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최수철의 소설집. 인간의 인격, 정체성, 사유, 감각 등을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불신하며 순수 감각을 소설화하는 데 몰두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소설집은 작가적 사유의 깊이와 무게, 울림에는 변화가 없되 소설의 산문적 특성이 분명해지고 전개도 빨라졌다.
최수철은 ‘사유 이전의 신체적 지각’들을 언어로 포착하는 데 주력했을 뿐, 자신을 소설 속에 드러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가 이젠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거의 알몸인 상태에서 육성으로 뱉어낸다. 어떠한 내면적 격동이 없었다면 설명되기 힘든 현상이다.
지금까지의 최수철은 독자에게 불편한 작가였다. 그는 읽히는 작가이기보다 읽어야 하는 작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소설이 독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은 소설 바깥의 일이지 소설 자체의 문제와는 무관하다. 작가는 혹 여기서부터 미열을 앓기 시작한 게 아닐까. 아무튼 그는 죽도록 앓고 난 뒤에 사유와 영감을 통합하는 나름의 방식을 찾기에 이르렀다. 한 작가가 문체상의 변신을 꾀하기 위해서는 환고탈태에 버금가는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그 고통이 역설적으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갓길의 공포가 당신을 노린다
환각과 현실을 오가며 전해지는 서스펜스
어느 소설가의 대변신
이상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최수철(55)이 새 소설집 『갓길에서의 짧은 잠』(문학과지성사, 2012)을 들고 돌아왔다. 최수철은 『공중누각』을 비롯한 초기작에서부터 『몽타주』에 이르는 근작까지 인간의 인격, 정체성, 사유, 감각 등을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불신하며 순수 감각을 소설화하는 데 몰두했다. 이러한 최수철의 묘사는 때로 착란적으로 비치기도 하여 난해하고 괴로운 독법을 요구한다고 알려졌다. 소설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독자들에게 세계의 기이한 낯설음을 제시함으로써 보상할 뿐, 불친절함에 대한 일체의 변명도 없었다. 그것이 작가와 독자 사이의 암묵적 합의였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은 뭔가 다르다. 작가적 사유의 깊이와 무게, 울림에는 변화가 없되 소설의 산문적 특성이 분명해지고 전개도 빨라졌다. 소설에 서사가 확보되었기에 독자는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읽는 즐거움을 누린다. 작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현상학적 글쓰기에 구성적 글쓰기를 접목하다
최수철처럼 이미 한국문단의 한 축을 이룬 중견 소설가가 새삼 변모를 꾀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손에 이러한 질문을 들고 이 책을 읽노라면 수록작 중 「페스트에 걸린 남자」에 등장하는 ‘통합 능력’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머릿속에서 생각은 분분하고 영감은 꿈틀”거리는데, “그것들이 내내 조각난 파편의 상태로 뒤엉켜” 있기만 할 뿐 “그것들을 정리하여 한데 모으는 일이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 ‘한데 모으는 일’은 일관된 흐름을 형성하는 구성의 몫이기도 하다.
표제작 「갓길에서의 짧은 잠」은 구성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화자는 야밤의 고속도로에서 졸음을 참지 못하고 갓길에 차를 세운다. 화자의 차에는 오늘 처음 만난 여자가 타고 있다.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정체불명의 차량이 다가오더니 뒤쪽에 바투 선다. 잠시 침묵이 감돌다가 뒤차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다가온다. 화자는 부리나케 차를 출발시키지만 언제 뒤차가 따라붙을지 알 수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반드시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은 이 장면은, 작품을 통틀어 여덟 번 반복?변주되며 환각과 현실의 경계를 맡는다. 여기에 갓길 바로 곁에서 질주하는 차량들의 불빛과 굉음이 곁들여지며 서스펜스는 극에 달한다.
알몸과 육성으로 뱉어낸 ‘자살 충동’
최수철은 ‘사유 이전의 신체적 지각’들을 언어로 포착하는 데 주력했을 뿐, 자신을 소설 속에 드러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가 이젠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거의 알몸인 상태에서 육성으로 뱉어낸다. 어떠한 내면적 격동이 없었다면 설명되기 힘든 현상이다. 우선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이 무리를 범하고 있다는 것, 어쩌면 이 경주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하여 그는 그 먹잇감을 잡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추적을 멈출 수도 없이, 쫓는 게 아니라 끌려다니다가 종국에는 지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페스트에 걸린 남자」)
이 작품의 화자는 ‘페스트’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데 바로 최수철 자신이다. 그는 『페스트』를 쓰는 동안 아주 지독한 병을 앓았다고 한다. 공황상태, 사고력 저하, 폐소공포증, 광장공포증, 대인공포증 등을 겪다가 급기야 스스로 ‘자살 충동’마저 의심할 정도였다. 여기서 우리는 한 작가가 작품을 쓰는 일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인가 하는 문제를 넘어 ‘글쓰기’ 자체에 대한 회의와 불안을 감지할 수 있다.
작가는 고통스럽지만 독자는 즐겁다
지금까지의 최수철은 독자에게 불편한 작가였다. 그는 읽히는 작가이기보다 읽어야 하는 작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소설이 독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은 소설 바깥의 일이지 소설 자체의 문제와는 무관하다. 작가는 혹 여기서부터 미열을 앓기 시작한 게 아닐까. 아무튼 그는 죽도록 앓고 난 뒤에 사유와 영감을 통합하는 나름의 방식을 찾기에 이르렀다. 한 작가가 문체상의 변신을 꾀하기 위해서는 환고탈태에 버금가는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그 고통이 역설적으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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