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교에서부터 무역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중인 신분의 외국어 전문가, 역관이다. 양반 사회에서 신분 차별의 설움을 견디며 외국어 전문가로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조선 시대 역관의 역사를 주목할 만한 인물을 통해 되짚어 본다.
특히 이 책에선 인물을 크게 네 분야로 나눠 이야기한다. '차이나드림을 꿈꾸다', '일본과 통하다'에선 중국어와 일본어 전문 역관으로서 외교와 중개무역에서 활동한 역관들의 활약상을 살핀다. 이어서 '우리는 조선인이다'에선 역관으로서 조선의 이름을 드높인 인물을, '신세계에서 길을 잃다'에선 조선 후기부터 개화기까지 활약한 역관들을 다뤘다.
조선 최고의 외국어 달인
종횡무진 조선을 뒤흔들다
조선 시대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교에서부터 무역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중인 신분의 외국어 전문가, 역관이다. 양반 사회에서 신분 차별의 설움을 견디며 외국어 전문가로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조선 시대 역관의 역사를 주목할 만한 인물을 통해 되짚어 본다.
특히 이 책에선 인물을 크게 네 분야로 나눠 이야기한다. ‘차이나드림을 꿈꾸다’, ‘일본과 통하다’에선 중국어와 일본어 전문 역관으로서 외교와 중개무역에서 활동한 역관들의 활약상을 살핀다. 이어서 ‘우리는 조선인이다’에선 역관으로서 조선의 이름을 드높인 인물을, ‘신세계에서 길을 잃다’에선 조선 후기부터 개화기까지 활약한 역관들을 다뤘다.
신분의 벽을 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다
역관들은 외교 당사국의 이질적인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장점을 받아들일 줄 알던 외교관이자 뉴프런티어였다. 이들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외교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숱한 성공을 일궜다. 그 가운데는 종계변무나 국경분쟁 등 국가의 주요 현안을 해결한 인물도 있고, 대륙과 일본의 일급 기밀을 탐지하거나 우수한 과학기술 정보를 입수한 스파이도 있다. 또 공사무역의 특권을 이용해 남다른 부를 거머쥔 인물도 많다. 하지만 그 때문에 역관들은 지배계층인 양반들로부터 신분상의 차별과 정쟁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다. 계급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설움을 곱씹던 역관들은 조선 후기 들어서 조직적으로 중인들의 신분 상승을 선도했다. 또 조선이 누란의 위기 속에 빠진 19세기 말 누구보다 먼저 개화를 충동하는 선각자로 활동한 계층이 바로 역관이다.
임진왜란의 저울추를 돌려놓다
임진왜란 시기 활약한 역관 홍순언은 종계변무(명나라 사서에 잘못 기록된 조선 왕실의 족보를 바로잡는 일)와 임진왜란에 명나라가 참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홍순언은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외교 능력을 지녔지만, 출신 성분 때문에 다른 역관과 양반들에게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다. 이 때문에 모두 피하던 주요 외교문제 해결에 그가 나서게 된 것이다. 홍순언은 두 차례 주요 외교 문제를 명나라 관리 석성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해결했다.
청나라 역관이 되어 조선을 골탕 먹인 역관 정명수는 홍순언과 반대되는 인물이다. 그는 청나라 포로가 되었다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장수의 역관이 되어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는 데 앞잡이 노릇을 했다. 또 그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조선에서 온갖 행패를 부리고, 조선 조정을 골탕 먹였다.
내 돈으로 양반인들 못 사겠는가
조선 시대 최고의 역관 가문을 손꼽자면 밀양 변씨와 인동 장씨가 대표적이다. 이 두 가문 출신 역관 중에서는 변승업과 장현이 눈에 띈다.
변부자로 알려진 변승업의 할아버지는 뛰어난 외국어 능력과 장사 수완을 바탕으로 큰 재산을 모았고, 소설 《허생전》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물려받은 변승업도 17세기 일본과 활발하던 중개무역에서 큰 부를 쌓았고, 재산을 동원해 아들 변이창의 신분을 양반으로 바꿔 주기도 했다.
희대의 요부로 알려진 장희빈의 숙부이자 대부호인 장현도 역관 신분으로 중개무역을 통해 큰 부를 쌓은 인물이다. 이 부에 힘입어 조카 장옥정은 희빈이 될 수 있었고, 인동 장씨는 조선 최고 역관 가문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청년들이여 조선의 단잠을 깨워라
19세기 중엽 중국어역관으로 활약한 오경석의 집안은 아버지 오응현과 아들 오세창까지 이어지는 조선 후기 대표 역관 가문이다. 그는 병인양요 당시 북경에 파견되어 프랑스의 침공에 대비한 대책을 세웠고, 신미양요 때도 활약하는 등 조선 후기 어지럽던 대외 관계에서 활약했다. 이후 일본과 강화도조약 체결에도 힘썼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또 그는 박규수와 함께 초기 개화파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편 오경석은 역관으로서 쌓은 지식과 부를 바탕으로 서화 수집과 예술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이런 오경석의 사상은 아들인 오세창에게 이어졌다. 오세창은 3·1운동 때 민족대표로 활약했고, 아버지의 서화 수집을 이어받아 일제강점기에는 한국 서화계를 총 정리한 《근역서화징》을 편찬해 당시 문화계에서 우리 문화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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