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지식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선시대에는 이 모호한 지식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꽤나 구체적인 기준이 존재했다. '문묘 종사'가 바로 그것이다. 유교의 성인인 공자의 사당인 문묘에 조선에서 유학과 주자학에 위대한 공헌을 한 현인들을 모셔놓는 문묘종사는 조선의지식인을 대외적으로 공인하는 과정이었다.
조선에는 수준 높은 학문과 비판정신을 겸비한 지식인들이 많았지만 문묘에 종사된 이는 정몽주를 포함해 15명뿐이었다. 그러니 '문묘종사'가 지니는 상징성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묘에 종사된 성현들의 목록을 읽다보면 의아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자 '민본주의'라는 그만의 성리학적 이상세계로 오늘날까지도 '정도전 열풍'을 몰고 왔던 삼봉 정도전은 문묘종사 성현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반면 '단심가'라는 유명한 시를 남기며 조선개국에 반대했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조선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문묘종사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왜 조선을 위해 일했던 정도전은 조선의 지식인이라 볼 수 없는 것일까? 왜 단 한 번도 조선에 충성하지 않았던 정몽주는 조선의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이 문묘종사는 어떤 기준으로 시행된 것일까?
이 책은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알려준다. 조선의 지식인 15명이 문묘에 종사되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생애와 학문을 검토하는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저자는 '조선의 문묘 종사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자 선정의 표면적 결과가 아니라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권력정치의 적나라한 속살'이라 말하며 개별 인물 연구가 아닌 '문묘 종사의 정치 동학'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조선의 지식인 공인 과정을 따라가며
500년 조선의 역사와 만난다
오늘날 ‘지식인’이라 불리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지식인은‘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 또는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이라 정의된다. 그렇다면 ‘일정한수준의 지식’은 어느 정도의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또 ‘지식층’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포함될 수있는 것일까?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정의에서부터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지식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선시대에는 이 모호한 지식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꽤나 구체적인 기준이 존재했다. ‘문묘 종사’가 바로 그것이다. 유교의 성인(聖人)인 공자의 사당인 문묘(文廟)에 조선에서 유학과 주자학에 위대한 공헌을 한 현인(賢人)들을 모셔놓는 문묘종사는 조선의지식인을 대외적으로 공인하는 과정이었다. 조선에는 수준 높은 학문과 비판정신을 겸비한 지식인들이 많았지만 문묘에 종사된 이는 정몽주를 포함해 15명뿐이었다. 그러니 ‘문묘종사’가 지니는 상징성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묘에 종사된 성현들의 목록을 읽다보면 의아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자 ‘민본주의’라는 그만의 성리학적 이상세계로 오늘날까지도 ‘정도전 열풍’을 몰고 왔던 삼봉 정도전은 문묘종사 성현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반면 ‘단심가(丹心歌)’라는 유명한 시를 남기며 조선개국에 반대했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조선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문묘종사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왜 조선을 위해 일했던 정도전은 조선의 지식인이라 볼 수 없는 것일까? 왜 단 한 번도 조선에 충성하지 않았던 정몽주는 조선의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이 문묘종사는 어떤 기준으로 시행된 것일 까?
지식인 국과 공인 과정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전쟁!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알려주는 책 《조선인의 지식계보학》이 도서출판 옥당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조선의 지식인 15명이 문묘에 종사되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생애와 학문을 검토 하는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저자는 “조선의 문묘 종사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자 선정 의 표면적 결과가 아니라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권력정치의 적나라한 속살”이라 말하며 개별 인 물 연구가 아닌 ‘문묘 종사의 정치 동학’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 조선의 개국 공신 정도전은 왜 조선의 지식인이 될 수 없었나?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공로를 포상하는 논공행상 과정에서 국가의 요직을 겸임했다. 그는 재정, 인사, 국왕 교육, 역사 편찬, 군사 등을 포함한 국정 전반의 정책 결정 과정에 두루 참여하며, 조선이라는 신 흥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또 조선에 대한 제도적 청사진을 제시하며 왕권 강화를 견제할 재상의 권한 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오직 대인(大人)이라야 임금의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맹자의 논의에 근거하여 재상의 직분은 임금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말했다. 맹자의 주장은 유교 이념에 충실한 이라면 마땅히 가슴에 새겨야 할 정치적 진리였고 정도전은 그 주장을 충실히 따르는 유교적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왕좌에 도전하며 왕권 강화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던 이방원에게 정도전의 주장은 용납될 수없는 발상이었다. 결국 재상의 역할에 대해 논했던 정도전의 유교적 이상은 ‘제 1차 왕자의 난’과 함께 막을 내리고, 정치권력 싸움에서 패배한 정도전에게 정치적 권한뿐만 아니라 ‘지식인’이라는 타이틀 또한 허락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충실히 유교 이념에 충실하며 안정된 조선을 만들고자 했으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정도전은 조선 지식인의 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없던 것이다.
▲ 단 하루도 조선을 위해 살지 않았던 고려 지식인 정몽주는
어떻게 조선의 지식인이 되었나?
고려에 대한 정몽주의 충절은 선죽교에 뿌려진 정몽주의 피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다. 그는 끝까지 조선 건국에 동의하지 않았고 이방원에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결말을 맞았다. 그런 그가 고려가 아닌 조선 지식인의 상징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정치 공학에서 찾을 수 있다. 연산군은 대간의 언론활동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모든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차단하며 자신에게 맞선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폭정을 했다. 이 폭정을 종식시키고 임금의 자리에 앉게 된 중종은 반정의 시대정신을 제시해야 했고, 그 몫은 조광조를 비롯한 젊은 지식인들에게 맡겨졌다. 이들은 사화(士禍)에 희생된 자신들의 스승을 문묘에 종사해 새로운 시대의 표상으로 삼고자 했지만, 당시 문묘종사 적격자가 없었고, 자신들의 스승과 사승(師承)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정몽주를 최종 대안으로 선택해 그를 부당한 권력에 맞선 정의로운 지식인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즉 고려인 정몽주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조선 지식계보의 기원으로 탄생한 것이다. 조선에 대해 일관되게 반역의 길을 걸었던 인물 인 정몽주도 조선의 지식인이 될 수 있었던 힘, 그것은 바로 권력이었다.
지식인의 현재적 의미를 살피다
이렇듯 조선의 대표적 지식인의 국가 공인은 지식인 개개인의 학문적 역량이나 결과물보다도 임금 과 지식인 집단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에 가까웠다. 이 책에서는 정도전과 정몽주를 비롯 이황, 이이, 김굉필, 조광조와 같은 조선의 지식인 대상자 선정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조선 권력 정치의 적나라한 속살을 파헤친다. 책을 읽으며 조선 성리학의 계보가 순수한 학문적 기원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 권력과 지식인 사이 정치투쟁의 산물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미 독자들은 그 생생한 권력 암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지식계보학》이 이야기하는 지식인에 관한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결국 역사는 승자 의 기록이다. 권력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기록의 주인공이 되며 패자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계보학》은 ‘결국 답은 권력이다’라는 허무주의로 귀결되지 않는다. 이 책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는지, 그 계보를 탄생시킨 당대의 문제의식을 살펴보며, 지식인들의 진정한 토론이 살아있을 때만이 공동체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현재적 의미를 말하고자 한 다. 그것이 이 책이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을 되짚어보고, 대한민국의 지식계보학 을 새로 써내려가는 밑바탕이 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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