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상세정보

상세정보

어머니의 길 : 원용우 시조집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원용우, 元勇寓, 1938-
서명 / 저자사항
어머니의 길 : 원용우 시조집 / 원용우
발행사항
고양 :   새미 :   국학자료원 새미,   2023  
형태사항
137 p. ; 23 cm
ISBN
9791167971432
000 00000cam c2200205 c 4500
001 000046170436
005 20240624141616
007 ta
008 240213s2023 ggk 000cw kor
020 ▼a 9791167971432 ▼g 03810
035 ▼a (KERIS)BIB000016920802
040 ▼a 011001 ▼c 011001 ▼d 211009
082 0 4 ▼a 895.714 ▼2 23
085 ▼a 897.1066 ▼2 DDCK
090 ▼a 897.1066 ▼b 원용우 어
100 1 ▼a 원용우, ▼g 元勇寓, ▼d 1938- ▼0 AUTH(211009)97762
245 1 0 ▼a 어머니의 길 : ▼b 원용우 시조집 / ▼d 원용우
260 ▼a 고양 : ▼b 새미 : ▼b 국학자료원 새미, ▼c 2023
300 ▼a 137 p. ; ▼c 23 cm
945 ▼a ITMT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97.1066 원용우 어 등록번호 111892716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원용우에게 시조는 끝도 보이지 않는 구도의 길이고 종교다. 인생의 반 이상을 시조 연구와 후학양성과 시조 쓰기라는 거친 산맥을 수없이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

원용우 선생에게 시조는 끝도 보이지 않는 구도의 길이고 종교다. 인생의 반 이상을 시조 연구와 후학양성과 시조 쓰기라는 거친 산맥을 수없이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 시조는 문학의 다른 장르에 비해 덜 일반적이고, 시조 작가나 독자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럼에도 오직 시조만 바라보며 외길로 걸어 온 그의 끈기와 집념, 성실과 애정이 시조의 대가(大家)를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결국 흔들림 없이 걸어온 이 길 위에 〈여강 문학관〉 설립이라는 감격의 눈물을 이뤄냈다. 〈여강 문학관〉은 경동대학교 강원도 원주 문막 메디컬 캠퍼스에 세워졌다. 학생들의 인성 함양과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데, 이만한 선생이 없다고 판단한 학교는 그의 호(號)를 따서 지난 2022년 3월 4일에 〈여강 문학관〉을 개관하였다. 시조집 10권과 수필집 9권 그리고 1만여 권의 장서와 46점의 도자기, 족자, 액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원용우 선생은 고향 땅 원주 이곳에 일생의 작업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된 것을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요, 보람이라며 한껏 도포 자락을 휘날린다.

나의 인생살이는 내가 선택한 것이다. 나의 문학도 역시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나는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의 소년 시절 <학원>이라는 잡지가 대유행이었다. 그것을 읽으면 가슴이 설레고 희망이 보이고 살맛 나는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워 그 책을 사서 읽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매달 발간되는 그 책을 동네 부잣집에서 빌려다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책은 읽기 쉽고 재미있고 유익해서 내 영혼을 빨아들였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밤을 새워 읽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는 이야기책이 돌아다녔다. 지금은 그것이 고전소설이라 알고 있지만 당시는 소설인 줄도 몰랐고 더구나 문학책이란 사실 자체를 몰랐다. 대개 필사본으로 되어 있었고, 띄어쓰기가 되지 않은 줄글 형식이다.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홍길동전', '임경업전' 등유(等類)의 책이다. 이런 책들을 빌려다 읽는 것이 나의 취미다. 한번 손에 잡으면 밤새워서 읽는다. 식사할 때는 왼손으로는 책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밥을 먹으면서 읽는다. 등잔불 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는다. “누가 당신 취미가 무엇이오”라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거리가 없으니까, “독서가 내 취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1950년 6.25사변이 터지고, 1·4후퇴 때는 피란 생활을 하였다. 학교는 무기 휴업 상태이다. 고향으로 돌아오니, 온 동네가 불타서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이듬해 봄이 돌아오니 새로 집 짓느라고 야단이다. 그 겨를에 어찌 학교에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서당으로 모여들었다. 그 큰 사랑방이 학동(學童)들로 가득 찬다. 천자문 읽는 소리에 온 마을이 떠나가는 것 같았다. 학습 방법 자체가 속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를 내면서 읽는 것이다. 아침에 서당에 가면 누구든지 선생님 앞에서 전날 배운 것을 외워야 한다. 만약에 외우지 못하면 바지를 걷어 올리고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 그러니 외우는 연습을 안 할 수가 없다. 진도는 조금 나가고 온종일 그날 배운 곳을 외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당 공부는 무조건 암기하는 방식이다. 암기를 못 하는 사람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소리 내어 읽다가 지치게 되면 먹을 갈아서 붓글씨 쓰는 연습을 한다. 이번에는 한자를 직접 써보면서 익히는 것이다. 한자를 완전히 익히려면 눈으로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써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문 공부는 소리 내어 외우고 반복해서 써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 전해부터 서동들이 서당을 그만두고 학교로 나가기 시작했다. 서당의 학생 수가 절반 이상 줄어드니 현상 유지가 안 되는 것이다. 덕분에 나도 중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우는 학생이 되었다. 새로운 희망과 꿈을 먹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 중에는 이해만 하면 되는 이해 과목이 있었고, 암기해서 완전히 소화해야 하는 암기과목도 있었다. 암기과목은 서당에서 훈련받은 대로
하니, 우등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암기과목은 무조건 외워버리니 시험 성적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한문과 밀접한 과목이 국어이다. 우리 국어 단어는 70%가량이 한자어에서 온 것이다. 그러니 국어 과목 성적이 좋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래서 대학의 국문학과를 선택한 것이다. 국문학과에서 제일 많이 접하고 배우게 되는 과목이 문학 분야이다. 전공도, 국어학 전공, 현대문학 전공, 고전문학 전공으로 나눈다. 교과목에도 국문학 개론, 국문학사, 시조론, 가사론, 향가론, 수필론, 현대소설론, 고소설론 등의 명칭이 붙으니 밥 먹고 하는 공부가 문학 공부이다. 그러니 나의 인생, 나의 문학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문학은 나의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서로 떨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월하 리태극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전공 지도교수로 정병욱 선생님의 논문지도를 받았다. 리태극 선생님은 시간 강사로 나오셨는데, 시조론과 가사론을 강의하셨다. 대학의 강의를 들으면서 심오한 학문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대학을 졸업 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진명여고에 입사하게 되었다. 여기서 만난 분이 국어 교사 이우종 선생이시다. 다시 말하면 시조시인 이우종 선배님을 만난 것이다. 선배님은 만날 때마다 나에게 시조 쓰라고 권장하셨다. 국어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시와 시조를 접했는데, 이제는 시조를 쓰고 등단의 절차를 밟으라는 것이다. 그 해가 1970년이다. 이해에 다시 시조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전생의 인연인가 후생의 만남인가. 그래서 시조 창작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시조 창작 연습을 하게 되었고, 1975년 8월에는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문학에는 이론면이 있고 창작면이 있다. 대학에서는 주로 이론면에 치우쳐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문단 등단의 통과의례를 거쳤으니 이제는 시조 쓰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씨얼문학회라는 동인단체에 참여하게 되었고, 수련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 단체의 고문은 리태극 선생님이시고 회장은 김광수 시인이 맡아서 수고 하셨다. 주로 하는 행사가 작품 품평회, 시조 낭송회, 동인지 발간, 문학기행, 문단의 어른들에게 세배 다니기 등이다. 그리고 곁들여서 시조집 발간하는 작업을 한다. 1985년에 첫 시조집 ?여름 일기?를 발간하였고, 2020년에 아홉 번째로 시조집 ?맛있는 시조를?를 발간하였다. 그러면서 시조의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곳을 그려야 참 시조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외도 시조는 ①부드러워야 한다. ② 자연스러워야 한다. ③ 멋과 맛이 있어야 한다. ④ 운율이 있어야 한다. ⑤ 독자에게 공감을 줘야 한다. ⑥퇴고를 잘해야 한다는 점 등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광진문화원에 ‘시와 시조반’을 개설하여 후진 교육을 하고, 시조 보급 운동을 하고, 시조가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전도사 노릇을 한 것이다.
이처럼 시조 공부에 열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나의 짝 시조가 언제 발생했는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선배 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시조가 어디서 왔느냐를 따졌지만, 전부 각양각색이고 통일된 견해가 나오지 않았다. 그 기원설을 보면 ① 한시기원설, ② 佛歌기원설, ③神歌기원설, ④ 별곡기원설, ⑤ 향가기원설, ⑥ 속요기원설, ⑦ 민요기원설, ⑧ 음악기원설 등이 있는데, 시조의 조상이 이처럼 많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김수업 교수는 “시조의 발생 시기와 기원을 따지면서 흔히 그보다 먼저 있었던 어떤 갈래에서 그와 비슷한 점을 찾아 그것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 태도에는 은연중에 어떤 문학의 갈래는 반드시 그 앞의 어떤 문학 갈래의 바통을 받아서야 생겨난다고 하는 전제를 진리로 믿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의 문학 갈래가 사라지면서 반드시 그와 비슷한 다른 갈래를 생겨나게 해놓고야 마는 것이 아니다.” 김수업 교수의 논설을 인용했는데, 기원설이나 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통쾌하게 한주먹 날린 것이다. 이래도 시조가 어디서 왔다는 기원설을 고집할 것인가?
시조는 어디서 온 것이 아니고 어떤 집단이 창안해낸 것이다. 시조는 고려 말에 발생했는데, 그때 시조를 짓고 부른 사람들의 면면을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우탁, 이조년, 이존오, 정몽주, 이색, 성여완, 원천석, 길재, 정도전 등이 불렀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신흥사대부요 성리학자들이다. 그래서 3장 6구 12소절의 시조 형식은 성리학자들 중에서 만든 것이다. 그중에서도 연대나 연치가 제일 높은 사람이 창안한 것이다. 바로 그분이 역동 우탁이다. 역동 우탁은 성리학을 연구해서 후진들에게 가르친 스승이 되는 사람이다. 역동 우탁은 주역에 달통한 사람이다. 시조 형식은 그 성리학의 원리를 적용해서 우탁이 만들었다. 따라서 고시조의 효시 작품은 역동 우탁의 〈탄로가〉이다. 그래서 본인은 앞의 기원설에 〈역학기원설〉을 추가해 둔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원용우(지은이)

월간문학 시조 신인상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했다.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문인협회 경기 도지회 부지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 국제펜 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시조학회 회장, 청람어문교 육학회 회장, 여주문인협회 광진문인협회 회장을 역 임했다. 황산시조문학상, 월하시조문학상, 일붕문학 상, 경기문학상 시부문 대상, 경기예술 대상, 여주군 문화상, 역동시조문학상 대상, 한국작가상 본상, 한 국문학상, 한국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시조집을 내면서 5

제1부

봄소식 11 | 삼복염천에 12 | 추분날에 13 | 신축년(辛丑年) 새해 아침 14 | 달님은 15 | 책과 씨름하며 16 | 어머님의 어느 하루 17 | 인생 열차 18 | 겨울비 19 | 골목에서 20 | 세월 앞에서 21 | 희망 노래 22 | 마른 잎 23 | 건강 24 | 어머니의 길 25 | 기도의 효험(效驗) 26 | 고향 옛집 27 | 그리움 28 | 유년의 겨울 29 | 강물 30 | 광화문 31 | 손녀 32 | 타는 가뭄 33

제2부

인생 36 | 대한 절(大寒節)에 37 | 제야(除夜)에 38 | 삶이란 39 | 좋은 일 40 | 옥수수 41 | 터널에서 42 | 간원(懇願) 43 | 여강 후손 44 | 숲의 울림 45 | 자화상(自畵像) 46 | 탄생(誕生) 47 | 유소년기를 돌아보며 48 | 새로운 길 49 | 수박 50 | 형제 51 | 인연 52 | 갈등 53 | 새해를 맞으며 54 | 까치집 55 | 사육신 56 | 학문의 길 57 | 지하철 58 | 새싹 59
제3부

악양정에서 62 | 운곡 선생의 발자취 63 | 관란 원호 선생의 길 64 | 일두 정여창 선생 65 | 함양의 남계서원 66 | 고려의 이집(李集) 선생 67 | 생육신 김시습 찬가 68 | 충숙공(忠肅公) 원충갑(元沖甲) 장군 69 | 충효사(忠孝祠) 70 | 대로사(大老祠) 71 | 명성황후 생가 72 | 경천묘(敬天廟) 73 | 충혼탑 74 | 관란정에서 75 | 복천(福川) 서희(徐熙) 선생 76 | 고성의 월이 77 | 온달 사랑 78 | 행주산성에서 79 | 역동 우탁(禹倬) 선생 80 | 고창 고인돌 유적지 81

제4부

휴전선 유감 84 | 한탄강에서 85 | 여주 찬가 86 | 그때 그 시절 87 | 제2 땅굴 88 | 평화의 종 89 | 파로호(破虜湖) 90 | 육이오의 기억 91 | 여강 92 | 등산 93 | 종친회 94 | 이상한 열차 95 병자호란(丙子胡亂) 96 | 창밖을 보면서 97 | 맨발 운동 98 | 생육신 99 | 늘그막 길 100 | 고해(苦海) 101 | 가는 곳 102 | 한가위 날에 103
제5부

원생몽유록 107 | 신륵사에서 108 | 설악을 만나고서 109 | 석굴암(石窟庵) 소묘(素描) 110 | 남명(南冥) 조식(曹植) 선생 111 | 계룡산 예찬 112 | 소백산 소묘 113 | 도산서원(陶山書院) 114 | 통도사에서 115 | 치악산을 바라보면서 116 | 몰운대에서 117 | 전란의 체험 118 | 낙산사 유감 119 | 돌장승 앞에서 120 | 난지도에서 121 | 모기 122 | 만월대(滿月臺) 123

해설 및 특별기고

◆ 해설 시조의 큰 스승, 여강 원용우 선생 126
◆ 특별기고 전생의 인연인가 132

관련분야 신착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