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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본)韓日通史 (42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정재정 , 1951-
서명 / 저자사항
(교토에서 본)韓日通史 / 정재정 지음.
발행사항
파주 :   효형 ,   2007.  
형태사항
379 p. : 삽도 ; 22 cm.
ISBN
9788958720546
서지주기
참고문헌 (p. 371-372), 색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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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11455160 (1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11455161 (1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11579491 (7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4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21163395 (5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5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21163396 (6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11455160 (1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11455161 (1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11579491 (7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21163395 (5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2 2007g4 등록번호 121163396 (6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매년 많은 한국인들이 교토에 방문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름난 절이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역사기행’을 인솔해 온 정재정 씨는 그러한 실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가 역사의 현장 교토를 중심으로 두 나라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지은이는 1592년 3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20만 대군을 출병시킨 곳이 바로 교토라고 이야기한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근대화 혁명 메이지 유신이 진행됐던 20년간, 쇼군(將軍)과 덴노(天皇)의 지지자들이 서로 죽고 죽였던 도시의 뒷골목이었으며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그 수로 부하장수의 전공을 가늠했고, 뒤를 이은 도쿠가와 바쿠후의 쇼군들이 만들어놓은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무덤이 있는 곳 등 역사의 눈으로 한일관계 속의 교토를 바라보고 있다.

왜 교토인가?
1592년 3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20만 대군을 끌어모았다. 침략군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근대화 혁명 메이지 유신이 진행됐던 20년간, 쇼군(將軍)과 덴노(天皇)의 지지자들이 서로 죽고 죽였던 도시의 뒷골목은 또 어디일까? 답은 모두 교토(京都)다.
교토는 흔히 천년고도(千年古都)라고 불린다. 794년 간무덴노가 수도를 정한 뒤 메이지덴노가 1869년에 도쿄로 옮겨갈 때까지 1000년 넘게 수도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존재했다. 그래서 교토는 한국과 일본이 역사·문화·경제 등 여러 면에서 가까운 관계를 맺어온 이웃나라라는 사실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도시다.
교토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한 해 수십만 명에 달하지만, 몇몇 이름난 절이나 관광지를 찾아가 둘러볼 뿐, 정작 온 도시에 가득한 한일관계의 현장을 찾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사실, 교토를 방문하면 반드시 들러보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역시 백제계 도래인(渡來人)이 지은 절로서 한국과 일본의 오랜 관계사를 증언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다.

16세기 최악의 국제약탈전쟁 : 임진왜란
역사란 기억의 묶음이다. 과거의 사실보다 그 기억으로서 존재한다. 1592년부터 7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하나의 전쟁을 한국은 ‘임진왜란’, 일본은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중국은 ‘원조선(援朝鮮, 조선을 구해주었다는 뜻)’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기억되는가에 따라 이름마저 달라지는 역사인식은 오늘날 역사분쟁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예는 역설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뗄 수 없는 역사적 공동체 운명으로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14만 명의 조선인이 끌려간 노예사냥전쟁이자, 조선의 책·그림·도자기 등 문화예술품은 물론 가축과 나무까지 가져간 국제약탈전쟁이었다. 일본은 조선에서 빼앗은 인적?물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근세문화를 발전시킨 반면, 조선은 그 손실을 치유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아야만 했다. 어쩌면 이후의 역사에서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운명을 걷게 된 것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전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오늘날 교토의 도시경관을 만든 사람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정권을 잡자, 강력한 권력을 휘둘러 자신의 화려한 거처를 만들고, 성벽을 쌓고, 곳곳에 산재하던 사원을
한 데 옮기는 등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끊임없이 벌였다. 급히 공사하느라 멀쩡한 건물의 담벼락과 지붕을 뜯어다 썼다니! 잘 닦인 길로 구획된 계획도시이자 ‘꽃비단’ 같다고 찬양되던 우아한 고도(古都) 교토를 단 6년 동안 완전히 지워버린 셈이다. 그 기간은 히데요시가 최고권력자인 쇼군으로 교토에 군림했던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렇듯 철저히 난폭한 방식으로 교토를 개조한 것만 봐도 당시 무장들의 일처리가 어떠했나 잘 알 수 있다. 히데요시는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그 수로 부하장수의 전공을 가늠했고, 뒤를 이은 도쿠가와 바쿠후의 쇼군들은 그때 벤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무덤〔耳塚〕을 참배하도록 통신사를 압박했다. 조선침략이 시작된 곳도 무고한 민중의 잘린 귀가 묻힌 곳도 모두 교토다.

한국과 일본, 운명의 갈림길 : 메이지 유신
바쿠후를 무너뜨리고 덴노에게 정권을 돌려주려는 정치혁명, 메이지 유신이 전개된 1850년대 중반부터 1870년대 중반까지 혁명의 현장, 교토에서는 보수와 개혁, 폭력과 탄압, 배반과 타협, 혁명과 전쟁의 드라마가 숨 가쁘게 전개되었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 유신지사 아무개가 은거했던 곳, 아무개가 죽은 곳 등을 알리는 표석을 발견할 수 있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고 덴노가 권력을 되찾아 황도(皇都)의 자존심을 세웠지만, 메이지덴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쿄로 천도하면서 교토는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비록 정치의 중심지는 도쿄에 양보했지만, 역사와 문화, 그리고 경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벌이며 다시 한번 활기찬 대도시를 건설했다. 특히 산을 뚫어 터널을 내고 바로 오사카 등 항구와 연결되는 교역로를 개척한 비와코 소수(疏水)공사로 오늘날 오랜 역사에 기반한 거대한 관광산업을 일궈냈다.
메이지 유신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근대화운동이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해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 서구 열강과 함께 제국주의의 길을 갔다. 반면 조선은 그런 일본의 확장정책에 희생되어 국권을 빼앗겼으니 우리에게도 메이지 유신은 의미심장한 역사의 분수령이다.

정재정 교수와 함께 가는 한일통사기행
저자는 1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역사기행’을 인솔해오고 있다. 또한 광화문에서 주한 일본인에게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일본어로 강의한다. 한국사람이 일본인들을 이끌고 일본을 여행하는 일이 일견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생생히 역사를 되짚어보는 만큼 더욱 열린 마음으로 두 나라의 역사를 대하게 된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여행객은 한 해에 각각 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그저 여행안내서에 실린 대로 외국의 거리를 걷는 게 아니라 현장을 방문하여 두 나라의 관계를 기억한다면, 역사 대화는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정재정(지은이)

한국근대사, 한일관계사, 역사교육 전문가, 문학박사. 서울대학교와 도쿄대학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서울시립대학교 인문대학장·대학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광주과학기술원 초빙석학교수 등을 역임했다. 한일 정부가 지원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간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운영자문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 서울역사박물관 운영자문위원장, 서울특별시 역사자문관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서울학연구소 평양학연구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일제침략과 한국철도(1892~1945)』, 『한국의 논리-전환기의 역사교육과 일본인식』, 『일본의 논리-전환기의 역사교육과 한국인식』, 『서울과 교토의 1만 년』, 『한일교류의 역사』, 『서울 역사 2000년』, 『주제와 쟁점으로 읽는 20세기 한일관계사』, 『한일의 역사갈등과 역사대화』, 『한일회담, 한일협정, 그 후의 한일관계』, 『철도와 근대 서울』, 『일제의 조선교통망 지배』가 있다. 주요 번역서로 『식민지통치의 허상과 실상』, 『한국병합사의 연구』, 『러일전쟁의 세기』, 『일본의 문화내셔널리즘』,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책을 내면서 = 5
창신의 역사, 교토 2000년 = 16
 옛스러우면서도 새로운 교토 = 18
  역사가 만든 교토
  교토의 자연환경과 문명의 탄생
  헤이안쿄의 건설
  중세의 교토, 무사의 칼날에 휘둘리다
  문화ㆍ종교ㆍ경제의 중심, 근세 교토
  법고창신의 지혜로 근대를 열다
도래인과 한반도의 영향, 교토의 문명 = 34
 누가 교토를 개척했는가? = 36
  도래인의 물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신비로운 미소
  기요미즈데라와 백제계 도래인
  도래인이 만든 교토의 신앙세계
  백제와 덴노의 인연
 일본의 지성이 흠모한 신라의 걸물(傑物) = 63
  무역제왕 장보고의 그림자
  일본에 미친 신라 불교의 영향
  고잔지의 의상ㆍ원효 대사 두루마리 그림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로맨스
무사의 세상, 교토의 변신 = 82
 무사의 등장과 바쿠후의 성립 = 84
  섭관정치와 장원공령제
  원정의 개시와 가마쿠라 바쿠후의 성립
 전국동란과 선종사원의 융성 = 88
  무사집단의 권력투쟁
  선종사원의 발달과 쇼코쿠지
  긴카쿠지와 난젠지
임진왜란과 교토의 조일 갈등 = 100
 풍운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 = 102
  오다 노부나가, 장작불 같은 권력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
  사치의 극치, 히데요시의 주라쿠다이
  주라쿠다이의 동상이몽
  도요토미 가문의 영욕을 지켜본 호코지
  히데요시의 마지막 거처, 후시미 성
  다이고지와 히데요시의 벚꽃놀이
  센 리큐를 죽인 히데요시의 열등심리
 교토에 떠도는 조선인의 원혼 = 129
  임진왜란의 발원지 교토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이총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노예
  일본에 유학의 씨를 뿌린 피로인 학자
  조선문화의 약탈과 활용
  울산의 동백나무까지 파간 가토 기요마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한 한일의 평가
교린교역과 교토의 활력 = 152
 지략과 간계가 뒤엉킨 임진왜란의 강화회담 = 154
  탁월한 외교가 송운대사
  송운대사와 가토 기요마사의 전진회담
  쓰시마번의 조일 강화공작
  송운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교토회견
  상호이해의 지름길, 한일관계사 기행
 갈등을 평화로 포장한 사절외교 = 169
  조선의 강화조건과 쓰시마번의 국서위조
  고육지책의 회답겸쇄환사
  임진왜란 전후처리의 교훈
  조일외교의 창구, 쓰시마와 이정암 윤번제
  정탐과 교린 사이를 오간 통신산
  통신사의 여정, 환대 속에 꽃핀 성신외교
  통신사 외교의 변질, 역지통신
  통신사, 관광상품으로 부활하다
 비단ㆍ인삼ㆍ은화의 교역과 교토의 번영 = 191
  동아시아에 꽃핀 사무역
  교토의 국제무역로, 다카세가와
  동아시아에 열린 무역 고속도로
  니시진의 비단과 염색 산업
  조선인삼 열풍과 일본 국산화
  동아시아 무역의 쇠퇴, 3국의 방향은?
  조일관계의 새 국면
메이지 유신과 교토의 재생 = 210
 유신의 활극, 무너지는 교토 = 212
  혁명의 코드로 교토를 다시 보자
  개항의 수교, 험악한 민심
  '금문의 변', 불타는 교토
  메이지 유신의 디자이너 사카모토 료마
  데라다야, 사쓰마 번 급진파 무사의 피살
  이케다야, 신센구미의 존왕양이 지사 살상
  니조조와 고쇼, 메이지 유신의 총본산
  근대 덴노제 국민국가의 확립
  교토의 야스쿠니 신사, 료젠묘역
 교토의 재생, 근대도시로의 변신 = 237
  교토의 위기, 도쿄 천도
  소수사업, 교토의 부활
  정도(定都) 1100년 기념 사업
  교토인의 긍지, 지다이마쓰리
  영화, 미야코오도리, 시다레자쿠라
  교토의 3대 문화권 - 니시진, 무로마치, 기온
  학문과 학생, 재생의 심장
한국강점, 교토의 충혼과 애련 = 262
 제국일본의 한국침략 = 264
  한반도의 국제정세
  제국일본의 대한제국 폐멸
  한국강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충혼과 애련을 증언하는 유적 = 274
  조선인의 메이지덴노릉 공사
  조선인의 메이지덴노 무덤 참배
  노기 마레스케의 신사, 충혼의 화신
  한국병합기념비, 일선동조의 역사인식
  무린안, 침략자의 별장
  조라쿠칸, 이토 히로부미와 순종황제의 자취
한국지배, 교토 한국인의 생활 = 300
 일본에 온 한국인, 그들의 삶 = 302
  재일 한국인의 증가 추세
  재일 한국인의 생활과 민족운동
  간토대진재와 한국인 학살
  일본의 한국인 관리와 전시동원
  재일 한국인의 귀환
 한국인 노동자의 생활과 저항 = 311
  니시진 염색업과 한국인 노동자
  비와코 소수공사, 한국인 노동자의 참여
  한국인 건설노동자와 민족운동
 한국인 유학생의 애환과 민족운동 = 319
  한국인의 일본유학과 교토
  한국인 유학생의 조직과 활동
  한국인 유학생과 교토의 대학
  윤동주, 한 점 부끄럼 없이 산 청년시인
  송몽규, 민족을 끌어안고 죽인 청년지사
  정지용, 민요의 가락을 신시로 살려낸 민족시인
상생공영, 한일연대의 교토 = 340
 제국일본의 붕괴와 민국일본의 전개 = 342
  연합군최고사령부의 일본점령정책
  한국전쟁과 미일안보동맹
  일본의 경제성정과 국교회복
  55년 체제의 동요와 사회운동의 확산
  일본사회의 보수화와 한일관계의 변화
 상생공생을 촉구하는 한일연대의 사적 = 354
  공산주의운동과 해방전사비
  한국인 유골이 안치된 만주지
  마이즈루 항의 우키시마 호 순난자 추도비
  한일연대로 지켜낸 우토로의 한국인 거주지
  한민족의 마음을 전하는 고려미술관
마치며 = 365
참고문헌 = 371
찾아보기 =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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