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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露梁)의 바다 : 이순신 장군과 마지막 전투를 치른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삶! : 이병초 역사소설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이병초, 1963-
서명 / 저자사항
노량(露梁)의 바다 : 이순신 장군과 마지막 전투를 치른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삶! : 이병초 역사소설 / 이병초
발행사항
서울 :   작가,   2022  
형태사항
222 p. : 천연색삽화, 초상화 ; 22 cm
ISBN
9791190566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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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 ▼a 이병초, ▼d 1963- ▼0 AUTH(211009)14430
245 1 0 ▼a 노량(露梁)의 바다 : ▼b 이순신 장군과 마지막 전투를 치른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삶! : ▼b 이병초 역사소설 / ▼d 이병초
246 3 ▼a 노량의 바다
260 ▼a 서울 : ▼b 작가, ▼c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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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 ▼a 一部 韓漢對譯
945 ▼a ITMT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97.36 이병초 노 등록번호 511056454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마지막 전투를 치른 청년 장수 이영남,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량의 바다>는 노량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축으로 잡고 사건의 앞과 뒤를 촘촘히 짚어갔다. 소설 속에는 이영남의 고향인 전주의 풍광이 유려하게 펼쳐지고 그가 무예를 닦았던 모악산도 정답게 다가온다.

반면에 전주 사람들에게 피바람으로 들이닥쳤던 기축옥사가 가슴 아프게 형상화되어 있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한양에 압송된 정여립을 보고 사람답게 다가섰던, 전주부 구이면 출신인 통천김씨 김빙의 모습도 절절하다. 총알과 화살이 빗발치는 최전선에서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산화했던 병사들의 대부분이 백성의 아들이었다는 점도 소설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순신 장군과 마지막 전투를 함께 치른
의기, 열혈의 청년 장군 이영남을 만나다!

노량해전을 통해 살펴보는
전의인 이영남 장군의 불꽃같은 28년


“장군, 출정해 주시옵소서. 경상우수영의 바다를 지켜주시옵소서!”
4월 18일에 한양에서 출발하여 23일에 경상우수영에 도착한 이영남. 원균이 육지에서 싸우겠다고 하면서 함선과 무기를 수장(水葬)시킨 뒤 육지로 도망치려고 했을 때 이를 만류하고 이순신과 협력하여 같이 바다에서 싸우자고 역설한 이영남. 그리고는 24일에 이순신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 본문 38쪽

유튜브가 책을 집어삼켰다는 말이 일반화된 시절에 시인 이병초(웅지세무대 교수)가 역사소설 『노량의 바다』를 펴냈다. 그는 전주 예수병원에 지인을 문병하러 갔다가 그 옆에 있는 선충사(宣忠祠)를 우연히 찾게 되었는데 거기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을 만났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마지막 전투를 치른 청년 장수 이영남(李英男, 1571-1598),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교롭게도 당시 흔한 이름이 영남(英男)이었기 때문에 임진왜란 7년 동안 이영남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여러 명이다. 『난중일기』에 이영남으로 추정되는 이름과 관직이 60회 이상 나타났어도 그가 어떤 집안의 이영남인지 명확하게 가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은 한 사람의 성씨(姓氏)를 찾는 것에 몰두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이라는 불행 속에서 전사했거나 전쟁에 참여했다는 점만으로도 동명(同名)의 이영남들은 충신이기 때문이다. 이병초는 글머리에서 “이영남에 대한 내 관심은 유생의 글줄에 있었다. 그가 순절한 지 무려 200년이 넘는 순조 6년(1806)에 송상열 등 전라도 유생 75명이 조정에 상언(上言)한 지점, 초야에 머물지언정 조선 역사의 생명체로 움직이고자 했던 선비들이 이영남의 불꽃 같았던 28년의 삶이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붓끝을 벼린 지점”에서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500여 년 전의 일인 데다 이영남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당시 경상우수사 원균이 판옥선들을 자침(自沈)시킨 뒤 육지로 도망치려고 했을 때 이영남이 이에 항의했고 이순신 장군께 청병(請兵)했으며 그 후 여러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연승하는 데 공을 세웠다는 사실이 내 눈길을 끈 것도 아니었다.
그가 순절한 지 무려 200년이 넘는 때인 순조 6년(1806), 송상열(宋相說) 등 전라도 유생(儒生) 75명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전의이씨 이영남의 증직(贈職)과 정려를 청하기 위해 상언(上言)한 내용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초야에 머물지언정 조선 역사의 생명체로 움직이고자 했던 유생들이 이영남의 불꽃 같았던 28년의 삶이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붓끝을 벼린 지점, 여기에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 「책머리에」 중에서 본문 11-12쪽

『노량의 바다』는 ‘노량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축으로 잡고 사건의 앞과 뒤를 촘촘히 짚어갔다. 소설 속에는 이영남의 고향인 전주의 풍광이 유려하게 펼쳐지고 그가 무예를 닦았던 모악산도 정답게 다가온다. 반면에 전주 사람들에게 피바람으로 들이닥쳤던 기축옥사(己丑獄事)가 가슴 아프게 형상화되어 있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한양에 압송된 정여립을 보고 사람답게 다가섰던, 전주부 구이면 출신인 통천김씨 김빙(金憑)의 모습도 절절하다. 총알과 화살이 빗발치는 최전선에서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산화(散華)했던 병사들의 대부분이 백성의 아들이었다는 점도 소설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잘난 적도 없고 잘나지도 않은 백성의 삶을 정답게 설명해주리라. 양반이나 상민 따위, 지배층이나 피지배층 이따위가 없는 세상,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세상, 붓쟁이도 땜쟁이도 농사꾼도 선비도 장사꾼도 벼슬아치도 너나들이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두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하는 것임을 가르치리라. 이것이 정치사 그리고 전쟁사의 요약에 불과한 역사를 넘어서는 진짜 살아 있는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조선 역사의 주체는 만백성이었음을, 생지옥 같은 최전선에서 최악의 상황을 견뎌낸, 전투 병력의 핵심 또한 백성의 아들이었다는 점도 명백하게 가르칠 것이었다.
- 본문 155-156쪽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던 이영남,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함선에서 그와 맞짱 떴던 이영남은 열혈남아였다. 찬란한 불꽃이었다. 공중에 튀어 올라서 일격에 적을 베고 찌르는 검법은 피의 굶주림 너머에서 반짝이는 황홀경이었다. 아니다, 그의 칼춤은 백성의 원혼을 모시는 피의 제문(祭文)이었다. 잘못된 욕망을 가진 자들이 써 내려간 거짓의 역사를 깡그리 베어버리고 싶은 저주의 춤사위였다. 전쟁이 끝나면 칼에 묻은 피 냄새를 바닷물로 씻어내고 전주로 돌아가서 농사짓고 싶던 사나이. 이영남은 사람다운 세상을 그리워했다.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가 존중받는 세상, 붓을 매는 사람도 땜쟁이도 농사꾼도 선비도 장사꾼도 벼슬아치도 평등하게- 너나들이로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소설은 전의이씨(全義李氏) 이영남이 용장(勇將)이었음을 드러냄과 아울러 지식인 이영남의 치열한 내면, 자연인(自然人) 이영남의 인간적 면모에 가깝게 다가간 것이다.

소설가 김병용은 “오백여 년 가까이 책갈피 안에 갇혀 있던 청년 이영남을, 책 밖으로 역사 바깥으로 이끌어낸 소설이다. 과거와 현재는 이렇게 한 시인의 붓끝에서 만난다. 거기, 이순신 장군과 함께했던 우리 청년들이 있다. 거친 바다, 더 거칠게 휘몰아치는 외세의 침탈 앞에 젊은 조상들은 生을 던져 우리의 바다를 지켰다.”면서 앞으로 남해를 볼 때마다 이영남, 이순신과 함께했던 수만의 이름들이 떠오를 거라고 평했다.

이병초는 소설의 맨 끝에 이영남 외전(外傳)을 붙여놓고 “이 글은 유생들의 상언(上言)이 사실과 다름이 없음을 밝혔다기보다는 역사에 묻힐 수 있는 일을 찾아내어 그 뜻을 넓힌 조선의 선비정신을 받들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라고 적었다. 외전은 전의이씨(全義李氏) 이영남 장군으로 시야를 좁혀 류성룡의 『징비록』에 기록된 내용 일부와 숙종 조에 우의정을 지낸 만암 이상진의 ‘묘표’ 및 순종 조에 올린 전라도 유생의 ‘도유상언’과 그것에 관계된 『일성록』, 『승정원일기』 등에 적힌 기록이며 『이충무공전서』에 언급된 일부 기록, 전라관찰사의 첩보 등을 외전(外傳)으로 삼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너나들이 세상을 이루어 평등하게 살고 싶던 조선의 사나이 이영남 장군을 통해 『노량의 바다』가 조선 역사의 숨소리를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뜨겁게 다가가길 희망한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이병초(지은이)

전주 출생. 1998년 문예계간지 《시안》에 연작시 「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었고, 시집으로 『밤비』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 등이 있다. 그의 시세계는 근대화에 소외된 고향과 거기에 살았던 분들의 이력을 자양분 삼았는데 토속적 이미지를 현재로 재생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시에 표면화된 전북의 입말은 날것의 미학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이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책머리에 ㆍ 11

01 출정出征 ㆍ 17

02 전의이씨全義李氏 이영남 ㆍ 46

03 적선賊船에 배를 붙여라! ㆍ 69

04 새벽어둠이 걷히다 ㆍ 80

05 아침노을의 기억 ㆍ 108

06 능금빛 노을이 물들 때ㆍ 117

07 이영남, 그가 꿈꾸었던 세상ㆍ 129

0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ㆍ 157

09 길을 터다오, 바다여 ㆍ 170

10 전주의 아침 ㆍ 178

11 이영남 외전外傳 ㆍ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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