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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12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Sappho, BC. 612?-560? 이성옥, 역 최승자, 역 이주환, 역 최성웅, 역 이주희, 역 정수윤, 鄭修阭, 1979-, 역 이종현, 역 황인찬, 편
서명 / 저자사항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 사포 외 지음 ; 이성옥 외 옮김 ; 황인찬 엮음
발행사항
서울 :   QQ :   읻다,   2017  
형태사항
224 p. : 삽화, 초상화 ; 18 cm
ISBN
9791196014988
일반주기
공역자: 최승자, 이주환, 최성웅, 이주희, 정수윤,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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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a 공역자: 최승자, 이주환, 최성웅, 이주희, 정수윤, 이종현
546 ▼a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일본어를 번역한 것임
700 0 ▼a Sappho, ▼d BC. 612?-560? ▼0 AUTH(211009)54899
700 1 ▼a 이성옥, ▼e▼0 AUTH(211009)47162
700 1 ▼a 최승자, ▼e▼0 AUTH(211009)5373
700 1 ▼a 이주환, ▼e▼0 AUTH(211009)119062
700 1 ▼a 최성웅, ▼e▼0 AUTH(211009)33520
700 1 ▼a 이주희, ▼e▼0 AUTH(211009)124250
700 1 ▼a 정수윤, ▼g 鄭修阭, ▼d 1979-, ▼e▼0 AUTH(211009)105234
700 1 ▼a 이종현, ▼e▼0 AUTH(211009)148886
700 1 ▼a 황인찬, ▼e▼0 AUTH(211009)82450
900 0 0 ▼a 사포, ▼e
945 ▼a KLPA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08.81 2017 등록번호 111780751 (1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퀴어 작가들의 사랑시를 엮은 시선집이다. 전 세계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시인 서른아홉 명이 한 글자 한 글자 진솔하게 적어 내려간 사랑시 75편을 번역해 수록했다. 김수영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하고 <구관조 씻기기>와 <희지의 세계>로 주목을 받은 황인찬 시인이 다양한 사랑의 감정의 결을 다듬어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한 권의 단단한 시집으로 묶었다.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의 시인들은 그저 한 번의 스침에도 전율하고 감동한다. 서로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황홀해하다가도 충족되지 않는 평범한 소망에 속절없는 슬픔으로 흘러내리고,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끝내 무너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의 사랑을 만나 행복감을 쏟아낼 때에는 가장 순수한 기쁨이 천연히 빛을 발한다.

LGBT 정체성을 드러낸 시를 쓴다는 것은 사회적인 압박과 때로는 검열, 삭제의 위험까지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 시인들의 시에서는 사소함과 간절함이 뒤섞여 소용돌이친다. 이 특별한 시선집에는 그 모든 외연과 내연이 융합된 꾸미지 않은 강렬한 감정들이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읻다출판사의 퀴어 문학 전문 브랜드 ‘큐큐’에서 첫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국내 최초로 퀴어 작가들의 사랑시만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시 선집이다. 큐큐는 이 선집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예술성과 문학성, 대중성과 다양성을 갖춘 퀴어 작가들의 시, 소설, 에세이 들을 출간할 예정이다. 언젠가 퀴어의 이야기가 더 이상 숨기고 은폐해야 할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져 누구나 자신의 취향껏 작품을 골라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한다.

절박한 곳에서는 절박한 사랑이 탄생한다
사랑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더욱 거대한 사랑이 탄생한다
이 책은 그 거대한 사랑의 작은 기록이다

우리 옆에 항상 있었지만 처음 읽는 퀴어 시선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는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퀴어 작가들의 사랑시를 엮은 시선집이다. 전 세계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시인 서른아홉 명이 한 글자 한 글자 진솔하게 적어 내려간 사랑시 75편을 번역해 수록했다. 김수영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하고 《구관조 씻기기》와 《희지의 세계》로 주목을 받은 황인찬 시인이 다양한 사랑의 감정의 결을 다듬어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한 권의 단단한 시집으로 묶었다.

“여기 수록된 여러 시편들이 담아내는 진한 '퀴어 감성'은 일찍이 나의 문학 경험 안에서는 접해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문학 작품 속에서 읽어온 ‘사랑’과는 분명 달랐다.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불투명한 이 언어들이야말로 내가 말해본 적 없으며 읽어본 적 없는 나의 생각과 감정들이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당신 또한 내가 느낀 이 기쁨과 참담함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_서문 중에서

“아득해, 달콤해”
사랑의 다양한 색을 모두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의 시인들은 그저 한 번의 스침에도 전율하고 감동한다. 서로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황홀해하다가도 충족되지 않는 평범한 소망에 속절없는 슬픔으로 흘러내리고,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끝내 무너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의 사랑을 만나 행복감을 쏟아낼 때에는 가장 순수한 기쁨이 천연히 빛을 발한다. LGBT 정체성을 드러낸 시를 쓴다는 것은 사회적인 압박과 때로는 검열, 삭제의 위험까지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 시인들의 시에서는 사소함과 간절함이 뒤섞여 소용돌이친다. 이 특별한 시선집에는 그 모든 외연과 내연이 융합된 꾸미지 않은 강렬한 감정들이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되어 있다.
〈시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건다〉에는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그가 사랑에 빠졌던 상대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전화를 걸었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달리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했지만 시인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달리의 달콤하고 아득한 목소리가 그의 가슴속 모래 언덕을 적시고 꽃을 피운다고 노래한다.

달콤하고 아득한 목소리 내게로 흘러와/ 달콤하고 아득한 목소리 음미하네./ 아득하고 달콤한 목소리, 부드럽게 숨죽였네.// 아득해, 상처 입은 갈색 사슴처럼./ 달콤해, 눈 속에서 흐느낄 때처럼./ 아득해, 달콤해, 연인의 품속에 머무를 때처럼! _96면 〈시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건다〉 중 일부

여인이 되고 싶은 남성의 몸으로 나무 기둥을 붙잡고 어찌할 줄 모른 채 절규하는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음성은 듣는 이의 가슴에까지 그 절실함을 전한다.

나는 입술에 연지를 바르고,/ 새로 난 자작나무 기둥에 입을 맞췄다,/ 비록 내가 미남자라 할지라도,/ 나의 가슴엔 고무공 같은 유방이 없다,/ 나의 피부에선 희고 결 고운 분 냄새가 나지 않는다,/ 나는 다 시들어버린 박명의 남자다,/ 아아, 이렇게 애처로운 남자가 있을까 _132면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중 일부

이처럼 각각 특별한 사연이 반짝이면서도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 안에서 하나로 묶일 수 있는 퀴어 시들이 공감과 진한 감동을 남긴다. 단어 하나하나 시인들의 영혼이 담겨 있는 일흔다섯 편의 고백이 퀴어들의 절절한 마음을 어루만지기를, 이 책을 계기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정’, ‘동지애’가 다시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최초의 레즈비언 서정시인인 그리스의 사포부터 중국의 우조나 일본의 요사노 아키코 같은 동양의 레즈비언 시인들,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 시인 에디트 쇠데르그란, 오스카 와일드와 월트 휘트먼과 같은 세계적 시인들의 동성애 정체성이 담긴 시들이 고루 수록되었다. 유명 퀴어 시인들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난 시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여기에 더해 본문 뒤편에는 작가들의 성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소개를 실어 각각의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동성애에 엄격했던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월트 휘트먼이 ‘사랑’을 ‘우정’, ‘동지애’, 또는 ‘교제’로 바꾸어 표현하곤 했던 사연, 안토니오 보토가 동성애 문학을 출판한 죄목으로 체포되고 어느 과격한 단체에서 그에게 교수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소개된다. 동성애로 기소된 재판에서 오스카 와일드가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사랑”으로 표현된 동성애를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건강한 것이며, 가장 숭고한 애정의 형태이다. 그것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 사랑을 무시하고 종종 그것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라고 설명한 유명한 일화도 실려 있다. 부정당하고 조롱당하거나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작가들의 사적인 이야기가 안타까움을, 그리고 간절한 응원을 자아낼 것이다.
은폐되고 때로는 검열에 의해 삭제까지 당했었지만 그들의 시는 고유한 울림과 공감대,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으며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는 전 세계 각지의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의 숨길 수 없는 사랑을 담은 새로운 시도이자 목소리를 잃어버린 그들에게 다시금 목소리를 돌려주는 새로운 움직임이다. 이 한 권의 시집을 통해 퀴어들의 감정이 아름다운 시어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거트루드 스타인 · 래드클리프 홀 ·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 뤼시 드라뤼 마르드뤼스 · 르네 비비엔 · 리처드 반필드 ·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 · 마이클 필드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미하일 알렉세예비치 쿠즈민 · 비타 색빌웨스트 · 빈센트 밀레이 · 사포 · 샬럿 뮤 · 소피야 야코블레브나 파르노크 · 아르튀르 랭보 · 안토니오 보토 · 애그니스 메리 프랜시스 로빈슨 · 에드워드 카펜터 · 에디트 쇠데르그란 · 에바 고어부스 · 에이미 로웰 · 에이미 주디스 레비 · 오스카 와일드 · 요사노 아키코 · 우조 · 월트 휘트먼 · 윌라 캐더 · 윌프레드 오언 · 조지 고든 바이런 · 존 갬브릴 니컬슨 · 카린 보위에 · 카운티 컬런 · 콘스탄틴 카바피 · 크리스토퍼 말로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 폴 발레리 · 하기와라 사쿠타로 · 하트 크레인

■옮긴이
영어 이성옥 · 최승자
프랑스어 이주환 · 최성웅
일본어 이주희 · 정수윤
러시아어 이종현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거트루드 스타인(지은이)

187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엘러게니에서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가정의 막내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심리학과 의학을 공부했다. 1903년 미술품 수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려는 오빠 레오를 따라 파리로 거처를 옮기고 플뢰뤼스가 27번지에 정착하여 많은 유명 화가 및 작가와 교류했다. 1907년 미국을 떠나 파리에 온 앨리스 B. 토클러스와 처음 만나, 1910년부터 평생의 동반자로 함께 살았다. 1920년대는 파리에 거주하던 국외이주 예술가들이 플뢰뤼스가 27번지 스타인의 집에 모여들어 열띤 토론을 벌였던 시기로, 스타인은 당시 만난 다양한 인물의 초상, 여러 국적의 사람에 대한 묘사를 『지리와 희곡들』에 담아냈다. 1930년 토클러스와 함께 ‘플레인 에디션’ 출판사를 세워 자비로 『어떻게 쓸 것인가』 『오페라와 희곡들』 등을 출간했다. 이 작품들은 소설, 시, 희곡,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전복적인 실험과 대담한 언어유희로 모더니즘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45년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되어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기까지를 담은 회고담 『내가 지켜본 전쟁들』을 출간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세 인생』 『부드러운 단추들』 『미국인의 형성』 『Q. E. D.』 등이 있다. 1946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1967년에 사망한 토클러스도 같은 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조지 고든 바이런(지은이)

1788년 1월 22일 영국의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지만, 세상 사람들의 빈축을 사 악명이 높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잭은 이런 바이런 집안의 전형적인 인물로 재혼을 한 후에도 다시 방탕한 생활을 하고서 가족을 버리고 프랑스로 도피해 거기서 비참하게 객사하고 말았다. 그러자 캐서린은 세 살 난 외아들 바이런을 데리고 그녀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애버딘(Aberdeen)으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애버딘으로 가서 적은 수입으로 세를 얻어 살았던 그는, 절름발이라는 사실에 매우 민감했던 소년 시절에 애버딘 그래머 스쿨(Aberdeen Grammar School)에 다녔다. 그가 열 살 때 자식 없이 죽은 부도덕한 큰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남작의 작위를 물려받아 ‘바이런 경’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고 큰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자,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잉글랜드에 있는 본가인 뉴스테드(Newstead)로 돌아갔다. 변호사인 존 핸슨(John Hanson)의 도움으로 바이런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1799년 가을에 덜위치(Dulwich)에 있는 학교에 가기도 했다. 1801년에 바이런은 해로 스쿨(Harrow School)에 입학했고 곧이어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는데, 학창 시절 동안 학교 공부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시를 쓰고 소설과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 또한 그는 선천적으로 불구인데도 운동을 좋아했고 술과 나쁜 친구와 천박한 여자들을 접하고 도박에도 손을 대 빚을 지는 등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리고 진보적인 휘그(Whig)당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1807년 여름 바이런은 그의 초기 시들을 묶어서 11월에 ≪덧없는 시편들(Fugitive Pieces)≫이라는 시집을 자비로 인쇄했다. 그리고 이듬해 6월에는 열아홉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시집 ≪한가한 시간(Hours of Idleness)≫을 정식 출간했다. 하지만 이 시집이 <에든버러 리뷰(Edinburgh Review)>에 의해 혹평을 받자, 그는 1809년에 <영국의 시인들과 스코틀랜드의 비평가들(English Bards and Scotch Reviewers)>을 써서 비평가들을 통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해에 성년이 된 그는 1월에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귀족원의원이 되어 당시의 귀족 자제들의 관습에 따라 일찍부터 꿈꾸어 오던 유럽 대륙 여행길에 올랐다. 그는 포르투갈, 스페인, 몰타, 알바니아, 그리스, 콘스탄티노플까지 두루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체험하고 문학적인 시야를 넓힌 후 1811년 7월 14일 런던으로 귀국했다. 1812년 2월 27일에 바이런은 상원의원으로서 첫 연설을 했으며, 3월 초에 출간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1·2편은 2년간에 걸친 그의 유럽 여행에 대한 기행문인 셈인데, 이 시에서 주인공인 차일드 해럴드는 동방 제국을 순례하면서 보고 체험했던 이국의 풍물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노래한다. 이 시는 바이런에게 “어느 날 아침에 깨어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뜻하지 않은 성공을 가져다주어서 미모의 청년 귀족 바이런이 휘그당 모임에서 명사 취급을 받도록 했으며, 영국 상류 사교계의 열렬한 갈채와 찬양을 받으며 여성들의 애모와 동경의 대상이 되어 그에게 무절제한 여성 편력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1813년에 ≪이단자(The Giaour)≫와 ≪아비도스의 신부(The Bride of Abydos)≫, 1814년에 ≪라라≫와 ≪해적(The Corsair)≫, 1815년에 ≪히브리 가곡(Hebrew Melodies)≫, 1816년에 ≪코린트의 포위(The Siege of Corinth)≫와 ≪파리지나(Parisina)≫ 등 수많은 걸작 시집들을 잇달아 출판하고 호평을 받았다. 바이런은 복잡했던 많은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안정된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 1814년 9월 앤 이저벨라 밀뱅크와 1815년 1월 2일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되는 바이런의 가정적인 추문은 런던 사회 전체에 심각한 파문을 일으키게 되었고 신랄한 비방을 자아내게 됨으로써 바이런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16년 4월 바이런은 이혼을 하고 유럽으로 떠나 스위스, 이탈리아의 도처를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돌아다니면서 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 생활을 했고, 다시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유럽에서 지내는 도중 이탈리아 비밀 혁명 단체에 들어갔으며, 이탈리아인의 생활을 어느 때보다 가깝게 접하는 한편 신성동맹에 대한 반란 운동에도 참가했다. 그러면서 1816년과 1818년에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3·4편, 1816년에 ≪시용의 죄수 (The Prisoner of Chillon)≫, 1817년에 ≪베포(Beppo)≫와 시극 <맨프레드>, 1820년에 ≪단테의 예언(The Prophecy of Dante)≫과 ≪마리노 팔리에로(Marino Faliero)≫, 1821년에 ≪두 사람의 포스카리(The Two Foscari)≫와 시극 <카인(Cain)>, ≪심판의 계시(The Vision of Judgement)≫, 그리고 그의 필생의 대작인 ≪돈 주안≫을 1818년부터 1823년에 걸쳐 출간했다. 또한 시인 리 헌트(Leigh Hunt)를 계속 도왔고, 그가 편집하는 ≪리버럴(The Liberal)≫에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1823년 4월 런던에 있는 그리스 위원회로부터 터키에 대항해서 독립 전쟁을 하고 있는 그리스인들을 돕는 요원으로 활동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제 자유와 정의와 인류애를 위한 정치 운동에 정열을 불태우고자 했던 그는, 터키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그리스의 독립 운동을 돕고자 스스로 원군을 조직해 7월 16일에 그리스를 향해 출범했다. 하지만 그는 1824년 1월 그리스의 미솔롱기(Missolonghi)에 상륙한 후 그리스 독립군 최고 사령관이 되어 터키와의 전투를 기다리던 중 불운하게도 열병에 걸렸고, 의사가 고집한 사혈 요법으로 인해 병이 더 악화되어 그해 4월 19일에 36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그리스 전체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곧 그는 그리스의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그의 유해는 영국으로 옮겨졌으나 웨스트민스터 대사원 안치가 거부되어, 7월 16일에 뉴스테드와 가까운 한 교회 묘지의 집안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45년 뒤인 1969년에 그를 추도하는 기념비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세워졌다.

사포(지은이)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서 귀족의 딸로 태어났다. 최초의 서정 시인으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해 노래, 춤, 시를 가르쳤는데, 사포에게 배우기 위해 그리스와 이오니아 각지에서 어린 소녀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사포는 이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시를 썼지만 소녀들을 대상으로도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한 연애시도 썼다. 플라톤은 사포를 두고 세상에 현존했던 ‘열 번째 뮤즈’라고 칭송했으며,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은 서정시인 아홉 명 가운데 한 사람에 사포를 포함시켰다.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지은이)

1854년 10월 프랑스 북부의 작은 도시 샤를르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집에 머무는 때가 드물었고, 랭보가 여섯 살 되던 해 완전히 가족을 떠났다. 어머니는 극도로 독실하고 엄격했다. 불우한 가정, 정치적 혼란, 그리고 전쟁은 어린 시인의 마음에 종교와 사회 제도에 대한 반항을 심었고, 좌절과 분노는 잦은 가출과 방랑으로 표출되었다. 반항심은 “절대적 자유”를 향한 폭발적인 글쓰기로도 나타났다. 베를렌과의 교류와 방황은 랭보의 시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10대 후반 약 5년 동안 그가 쓴 시의 진화는 시의 역사 전체를 요약한다. 예리한 감각과 거침없는 상상력이 나타나는 &lt;초기 운문시&gt;,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는 &lt;후기 운문시&gt;, 전복적이고 극단적인 가치관을 불같은 문체로 노래한 &lt;지옥에서 보낸 한 철&gt;, 그리고 헤아리기 어려운 초월적 세계를 보여주는 &lt;일류미네이션&gt; 등 그의 작품은 세계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특히 “불가해한 시집”인 &lt;일류미네이션&gt;은 “모든 문학을 넘어선” 궁극의 시로 평가된다. &lt;일류미네이션&gt;의 원고를 베를렌에게 넘긴 뒤 랭보는 문학과 문명을 버리고 유럽을 벗어나 세상을 떠돌다 아랍 아프리카 사막으로 사라진다. 아라비아반도와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무역상을 하던 그는 병으로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프랑스 마르세유로 송환된다. 1891년 37세가 되던 해,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며 쓴 그의 편지에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반항과 자유의 갈구가 담겨 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불행, 끝없는 불행이다! 도대체 왜 살아가는 것일까?”

오스카 와일드(지은이)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과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긴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지상주의와 유미주의의 대표적 작가이자 사회를 조롱한 재담가였다.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저명한 의사이자 고고학자였고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부모의 영향 아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고,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후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로 진학했다. 1878년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첫 발을 내디뎠고,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890년 발표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었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내던지는 도리언의 이야기 속에서 와일드는 도덕과 타락, 미와 윤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구했다. 그러나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기준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위험하고 부도덕한 책’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1890년대 후반 희곡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하찮은 여인〉, 〈진지함의 중요성〉 같은 풍자극을 발표하여 사회의 위선을 날카롭게 조롱했다. 1895년에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 프랑스로 떠나 유랑 생활을 했는데,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00년 뇌수막염으로 생을 마감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9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문학과 미학을 향한 와일드의 탐구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논의되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창조한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월트 휘트먼(지은이)

미국의 정신을 잘 대변해 주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는 월트 휘트먼은 1819년 5월 31일 미국 롱아일랜드의 헌팅턴타운 근교의 웨스트힐스에서 농부이자 목수였던 아버지와 퀘이커 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휘트먼은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5∼6년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하고, 11세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는 법률 사무소, 병원, 인쇄소, 신문사 등에서 잡일을 하면서 영국 낭만주의 소설과 시, 고전문학, 성경 등에 심취했다. 그러다가 17세가 되던 1836년에 교사가 되었으며, 그 후 롱아일랜드에 있는 학교에서 5년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후, 저널리즘에 몸을 담아 뉴욕에서 활약했는데, 1838년에는 주간지 <롱아일랜더>를 창간했으며, 1842년에는 신문사 <뉴욕 오로라>의 편집인이 되었다. 이해에 그는 에머슨이 뉴욕에서 행한 “자연과 시인의 능력”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에머슨이 예언해 준 “미국의 시인”이 되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1842년 봄에 갑자기 편집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뉴욕 오로라>를 그만둔 후, <이브닝 태틀러>, <롱아일랜드 스타>,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과 같은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 자유 기고가, 편집인 등으로 10여 년간 활동하다가, 마침내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848년에 휘트먼은 뉴올리언스에서 발행되는 <뉴올리언스 크레센트>의 편집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뉴올리언스로 떠난다. 이때 그는 여행을 통해 그는 미국의 광대함과 다양함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때 경험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폭 넓은 비전은 그의 시에 스며들어 그를 미국의 위대한 시인으로 발돋움하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휘트먼은 뉴욕으로 돌아온 후 신문사 <브루클린 프리맨>의 편집 일을 맡았다. 그가 36세 되던 1855년 7월 4일에 첫 시집인 ≪풀잎≫을 자비로 출간했다. 또한 휘트먼은 1862년에 남북전쟁에 참전했다 부상당한 동생 조지를 병문안하기 위해 워싱턴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군 병원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1865년에 출간된 시집 ≪북소리와 1875년에 출간된 ≪전쟁 회고록≫은 이때의 경험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1882년에는 그의 인생 초기의 생활, 남북전쟁 당시 간호사로서의 경험, 노년기의 일상생활, 그의 문학관 등을 담은 산문집인 ≪표본적인 나날들≫을 출간했다. 그리고 출판 및 판매 금지를 당한 덕에 오히려 사상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한 ≪풀잎≫ 제6판과 ≪표본적인 나날들≫의 판매 수입으로, 그는 1884년에 뉴저지 캠던의 미클 가에 2층짜리 건물을 구입해 이 집에서 1892년 3월 26일 죽을 때까지 살았다. 휘트먼의 신념과 비전을 통해 나온 시가 미국 시에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대에는 주로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뿐, 독자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미국 최대의 시인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고, 그의 시집 ≪풀잎≫은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윌라 캐더(지은이)

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로 1873년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895년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피츠버그에서 몇 년 동안 신문, 문예잡지사 일과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12년부터 창작에 전념하였다. 네브래스카에서 혹독한 기후와 싸우며 개척 생활을 하는 북유럽 이주민들과 함께 보낸 10년간은 그녀의 작품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캐더는 웅대한 자연을 묘사하는 데 알맞은 위엄 있고 단아한 필치로 모든 개개인의 생활에 새겨진 인간 역사를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며 네브래스카 최초의 여성 유명 인사였던 캐더는 1947년 미혼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 1927년에 발표한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는 윌라 캐더가 미국 남서부인 뉴멕시코 지방을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 구상한 작품이다. 종교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불모지였던 뉴멕시코에서 두 프랑스인 선교사가 불굴의 정신으로 이룩한 포교의 생애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것은 물론, 소설의 무대가 되는 뉴멕시코 일대의 웅대한 자연환경을 그리고 있다. 대표작으로 네브래스카의 대초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시인 『오, 개척자여!O Pioneers!』와 『나의 안토니아My Antonia』가 있으며, 사라져 가는 개척자 정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우리 중의 하나One of Ours』로 1922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서부 개척자들 중 한 여인의 허물어져 가는 사랑의 생애에 초점을 맞춘 『방황하는 부인A Lost Lady』, 지금은 사라진 뉴멕시코 주 혈거인종의 끊임없는 휴식에의 동경을 그린 『교수의 집The Professor’s House』, 18세기 전반 캐나다에서 프랑스 이주민들의 용기와 긍지와 정열로써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바위 위의 그림자Shadows on the Rock』 등이 있다.

크리스토퍼 말로(지은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보다 두 달 먼저인 1564년 2월 캔터베리(Canterbury)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천재적이었던 그는 캔터베리 왕립학교를 졸업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의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장학생으로 수학했다. 작은 마을의 문법학교만 다닌 것으로 추정되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말로는 대학 출신의 ‘대학재사들’(The University Wits) 중 한 사람으로 라틴어와 고전 문학에 능통했던 지성적인 문인이자 극작가였다. 런던 연극계에 몸을 던진 그는 1586년부터 죽기 전인 1593년까지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1586) 포함 6편의 극을 무대에 올리며 런던의 극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말로에 대해서는 그의 희곡들이 무대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593년 말로는 의문의 사고로 29세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해 5월 30일 뎁퍼드(Deptford)의 선술집에서 잉그램 프리저(Ingram Frizer)와 벌인 사소한 칼싸움 끝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는 토머스 키드의 증언에 따라 이단 혐의로 추밀원이 말로의 체포 영장을 발부한 지 열흘이 조금 더 지난 뒤였다. 말로는 약 9년 동안 시작과 극작 활동을 했지만 영국 문학계와 무대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비평가들에 따르면, 그는 ≪베니스의 상인≫을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파우스터스, 바라바스, 탬벌레인 대왕과 같은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을 창조함으로써 영국 무대에 최초로 근대적 인간을 소개하고 전복과 위반의 르네상스 정신을 극화했다.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명성과 이른 죽음으로 빛나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던 말로에 대해 오늘날 평자들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셰익스피어에게 뒤지지 않는 극작가로 성장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폴 발레리(지은이)

프랑스의 시인·비평가·사상가. 1871년 남프랑스의 항구도시 세트에서 세관직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몽펠리에 대학 재학 중에 시의 습작에 몰두하다가 파리에서 온 피에르 루이스를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앙드레 지드와 스테판 말라르메와도 교류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파리로 이주해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 “테스트씨와의 하룻밤”, “방법의 제패” 등을 발표하면서 고도의 관념성으로 독특한 비평적인 세계를 열었다. 1917년 『젊은 파르크』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었고 1925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게 되었다. 시인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최대의 산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산문작품은 다방면에 걸치는 것으로 문학 ·예술 ·철학 ·과학 등에 관한 논고論考와 현대문명에 관한 고찰이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죽을 때까지 새벽에 일어나 자신을 위하여 습관적으로 쓴 노트인 『카이에』는 1894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그가 죽은 후 29권의 사진 복제판으로 간행되었다. 3만 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꼽히며, 지금도 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지은이)

시인, 평론가. 군마현 출생. 1917년에 간행된 첫 번째 시집 『달을 향해 짖다』에서 기존 시의 개념을 깨고, 새로운 형식의 시를 썼다. 1923년에 발간한 시집 『푸른 고양이』에서 구어자유시를 확립해 부동의 지위를 차지했다. 일본근대시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만돌린 악단을 주재하며 연주 활동을 하는 등 음악 활동도 열심히 했으며, 사진에도 재능을 발휘하는 등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콘스탄티노스 P. 카바피(지은이)

20세기 그리스의 시인으로 1863년 4월 29일 알렉산드리아에서 아홉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는 영국에서 생활하며 셰익스피어 등 영국의 시들을 읽고 쓰며 시적인 감성을 형성했다. 가족의 사업 실패 후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하는데 1882년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영국의 알렉산드리아 침공으로 인해 집이 파괴되자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한다. 1885년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무원으로 자리를 잡아 삼십 년 동안 일한다. 1903년 그레고리오스 제노풀로스Gregorios Xenopoulos를 통해 그리스 문학계에 그의 시가 소개되지만 주류 사조와 맞지 않아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당대 알렉산드리아의 지하에 숨어 있던 동성애자들의 세계를 탐구하고 남성의 아름다움과 쾌락을 찬미했던 카바피의 시는 상속자이자 연인으로 알려진 알렉산더 싱고폴로스Alexander Singopoulos에 의해 사후에야 154편의 시를 엮은 《시poemeata》로 발간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카바피를 만난 E. M. 포스터는 그의 시를 영어권에 처음 알렸으며 카바피의 상징주의적, 낭만주의적 분위기, 관능적인 시들은 후대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데이비드 호크니는 콘스탄틴 카바피의 시를 읽고 영감을 받아 〈14개의 시를 위한 삽화〉 판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일흔 번째 생일인 1933년 4월 29일에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윌프레드 오언(지은이)

웨일스 지방에서 출생했으며 낭만파 시인 존 키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던스덴 지역에서 성직자 보조 일을 하며 레딩대학에서 공부했고, 프랑스로 건너가 가정교사로 지내며 새로운 시의 주제와 기법을 과감하게 실험하던 로랑 타야드Laurent Tailhade를 만나 시를 쓰기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했으나 전쟁 신경증 진단을 받고 에든버러의 군 병원으로 후송되는데, 치료 수단으로 시 쓰기를 권유받았고, 에든버러 문단의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그곳에서 연인이자 멘토 시그프리드 서순Siegfried Sassoon을 만난다. 서순은 전쟁터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작품집 《역습Counter-Attack》(1918)을 낸 시인으로 전통적인 기법으로 시를 썼는데, 오언은 서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오언의 시는 기존 전쟁 시에서 볼 수 없었던 죽어간 전우들, 전쟁의 비참함, 공포, 허망함, 전쟁의 실상을 체험한 전쟁 시였다. 전통적인 기법으로 시를 썼지만 그가 시를 대하는 태도는 빅토리아 시대와는 달랐다. 오언은 1918년 7월 다시 자원해 프랑스 전선으로 복귀했다가 휴전을 일주일 앞두고 사망했다.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지은이)

미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1892년 미국 메인주 록랜드에서 출생했으며, 1912년 장편 시 “재생(Renascence)”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사르 칼리지를 졸업하는 해인 1917년에 첫 번째 시집 『재생 외』를 출간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뉴욕시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정착해 살면서 ‘낸시 보이드(Nancy Boyd)’라는 필명으로 단편소설과 풍자 글을 쓰는 한편, 시를 여러 유명 잡지에 지속적으로 게재했다. 1920년에 여성의 성애와 페미니즘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온 시집 『엉겅퀴에서 나온 몇 개의 무화과』를 출간했고, 1923년에는 시집 『하프로 옷을 짜는 여인의 노래』로 시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밀레이의 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는 사랑에 대한 탐구다. 열정, 욕망, 상처, 관계의 복잡성을 연인 간의 역학, 새로운 사랑의 환희, 이별의 고통, 그리고 사랑으로 인한 절망 등을 때로는 통속적인 사랑이 아니라 인습과 윤리를 뛰어넘는 영역으로 확대시키면서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1923년에 밀레이에게 너무나 헌신적인 오이겐 얀 보이세바인과 결혼하여 26년을 함께 살았으며, 1950년 10월 18일 뉴욕주 오스터리츠에서 58세로 사망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지은이)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조각가로, 바티칸에 있는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설계했으며, 〈다비드〉, 〈피에타〉 같은 조각상들과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 〈천지 창조〉 같은 프레스코화를 통해 천재 예술가로 이름을 남겼다.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던 그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면서 300여 편의 낭만적인 소네트와 마드리갈을 썼다.

래드클리프 홀(지은이)

본명 마거리트 래드클리프 홀. 1880년 영국 햄프셔 본머스에서 태어났다. 장편소설 <고독의 우물>(1928)로 일대 파문을 일으켰으나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한동안 영국에서 출판이 금지되었다. 런던의 킹스칼리지에서 공부한 뒤 독일에서 학교를 다녔다. 평생 남장을 했던 그녀는 시인으로 문단에 처음 등장했는데, 이 때 쓴 시들은 후에 네 권의 시집으로 엮어 나왔다. 가장 유명한 시 가운데 하나인 <눈먼 농부>는 코닉스비 클라크가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1924년에는 처음으로 두 권의 장편소설 <대장간>과 <불 꺼진 램프>를 썼다. <불 꺼진 램프>는 동생애를 다룬 그녀의 첫 작품이다. 이 년 뒤 한 식당 주인의 삶을 그린 감각적인 소설 <아담의 후예>(1926)로 프랑스의 페미나 상을 받았고, 1927년에는 제임스 테이트 블랙메모리얼 상의 소설 부문 수상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표작이 된 것은 <고독의 우물>로 홀은 이 작품에서 평생 남성으로 살기를 소망했던 한 여인과 어린 소녀의 사랑을 자세하게 파헤쳤다. 이 강렬하고 진지한 사랑 이야기는 영국에서 출간 직후 격렬한 비난을 받았고, 런던 시장 차터스 바이런 경은 품위 있고 절제된 작품이기는 하나 '점잖은 사람들'에게 동성애를 인정하라고 할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들에게 잘못이 없음을 이해하라고 호소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는 이 책을 '외설' 서적으로 단정하고, 모든 책을 회수해 폐기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그 후 미국에서는 동성애를 다루는 것 자체가 외설이 될 수 없다는 상반된 판결이 내려졌고, 1943년 홀이 죽은 뒤 영국에서도 상소심을 통해 출판금지 조치가 해제되었다. 홀은 미국 법원의 평결로 정당함을 인정받았으나, <고독의 우물> 이후 두 번 다시 문제작을 쓰지 않았다. 그 외 대표작으로 <지구와 별 사이에서>(1906), <세 지방의 노래>(1913), <가장>(1932), <여섯째의 큰 행복>(1936)이 있다.

하트 크레인(지은이)

미국의 대표적 모더니즘 시인으로 1899년 7월 21일, 미국 오하이오주 개럿츠빌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일곱 살에 뉴욕시로 이주한 후 자유분방한 삶 속에서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창작에 몰두했다. 그는 테이트(Allen Tate), 윈터스(Yvor Winters), 투머(Jean Toomer) 같은 시인들, 프랭크(Waldo Frank), 카울리(Malcolm Cowley) 같은 비평가들과 교류했고, 당대 주요 문예지인 『다이얼(The Dial)』, 『리틀 리뷰(The Little Review)』, 『일곱 가지 예술(Seven Arts)』, 『시(Poetry)』 등에 기고하였다. 그가 1926년에 출판한 최초의 시집 『하얀 건물들(White Buildings)』은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와 다의적인 언어를 특징으로 하며, 수록된 「파우스트와 헬렌의 결혼을 위하여(For the Marriage of Faustus and Helen)」나 「항해(Voyages)」는 사랑과 미를 찬미하며 세계대전의 절망과 비관주의를 넘어서는 낙관성을 보여준다. 그는 당대 문단의 총아였던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가 “영적으로 죽은” 시라고 비판하며 1930년, 서사시 『다리(The Bridge)』를 출판한다. 『다리』는 비인간적 기계문명과 냉혹한 상업주의마저도 아우르며 소외와 분열의 현대세계에서 희망과 긍정을 모색하는 미국적 서사시이다. 크레인은 이 작품에서 현대세계의 다양한 경험들을 포괄하면서도 변형력 있는 비전을 추구하며, 세계와 화해하고 세계를 넘어서는 초월의 순간을 생생히 재현한다. 『다리』는 모더니티를 고전적 형식 속에 낭만주의적 비전으로 해석한 미국 모더니즘의 수작(秀作)으로 평가된다. 『다리』의 완성에 힘입어 크레인은 1931년 구겐하임 펠로십을 수상한 뒤 1932년까지 멕시코에서 체류하며 또 다른 서사시를 구상한다. 그러나 1932년 4월 27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던 중 술에 취해 여객선에서 뛰어내려 멕시코만에서 실종되었고 사체는 영영 발견되지 않았다. 그해 6월에 마지막 시 「부서진 탑(The Broken Tower)」이 출판되었다.

카운티 컬런(지은이)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Henry Louis Gates Jr.에 따르면 ‘흑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게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던’ 할렘 르네상스 운동을 이끈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알랜 로크Alain Locke는 컬런이 자신의 성적 취향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었고 에드워드 카펜터Edward Carpenter의 시를 컬런에게 소개했으며 컬런은 로크에게 “그것은 닫힌 내 영혼의 창을 열었다”고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뒤, 하버드에서 영어학 석사 과정을 밟았으며 다수의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고 1925년 인종 차별주의를 비판하는 첫 번째 시집 《색깔Color》을 출간하며 주목을 받는다. 다양한 사람들과 연애를 했는데 해럴드 잭맨Harold Jackman은 고등학생 때 만나 1946년 컬런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한다. 컬런이 욜런드 듀보이스Yolande DuBois와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잭맨과 파리로 떠나면서 아내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힌 사건은 당시 흑인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흑인의 인권이나 시대의 권위주의에 대한 시로 유명하지만 연인을 위한 시도 지었는데, 〈장면Tableau〉은 진주만에서 사망한 그의 백인 연인인 도널드 더프Donald Duff에게 바쳤다.

에드워드 카펜터(지은이)

영국의 사회주의 · 자연주의 운동가이며 시인이다. 동성애자와 여성의 성적 해방을 주제로 한 《사랑이 도래하는 시기Love’s Coming of Age》(1896)를 비롯해 다수의 책을 썼고 노동 계급 청년 조지 메릴George Merrill을 만나 삼십 년 동안 함께 살았다. 에드워드는 동성애자와 성의 해방을 외치던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포스터는 에드워드 카펜터와 메릴의 관계를 자신의 소설 《모리스Maurice》(1971)의 모델로 삼기도 했기도 했으며 성의 해방을 주장했던 로런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928년 메릴이 갑작스럽게 죽은 후 1929년 6월에 카펜터도 사망한다. 둘은 길포드 마운트 묘지에 함께 묻혔다. 〈여름의 열기〉는 동성애 욕망을 칭송하는 시로 작품집 《민주주의를 향하여Towards Democracy》(1883)에 수록되어 있다.

리처드 반필드(지은이)

17세기 영국의 시인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크리스토퍼 말로와의 친밀한 관계가 오랫동안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카린 보위에(지은이)

1900년 10월 26일에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태어나 웁살라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스칸디나비아어, 문학을 공부했다. 1922년 시 선집 《구름Moln》으로 데뷔했고 시와 소설, 비평 등 다양한 글을 썼다. 보위에는 스웨덴 사회주의 그룹 클라테Clart?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그룹에서 만난 레이프 비에르크Leif Bj?rck와 결혼했지만 1932년 이혼한다. 이후 1933년까지 베를린에서 머무는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탐구했으며 레즈비언 파티에서 만난 마고트 하넬Margot Hanel과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 이 시기 보위에는 레즈비언 정체성이 투영된 작품을 발표하는데 1934년 《크리스Kris》를 펴냈고, 가장 유명한 시 〈그래요, 당연히 아파요Ja visst g?r det ont〉도 같은 시기에 발표된다. 오랜 친구이자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아니타Anita Nathorst와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졌는데 암에 걸린 아니타를 돕기 위해 알랑사스에 약 일 년간 머무르기도 한다. 이때 창작 욕구가 최고조에 달해, 상당수의 시는 물론, 보위에의 걸작으로 꼽히는 《칼로카인Kallocain》(1940)을 집필하기도 했다. 전체주의에 맞선 격렬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전체주의에 환멸을 느낀 유럽인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르네 비비엔(지은이)

부유한 영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파리와 런던에서 성장하고 스물한 살에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아 프랑스로 이주했다. 내털리 클리포드 바니와의 연애로 유명했으며, 레즈비언의 쾌락을 반영한 시를 썼다. 1902년부터 남작 부인 엘렌 반 쥘랑H?l?ne van Zuylen과 수년간 신중한 관계를 유지한다. 비비엔과 쥘랑은 폴 리버스달Paule Riversdale이라는 가명으로 시와 산문을 발표했다.

샬럿 뮤(지은이)

블룸즈버리에서 태어나 런던의 여학교에서 공부했다. 뮤의 부모님은 일곱 자녀를 두었으나 둘은 정신병을 앓았고 셋은 일찍 죽고 말았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뜨고 뮤는 어머니와 여동생 앤과 함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12년 소설가 메이 싱클레어May Sinclair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뮤는 거의 언제나 남자처럼 옷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그녀의 시집에는 남성 화자의 목소리로 쓴 시가 자주 등장한다. 19세기 농촌을 배경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농부와 그런 남편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 아내의 모습을 담은 《농부의 신부The Farmer’s Bride》(1916)를 발표해 토마스 하디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여동생 앤이 암으로 세상을 뜨자 우울증에 시달리다 욕실용 세제인 리졸을 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타 색빌웨스트(지은이)

1892년 영국 켄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빅토리아 메리 색빌웨스트이지만 한평생 ‘비타’라고 불린다. 어린 시절, 유서 깊은 놀하우스에서 성장한 비타 색빌웨스트는 한동안 가정 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고독한 세월을 보낸다. 그럼에도 프랑스어를 통달하고,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이며 일찍이 소설과 시 등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당대 영국의 풍경과 사교계의 모습을 그린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고, 원예가로 유명하다. 1926년 장편 시 『대지(The Land)』와 1933년 『시 선집(Collected Poems)』으로 두 차례 호손든상을 수상하고, 1930년 『에드워드 시대의 사람들(The Edwardians)』과 1931년 『모든 열정이 다하고』를 잇따라 출간하며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또 훌륭한 전기 작가이자 동화 작가, 원예가로서 명성을 떨친다. 한편 중성적인 외모에, 양성애 성향을 지닌 색빌웨스트는 1913년 외교관 해럴드 니컬슨과 결혼하지만 각자 서로의 정체성을 이해하며 개방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을 엄격히 구별하던 시대에도 색빌웨스트는 남성복을 입거나 직접 운전을 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여성과 연애를 이어 간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와의 만남은 당대뿐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게 커다란 파문을 남긴다. 색빌웨스트는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울프를 위로해 주었고, 울프는 색빌웨스트와 교감하며 걸작 『올랜도(Orlando)』를 완성해 낸다. 연인이자 친구이자 문학적 동지였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수많은 편지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1930년에 매입한 시싱허스트성의 정원을 가꾸며 《옵서버》에 원예 칼럼을 연재하고 커다란 성과를 거둔다. 1947년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으며 영국왕립문학학회의 회원으로 지명되고, 명예 훈작을 받는다. 1962년 6월, 암을 앓다가 일흔 살의 나이로 영면한다.

마이클 필드(지은이)

캐서린 브래들리Katherine Harris Bradley와 그녀의 조카 이디스 쿠퍼Edith Emma Cooper의 필명이다. 캐서린은 부유한 담배 사업가의 가정에서 태어나 예술 교육을 충분히 받았고, 여유로운 경제적 환경 덕에 일이나 결혼 대신 예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니 에마를 간병하며 에마의 딸 이디스 쿠퍼도 보살피게 되었는데, 이디스는 십대 때 시를 쓰고 베르길리우스를 번역하는 등 문학에 흥미를 보이며 자랐다. 이디스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캐서린과 이디스는 함께 브리스톨대학에서 강의를 들었다. 1870년대 후반, 둘은 깊은 연애 관계로 발전해 사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끊임없이 변했지만, 그들의 작품은 변함없이 여성의 힘에 집중하며 강하고 복잡한 여성을 묘사했다. 마이클 필드, 그리고 캐서린과 이디스는 거의 잊혔다가 20세기 후반에 고유한 문학적 동반 관계가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오늘날 문학적 형식의 날카로움과 레즈비언 여성 문학에 대한 획기적인 기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요사노 아키코(지은이)

일본의 시인이자, 작가, 사상가이다. 1901년, 스승이자 훗날 남편이 된 시인 요사노 뎃칸과의 연애, 갈등, 성애를 주제로 한 시집 ≪헝클어진 머리칼≫을 발표했다. 근대 신여성의 욕망과 투쟁을 관능미 넘치는 언어로 노래한 이 시집을 계기로 당시 젊은이들의 선풍적인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일약 일본 낭만주의 문학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평생 약 5만 수의 시와 15권의 사회평론집, 고전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의 현대어 번역, 동화 집필 등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했다. 1904년 러일전쟁에 출전하는 남동생을 위해 쓴 시 &lt;님이여 죽지 말지어다&gt;는 일본의 대표적인 반전시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시인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남녀평등에 입각한 여성 교육, 여성의 경제적 자립, 여성의 정치 참여 요구 등 다양한 여성 의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한 여성운동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했다.

뤼시 드라뤼 마르드뤼스(지은이)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저널리스트, 조각가, 역사가 및 디자이너다. “나는 한 알의 사과에서 고향 땅의 냄새를 맡았습니다L’odeur de mon pays ?tait dans une pomme”로 시작하는 시로 유명한 그녀의 책은 여행에 대한 예찬과 사랑의 미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말을 타고 조각을 즐겼으며 동성과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내털리 클리포드 바니Natalie Clifford Barney에게 써 보낸 시가 1957년 프랑스에서 《비밀스러운 우리의 사랑Nos secr?tes amour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그녀를 회상하며 소설 《천사와 성도착자L’Ange et les Pervers》(1930)를 썼다.

안토니오 보토(지은이)

1897년 뱃사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책방 점원으로 일하며 매일 책을 읽고 시를 썼다. 이십대 중반부터 공무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쓴 시집 《노래Can??es》를 출간하여 혹평을 받았지만, 페르난두 페소아가 옹호했다. 1923년 동성애를 다룬 책을 출간한 이유로 체포되기도 했으나 페소아를 비롯해 보토를 지지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변호했다. 덕분에 이듬해에는 동성애를 다룬 출판 금지령이 해제되었다. 보토는 생을 끝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노래》를 개정하여 출간했고 동시대를 살았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버지니아 울프, 루이지 피란델로, 슈테판 츠바이크, 러디어드 키플링, 제임스 조이스 등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에바 고어부스(지은이)

1894년 북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를 여행하고 아일랜드로 돌아오면서 W. B. 예이츠를 만났고, 1896년 이탈리아에 갔다가 평생의 동반자가 될 에스더 로퍼Esther Roper를 만났다. 고어부스는 아일랜드 전설을 다룬 작품을 썼는데, 그녀의 작품 안에는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1916년부터 성 평등, 여성의 참정권 등에 대해 다루는 페미니스트 잡지 《우라니아Urania》를 창간하여 에스더 로퍼와 함께 일했다. 192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에스더와 함께 묻힌 그녀의 묘지에는 레즈비언 시인 사포의 인용문 “Life that is Love is God”이 묘비에 새겨져 있다.

애그니스 메리 프랜시스 로빈슨(지은이)

부유한 건축가의 딸로 태어나 런던에서 교육을 받았다. 1878년에 첫 시집 《한 줌의 허니서클Handful of Honeysuckle》을 출간했다. 1880년 이탈리아 여행 중에 버넌 리Vernon Lee를 만나 가깝게 지내며 소네트를 썼다. 1888년 프랑스 대학의 유대인 교수 제임스 다메스테터James Darmesteter와 결혼했다가 6년 만에 남편이 죽고 1902년 에밀 뒤클로Emile Duclaux와 재혼하지만 1904년 뒤클로마저 세상을 떠난다. 로빈슨은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를 다룬 첫 번째 자서전을 집필했다.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지은이)

상당한 재산을 남긴 주식 중개인이었던 백작 집안의 막내로 큰 키와 황제 같은 수염을 길렀고 고상한 모습으로 종종 비명을 지르며 기이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독특한 성격과 다방면의 재주로 미술품 수집, 유리 공예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던 그는 칼 위스망스Joris Karl Huysmans의 소설 《거꾸로A rebours》(1884)의 장 데 제셍트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Recherche du temps perdu》의 샤를뤼스 남작에 영감을 받아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했다.

에이미 로웰(지은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에즈라 파운드에 이어 이미지즘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유명하다. 이 운동의 쇠퇴와 함께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가, 1970년대의 여성운동과 여성 연구에 힘입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로웰은 시집 『다색 유리의 둥근 지붕』, 『칼날과 양귀비 씨앗』, 『부유하는 세계의 영상들』, 이태백 같은 중국 시인들의 시 번역서, 『존 키츠』 전기를 냈고, 사후에 출간된 시집 『몇 시에요』로 1926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우조(지은이)

청나라의 시인이다. 항주 출생으로 비단을 파는 상인의 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과 시 가사 쓰기에 재능을 보여 교육을 받았다. 가족의 성화에 비단 장수와 스물두 살에 결혼했는데, 그의 남편은 우조의 예술 활동에 관심은 없었지만 살롱을 열고 문인들을 만나는 것에는 관대했다. 우조는 문인들이나 유명 인사와 어울리며 시를 짓고 노래를 만들었고 남성복을 입기도 했으며 많은 여자들과 연애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의 전통적인 정의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등 여성에게 제한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시대의 한계, 그것을 극복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시에 표현했고, 여성과의 에로틱한 풍경을 담은 시를 많이 썼다.

에디트 쇠데르그란(지은이)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의 시인으로 핀란드 동부의 라이볼라에서 어머니와 고양이들과 함께 대부분의 생을 보냈다. 1916년 《시집Dikter》을 시작으로 결핵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총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의 시는 엘메르 딕토니우스Elmer Diktonius, 군나르 비욜링Gunnar Bj?rling 및 라베 엥켈Rabbe Enckell 등 후대 핀란드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유명한 시로는 〈신 여성Vierge moderne〉(1916), 〈구월의 리라Septemberlyran〉(1918), 〈없음Ingenting〉(1925)이 있다.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지은이)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첫 시집 《저녁의 앨범》(1910)을 발표했다. 어떤 동인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창작의 길을 걷던 중 혁명이 일어나자 1922년 딸과 함께 프라하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콘스탄틴 로드제비치와 사랑에 빠져 포에마 〈끝의 시〉를 썼다. 1925년에는 파리로 이주했고, 1926년에는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셋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러시아로 돌아온 뒤에는 남편과 딸의 체포, 소비에트 문단으로부터의 고립, 극도의 궁핍 등으로 힘든 삶을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타타르스탄의 옐라부가로 피난했다가 1941년 8월 31일 목을 매 자살했다. 대표작으로는 시집 《수공업》(1923), 《러시아를 떠나》(1928), 포에마 〈쥐잡이〉(1925) 등이 있다.

미하일 알렉세예비치 쿠즈민(지은이)

야로슬라블에서 태어나 사라토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러시아 은銀 세기 시인으로서는 꽤 늦은 나이인 서른두 살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1906년에 발표한 연작시 〈알렉산드리아의 노래Алекeсандрийские песни〉는 발표 즉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러시아 동성애 문학의 거의 유일한 고전인 중편소설 《날개Крылья》(1907)로 문단에 스캔들을 일으키며 유명세를 얻었다.

소피야 야코블레브나 파르노크(지은이)

‘러시아의 사포’로 알려진 시인인 파르노크는 러시아 남부 타간로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3년부터는 문학잡지 《북방의 수기Северные записк¡и》에 안드레이 폴랴닌Андрей Полянин이라는 남자 이름으로 시와 비평을 발표했다. 이 시기 두 해 정도 지속된 마리나 츠베타예바와의 강렬한 연애가 유명하다. 죽기 얼마 전 소도시 카쉰에서 물리학자인 니나 베데네예바Н. Е. Веденеева를 우연히 만나 깊은 사랑에 빠졌다. 1930년대에는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시를 발표하지 못하고 번역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모스크바 근교 카린스코예 마을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주요 시집으로는 《피에리아의 장미Розы Пиерии》(1922), 《포도 넝쿨Лоза》(1923), 《음악Музыка》(1926), 《속삭이는 목소리로Вполголоса》(1928) 등이 있다.

존 갬브릴 니컬슨(지은이)

에식스 주에서 태어나 킹 에드워드 6세 문법학교에서 공부하고 시를 썼다. 시집 《진실한 사랑Love in Earnest》(1892)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 실린 〈너의 도시 사촌들〉은 니컬슨이 런던 거리를 걷다가 마주친 다양한 소년들을 묘사하고 칭송하기 위해 쓴 것이었다. 이후 《서던우드 화관Chaplet of Southernwood》(1896)을 출간했고, 열세 살 때부터 알고 지냈던 프랭크 빅터 러시포스Frank Victor Rushforth에게 바치는 《래즈러브 화환A Garland of Ladslove》(1911)을 썼다. ‘소년들의 사랑’을 의미하는 ‘Lad’s love’는 쑥과 식물인 서던우드Southernwood를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하다. 1897년에 창설된 동성애자 모임 카이로네이아Chaeronea의 일원이었던 그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 《성가대 소년의 사랑Romance of a Choir Boy》(1916)을 출간한다.

황인찬(엮은이)

시와 더불어 더 멀리 나아가기를 꿈꾸고 있다. 요즘은 어떻게 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될 수 있을지 궁리하는 중이다. 2010년 《현대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가 있다.

최승자(옮긴이)

시인이며 번역가로서 시집으로 『쓸쓸해서 머나먼』,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침묵의 세계』,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정수윤(옮긴이)

이름에 있는 닦을 수(修) 자처럼 끊임없이 갈고닦는 번역가. ‘루리’의 빛도 닦기 나름이라 수행하는 마음으로 노력하지만, 어떤 날에는 ‘가차’ ‘가차’ 하며 울고 싶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쓸 수 있다는 건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지다. 이를 알려준 ‘게사니’처럼 목청을 높이며 나의 언어, 나의 문장을 기억하려 한다. 그러니까 사라져가는 ‘유카르’ 계승자가 되어 노래하고 싶어진다는 것. 새로운 소설을 쓸 준비가 되었다는 것. 이제 행운의 주문을 외울 차례다. ‘루루’ ‘루루’. 장편소설 《파도의 아이들》, 산문집 《날마다 고독한 날》, 하이쿠 안내서 《한 줄 시 읽는 법》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도련님》, 《은수저》 등이 있다.

최성웅(옮긴이)

1984년 서울 출생.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와 해당 언어권의 문학을 가르치거나 옮기며 살고 있다. 서울에서 국문학을, 파리에서 불문학과 독문학을, 베를린과 뮌헨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키토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년간, 그리고 현재는 도쿄에서 일과 병행하며 희랍어와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읻다출판사를 세워 대표로 일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 프랑시스 퐁주의《사물의 편》등을, 독일어권에서는 릴케의《두이노 비가》등을 옮겼으며, 스페인어권에서는 훌리오 코르타사르의《Rayuela: 팔방치기》를 작업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https://linktr.ee/monvasistas)에서 번역과 수업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주환(옮긴이)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공군사관학교에서 불어 교관을 지냈으며, 이후로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셀린의 &lt;Y교수와의 대담&gt;(2016), 로베르 데스노스의 &lt;자유 또는 사랑!&gt;(2016) 등이 있다.

이성옥(옮긴이)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기술 번역으로 번역일을 시작해 지금은 주로 문학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더 사이트 오브 유》, 《P.S. 여전히 널 사랑해》,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라라 진》,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공역) 등이 있다.

이주희(옮긴이)

1986년 출생, 일본 쓰쿠바 대학교 문예·언어 전공 박사 과정 중.

이종현(옮긴이)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으로 활동하며 웹진 〈인-무브〉에 20세기 러시아 시를 소개하는 ‘러시아 현대시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끝의 시』, LGBT 세계시선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공역), 미하일 쿠즈민의 『날개』, 이반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가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서문 또 다른 사랑을 넘어서 4

1부 그래요, 당연히 아파요
장미 화관에 대한 소네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17
그래요, 당연히 아파요 ?카린 보위에 19
바다로 가는 길 위에서 ?샬럿 뮤 21
소년 ?안토니오 보토 27
전쟁터에서 ?래드클리프 홀 29
붕대를 두른 어깨 ?콘스탄틴 카바피 32
사랑 ?에디트 쇠데르그란 34
연인의 침묵 ?애그니스 메리 프랜시스 로빈슨 36
장미 중의 장미 ?애그니스 메리 프랜시스 로빈슨 38
사랑과 죽음 ?조지 고든 바이런 40
소네트 16 ?리처드 반필드 43
밤을 늘려주오 ?르네 비비엔 44
파포스의 여인에게 드리는 기도 ?사포 46
외로운 인격 ?하기와라 사쿠타로 49
나약한 그대를 사랑해 ?르네 비비엔 52
그녀에게서 말 한마디 듣지 못했네 ?사포 54
손에 관한 에피소드 ?하트 크레인 56
사랑의 상처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58
동백꽃을 든 여인에게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 59
담배, 또 담배 ?소피야 아코블레브나 파르노크 61

2부 네가 오면, 문을 열자마자 네 입술을 뺏을 거야
새로운 사랑, 새로운 인생 ?에이미 주디스 레비 65
여름의 열기 ?에드워드 카펜터 67
네가 오면 ?뤼시 드라뤼 마르드뤼스 68
아랫배를 위로 ?거트루드 스타인 70
그들을 위한 보따리 ?거트루드 스타인 73
우상, 항문 소네트 ?아르튀르 랭보 75
의무 아님 ?비타 색빌웨스트 76
밤의 찬가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77
물놀이 ?미하일 알렉세예비치 쿠즈민 79
변명 ?오스카 와일드 83
열정이 가득한 목동이 그의 연인에게 ?크리스토퍼 말로 86
입맞춤 ?뤼시 드라뤼 마르드뤼스 88
알렉산드리아의 노래 3 ?미하일 알렉세예비치 쿠즈민 90
은밀한 물 ?에바 고어부스 92
긴 밤을 지나 ?에드워드 카펜터 94
시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건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96
서로 꼭 붙어 있는 우리 두 소년 ?월트 휘트먼 97
음악을 위한 스탠자 ?조지 고든 바이런 98
하루가 끝나갈 무렵, 나는 들었다 ?월트 휘트먼 99
해질녘 ?마이클 필드 101
너의 도시 사촌들 ?존 갬브릴 니컬슨 102
장면 ?카운티 컬런 104
소네트 14 ?리처드 반필드 105
그는 품질에 대해 물었다 ?콘스탄틴 카바피 107
십 년 ?에이미 로웰 110
소망의 밤 ?카린 보위에 111
사물의 살결 ?르네 비비엔 113
스물셋에서 스물넷 정도의 젊은 두 남자 ?콘스탄틴 카바피 115
빛을 주는 이에게 사랑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18
저녁의 노래 ?윌라 캐더 120
보헤미안, 나의 삶 ?아르튀르 랭보 122
손길 ?르네 비비엔 123
디너 파티에서 ?에이미 주디스 레비 125

3부 우리가 홀로 남는 순간, 문을 닫아버린다면
슬픈 사랑의 노래 ?안토니오 보토 129
또 다른 사월의 노래 ?빈센트 밀레이 130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 ?하기와라 사쿠타로 132
방패 여인 ?카린 보위에 134
봄가을 ?빈센트 밀레이 136
낭비한 나날들 ?오스카 와일드 138
정다운 숲 ?폴 발레리 139
두 번째 생각 ?마이클 필드 140
나와 닮은 그대가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 142
비너스, 건너가다 ?에이미 로웰 144
헌시 ?소피야 아코블레브나 파르노크 146
섀드웰 스테어 ?윌프레드 오언 148
시인 ?래드클리프 홀 150
흰 백합 ?요사노 아키코 151
쓰라린 비 ?우조 157
내 마음은 절름발이예요 ?샬럿 뮤 158
청춘에게 보내는 충고 ?카운티 컬런 160
택시 ?에이미 로웰 161
에로스에게 ?윌프레드 오언 162
음악 없는 만가 ?빈센트 밀레이 164
이것은 보물의 잿가루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 166
헌사 ?윌라 캐더 168

주 170
작가 소개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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