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0 | 00000nam c2200205 c 45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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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 | 201508311011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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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 | ▼a 9788936464431 ▼g 03890 | |
| 040 | ▼a 211009 ▼c 211009 ▼d 211009 | |
| 041 | 1 | ▼a kor ▼h rus |
| 082 | 0 4 | ▼a 891.733 ▼2 23 |
| 085 | ▼a 891.733 ▼2 DDCK | |
| 090 | ▼a 891.733 ▼b P987 대m | |
| 100 | 1 | ▼a Pushkin, Aleksandr Sergeevich, ▼d 1799-1837 ▼0 AUTH(211009)45082 |
| 245 | 1 0 | ▼a 대위의 딸 / ▼d 알렉산드르 뿌시낀 ; ▼e 김성일 옮김 |
| 246 | 1 9 | ▼a Капитанская дочка |
| 246 | 3 | ▼a Kapitanskaia dochka |
| 260 | ▼a 파주 : ▼b 창비, ▼c 2015 | |
| 300 | ▼a 246 p. ; ▼c 21 cm | |
| 440 | 0 0 | ▼a 창비세계문학 ; ▼v 43 |
| 500 | ▼a "작가연보" 수록 | |
| 500 | ▼a 부록: 『대위의 딸』의 '빼버린 장' | |
| 700 | 1 | ▼a 김성일, ▼e 역 ▼0 AUTH(211009)115595 |
| 900 | 1 0 | ▼a Пушкин,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e 저 |
| 900 | 1 0 | ▼a 뿌시낀, 알렉산드르, ▼e 저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1.733 P987 대m | 등록번호 111741040 (1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창비세계문학 43권. 러시아의 봄, 러시아 시의 태양, 가장 위대하고 사랑받는 러시아 작가로 꼽히는 알렉산드르 뿌시낀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의 소설. 뿌시낀은 시, 산문, 소설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전기를 이루었으며 이후의 러시아 문학의 찬란한 성과들을 예고하며 근대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생의 마지막 시기인 1830년대에 뿌시낀은 운문과 산문에서 두루 원숙한 창작활동을 보여주며 러시아 역사에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는데, 그같은 탐구가 역사와 운명, 개인에 대한 사유로 결실을 맺은 작품이 <대위의 딸>이다.
18세기 중반 황제 참칭자 뿌가초프가 일으킨 농민 봉기를 배경으로 귀족 출신 장교 그리뇨프와 대위의 딸 마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역사소설에서 빼어난 전범을 보였음은 물론이고 역사소설의 경계를 넘어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문제들을 담은 걸작으로서, 러시아 근대소설의 원형으로 오늘날까지 거듭 되읽히고 있다.
러시아 문학의 봄, 모든 시작들의 시작
뿌시낀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의 산문
러시아의 봄, 러시아 시의 태양, 가장 위대하고 사랑받는 러시아 작가로 꼽히는 알렉산드르 뿌시낀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의 소설인 『대위의 딸』(창비세계문학 43)이 발간되었다. 뿌시낀은 시, 산문, 소설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전기를 이루었으며 이후의 러시아 문학의 찬란한 성과들을 예고하며 근대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생의 마지막 시기인 1830년대에 뿌시낀은 운문과 산문에서 두루 원숙한 창작활동을 보여주며 러시아 역사에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는데, 그같은 탐구가 역사와 운명, 개인에 대한 사유로 결실을 맺은 작품이 『대위의 딸』이다.
18세기 중반 황제 참칭자 뿌가초프가 일으킨 농민 봉기를 배경으로 귀족 출신 장교 그리뇨프와 대위의 딸 마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역사소설에서 빼어난 전범을 보였음은 물론이고 역사소설의 경계를 넘어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문제들을 담은 걸작으로서, 러시아 근대소설의 원형으로 오늘날까지 거듭 되읽히고 있다.
역사는 우연을 배제하지 않고
삶은 필연을 포함한다
귀족 자제 뾰뜨르 그리뇨프는 외진 곳에 있는 벨로고르스끄 요새로 발령받아 가던 중 밤길에 눈보라를 만나 위험에 처한다. 이때 우연히 정체불명의 사내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농가를 찾고 그 보답으로 그리뇨프는 자신의 토끼털 외투를 건넨다. 이 사소한 우연은 후일 벌어지는 대대적인 봉기와 그 속에서 기이하게 얽히는 인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나는 이 기이하게 얽힌 인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랑자에게 선물한 작은 털외투가 올가미에서 나를 구하다니. 더구나 여인숙을 빈들거리며 돌아다니던 술주정뱅이가 요새를 포위하고 나라를 뒤흔들다니!”(108면)
토끼털 외투를 받은 부랑자, 뿌가초프는 얼마 뒤 죽은 황제를 참칭하며 봉기를 일으키고, 그리뇨프와 그가 사랑하는 여인 마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삶을 손에 쥐고 흔드는 자로 다시 나타난다. 가상의 수기 형식인 이 작품에서 화자인 그리뇨프는 역사적 사건의 목격자이자 참가자로서 시대와 봉기, 역사의 주역 뿌가초프를 목격한다. 귀족 청년 그리뇨프는 뿌가초프 무리를 ‘폭도’ ‘악당’으로 지칭하고 봉기를 민족의 비극으로 증언하지만 이러한 시각이 단순히 계급에 따른 편견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대립하는 것은 귀족과 농민이 아니라 민중과 권력이고, 반란자 뿌가초프든 황제 예까쩨리나 2세든 ‘권력’을 향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로 인물들은 엇갈리고 대립한다. 작품 속에서 뿌가초프와 예까쩨리나 2세는 권력의 상징으로서 나란히 놓이며, 둘 중 누구의 편에 속하건 민중은 제 나름으로 공정하고 자비로운 권력을 찾아 좇고 있을 따름이다.
이렇듯 그리뇨프는 계급이 아닌 인류 보편의 관점으로 유혈과 죽음의 현실, 광란과 폭력의 혼란, 민족의 재앙을 목격하고 일련의 사건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유연하게 재건하여 기록한다. 이 ‘천재적인 관객’은 간결하고 정확하게, 그러나 세부까지 날카롭게 포착하는데 이는 이야기꾼으로서 경지에 오른 뿌시낀의 수완을 잘 보여준다.
그리뇨프의 눈을 통해 가장 생생하게 포착되는 인물이 바로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뿌가초프다. 그의 등장으로 작품은 위험한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띤다. 뿌가초프는 부랑자에서 위대한 군주로, 교활한 반란자에서 지혜로운 지도자로, 귀족 나리와 가엾은 여인을 구해주는 너그러운 구원자에서 적의 목을 단칼에 베는 냉혈한으로 끊임없이 변신하며 복잡하고 모순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가장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신화적인 인물인 뿌가초프는 평범한 주인공 그리뇨프를 불가해한 세계와 연결하고, 운명과 역사를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뿌가초프를 통해 뿌시낀은 역사와 운명, 인간의 개인적 삶과 역사적 삶 사이의 관계를 사색한다. 역사는 인간을 파멸시킬 수도 긍정적으로 고양시킬 수도 있다. 마샤처럼 여리고 순진한 인물을 가련한 처지로 몰아넣다가도 잠재된 의지를 발휘해 행동에 나서게끔 만들고, 정직하고 선량한 그리뇨프 같은 인물을 몇번이고 생사의 기로에 세우다가도 스스로의 힘으로 모면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역사는 가혹하고 변덕스럽지만 우연을 배제하지 않으며, 가차 없는 형벌을 가하기도 하지만 선선히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개인의 삶은 우연의 나열처럼 보이고 역사의 흐름은 필연의 연쇄인 듯싶지만 세밀하게 들여다본 역사적 삶의 현실은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진실보다 더 진실하게,
러시아의 역사적 삶을 다루다
“불길이 흉포하게 휩쓸고 간 광대한 지역 전체의 상황이 끔찍했다…… 신이여, 이 무의미하고 무자비한 러시아의 폭동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174면)
1830년대에 들어 뿌시낀은 18세기 러시아 역사, 그중에서도 1773년에 발발한 대규모 농민 봉기인 뿌가초프의 난에 대해 각종 사료를 탐구하고 넉달간 현지답사를 하는 등 진지한 관심을 쏟는다. 그 직접적 산물이 1834년 발간된 역사서 『뿌가초프 반란사』로, 이를 집필하던 시기에 변덕스러운 역사적 현실에 휩쓸린 여러 인물들을 소설로 그려내겠다는 구상 속에서 『대위의 딸』이 탄생한다. 뿌가초프를 비롯하여 사료 속에 등장하는 여러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귀족 장교 그리뇨프와 요새 사령관 대위의 딸 마샤 등의 인물과 그 관계들의 윤곽이 잡히고 한 가정의 회고록이라는 서술 형식도 결정된다. 이렇듯 뿌시낀은 충실한 역사적 배경, 등장인물의 선택, 확고한 플롯, 정교한 구성을 통해 당대에 모범이 될 만한 역사소설을 선보임과 동시에 자신의 역사서를 뛰어넘는 위대한 산문예술을 완성한다.
러시아의 저명한 역사가 바실리 끌류쳅스끼는 『대위의 딸』이 『뿌가초프 반란사』보다 더 큰 역사를 담고 있으며 『뿌가초프 반란사』는 『대위의 딸』을 위한 긴 주석이라고 평했다. 뿌시낀이 연구한 사료들은 소설의 출발점이 되어 사실적 근거와 보편적인 개념 들을 부여해주었지만 작품은 보다 광범위한 문제를 제기하며 역사서나 역사소설 같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다. 고골은 『대위의 딸』을 “역사보다 더 역사적이고 진실보다 더 진실하다”라고 말했다. 뿌시낀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서 러시아의 역사적 삶을 다층적인 모습 그대로 간결하고 정밀하게 그려냈고, 자신의 창작활동의 대미를 장식하고 근대소설의 장을 열어젖힌 이 장편소설로 러시아 문학사에 의미심장한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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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지은이)
알렉산드르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 Пушкин, 1799∼1837)푸시킨(1799∼1837)은 모스크바 귀족 가문에서 출생했다. 그의 어머니는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총애를 받은 한니발 장군의 손녀였다.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를 가진 푸시킨은 자신의 몸속에 에티오피아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그는 프랑스인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유모 아리나 로지오노브나로부터 러시아어 읽기와 쓰기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담과 민요를 들었다. 또한 그는 유모를 통해서 러시아 민중의 삶에 대해 깊이 동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열두 살 때인 1811년 6년제 귀족학교 리체이에 입학했다. 그는 리체이 재학 중 120여 편의 시를 썼다. 리체이를 졸업한 후 외무성 관리로서 잠시 근무하던 중 진보적 문학 서클인 ‘녹색 램프(질료나야 람파)’에 가입해 미래의 데카브리스트들과 교류했다. 그는 이 무렵 진보적인 시 <자유>, <차다예프에게>, <마을>을 발표해 러시아 남부로 유형을 가게 되었다.그는 남러시아의 캅카스에서 바이런의 작품을 읽고, 그 영향을 받아 바이런풍의 낭만적인 시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키시뇨프에서는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작품들인 ≪캅카스의 포로≫, ≪바흐치사라이의 분수 ≫, ≪도둑 형제≫ 등을 발표했고,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의 영지인 미하일롭스코예 마을(이 마을에 푸시킨의 집이 있고, 이 마을의 어귀의 스뱌트이 언덕 수도원에 그의 무덤이 있음)에서 ≪예브게니 오네긴≫과 ≪집시들≫을 집필하느라 1825년에 발생한 데카브리스트 난에 참여하지 못한다. 여기서 그는 비극 <보리스 고두노프>를 완성했다. 니콜라이 1세는 데카브리스트 난을 평정한 후 푸시킨을 모스크바로 소환해 그의 작품을 직접 검열하고 감독한다. 그는 1830년 가을 볼지노 영지에서 ≪예브게니 오네긴≫, ≪벨킨 이야기≫, 4편의 작은 비극, 즉 <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돌의 손님>, <질병 때의 주연> 등 많은 작품을 쓴다. 1828년 겨울 새해 무렵에 모스크바의 무도회에서 만난 16세의 나탈리야 곤차로바의 미모에 반한 푸시킨은 이듬해 봄에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에게 거절당하지만, 다시 청혼해서 결국 1831년 2월 모스크바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해 가을, 푸시킨은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해 살던 중 1833년에 ≪예브게니 오네긴≫을 발표하고, 그해 여름에 볼지노 마을(아버지가 80채의 농가, 246명의 남자 농노, 237명의 여자 농노가 사는 이 마을을 물려주어 푸시킨이 젊은 지주가 됨)을 방문해 그곳에서 ≪스페이드의 여왕≫, ≪대위의 딸≫, ≪청동 기사≫ 등을 집필했다. 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그의 아내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만을 좋아할 뿐, 남편의 문학적 재능이나 지적 활동에는 무관심했다. 니콜라이 1세와 자신의 아내와의 염문이 떠도는 중 그는 황제 시종관으로 임명되어 근무하게 되는 굴욕을 겪는다. 그는 1836년 고골의 도움을 받아 문학잡지 <동시대인>을 발행하고, 이 잡지에 ≪대위의 딸≫을 연재한다. 푸시킨은 자신의 아내와 황제의 염문에 이어 네덜란드 대사의 양자인 프랑스 청년 장교 단테스와의 염문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결국,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1837년 1월 7일 사망한다. 황제 정부는 국민들의 조문 시위를 두려워한 나머지 한밤중에 그의 관을 미하일롭스코예 부근의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으로 옮겨 비밀리에 장례식을 치르도록 한다.푸시킨은 ‘러시아 문화의 등불’, ‘러시아 국민 문학의 아버지’, ‘위대한 국민 시인’ 등으로 불린다. 그는 1812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로 고무된 러시아 국민(민중)의 애국주의 사상, 민족적 자각과 민족적 기운이 고조되는 역사적 시기에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러시아 국민의 사상과 감정을 훌륭히 표현한 러시아 국민 문학의 창시자이자 러시아 문학어의 창시자다. 러시아 국민 생활과의 밀접한 유대, 시대의 선구적 사상의 반영, 풍부한 내용 등에 있어서 그를 따를 러시아 작가는 없다. 투르게네프가 푸시킨 이후의 작가들은 그가 개척한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문학적 영향력은 지대하다.
김성일(옮긴이)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논문 「20세기 초 러시아 유토피아 문학 연구」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청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있으며 이미지와 상상력, 서양 문학과 신화, 매체 철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러시아 영화와 상상력』, 『톨스토이』(공저) 등이 있으며, 톨스토이와 체호프, 마야콥스키 등 19, 20세기 여러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과 『러시아 문화에 관한 담론』(공역), 유리 올레샤의 동화 『세 뚱보』 등을 번역했다. 「문화원형으로서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연구」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목차
1장 근위대 중사 2장 길 안내자 3장 요새 4장 결투 5장 사랑 6장 뿌가초프의 난 7장 공격 8장 초대받지 않은 손님 9장 이별 10장 포위당한 도시 11장 폭도들의 마을 12장 고아 13장 체포 14장 재판 부록 / 『대위의 딸』의 ‘빼버린 장’ 작품해설 / 역사의 우연성과 사랑의 필연성 작가연보 발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