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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953.04 ▼b 2010z2 | |
| 100 | 1 | ▼a 이상각 ▼0 AUTH(211009)68056 |
| 245 | 1 0 | ▼a 고려사(高麗史) : ▼b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 / ▼d 이상각 지음. |
| 260 | ▼a 파주 : ▼b 들녘 , ▼c 2010. | |
| 300 | ▼a 538 p., 접지 [1]장 ; ▼c 25 cm. | |
| 504 | ▼a 참고문헌(p. 536-538) 색인수록 |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4 2010z2 | 등록번호 111586992 (2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4 2010z2 | 등록번호 111586993 (19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3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953.04 2010z2 | 등록번호 151291307 (5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4 2010z2 | 등록번호 111586992 (2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4 2010z2 | 등록번호 111586993 (19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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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953.04 2010z2 | 등록번호 151291307 (5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기존의 자료에 연구자들의 새로운 해석을 가미한 이상각의 <고려사>.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 고려사를 정사로 읽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려와 원 제국의 관계에 주목한다. 약소국 고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원 제국의 강대한 무력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오랜 항쟁과 타협, 조정 과정을 거쳐 백여 년 동안의 평화를 구가했다는 것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은 1장 '민족 통합의 새 아침을 열다-고려의 건국과 국가 체제의 정비', 2장 '불굴의 민족혼을 떨쳐 일으키다-요의 침공과 원교근공의 삼각 외교', 3장 '태평성대의 주춧돌을 심다-각종 제도의 확립과 선진 문물의 도입', 4장 '머나먼 평화의 길 -금의 압력과 무신정권의 출현', 5장 '세계제국의 동반자가 되다-몽고의 침공과 항쟁, 제국과의 밀월'로 구성되었다.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을 정사로 읽는다
고려는 건국 이후 삼한을 일통했다는 긍지를 바탕으로 제국 체제를 지향했다. 하지만 통일 이후에는 후당, 후진, 송, 요, 금 등 대륙의 실세들과 조공과 책봉 관계를 통해 사대자소(事大字小)라는 전통적인 외교 관례를 수용함으로써 중원 국가들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보장받았다. 고려는 또 중앙과 지방간에 유기적인 연대를 통해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수용함으로써 민족의 내부 통합을 일궈냈다. 정치적으로는 중앙의 외척과 문벌세력이 등장해 위세를 떨쳤지만 향리 등 지방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사대부 집단도 동시에 형성되어 균형을 맞추었다. 사회적으로는 국적과 종족을 가리지 않고 관리로 임용했던 개방성, 하층민의 활발한 이동에서 비롯된 역동성, 불교·유교·도교·풍수지리·도참사상 등 여러 사상을 공존시킨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다.(머리글에서)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국가 고려는 잦은 외세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고 끈질긴 항쟁을 통해 국체를 보존했던 열정과 자존의 제국이었다. 하지만 그 실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관련 사료가 드물거니와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은 후대의 기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사료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저간의 오류가 많이 시정되었다. 이상각의 『고려사』는 기존의 자료에 연구자들의 새로운 해석을 가미한 것으로 역동적인 고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다.
고려의 건국과 국가 체제의 정비
병산전투는 그동안 후백제에 밀리던 고려가 통일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은 계기가 되었다. 후백제군이 물러나자 태조는 김선필의 주선으로 서라벌에 가서 신라의 경순왕과 신하들을 위로했다. 그와 같은 왕건의 신라에 대한 배려는 왕족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고려에 적대적이었던 호족들까지 감동시켰다. 그리하여 궁예의 축출 이후 태조에 반기를 들었던 강릉의 김순식, 의성의 홍술, 포천의 성달 등이 고려에 귀순하고 울산과 주변 110여 성까지 항복해 왔다.(p.44)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신라가 점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신라의 영향력이 축소되자 각지에서는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고 마침내 고려, 후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후삼국 시대가 정립되었다. 당시 신라는 이미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후백제와 고려는 패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던 상황이었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시킴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삼한일통을 이뤘다. 이는 단순히 무력에만 의지한 결과가 아니었다. 왕건이 통합과 안정을 희구하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어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태조 왕건에 관련된 설화를 비롯하여 혼인정책, 사성정책 등 다양한 사실을 통해 고려를 건국한 왕건에 주목한다.
연합체적인 성격으로 시작한 고려의 초기 과제는 호족들을 통합하여 중앙집권체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광종대를 거쳐 성종대에 이르면서 고려의 정치체제는 비로소 안정되었다. 그리고 실리외교를 추구함으로써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은 가급적 피하였다.
성종이 고려의 체제 정비와 문화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동안 요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985년 요가 여진을 정벌하고 발해의 후신인 정안국까지 점령하자 북송은 사신 한국화를 고려에 보내 요를 양면에서 협공하자고 제안했다. 요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던 북송은 전쟁 중에 노획한 포로나 재화, 병기 등을 모두 고려에게 넘겨주겠다고 유혹했지만 성종은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출병하지 않았다.(p.107)
그 무렵 요와 고려는 뜨뜻미지근한 형식적 사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려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된 사실을 알게 된 요는 더 이상 침략 의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문종은 요가 강제 점유하고 있는 압록강 동쪽 영토를 되찾고자 했다.
당시 요에서는 흥종 사망 이후 도종 야율홍기(耶律洪基)가 즉위하면서 황실의 내분이 벌어져 문종의 요구에 즉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문종은 새로운 황제의 즉위축하사절단에 항의문을 함께 보내는 등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외교적 압박을 가했다. 1057년에는 중서성을 통해 궁구문 바깥에 있는 우정을 없애고 송령 동북지대에 토지 개간사업을 하는 자들과 이미 설치한 암자들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같은 문종의 강수는 요와 일전을 겨루어도 꿀릴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문화강국 북송에 대하여 문종은 매우 친밀하게 대했다. 요의 압력으로 인해 양국은 오래전 국교가 단절된 상태였지만 문종은 북송 상인들의 국내 출입을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선진문물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그 무렵 왕안석의 신법을 통해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북송에서는 매년 주조하는 동전과 철전이 600만 관을 넘었고 남양, 인도양, 아프리카 동해안의 등지에서도 사용되었다.(p.164∼165)
열정과 자존의 불꽃이 지다
요와 금이 등장하자 동아시아의 정세는 급변했다. 이에 고려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군사력을 강화했고 그들의 발전된 문화를 수용하는 등 민첩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갈등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려는 초기에 문벌귀족사회를 형성했고 권력에서 배제된 무신들은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넘쳐나는 무신들의 불만은 결국 무신정변으로 표출되었고 그 후 100여 년동안 무신집권체제가 유지되었다.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는 민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나 민중의 사회의식은 성장해 나갔다.
만적은 보잘것없는 벼슬아치였던 주인 최충헌이 정변을 통해 당대의 최고 권력자가 된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자신도 비록 천한 신분이지만 거사에 한번 성공하면 권좌에 오를 수 있다는 망상을 품게 되었다.
“정중부와 김보당 이래 고관 중에 천출이 한둘이 아니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가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p.272)
본래 고려는 사족과 서인을 구별하는 사서제(士庶制)와 양인과 천민을 구별하는 양천제(良賤制)를 두 축으로 유학자 중심의 귀족사회를 구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신정권시대와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평민과 노비의 신분 상승에 따라 사서제 기능이 상실되었고, 양천제도 원의 영향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돈의 노비개혁정책은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졌지만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제도의 벽과 수구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p.448)
원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한 고려는 과감한 개혁정치를 시도한다. 특히 공민왕대에 이르러 괄목할만한 개혁이 이루어졌고 더불어 사회체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정방의 폐지나 토지, 노비에 관한 개혁정책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고려의 역사는 이성계의 등장과 함께 종말을 고한다. 당시 이성계는 요동 정벌 당시 4불가론을 내세우며 정벌의 부당성을 설파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 여름에 군사를 일으킴은 옳지 않다.
셋째, 왜구들에게 빈틈을 보이게 된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에 입힌 아교가 풀어지고 전염병이 번질 우려가 있다.(p.478)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고 쿠데타는 성공한다.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조민수 등 군부 세력은 우왕을 폐위시키고 창왕을 보위에 올렸다. 개혁파의 독주에 제동을 건 이색, 정몽주 등은 고려의 국체를 보존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정몽주의 죽음과 함께 반 이성계파의 모든 저항은 끝났고 고려도 함께 멸망했다.
불굴의 민족혼을 떨쳐 일으키다
저자는 고려와 원 제국의 관계에 주목한다. 약소국 고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원 제국의 강대한 무력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오랜 항쟁과 타협, 조정 과정을 거쳐 백여 년 동안의 평화를 구가했다는 것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의 그늘 아래 안주하면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원 제국과 고려의 밀월 관계가 가지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릇 난세에 평화를 향유하려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희생을 침소봉대하여 더 큰 가치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받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민족은 동서냉전의 여파로 분단된 남과 북의 불화, 북쪽의 교조주의와 일방주의, 남쪽의 보수와 진보의 대결, 지역 간 갈등을 비롯한 각종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 고려인들이 보여주었던 민족 통합 정책과 자주 정신, 민활한 외교정책, 외적에 대한 끈질긴 투쟁의지 등은 우리들에게 최상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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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목차
머리글 제1장 민족 통합의 새 아침을 열다 - 고려의 건국과 국가 체제의 정비 제1대 태조 보육 설화 = 25 작제건과 용녀 설화 = 27 고승 도선 설화 = 28 고려 기원설화에 대한 이제현의 비판 = 30 개국 이전 = 31 후삼국 시대의 개막 = 32 왕건의 등장 = 34 궁예의 독주와 태봉의 멸망 = 35 개국과 통일 = 37 관제의 정비와 북방 정책 = 38 변화하는 국제정세 = 39 힘겨운 통일 전쟁 = 40 대야성 전투 = 41 공산 전투 = 42 병산 전투 = 43 임진 해전 = 44 운주 전투 = 45 후백제의 내분 = 46 최후의 전쟁 일선 전투 = 47 통일 이후 = 49 거란과의 불화 = 51 영웅의 최후 = 52 태조의 가족 = 53 토성분정과 본관제 = 54 지방행정제도의 개편 = 55 호족들에 대한 회유와 견제 = 56 사심관 제도 기인 제도 불교 진흥 정책 = 58 팔관회 연등회 태조의 유훈, 훈요십조 - 훈요십조 위조 논란 = 60 태조 시대의 주요 인물 - 고려의 건국을 예언한 도선 = 64 제2대 혜종 민활한 외교정책 수행 = 67 왕권 분쟁과 혜종의 고립 = 68 그날 이후 = 69 혜종의 가족 = 70 제3대 정종 무일의 시대 = 73 서경 천도 계획과 광군 창설 = 74 죽음의 징조 = 76 정종의 가족 = 76 제4대 광종 평화 시대의 개막 = 79 노비안검법 = 82 과거 제도 = 83 공포 시대의 도래 = 84 신세대와 귀화인들의 약진 = 85 균여의 불교 통합 = 87 평주 세력 척결 = 88 정수의 균여 고발사건 = 89 고독한 독재자의 최후 = 90 광종의 가족 = 92 제5대 경종 보복 정치의 폐해 = 94 전시과 = 95 짧은 경종의 치세 = 96 경종의 가족 = 97 고려 초기 정국의 타파책 근친혼 = 98 제2장 불굴의 민족혼을 떨쳐 일으키다 - 요의 침공과 원교근공의 삼각 외교 제6대 성종 최승로의 시무이십팔조 = 103 중앙관제의 확립과 지방행정제도의 개편 = 104 유학의 진흥 = 106 요의 1차 침공과 강동 6주 획득 = 107 요, 송, 고려의 삼각 외교 = 110 성종의 가족 = 111 성종시대의 주요 인물 = 112 올바른 신하 상을 정립한 김심언 냉철한 외교전략가 서희 제7대 목종 태후의 섭정 시대 = 117 김치양의 득세 = 119 대량원군 왕순의 반격 = 120 강조의 변심과 목종의 최후 = 121 거대불상의 출현 = 123 제8대 현종 군현제의 확립과 고려의 안정 = 128 요의 2차 침공 = 129 전후복구사업과 무관들의 반발 = 135 요의 3차 침공과 강감찬의 귀주대첩 = 138 평화시대의 도래 = 140 현종의 가족 = 141 군현제도의 확립 = 142 군사제도의 확립 = 143 현종 시대의 주요 인물 = 145 귀주대첩의 노익장, 강감찬 현종의 경호대장 지채문 제9대 덕종 요에 대한 공세 = 150 과거제 확립과 실록의 복원 = 151 덕종의 가족 = 152 제10대 정종 평화시대의 유비무환 = 154 거듭되는 천재지변과 성군의 요절 = 155 정종의 가족 = 157 제3장 태평성대의 주춧돌을 심다 - 각종 제도의 확립과 선진 문물의 도입 제11대 문종 각종 법률의 정비 = 161 경정전시과의 시행 = 163 고려, 요, 북송의 삼국시대 = 164 북송과의 국교 재개와 벽란도의 융성 = 166 군사력의 강화와 여진 정벌 = 168 유교와 불교의 진흥 = 170 문종의 가족 = 171 문종 시대의 주요 인물 = 172 사립학교의 창시자 최충 문종 치세의 일등공신 이자연 제12대 순종 순종의 가족 = 178 과거 제도 = 178 음서 제도 = 180 제13대 선종 불교와 유교의 발전 = 183 동아시아 외교 주도 = 184 선종의 가족 = 186 선종 시대의 주요 인물 - 천태종의 시조 대각국사 의천 = 187 제14대 헌종 - 계림공 왕희의 보위 찬탈 = 191 제15대 숙종 초기의 태평성대 = 194 별무반 편성 = 197 숙종의 가족 = 199 제16대 예종 윤관의 여진 정벌과 9성 개척 = 201 9성의 반환 = 204 금의 건국과 북방 정세의 불안 = 206 유학의 진흥과 내정의 안정 = 208 시인 예종의 낭만 = 209 예종의 가족 = 211 고려 문화의 꽃 청자의 절정시대 = 212 예종 시대의 주요 인물 - 냉철한 현실주의자 김인존 = 213 제4장 머나먼 평화의 길 - 금의 압력과 무신정권의 출현 제17대 인종 국제 정세의 변화 = 219 한안인의 실각 = 221 친위쿠데타의 실패와 인종의 위기 = 222 요의 멸망, 금과의 화친 = 223 이자겸의 난 = 225 서경파의 약진과 천도 계획의 추진 = 226 묘청의 난 = 229 동북아의 안정과 인종의 죽음 = 231 인종의 가족 = 232 인종 시대의 주요 인물 = 233 개경 세력의 주역, 김부식 「고려도경」의 주인공 서긍 제18대 의종 연이은 역모와 문신들과의 물화 = 238 의종의 사치와 정사의 실종 = 240 의종의 방종과 백성들의 눈물 = 242 간신들의 득세와 의종의 착각 = 245 보현원의 참극과 의종의 최후 = 246 의종의 가족 = 249 의종 시대의 주요 인물 - 환관정치의 주역 정함 = 249 제19대 명종 이의방의 권력 독점 = 253 문신들의 반격 = 254 정중부의 집권 = 257 망이와 망소이의 난 = 258 정중부의 피살, 경대승의 집권 5년 = 259 명종의 일탈 = 261 전주 관노의 난 = 261 이의민의 무소불위 13년 = 263 효심과 김사미의 난 = 264 최충헌과 최충수의 정변 = 265 봉사 10조 = 267 명종의 퇴위 = 268 명종의 가족 = 269 제20대 신종 형제간의 권력 다툼 = 271 만적의 난 = 272 이어지는 민란 = 273 신종의 가족 = 275 신종 시대의 주요 인물 - 고려 선종의 중흥조 지눌 = 275 제21대 희종 최충헌의 독주와 교정도감의 설치 = 279 최충헌 암살 작전 = 282 희종의 가족 = 283 제22대 강종 강종의 가족 = 286 유라시아를 휩쓴 대제국 몽고의 쓰나미 = 287 제5장 세계제국의 동반자가 되다 - 몽고의 침공과 항쟁, 제국과의 밀월 제23대 고종 급변하는 국제 정세 = 293 거란의 침공 = 293 최이의 등장과 몽고의 압박 = 298 몽고 사신 저고여 피살의 여파 = 299 최이의 독재와 사치 = 301 몽고의 1차 침공과 귀주성의 혈투 = 303 강화 천도와 몽고의 2차 침공 = 306 금의 멸망과 홍복원의 반역 = 308 몽고의 3차 침공 = 310 몽고의 4차 침공 = 316 최씨 무신정권의 종식 = 318 몽고의 7차 침공과 고종의 죽음 = 319 고종의 가족 = 321 팔만대장경의 판각 = 321 고종 시대의 주요 인물 -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문장가, 이규보 = 323 제24대 원종 쿠빌라이와의 만남 = 326 쿠빌라이의 등극과 제위 분쟁 = 327 무신 정권의 종식 = 329 삼별초의 대몽항쟁 = 332 공녀들의 눈물 = 334 원종의 가족 = 335 제25대 충렬왕 제1차 일본 정벌 = 338 급변하는 고려사회의 변천 = 340 왕실의 분란과 실지 회복 = 343 남송의 멸망 = 344 제2차 일본 정벌 = 346 카다안의 침공 = 348 충렬왕의 하야와 복위 = 350 기와르기스의 노비제도 개혁 = 353 충렬왕과 충선왕의 불화 = 354 충렬왕의 가족 = 356 정동행성 = 358 충렬왕 시대의 주요 인물 = 360 「삼국유사」를 쓴 국존, 일연 동방의 주자, 안향 고려의 대쪽 선비, 이조년 제26대 충선왕 적극적인 개혁 의지 = 368 강제 퇴위와 복위 = 370 전지 통치 = 373 유학의 발전, 고려의 세계화 = 374 충선왕의 가족 = 376 권문세족의 등장 = 377 활발해진 해외 인적 교류 = 378 제27대 충숙왕 내정의 혼란과 복국장 공주의 죽음 = 381 백응구 사건과 입성책동 = 383 충숙왕의 반격 = 385 원 황실의 분란과 순제의 등장 = 387 충숙왕의 재기와 최후 = 389 충숙왕의 가족 = 390 농장의 확산과 폐해 = 392 제28대 충혜왕 입성책동의 무산 = 395 충혜왕의 엽색행각과 조적의 난 = 396 원의 실력자 바얀의 실각 = 398 충혜왕의 복위 = 399 납치, 독살 = 401 충혜왕의 가족 = 403 충혜왕 시대의 주요 인물 - 공녀에서 황후가 된 여인, 기씨 = 404 제29대 충목왕 유학자와 노비출신 신료들의 대결 = 409 덕령공주의 개혁과 좌절 = 410 충목왕 시대의 주요 인물 - 혼란기의 현실주의자 이제현 = 413 제30대 충정왕 - 왜구의 등장과 홍건적의 출현 = 417 제6장 열정과 자존의 불꽃이 지다 - 명의 건국과 고려의 멸망 제31대 공민왕 은인자중의 초기 개혁 = 422 조일신의 난 = 424 홍건적의 맹위와 남벌 = 425 기씨 일파의 제거와 반원정책의 가동 = 428 고려 여인들의 방종과 편조의 등장 = 430 홍건적의 1차 침공 = 432 홍건적의 2차 침공 = 435 3원수의 비극 = 437 나하추의 침입 = 438 흥왕사의 변란 = 439 두 명의 고려 국왕 덕흥군과 공민왕의 대결 = 441 신돈의 등장과 후기 개혁의 시작 = 443 대대적인 숙청과 신돈의 비상 = 444 유학자들의 반발과 내정의 안정 = 446 신돈의 개혁과 수구세력의 반동 = 448 명의 건국과 원의 축출 = 450 새로운 관계 = 452 이성계의 요동 정벌 = 453 신돈의 제거와 무장들의 약진 = 455 최영의 탐라 정벌 = 457 공민왕의 최후 = 460 공민왕의 가족 = 461 공민왕 시대의 주요 인물 = 463 가문의 매국 이력을 벗겨낸 이자춘 고려의 의복 혁명을 이룩한 문익점 제32대 우왕 줄타기 외교 전략 = 468 왜구의 침습과 홍산 전투 = 471 최무선의 진포구 전투 = 472 이성계의 황산 전투 = 473 최영의 무진정변 = 476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 = 477 우왕의 가족 = 482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직지심체요절」 = 483 우왕 시대의 주요 인물 - 여말 선초의 풍운아 정도전 = 485 제33대 창왕 개혁의 높은 파고 = 489 박위의 대마도 정벌 = 491 이색의 실각 = 492 김저, 김득후 사건, 창왕의 폐위 = 494 제34대 공양왕 개혁의 박차 = 497 윤이, 이초 사건과 공양왕의 반발 = 498 공양왕의 반발 = 499 정몽주의 공세와 이방원의 역습 = 500 고려 왕조의 최후 = 503 공양왕의 가족 = 505 공양왕 시대의 주요 인물 = 505 단심과 충절의 대명사, 정몽주 고려 선비들의 절개, 두문동 72현 주 = 509 찾아보기 = 530 참고문헌 = 536 고려 왕실계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