죽음 이후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240 주요 사건 = 250 초한쟁패 연표 = 255 관련 인명표 = 264 관련 지명표 = 271 【권8 고조본기―고조의 기록】 해제 = 279 권8 고조본기 한국어 번역문 = 295 고조의 출생과 성장 과정 봉기 항량과의 합류 함양 입성과 약법삼장 홍문연과 항우의 패권 명수잔도, 암도진창 초한쟁패와 수수 전투 전세 역전 황제 즉위와 논공행상 거듭되는 모반과 한신의 제거 대풍가를 뒤로 하고 쓰러진 영웅 후사와 가족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342 주요 사건 = 354 서한 통일 이후 연표 = 359 서한 왕조 황족 관계표 = 363 서한 왕조 제왕 관계표(고조∼효무제) = 364 서한 왕조 공신 일람표 = 365 관련 인명표 = 368 관련 지명표 = 372 【권9 여태후본기―여태후의 기록】 해제 = 379 권9 여태후본기 한국어 번역문 = 389 여후의 노심초사와 고조의 죽음 여후의 보복과 해제의 자포자기 해제의 죽음과 여후 집안의 권력 장악 여후의 권력 다지기 여후의 죽음과 여씨 세력의 몰락 사태 수습과 새 황제 추대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412 주요 사건 = 419 여태후 집권기 연표 = 423 권련 인명표 = 427 관련 지명표 = 431 【권10 효문본기―문제의 기록】 해제 = 435 권10 효문본기 한국어 번역문 = 447 효문제의 즉위 과정 즉위 조서와 논공행상 연좌제 폐지와 논공행상 덕정의 선포와 비방제 폐지 흉노의 침입과 내란 수습 육형의 폐지와 세금 면제 대흉노 화친책과 집권 후기의 정책들 덕정의 결실 유언과 죽음 효경제의 조서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476 주요 사건 = 482 효문제 연보 = 485 관련 인명표 = 488 관련 지명표 = 492 【권11 효경본기―경제의 기록】 해제 = 497 권11 효경본기 한국어 번역문 = 507 경제의 즉위와 오초칠국의 난 태자의 책봉과 교체 통치 후반기의 상황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520 주요 사건 = 528 효경제 연보 = 531 관련 인명표 = 534 관련 지명표 = 537 【권12 효무본기―무제의 기록】 해제 = 541 권12 효무본기 한국어 번역문 = 551 무제의 즉위와 미신 숭배 본격적인 제사의 시작과 각종 미신 행사 연호의 제정과 난대의 발호 보정의 발견 태일신 제사와 봉선 거행 계속되는 제사와 미신의 성행 무제시대의 각종 제사 정리 사마천의 논평 명언ㆍ명구, 용어 풀이 = 590 주요 사건 = 601 효무제 연보 = 603 관련 인명표 = 620 관련 지명표 = 624 관련 서명표 = 627 본기를 마치며 사마천이 남긴 다른 글들에 관하여 = 629 참고 문헌 = 6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