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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953.038092 ▼b 2015 | |
| 100 | 1 | ▼a 이도학, ▼d 1957- ▼0 AUTH(211009)94384 |
| 245 | 1 0 | ▼a 후백제 진훤(甄萱) 대왕 / ▼d 이도학 지음 |
| 246 | 3 | ▼a 후백제 진훤 대왕 |
| 246 | 3 | ▼a 후백제 견훤 대왕 |
| 260 | ▼a 서울 : ▼b 주류성, ▼c 2015 | |
| 300 | ▼a 675 p. : ▼b 삽화, 연표 ; ▼c 22 cm | |
| 500 | ▼a 부록: 후백제 내지는 진훤과 친연 관계에 있는 인물들의 약력, 궁예 정권 관련 인물들, 왕건 정권 관련 인물들 외 | |
| 504 | ▼a 참고문헌(p. 643-657)과 색인수록 | |
| 600 | 1 4 | ▼a 견훤 ▼g 甄萱, ▼d 867-936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38092 2015 | 등록번호 111738151 (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후백제의 역사가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역사의 뒤켠으로 물러나 있는 진훤(甄萱) 대왕과 후백제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기획된 책이다. 1부 '문경에서 순천까지', 2부 '백제의 부활', 3부 '맞수의 등장', 4부 '후삼국의 공존.정립기', 5부 '통일전쟁기', 6부 '외교.호족.경제.불교 시책', 7부 '낙일의 세월', 8부 '진훤에 대한 평가', 9부 '부록'으로 구성되었다.
한 시대의 종지부를 찍어 역사의 일대 전환점을 마련한 혁명가
후백제의 역사가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역사의 뒤켠으로 물러나 있는 진훤(甄萱) 대왕과 후백제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기획 되었다.
후백제를 세운 진훤(甄萱)의 이름은 현재 '견훤'으로 읽혀지고 있지만, 옥편을 찾아보면 '질그릇 甄'에는 '견' 혹은 '진'으로 발음이 된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홍여하와 안정복은 '동사제강'과 '동사강목'에서 후백제 시조왕의 이름을 '진훤'이라고 읽었다.
진훤은 지금의 광주 광역시에서 거점을 북상시켜 전주에 도읍했다. 그와 더불어 나라 이름을 '백제'라고 선포하였고, 진훤은 대왕(大王)을 칭하면서 '정개(正開)'라는 연호를 반포했다.
'정개'에는 '바르게 열고', '바르게 시작하고', '바르게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질곡과 파행의 칙칙한 과거사를 청산하고 올곧게 시작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연호였다. 이와 더불어 진훤은 신라보다 일렀던 백제의 역사를 재정립하겠다는 일종의 '역사 바로잡기'와 더불어 의자왕의 숙분(宿憤)을 푸는 것을 당면 과제로 내세웠다. 진훤은 정치적 이데아로서 백제에 의한 국토통일을 내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비참하게 몰락한 백제왕조의 부활자이자, 미륵의 대행자로서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원하고 한 세상을 건지겠다는 포부를 지녔다
농민의 아들로 말세와 같은 어두운 세상에 태어났으나 화려하게 그의 시대를 꽃피운 진훤은 한 시대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춘 횃불과도 같았다. 질곡의 상태에 놓여 있던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승부에 승부를 거듭하는 전쟁으로 숨도 돌릴 수 없는 난세를 헤쳐 나가면서 한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역사의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진정한 혁명가 진훤은 세상에 새로운 기풍(氣風)을 진작시켰다.
■ 출판사 서평
본서의 주인공 진훤 대왕은 생애 자체가 영웅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 그가 이룩한 성취뿐 아니라 한 시대의 마침표를 찍게 한 역사적 역할과 말년의 비극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훤에 대한 평가는 저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는 무지와 편견에서 연유한 것으로 판단한 저자의 연구 의지를 불태우게 한 동인(動因)이기도 했다. 그 결과 본서에서는 괄목할 만한 새로운 연구 성과를 기록했다.
가령 『고려사』 박수경전의 “발성(勃城) 전투에서 태조가 적에게 포위를 당하자 박수경이 힘써 싸운 덕에 탈출할 수 있었다”라는 구절에 보이는 발성을 발어참성(勃禦塹城)의 약기(略記)로 간주했다. 발어참성은 개성 만월대 부근을 통과하는 왕궁을 이루는 성벽이었다. 그러면서 발성 전투를 932년에 예성강을 거슬러 올라간 후백제군의 고려 수도 개경 공략과 결부지었다. 왕건이 발성 전투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었다는 사실은 개경 왕궁이 포위되어 왕건이 생사의 기로에 섰음을 뜻한다. 왕건으로서는 공산 전투에 이어 생애 두번째 위기였던 것이다.
933년에는 후백제 왕위계승의 저울대 위에 올려져 있던 신검 왕자가 경주 초입까지 진격하여 신라의 목숨이 풍전등화였음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후백제가 탈환한 나주 지역을
상실하게 된 배경을 새롭게 구명하였다. 즉 왕위계승에서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느낀 신검과 양검, 그리고 용검은 지방에 둔 자신의 예하 병력을 끌어들여 기습적으로 정변을 단행했다. 무주도독 용검의 병력이 전주로 이동하는 군사적 공백을 틈타 고려군은 기습적으로 나주를 탈환한 것으로 밝혔다. 고려군이 신검의 항복을 유도한 마성의 위치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지만 금마성으로 일컬어졌던 익산의 왕궁평성으로 새롭게 비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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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도학(지은이)
경북 문경시 가은읍 출생.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명예교수. 국가유산청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대학 학장과 일반대학원 원장 역임. 고조선단 군학회 회장, 동아시아고대학회 회장, 동국사학회 회장,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문화재 청 고도보존 중앙심의위원회 위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부설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 성백제문화제 추진위원회 위원장, 충청남도 문화재 위원, 부여군 지역혁신협의회 의장, 연세대와 한양대 강사 등 역임. 대통령 표창(제181011호). 현재 한국고대사학회와 동아시아고대학회 평의원, 고조선단군학회 고문 등. 저서 : 『쉽고도 어려운 한국 고대사』, 『나의 연구 회상—고투와 약진 45년』, 『백제사 신 연구』, 『후백제사 연구』, 『한국고대사 최대 쟁점, 백제 요서경략』, 『고구려 도성과 왕릉』, 『새롭게 해석한 광개토왕릉비문』, 『무녕왕과 무령왕릉』, 『분석 고대 한국사』, 『쟁점, 한 국 고대사 그 해답을 찾다』, 『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 등 37권. 논문 : 「신라의 中原 지역 진출과 娘城‧娘臂城의 考證」, 「백제의 마한 병합 과정과 영암 내동리 쌍무덤」, 「후백제의 건국 과정과 ‘始都 光州’」, 「풍석 이종학의 신라 해양사 연구 업적」, 「虎巖寺址 위치에 관한 논의」, 「野史와 正史의 경계 : 南怡 獄事」, 「野史의 증거력 과 正史」 등 290편.
목차
제 1 부 문경에서 순천까지! 백제를 부활시킬 영웅의 탄생 왜 ‘진훤’인가? 진훤의 가계 진훤의 출신지와 전설 진훤의 소년시절 향락에 찌든 병든 도시와 그 이면의 비참한 현실 쇠락의 조짐들 출세의 길 ‘적赤과 흑黑’, 적의赤衣를 택한 타이거 신라의 국제항과 승평항(昇平港) 진훤의 방수처 순천 해룡산성 기로岐路에 선 천년왕국, 마지막 여왕 시대의 개막 농민난의 기폭제, 원종과 애노의 난 제 2 부 백제의 부활 국가체제 정비기 889년~900년 ·- ‘타이거’ 포효咆哮하다 - ·진훤의 세력 기반 - 박영규 가문과의 제휴 - ·첫 번째 수도 광주光州 전백제前百濟의 영역 회복기 900년~918년 ·- 감격적인 전주全州 입성 ·- 후백제 왕국의 웅도雄都, 전주 - ·연호의 반포 제 3 부 맞수의 등장 북방의 웅적雄敵 궁예의 등장과 비뇌성 전투 궁예는 누구인가 북원경의 내력 문막 전투 고려 건국의 묘상苗床으로서 원주 궁예, 고구려 별도였던 국원성과 평원성 장악 고구려의 부활, 고려의 건국 소백산맥 이남으로의 진출 통로 확보 서남해에서 궁예와의 대결 궁예의 몰락 배경 궁예의 악행에 대한 검토 제 4 부 후삼국의 공존· 정립기 (918년~925년) 왕건의 즉위, 그리고 모반의 연속 진훤의 왕건 정권에 대한 공작 송악시대의 개막 왕건의 세력 확장과 아자개의 고려 귀부 청주 지역의 동향 후백제와 고려의 맹약 제 5 부 통일전쟁기 -승기를 잡은 통일전쟁 (925년~929년) 득의에 찬 대야성 점령과 ‘또 하나의 남북국시대’ 후백제의 가야고지加耶故地 진출 왕건을 제압한 조물성 전투 서부 경남, 그 남해안 지역의 장악 - 강주왕국康州王國 왕봉규의 짧은 영광 후백제의 강주康州 장악 빼앗길 수 없는 땅, 문경 회심의 경주 입성入城 공산에서의 대승, 아! 신숭겸 왕건과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 통일의 승기勝機를 잡다! 줄기차게 대목군을 공격한 이유는? 왕건에게 투항을 권유하다! 가 없는 승전勝戰, 영그는 통일 군주의 꿈 제 6 부 외교 · 호족 · 경제 · 불교 시책 진훤의 대외 인식과 전방위 외교 진훤의 호족 시책과 통치 방법 왕건의 호족 시책 진훤의 여인들과 자녀 왕건의 여인들 … 수취收取와 둔전제 시행 진훤의 불교 시책 미륵사 개탑開塔 제 7 부 낙일落日의 세월? - 다시 잡은 승기 (930년~936년) 패배의 분기점, 안동 병산 전투 진훤의 참모들, 김악과 최승우 삼태사묘 이상의 구현을 목전에 둔 왕건! 유검필 장군 복심 공직의 배신과 왕건의 간담을 서늘케 한 보복전 - 개경 왕궁 포위 작전 운주성 패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미완의 대업大業 운명의 뒤틀림, 구금拘禁과 고려로의 내투來投 갈등의 이념적 충돌은? 금산사에서 탈출! 내가 지은 집은 내가 헌다, 일리천 전투 후백제의 붕괴! 천추의 한을 품고 거인巨人 세상을 건너 가다 지역신으로 고향의 품에 돌아와 좌정한 진훤 신거무 장터 전설 역사 속의 기록, 혹 이긴 자 위주의 기록은 아닐까? 제 8 부 진훤에 대한 평가 전통시대의 평가와 현재의 재조명 가능성으로서의 진훤왕 진훤과 궁예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정리 제 9 부 부록 후백제 내지는 진훤과 친연 관계에 있는 인물들의 약력 궁예 정권 관련 인물들 왕권 정권 관련 인물들 신라 조정 관련 인물들 그 밖의 호족이나 군웅들 후삼국 연표 궁예 정권의 국호와 연호 변천 궁예 정권의 관등과 관직 고려 초기의 관등 참고문헌 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