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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위계승 원리 연구

신라 왕위계승 원리 연구 (11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선석열 宣石悅
서명 / 저자사항
신라 왕위계승 원리 연구 / 선석열 지음
발행사항
서울 :   혜안,   2015  
형태사항
356 p. : 가계도 ; 24 cm
총서사항
민족문화 학술총서 ;60
ISBN
9788984945364
서지주기
참고문헌(p. 331-341)과 색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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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34 2015z3 등록번호 511031249 (6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34 2015z3 등록번호 511031250 (5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중 반납예정일 2026-06-10 예약 서비스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신라는 왜 박.석.김 3성이 돌아가면서 왕위를 이었을까? 그것은 왜 김씨 왕으로 단일화했을까? 고대국가 중 여왕이 신라에만 등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신라 멸망 전에 왜 다시 박씨 왕들이 등장했을까? 이렇게 신라왕 계보는 한국 고대사의 미스터리였다. 30년간 신라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를 풀기 위해 신라왕위의 계승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원리'를 추적하여 그 성과를 이 책에 담았다.

고대사의 미스터리 중 하나인 신라의 왕위계승 원리를 밝히다

신라는 왜 박.석.김 3성이 돌아가면서 왕위를 이었을까? 그것은 왜 김씨 왕으로 단일화했을까? 고대국가 중 여왕이 신라에만 등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신라 멸망 전에 왜 다시 박씨 왕들이 등장했을까? 이렇게 신라왕 계보는 한국 고대사의 미스터리였다. 30년간 신라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를 풀기 위해 신라왕위의 계승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원리’를 추적하여 그 성과를 이 책에 담았다.
한국 고대국가 가운데 두 개의 세력이 주축이 되어 국가로 발전한 나라는 금관가야, 대가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금관가야는 김해 구야국과 부산 독로국이 주축이었고, 대가야의 경우는 고령 가라국과 합천 다라국이 주축이었다. 신라국가도 경주의 사로국과 울산의 우시산국이 주축이 되어 성립된 것이다.
고대국가 지배세력의 정점에는 국왕이 있었고, 대대로 왕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왕실이 있었다. 신라가 가장 오랫동안 대대손손 왕위를 계승하여 왕통을 유지해온 데에는 일정한 왕위계승 원리, 즉 직계계승, 방계계승, 여서계승 세 가지 원리가 작용하였다.
경주의 사로국에는 먼저 박씨왕통이 있었고 그를 뒤이은 김씨왕통이 있었다. 한편 울산의 우시산국에는 석씨왕통이 존재하여 사로국의 박씨왕통과 병립하였다. 두 나라의 왕실은 다른 소국의 왕실과 혼인함으로써 왕권을 쥐고 세 가지 원리로 ‘이사금’ 왕위를 이어 갔다. 원래 진한지역의 사로국 등은 고조선 계통의 주민들이 이주해와 토착세력과 융합하여 이룩한 나라들이었다. 박씨왕실은 유리왕 이후부터 계보가 확실하게 전하고 있으나 그 이전부터도 유력한 세력으로 존재하였다. 박씨왕실의 유리왕이 다른 소국의 왕실과 혼인을 맺고 세력을 키워 사로국 내의 경쟁세력을 압도하여 사로국의 왕으로 등장하고 이후 왕위세습을 통해 왕권을 세웠던 것이다. 석씨왕실의 시조 탈해왕은 박씨왕실과 혼인하여 세력을 연계함으로써 우시산국을 병합하여 세력을 신장하였다. 이들 두 왕실을 중심으로 진한의 소국들을 복속하여 4세기 중엽에 이르러 신라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박씨왕실은 유리왕계와 일지갈문왕계가 있어 서로 협력하였으나, 근친혼으로 인해 더 이상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김씨세력이 왕실을 이어받았다. 김씨세력은 석씨세력과 혼인 등을 통해 세력을 연계하고 성장하여 미추왕이 사로국의 왕이 되었다. 김씨왕실은 세력을 연계한 석씨세력의 견제를 받고 동시에 고구려의 내정간섭을 받아 왕통이 단절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위기를 공감한 사로국 내의 여러 세력들이 눌지왕을 지원하여 체제를 안정시켰다. 그리하여 눌지왕 이후 석씨왕통은 세력이 약화되어 단절되고, 최종적으로는 김씨왕통으로 통합되어 ‘마립간’ 왕위를 이었다.
사로국시기부터 신라 멸망기까지 신라의 왕위계승은 세 가지 원리를 준수하였다.
첫째, 가장 이상적인 왕위계승 원리로서 직계계승은 국왕과 왕비 사이에서 낳은 적자 아들이 왕위를 잇는 것이지만, 장남이 계승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었다. 장남이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인식은 유교적 정통론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둘째, 방계계승은 직계계승이 이루어질 수 없을 때 왕위를 계승하는 원리이다. 국왕의 사후에 적자가 없으면 동생이나 조카가 왕위를 이을 수도 있지만, 숙부가 왕위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소지왕을 이은 지증왕의 경우 기록과 같이 소지왕의 재종재가 아니라, 금석문을 통해 보면 내물왕의 손자로서 소지왕의 5촌 당숙이 된다. 헌덕왕도 전왕 애장왕의 숙부인데 쿠데타를 일으켜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이들 계승도 방계계승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
셋째, 여서계승은 국왕의 사위가 장인의 왕위를 잇는 것이다. 국왕 사후 가까운 방계가 없는 경우 국왕의 적자인 공주가 왕위에 오르지 않고 공주의 남편이 왕위에 오르는 원리이다. 박씨왕통이나 석씨왕통에서부터 여서계승이 있었으며,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추왕과 실성왕의 후계 문제였다. 두 딸밖에 없던 미추왕의 후계는 내물과 실성이었으나, 친연관계상 가까운 내물왕이 즉위하였다. 다음 실성왕의 즉위는 고구려의 내정간섭에 기대었다해도 정당한 것이었다. 또한 실성왕의 축출과 눌지왕 즉위 역시 고구려의 간섭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신라 왕위계승 원리를 감안한 조처였다.
한편 신라에서 여왕계승은 원래 불법적이어서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선덕여왕의 계승은 성골남진의 상황 속에서 진평왕의 아집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이러한 혼란을 수습한 것은 안내의 화신이라 할 김춘추의 정치적 수완과 이를 뒷받침한 전략가 김유신의 아낌없는 지원이었다. 이 두 집안은 진지왕과 김무력 때부터 3대에 걸친 것으로 주목된다. 반면 하대 진성여왕의 계승은 임시적인 성격을 가졌는데, 오빠 헌강왕과 후비 사이에서 낳은 어린 아들 김요(효공왕)를 왕위로 잇게 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신라 하대를 혼란기로 평가하는 것은 왕위계승쟁탈전에 의한 왕위계승 때문으로 보지만, 당시에도 계승 원리는 여전히 지속되었다. 지금까지 신라 하대의 왕위계승에 대해 정치적 관계나 세력의 대소나 강약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만약 그렇게 파행을 거쳤다면 그 당시 이미 신라는 존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라 왕위계승 원리가 깨어진 것은 하대 말기 박씨3왕의 등장이었다. 김예겸.박경휘 일파는 헌강왕의 어린 적자 효공왕을 서자로 왜곡시키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헌강왕 사후에 왕위계승 후보는 사위 김효종이었으나 그는 김예겸 일파에게 밀려났다. 이후 후백제왕 견훤은 친고려정책을 썼던 박씨3왕을 공격하여 박씨 경애왕을 죽이고 김씨 경순왕을 다시 세웠다. 결국 여서간의 왕위 경쟁이 일어나면서 타성이 왕위를 찬탈한 과정으로 인해 신라 왕권은 권위를 잃고 국가는 분열되어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신라의 왕위계승은 세 가지의 원리를 통해 이루어져 갔음을 밝혔다. 왕위계승을 둘러싼 분쟁도 그 원리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왕계승은 탈법이며, 예외적인 것이었음도 밝혔다. 신라 말기에 박씨에 의한 여서계승 역시 탈법이었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왕을 서자로 계보를 조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신라왕실의 계보 기록은 거의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 사료로 신라 왕위계승의 한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에 근거해서 잠정적으로 2세기 이전 사로국에는 뚜렷한 지배자 집단이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고고학적 발굴 조사와 연구가 더 발전한다면, 그에 따른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임도 다짐하고 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선석열(지은이)

부산대학교 사학과, 부산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사학과에서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기록 문제와 신라국가의 성립」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대학교, 경성대학교, 경남대학교, 동아대학교, 동의대학교, 부경대학교 강사를 지냈고, 일본 국립역사민속연구소 펠로우십 연구원 및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을 거쳐 부산대학교 사학과에 전임대우강사로 재직한 후 강사로 강의하고 있다. 일본역사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공동연구에도 참여하여 임나일본부설의 허구를 밝혔다. 연구 논저로는 &lt;신라국가성립과정연구&gt;(혜안), &lt;동아시아의 발해사 쟁점 비교 연구&gt;(공저), 연구 논문으로는 「영일냉수리신라비에 보이는 관등 관직 문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이는 왜의 실체」, 「인명표기방식을 통해본 포항 중성리신라비」 등 60여 편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머리말
Ⅰ. 서론
1. 연구 동향
2. 연구 방향
Ⅱ. 상고시기 박씨 이사금의 왕위계승
1. 박씨왕통의 왕실계보
1) 유리왕계
2) 일지갈문왕계
2. 왕위계승
1) 직계계승
2) 방계계승
Ⅲ. 상고시기 석씨 이사금의 왕위계승
1. 석씨왕통의 왕실 계보
1) 초기의 탈해왕계
2) 이매계
3) 골정계
2. 왕위계승
1) 직계계승
2) 여서계승
3) 방계계승
Ⅳ. 마립간시기 김씨왕통의 왕위계승
1. 김씨왕통의 왕실 계보
1) 내물왕 이전의 계보
2) 내물왕계
3) 실성왕계
2. 왕위계승
1) 여서계승
2) 직계계승
Ⅴ. 중고시기의 왕위계승
1. 왕실계보
1) 지증왕의 계보 문제
2) 지증왕계의 왕실계보
3) 진흥왕계
2. 왕위계승
1) 방계계승
2) 직계계승
3) 여서계승
4) 여왕계승
Ⅵ. 중대시기 무열왕계의 왕위계승
1. 중대시기의 왕실계보
1) 무열왕 직계
2) 성덕왕계
2. 무열왕계의 왕위계승
1) 직계계승
2) 방계계승
3) 여서계승
Ⅶ. 하대시기 원성왕계의 왕위계승
1. 원성왕계의 왕실 계보
1) 원성왕계의 등장 전야
2) 원성왕계의 성립
3) 원성왕계의 분류
2. 박씨왕계
3. 원성왕계의 왕위계승
1) 직계계승
2) 방계계승
3) 여서계승
4) 여왕계승
Ⅷ.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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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분야 신착자료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202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