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새롭게 대두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종군위안부의 진실, 오키나와 집단 자 살의 실체를 다룬 총체적 보고서. 이 책은 일본이 그들의 국민성이라고 강조하는 ‘사무라이정신’이 성립된 전국시대를 시작으로 최근에 새롭게 쟁점화된 여러 문제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종군위안부의 진실, 오키나와 집단 자살의 실체 등을 다룬다.
첫째,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1905년의 편입고시는 반대로 독도가 어째서 그들의 영토가 아닌지 분명하게 드러내는 반증이다. 둘째, 종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태도는 자국의 체면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공동의 역사가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옥쇄한 오키나와 집단 자살에 대한 은폐에 이르면, 그들에게는 애초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각각의 사건들은 별개인 듯 보이지만 사무라이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맥을 함께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발생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파헤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양국이 대립하는 여러 사안의 해결 방안을 찾도록 실마리를 제공한다.
■ 이 책은
어째서 지금 <사무라이정신은 거짓이다!>인가?
2011년 새롭게 대두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종군위안부의 진실, 오키나와 집단 자 살의 실체를 다룬 총체적 보고서.
이 책은 일본이 그들의 국민성이라고 강조하는 ‘사무라이정신’이 성립된 전국시대를 시작으로 최근에 새롭게 쟁점화된 여러 문제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종군위안부의 진실, 오키나와 집단 자살의 실체 등을 다룬다. 첫째,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1905년의 편입고시는 반대로 독도가 어째서 그들의 영토가 아닌지 분명하게 드러내는 반증이다. 둘째, 종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태도는 자국의 체면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공동의 역사가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옥쇄한 오키나와 집단 자살에 대한 은폐에 이르면, 그들에게는 애초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각각의 사건들은 별개인 듯 보이지만 사무라이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맥을 함께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발생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파헤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양국이 대립하는 여러 사안의 해결 방안을 찾도록 실마리를 제공한다.
소심한 일본인의 국민성을 근거로
일본의 역사 왜곡을 제대로 읽는다.
이번 재앙을 계기로 일본인들이 보여준 침착함과 타인을 배려하는 질서의식에 우리는 물론 서구 언론들은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그들을 가리켜 ‘인류의 정신적 진화’라고 극찬할 정도였으니,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배타적인 감정을 상쇄하는 기회가 된 것도 사실이다. 애써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자면 그들이 잃은 것과 비례하여 오히려 국격은 상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위에서 나타난 일본인의 성격을 ‘소심함’이라는 한 단어로 귀결시킨다. 영지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영주에게 거짓으로 충성했던 전국시대의 사무라이, 미 군함을 향해 돌진했던 가미카제 특공대의 강요된 위용, 태평양전쟁 시 군부에 세뇌되어 어이없는 죽음을 택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본질을 대담하지 못한 소심함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수에 편승하고 강한 자에 굴복하고 고압적인 요소에 수긍해버리는 일본인의 태도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흔히 일본을 교활하고 잔인한 민족으로 기억한다. 저자에 의하면 이는 외부로 표출되지 못한 내면이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로 변질된 탓이다. 소심한 일본인의 국민성은 이렇듯 무시무시한 양날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일본의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일본인들의 ‘소심한 국민성’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 이 책의 개요
《사무라이정신의 모태 -전국시대의 영주와 가신》
1467년 무로마치막부의 후계 구도를 둘러싸고 이른바 ‘오닌의 난’이 발생하는데, 그 결과 중앙정부의 세력을 유지하던 막부와 쇼군의 힘은 실추되고 그들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각 지방의 슈고들은 독자적인 무사 세력들로 출현하게 된다. 자금과 군사력을 확보한 영주들을 중심으로 작은 국가들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바로 130여 년간 일본 열도를 혼란과 암흑의 시대로 뒤흔든‘전국시대’의 개막이었다.
배반과 모반이 난무하던 초기의 전국시대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영주와 사무라이의 관계는 수직적 상하 관계로 확립되어 간다. 반대 세력의 출현을 두려워한 영주가 가신을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주는 가신들에게 충성을 요구했고, 가신은 그런 영주에게 복종함으로써 영지 내에서 보다 안정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영주와 영주 사이에 침략과 약탈이 빈번했는데, 가신은 자신이 따르는 영주의 세력이 몰락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전쟁에 임했다. 영주의 몰락은 곧 가신의 몰락이었기 때문이다.
사무라이에게 영지는 밥줄이자 신분을 상징했다. 그리고 이 영지는 자손 대대로 대물림되었다. 영주를 향한 사무라이의 무조건적인 충성은 영지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의 침략을 받아 영주가 몰락하면 수하의 사무라이는 물론 그의 가족 모두 몰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또 당시 귀족 계급에 속했던 사무라이의 신분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만약 영주의 눈 밖에 나 할복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주저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죄를 고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적어도 남은 가족은 연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무라이들에게 할복은 기껍게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이었던 것이다.
《신이 일으키는 바람? 가미카제 특공대의 진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연합군이 상륙하자 일본군은 연합군의 진군을 막는 수단으로 가미카제 특공대를 편성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연합군 함대에 동체(胴體)와 함께 추락하는 무모한 공격을 가했던 것이다. 일본은 이들을 구국의 신념으로 자발적으로 나선 숭고한 애국자라고 칭송한다. 그리고 가미카제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사무라이정신’이요, 일본인들의 정신인 ‘야마토 다마시’라며 치켜세우고 있다.
당시 특공대원으로 차출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었다. 농촌 출신의 젊은이들은 전쟁 초기에 이미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었고, 빠른 시일 내에 비행기 조종술을 익히려면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계획은 쉽게 먹혀들지 않았다. 일왕의 신성과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기에 젊은이들의 의식 수준이 꽤 높았던 것이다.
당시 가미카제 대원으로 징집되었던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 군부는 그들에게 갖은 협박과 회유를 했다고 한다. 국가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시에는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의 목숨마저 위협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결국 강압에 의해 폭격기에 몸을 싣고 미 군함을 향해 돌진했지만 도중에 귀환하거나 바다에 추락하는 등 명예롭지 못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그들은 단지 나약한 젊은이에 지나지 않았으며, 일본 정부가 우상화한 거짓 영웅에 불과했다.
《태평양전쟁 옥쇄의 진실 -자국의 역사마저 왜곡하는 추악한 행태》
태평양전쟁 시 사이판 섬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은 미국의 상륙과 동시에 결사 항전을 벌인다. 그러나 전세가 역전되자 옥쇄를 결정한 일본군은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을 선동하여 집단 자살의 길로 내몰았다. 미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노인과 부녀자,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던 것이다. 항복을 거부한 군인들은 가족과 함께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고, 일부는 수류탄을 터트려 자폭하거나 서로의 목을 졸랐다. 어째서 이와 같은 비극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일본 정부는 이를 ‘사무라이정신으로 무장한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상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저지른 어리석은 죽음에 불과하다. 당시 일본군은 ‘미군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절벽에 떨어져 죽는 것이 낫다’며 자국민의 자살을 조장했다. 그들은 설득력에 힘을 보태기 위해 미군을 마치 인육을 먹는 식인으로 묘사하기도 했는데, 미군의 포로로 잡히면 여자는 능욕을 당하고 사지가 찢기며, 육신은 인육으로 쓰여 죽어서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민심을 선동했다. 이에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군인과 주민들 모두 기꺼이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자국민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만은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옥쇄한 일본군과 민간인의 행위를 사무라이정신과 결부시켜 자국민의 정신 교육에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부의 철저한 세뇌와 전쟁 공포에 시달린 끝에 택한 죽음에 영웅적 의미를 부여하며 사무라이정신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국민의 애국심 고취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종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2007년 미국의 하원 의원인 ‘마이크 혼다’는 ‘일본의 종군위안부 문제와 강제 동원에 대한 인정 및 사죄, 그리고 역사책 왜곡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하였다. 이에 일본은 워싱턴 타임스에 전면 광고를 내고 “위안부 동원에는 결코 강제성이 없었으며,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그 예로 위안부들은 당시 일본군 장교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한국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지원했다고 주장하지만 관계자들의 묵인 아래 유괴와 인신매매, 납치 등이 자행되었으며, 풀죽도 먹기 어려운 시국을 이용하여 거짓으로 회유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생존한 위안부들의 증언을 통해서 밝혀졌는데, 일본은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당사자들이야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증언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진다 해도, 일본인 참전 용사의 진술과 미군이 보관하고 있는 각종 문서와 기록에 대해서는 언제까지 외면으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은 또 그들 주장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는데, 바로 ‘고노 담화’의 번복이었다. 1993년 8월에 발표된 고노 담화는 1년 8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시인하고 사죄를 표명한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였다. 그러나 일본은 일본군의 진술과 판결문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 직접적으로 명시된 일본 정부와 군 당국의 문서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일관성 없는 태도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인 옹졸한 변명만 늘어놓는 일본의 주장을 과연 누가 믿어줄 것인가.
《독도 영유권 주장에 숨은 ‘진짜’ 의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핵심 골자는 1905년의 ‘편입고시’이다. 당시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면서 전략적 기지로써 독도의 필요성을 절감한 일본은 1905년 2월 22일의 날짜로 독도를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시마네현에 편입한다고 고시했다. 일 년 후인 1906년 4월에 이 사실을 대한제국에 통보함으로써 국제법상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1904년 8월에는 일본의 강압으로 한일협정서가 체결되었으며, 당시 대한제국은 실질적 외교권이 박탈된 국가였다. 편입고시와 통보는 지극히 일방적인 처사였으며, 결코 정당한 외교 절차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것은 1910년이고, 편입고시 당시 대한제국은 국제법상 엄연한 주권국가였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합법하다고 우기고 있다. 참으로 뻔뻔하고 몰염치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속내는 분명하다. 첫째는 영토 확장, 둘째는 독도의 경제적 가치를 차지하기 위함이다. 특히 그들의 관심은 독도 근처 심해의 불타는 얼음이라고 알려진 ‘메탄 하이드레이드’에 집중돼 있다. 이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서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거듭 부각시키고, 메탄 하이드레이드에 대한 공동 개발 권리만 확보한다면 일본 측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히 반대급부를 노린 야비한 노림수에 불과하다. 일본은 독도를 두고 바둑에서 말하는 소위 꽃놀이패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정보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