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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의 문화 (11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色川大吉, 1925- 박진우, 역
서명 / 저자사항
메이지의 문화 / 이로카와 다이키치 지음 ; 박진우 옮김
발행사항
서울 :   삼천리,   2015  
형태사항
352 p. ; 24 cm
총서사항
인문과학 코스모스 ;04
원표제
明治の文化
ISBN
9788994898353
서지주기
참고문헌(p. 339-342)과 색인수록
주제명(지명)
Japan --Civilization --186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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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2.031 2015 등록번호 111744406 (11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청구기호 952.031 2015 등록번호 151327314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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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청구기호 952.031 2015 등록번호 151327314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

컨텐츠정보

책소개

인문과학 코스모스 4권. 메이지 시대 이미지에 가려진 일본 근대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밑바닥 세계에서 근대를 향해 꿈틀대는 에너지를 밝혀낸다. 저자 이로카와 다이키치는 메이지 문화 속의 근대적인 요소를 민주주의, 자아의식과 개인주의, 자본주의, 내셔널리즘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파악한다.

이 시대에 자유민권운동이 좌절되고 민중 생활의 리듬이 뿌리 뽑히면서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는 억압되고 자본주의와 내셔널리즘이 왜곡되고 만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국체' 관념이 근대 일본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메이지 관료나 지배 엘리트, 계몽 지식인의 서구 지향적 문화와 사상이 근대 일본을 얼마나 왜곡했는지 비판하고 변혁 주체인 민중의 내면세계에서 봉건 질서가 타파되어 나가는 모습을 추적하고 있다.

“나는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 같은 자들은 그들이 후일 고백하고 있듯이 상당히 실수가 많고 시행착오를 되풀이 한 정치가이며, 오로지 국민 각층의 창조력과 운 좋은 역사적 우연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대성공’을 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286쪽)

“이 조사에서 느낀 또 하나의 놀라움은 일본의 근대적 자각(근대 사상)의 발자취가 세상의 명민한 인텔리 평론가들의 예단과는 달리, 밑바닥의 흙투성이 전통 속에서 민중 스스로의 체험에 의거한 지배 사상의 독자적인 해독을 통해서 착실하게 출발했다는 것에 대한 실증적인 확신이다. …… 역사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저변의 지하수가 되었다고 해서 그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상실되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60쪽)

메이지유신이 덮어 버린 일본 근대의 참모습

메이지 시대(1868~1912년)는 오늘날 일본의 모양새를 결정한 시기였다. 오쿠보 도시미치, 이토 히로부미, 이와쿠라 도모미 같은 정치 엘리트와 후쿠자와 유키치, 가토 히로유키를 비롯한 계몽 지식인들은 메이지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그렇지만 메이지유신의 서구식 근대화와 문명개화, 부국강병 정책이 이 시대의 전부는 아니었다.
이 책의 지은이 이로카와 다이키치는 ‘메이지 문화’ 속의 근대적인 요소를 ① 민주주의, ② 자아의식과 개인주의, ③ 자본주의, ④ 내셔널리즘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파악한다. 이 시대에 자유민권운동이 좌절되고 민중 생활의 리듬이 뿌리 뽑히면서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는 억압되고 자본주의와 내셔널리즘이 왜곡되고 만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국체’(國體) 관념이 근대 일본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런 메이지 시대 이미지에 가려진 일본 근대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밑바닥 세계에서 근대를 향해 꿈틀대는 에너지를 밝혀낸 점이다. 지은이는 “일부 이데올로기론자와 같이 문화를 단순히 계급 지배의 도구로 단정하는 입장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마루야마 마사오로 대표되는 ‘근대주의’를 비판하며 전후 일본 민중사 연구의 흐름을 만들어 낸 신호탄이 되었다. 역사 속에 살아간 인간의 운명과 상처를 입으면서도 온 힘을 다해 살아 나간 ‘문자 없는’ 민중의 정신세계를 그려 낸 점에서 아날학파의 ‘심성사’나 탈식민주의 ‘서발턴 연구’와도 문제의식이 맞닿아 있다.

‘저변의 풀뿌리’에서 약동하는 근대의 정신과 에너지

그렇다면 메이지 시대 일본 사회의 밑바닥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던가. 지배계급과 마찬가지로 인민들도 저마다 생활을 영위하고 즐기는 형식을 개발하면서 축제, 신앙, 기술, 의식주, 생활 행사에 이르기까지 그 삶의 보람으로서 정신적?물질적 가치를 누려 왔다. 겉에서 보면 마치 잠들어 있는 듯 보이는 ‘침묵의 민속 세계’에서 다채로운 풀뿌리 문화가 꽃피고 민중의 의식 세계는 자생적인 ‘사상’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1968년 여름 현장조사 과정에서 지은이는 니시타마 군 이쓰가이치의 산간벽지 20세대 남짓한 작은 마을 창고 안에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자료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204조문의 인민헌법 초안과 ‘국회개설 기한 단축 건백서’가 있었고, 심지어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5개국(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독일, 프랑스)과 맺은 화친조약 및 통상조약의 전문을 붓으로 정성들여 옮겨 적은 문서도 나왔다. 메이지 시대 이쓰카이치의 농민들은 학술 토론회와 학예강담회에서 토론을 벌이면서 정치와 민주주의, 세계에 대한 나름의 지향을 담아 헌법까지 기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후카자와 곤파치 같은 농민은 전통사상을 계승하고 재해석함으로써 변혁 사상을 형성해 갔고, 지역 사회의 ‘코뮌’을 형성하며 독자적인 저항 노선을 확립해 나가고 있었다. 민중종교 덴리교와 오모토교를 창시한 나카야마 미키와 데구치 나오 같은 이들도 모두 평민 출신이었다. 31세에 짧은 생애를 마감한 이와테 현의 평민 지바 다쿠사부로는 난학 → 국학 → 신도 → 불교 → 그리스정교 → 반기독교 → 가톨릭 → 프로테스탄티즘에 이르는 정신 편력을 거쳐 근대인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풀뿌리 변혁사상과 코뮌, 지치부 봉기

메이지유신에 이은 산업혁명 와중에 농촌 마을의 삶은 어떠했던가. 경제적 궁핍, 마을과 가족 공동체의 붕괴로 나락에 떨어진 민중들은 처음에 고리대금업자나 관리들의 비리에 대해 예를 갖추어 간청하고 탄원했지만, 점차 기생지주제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각하면서 관청을 공격하고 대대적인 반정부 실력 행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1884년 9월의 군마 사건, 가바 산 사건에 이어 10월에는 메이지 시대의 민중운동으로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치치부 봉기가 일어났다. 불황과 부채에 허덕이는 농민들이 곤민당(困民黨) 운동을 기반으로 부르주아 민주혁명을 표방하며 혁명군 참모부를 만들고 수천 명의 무명전사가 조직된 것이다. 농민봉기는 도시민의 폭동으로 이어졌고 주변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어 일본 인민들 사이에 새로운 변혁의 관념을 확산시켰다.
곤민당 운동이 흔히 생각하듯 지식인과 호농 민권가들 중심으로 펼쳐진 자유민권운동의 지도를 받은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대중운동이었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아래 문장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 준다.
“만약 우에키 에모리나 나카에 조민 같은 자유민권 사상가들이 이러한 굴절된 민중의 정신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민중 자체의 내재적인 논리와 그 독자적인 형성 방식을 차분히 이해했다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저변에서 일어난 치열한 사상투쟁의 의미를 흡수했다면 일본의 변혁사상은 실재의 그것과 크게 달라졌음에 틀림없다.”(206쪽)

천황제와 국체,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기원

이 책에 따르면, 메이지 중기까지만 해도 천황제에 대한 저항이 컸으며 사람들은 ‘시민적인 근대’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었다. 1889년 ‘대일본제국헌법’으로 천황제가 완성되고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하면서 국민의식의 변화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 전승에 도취되어 국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바야흐로 유신의 대업은 이루었다. 이 승리는 일본 문명의 승리에 다름 아니다.”
이윽고 정치뿐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황실과 국체를 근대 일본의 통일에 요체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가 온 사회로 파고들었다.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과연 일본 국민을 장악하는 데 위력을 발휘했고, 어느새 일본 인민에게 거부하기 어려운 숙명적인 것, 모든 존재를 감싸는 공기와 같은 것으로 관념화되었다. 마침내 천황제와 국체 관념은 쇼와 시대 군국주의 파시즘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렀고, 100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날까지 ‘무구조의 전통’으로 일본 사회에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이로카와 다이키치는 천황제는 일본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근대 일본의 사상과 문화 형성 과정에서 민중과 지식인들 사이에 제각기 성질이 다른 독자적인 법칙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민중 편에서 본다면 상당히 깊은 곳까지 ‘국체’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천황제에 혼을 팔지는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국체’가 일본 ‘국민’을 지배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민중의 정신적 중심축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은 메이지 관료나 지배 엘리트, 계몽 지식인의 서구 지향적 문화와 사상이 근대 일본을 얼마나 왜곡했는지 비판하고 변혁 주체인 민중의 내면세계에서 봉건 질서가 타파되어 나가는 모습을 추적하고 있다. 천황제가 일본인의 정신 구조를 옭아매고 구속해 왔지만, 한편으로 밑바닥 민중 문화에는 천황제로 귀결하지 않는 풍부한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고유성이 강한 일본 문화에, 대다수 민중이 여전히 토속적인 깊은 침묵의 세계에 있는 단계에서 전혀 이질적인 강력한 서구 문화가 급속하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히면, 결국 일본이 직면한 세계사적인 위치의 특수성이나 이웃 나라와의 관계 속에 독자적이고 고유한 문화를 유지해 온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일본인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평화를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적극적으로 침략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일본인은 그 오랜 이웃의 우의를 원수로 갚은 역사가 있다. 특히 메이지 이후 100년은 그런 이웃에 대한 일본 민족의 일방적인 침략과 약탈의 역사이며 지금도 이 나라 위정자들은 그런 역사에 대한 반성이 약하다.”(18쪽)

일본 지성계의 천황, 마루야마 마사오의 아카데미즘

서문을 쓴 야스마루 요시오 교수에 따르면, 이 책은 안보투쟁 시기 “대학을 봉쇄한 바리케이트 속에서 학생들에게 많이 읽히고” 전후 일본 역사학계에 민중사상사의 모델을 제시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른바 ‘이로카와 사학’은 일본의 정신사적인 전통과 대결하는 과정에 형성되었고 그 상대는 결국 그 전통을 지탱하는 정신 구조인 천황제와 국가주의로 귀결된다.
이런 문제의식은 마침내 천황제와 국체론 연구의 또 다른 강력한 전통을 만든 마루야마 마사오를 향한다. “일본에서 ‘사상’이 전통으로 축적된 적이 없다”고 하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마루야마의 주장이 지식인 엘리트에게 해당될지언정, 전체 일본 사회를 보지 못하고 대중들의 일상세계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아카데미즘에 매몰되어 근대를 향한 저변의 내면세계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로카와 다이키치는 ‘정신사’라는 표현을 썼고 수많은 자신의 저작에 ‘사상사’라는 제목을 쓰지 않았다. 그는 ‘정신사’란 완성되어 표현된 ‘사상’이 아니라 사회 저변에 숨은 아직 사상화되지 않은 민중의 생활·운동과 미분화된 생활의식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에서 녹아 있는 농촌과 산촌의 생활 현장에서 찾아낸 자료는 민중의 규범과 통속도덕, 고유 신앙, ‘이에’(家) 의식, 과학정신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메이지 문화의 역동성과 깊이를 보여 주었고, 이런 지향과 방법론에 일본 학계는 ‘이로카와 사학’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게 된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이로카와 다이키치(지은이)

도쿄게이자이대학(東京??大?) 명예교수. 1925년 지바 현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문학부에 입학했지만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일어나 학도출진으로 해군항공대에 입대했다. 전쟁이 끝나고 구두닦이, 논문 하청, 농사일을 전전하다가 1948년에 이름이 바뀐 도쿄대학을 졸업했다. ‘인민 속으로’ 들어가 농촌 중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1년 만에 꿈이 좌절된 뒤 도쿄로 돌아와 일본공산당에 입당했고 민주상공회 서기를 맡았다. 도쿄게자이대학 교수로 근무하다 1996년에 정년퇴임했다. 민중사상사의 기초를 세운 지은이의 역사 연구를 일본 역사학계는 ‘이로카와사학’(色川史學)이라 일컫는다. 1970년 프린스턴대학에 초빙되어 일본 근대사 객원교수를 지냈고, 1980년에는 시민운동가 오다 마코토(小田實)와 함께 ‘일본은 이대로 좋은가 시민연대’(日市連)를 결성하여 공동대표를 맡았다. 지은 책으로 《明治精神史》(1964), 《シルクロ-ド悠遊》(1988), 《雲表の國 靑海.チベット踏査行》(1988), 《自由民權の地下水》(1990), 《北村透穀》(1994), 《近代日本の?爭》(1998), 《シルクロ-ド遺跡と現代》(1998), 《?墟に立つ―昭和自分史》(2005), 《色川大吉著作集》(전5권, 1995~1996) 등이 있다.

박진우(옮긴이)

계명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대학교에서 지역학 석사, 히토쓰바시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근현대사가 주 전공이며 주로 근대 이후 현대까지의 일본 천황제를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연구과 특별연구원, 리쓰메이칸대학교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일본사학회 회장, 한일민족문제학회 회장,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천황의 전쟁책임』 『근대일본형성기의 국가와 민중』 『패전 전후 일본의 마이너리티와 냉전』(공저), 『21세기 천황제와 일본』(편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자이니치의 정신사』(공역)가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해설 민중의식과 천황제(야스마루 요시오) 

서장 
1장 풀뿌리에서의 문화 창조 
2장 서구 문화의 충격 
3장 방랑의 구도자 
4장 한시 문학과 변혁 사상 
5장 민중의식의 봉우리와 골짜기 
6장 메이지 문화의 담당자 
7장 비문화적 상황과 지식인 
8장 정신 구조로서의 천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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