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학술총서 1-1권. 패망의 잿더미에서 일본의 지성들이 써 내려간 참회록. 1953년부터 1954년에 걸쳐 출간된 책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당대 최고의 연구자 약 50여 명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쇼와공황에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이르기까지 파시즘과 군국주의, 제국주의 침략의 구조와 허상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1권에서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다루었다.
패망의 잿더미에서 일본의 지성들이 써 내려간 참회록!
쇼와공황에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이르기까지
파시즘과 군국주의, 제국주의 침략의 구조와 허상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전쟁에 반대하며 숨죽이고 있던 진보적 학자들이 태평양전쟁 패망 직후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역사학연구회도 그중 하나였다. 동경대 사학과를 중심으로 ‘과학적 역사’와 ‘유물사관’에 입각한 역사연구를 표방해 오던 일단의 연구자들이 주요 멤버이다. 이들은 전쟁 전부터 일본의 천황제와 배타적 침략주의 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파시즘과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벌어졌던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천황제와 파시즘, 그리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집대성했다. 그 결실이 바로 1953년부터 1954년에 걸쳐 출간된 “태평양전쟁사”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당대 최고의 연구자 약 50여 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 책은 지금까지도 일본의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엄밀하게 분석한 최고의 역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번 1권에서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다루었고 2권에서는 진주만공격에서부터 패전까지, 3권에서는 전후 일본과 세계의 정서를 담아 완간할 예정이다.
일본 천황제와 군부, 정재계, 우익의 이합집산과 모략을 드라마틱하게 묘사
이 책은 강단 사학의 따분한 이론적 분석이 아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전후한 시기 일본 내 다양한 세력과 정파, 파벌들 간의 이합집산과 암투, 모략과 경쟁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원로와 귀족, 중신들의 막후 정치, 여야 정당들 간의 권력투쟁, 정치인과 재벌의 결탁, 정치세력과 군부세력의 견제와 힘겨루기, 우익세력과 군부의 결탁 뿐만 아니라, 구 재벌과 신흥 재벌 간의 경쟁, 우익세력 내부의 경쟁과 분화, 군부 내 황도파와 통제파의 대결, 관동군의 폭주와 군 수뇌부의 기괴한 협조, 육군과 해군의 반목과 경쟁, 혁신세력과 노농운동의 부침, 분열 등을 보여준다. 각 세력 내에서의 다양한 파벌과 암투가 상세히 묘사되고 있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막장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경제구조, 문화예술 분야에 관한 세밀한 분석과 논평
이 책은 각 시대별, 단계별, 지역별 경제구조에 관한 세밀한 분석과 통계 자료를 담고 있다. 세계적 공황과 통화, 금융 등의 거시경제 분석부터 중화학공업, 군수공업, 면방직 등 산업구조의 변화와 조선과 일본 서민들의 생필품 가격에 대한 묘사까지 총망라한다. 또한 국제적 환경의 변화가 각 지역의 사회변화와 서민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인 자료로 제시한다.
문화와 예술, 일상에 대한 천착은 가히 선구적이라고 할 만 한다.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 엘리트들의 사상적 동향은 물론이고, 문학작품과 연극, 예술과 교육, 과학계의 변화까지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일제의 규제와 군국주의의 폭압이 강도를 더해갈수록 진보적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이 어떻게 저항했고 탄압당하고 투항하고 전향했는지, 또 그런 가운데 명멸해 간 수많은 테제와 선언, 명저와 걸작들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도 감회가 새로울 수 있다. 단순한 ‘전쟁사’가 아니라 일본과 조선, 중국 등 동아시아의 시대상과 문화, 예술 분야에 관한 통사적 성격의 ‘문화사’로서 손색이 없다.
유럽과 아시아의 파시즘과 제국주의, 해방운동
이 책은 비단 ‘태평양’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태평양전쟁사”는 신해혁명 이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거쳐 국공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에 걸친 일제의 중국침략과 지배, 혁명과 전쟁의 역사를 끈질기고 치밀하게 분석한다. 게다가 태평양전쟁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진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 파시즘 대 반파시즘 전쟁의 하나였음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미국과 유럽,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전쟁, 해방운동을 폭넓고 깊이 있게 다룬다.
특히 이번 《태평양전쟁사 1》은 일제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유럽에서는 나치와 파시즘 세력이 점차 침략노선을 노골적으로 전개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 등 책임 있는 서방 국가들이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가해국 일본에 대한 내재적 비판에 그치지 않고, 승전국과 연합국들의 탐욕적이며 제국주의적인 속성과 오만이 어떻게 세계적 차원의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유발하는 데 기여하고, 또 전후 질서의 계속된 왜곡을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비판한다. 중국과 유럽의 현대사 속에서 태평양전쟁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공허한 반성
일본의 침략주의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조선과 만주, 타이완 등 식민지 지배에 반대하고 식민지인들의 비참한 현실과 고통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공감하고 연민의 시선을 드러냈다. 일제의 수탈과 식민지배에 따른 조선의 농촌과 민중들의 고통을 상세히 서술하고, 3·1운동 등 독립운동을 반제국주의 운동의 동류로 인정하기도 했다. 만보산사건 역시 만주 지역에서 조선 농민들이 ‘일제의 앞잡이’로 간주되었던 점을 지적했고, 중일전쟁 이후 총동원법 시행에 따라 만주와 조선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고 조선인 노동자들을 ‘노예와 같이 강제동원’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밖에도 일본의 공황 등 경제적 위기를 탈피하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조선에 대한 지배와 수탈을 강화했다는 것을 치밀하게 입증하고 있다. 흥남의 조선질소비료, 수품댐, 부전강댐, 장진강댐 등을 건설해 막대한 부를 쌓은 일본 신흥재벌들의 성장배경에 관해서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 자체를 철저히 반성하고 그에 따른 실천과 행동에 나선 지식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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