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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953.059 ▼b 2011 | |
| 245 | 0 0 | ▼a 제국의 황혼 : ▼b 대한제국 최후의 1년 1909.08-1910.08 / ▼d 정진석 [외]지음 |
| 260 | ▼a 파주 : ▼b 21세기북스, ▼c 2011 | |
| 300 | ▼a 711 p. : ▼b 삽화 ; ▼c 24 cm | |
| 440 | 0 0 | ▼a KI신서 ; ▼v 3058 |
| 500 | ▼a 지은이: 정진석, 권영민, 이헌창, 김기승, 박기주, 전봉관, 지해범 | |
| 700 | 1 | ▼a 정진석, ▼g 鄭晉錫, ▼d 1939- ▼0 AUTH(211009)31827 |
| 700 | 1 | ▼a 권영민, ▼e 저 ▼0 AUTH(211009)136274 |
| 700 | 1 | ▼a 이헌창, ▼e 저 |
| 700 | 1 | ▼a 김기승, ▼e 저 ▼0 AUTH(211009)90582 |
| 700 | 1 | ▼a 박기주, ▼e 저 |
| 700 | 1 | ▼a 전봉관, ▼e 저 ▼0 AUTH(211009)44785 |
| 700 | 1 | ▼a 지해범, ▼e 저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59 2011 | 등록번호 111614796 (1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59 2011 | 등록번호 111614797 (8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3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953.059 2011 | 등록번호 151297145 (3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59 2011 | 등록번호 111614796 (1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59 2011 | 등록번호 111614797 (8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953.059 2011 | 등록번호 151297145 (3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일병합 1년 전인 1909년 8월 29일로 되돌려 나라가 망하던 비극의 그날까지 365일간을 기록한 책이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인 여섯 명의 고정 필자를 포함하여 총 열아홉 명의 저자들이 참가한 방대한 공동 프로젝트로, 242편의 귀중한 글을 모았다. 다양한 시각으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1년을 조명하고 분석하고자 했다.
근세사, 경제사, 문학사, 문화사, 생활사, 언론사, 의료사, 전쟁사를 전공한 전문가들이 1세기 전 역사의 잔해를 해부하여 망국의 원인을 들여다보았다. 우선 '1909년 8월부터 1910년 8월까지 1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서 주제를 찾았다. 그러면서 국치를 당한 원인을 '1세기 전의 1년 이내'라는 시간적 제약에 지나치게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관점에서 글을 썼다.
단순히 역사의 줄기만 훑은 책이 아니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근세사, 경제사, 문학사, 문화사, 생활사, 언론사, 의료사, 전쟁사의 전문가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재현해낸 당시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풀어놓는 1909년 당시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커다란 사건까지.
최고의 전문가들이 재현하는
‘대한제국 최후의 1년’
한일병합 1년 전의 풍경 속에서 망국의 징조와 기미를 읽는다!
이 글은 2009년 8월 29일에 시작하여 국치 100주년이 되는 날, 즉 2010년 8월 29일에 끝이 났다. 1년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되면서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일병합 1년 전인 1909년 8월 29일로 되돌려 나라가 망하던 비극의 그날까지 365일간을 기록했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인 여섯 명의 고정 필자를 포함하여 총 열아홉 명의 저자들이 참가한 방대한 공동 프로젝트로 242편의 귀중한 글을 모았다.
-근세사, 경제사, 문학사, 문화사, 생활사, 언론사, 의료사, 전쟁사를 전공한 전문가들이 1세기 전 역사의 잔해를 해부하여 망국의 원인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사망한 시체의 환부를 도려내어 사인을 규명하는 작업과 같았다.
-우선 ‘1909년 8월부터 1910년 8월까지 1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서 주제를 찾았다.
-그러면서 국치를 당한 원인을 ‘1세기 전의 1년 이내’라는 시간적 제약에 지나치게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관점에서 글을 썼다.
* 작품의 특징
『제국의 황혼』은 단순히 역사의 줄기만 훑은 작품이 아니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근세사, 경제사, 문학사, 문화사, 생활사, 언론사, 의료사, 전쟁사의 전문가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재현해낸 당시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풀어놓는 1909년 당시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커다란 사건까지, 『제국의 황혼』은 다양한 시각으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1년을 조명하고 분석하고자 했다.
1. 망국의 그림자
한일병합을 1년 앞둔 1909년, 흔들리는 국권 아래에서도 이 땅의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 안팎의 압력으로 망국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기만 했다. 사회와 문화뿐 아니라, 민초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대한제국 말기 변화의 흐름을 짚어본다.
2. 일본의 침탈 전략
본격적으로 한반도를 노리기 시작한 일본은 지금까지의 간접적인 침탈 전략을 버리고 노골적으로 국권 침탈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론을 장악하는 한편, 문화재를 빼돌리는 등 문화적인 침식을 진행하며 대한제국의 국권을 하나씩 빼앗아갔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된 일본의 침탈 전략은 결국 1910년의 한일병합으로 이어졌다.
3.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해이
일본이 국권을 빼앗기 위한 전략을 하나씩 진행해가고 있을 때, 지배층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부분의 왕족들은 일본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거나, 권력을 빼앗기고 유명무실한 존재로 남고 말았다. 백성들에게까지 무시당할 정도로 추락한 모습, 심지어 국권을 빼앗기는 그 순간에조차 허울뿐인 훈장을 수여하기에 바빴던 모습 등 600년간 이 땅을 지배해왔던 조선 왕실의 처참한 몰락은 지금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4. 친일파의 망동
1909년의 대한제국을 살펴보자면, 일본을 지지했던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조국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을 지지했던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일본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합병에는 반대했던 인물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나라를 판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수여받고, 심지어 그 은사금을 도박으로 날리는가 하면, 공사관 건물을 단돈 5달러에 팔아넘기는 등,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망동을 일삼았던 인물들도 적지 않다.
5. 지식인들의 위기 대응
격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학문과 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이들도 있다. 일부는 ‘애국’의 깃발 아래에, 일부는 ‘매국’의 깃발 아래에 서 있었지만, 그들의 노력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화의 바탕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학문의 장으로써 젊은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대학들도, 우리가 읽고 쓰는 한글의 체계도 당시에 세워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열정을 가지고 살아갔던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6. 언론의 계몽과 투쟁
거리에 모여 글을 아는 사람이 읽어주는 신문 내용을 듣는 모습이나, 일종의 신문 열람실이었던 신문종람소에 대한 기록은 비록 100년 전이었다고는 하나, 당시의 신문은 지식인들뿐 아니라 민초들에게까지 커다란 영향을 주는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남아 있는 신문 기사들을 통해 일본의 탄압에 대항하여 백성의 계몽과 투쟁을 촉구했던 당시 신문들의 투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7. 민초들의 저항
일본의 국권 침탈에 대한 민초들의 저항은 다양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민초들의 저항은 의병 활동일 것이다. 비록 조국의 독립은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의병들은 전국 각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활약을 펼쳤다. 또한 시장바닥의 상인들부터 해외 동포들까지 민초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에 저항하고 국권을 회복하려 애썼다.
8. 한국을 도운 외국인들
조국을 버리고 일본에 협력한 친일파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파란 눈의 항일투사’들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대표적인 민족지였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인물인 배설에 이어,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턴, 숭실대학교의 전신인 숭실학교를 세운 베어드 등 머나먼 타국을 지키고 사랑해준 이들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이 땅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9. 정치가와 군인들의 행보
정치가와 군인들은 국권이 위태로운 당시의 상황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을사늑약의 파기를 주장하다가 자결을 단행한 시종무관장 민영환이나 머나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난 대리공사 이한응 등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 인물들의 일화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10. 여성들의 목소리
여성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당시에도 두각을 나타낸 여성들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로 기록되는 박에스터를 비롯한 신여성들은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전파하려 노력하며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로 역사에 남았다.
11. 안중근 의거
1909년 10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리며 국민적인 영웅이 된 안중근 의사는 15세 때부터 ‘홍의장군’으로 불리며 동학 토벌군에서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비록 1910년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고 얼마 되지 않아 대한제국은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안중근 의거는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12. 민족 지도자들의 독립 구상
위기를 직감하고 조국을 구하고자 애썼던 인물은 그 밖에도 있었다.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구국 운동을 펼쳤던 이승훈이나 간도에서 활약했던 김약연, ‘상투를 자르자’며 근대화를 촉구했던 이승만 등 방향과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했던 수많은 민족 지도자들의 노력은 나라를 잃은 절망 속에서도 새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3. 민족자본의 활약
1909년 여름, 평안남도에 심각한 수재가 발생하자 신문사들이 수재의연금 모집에 나섰다. 박기종은 1989년부터 여러 차례 철도 부설을 시도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서오순 등은 1904년 호남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며 호남철도 부설 운동을 펼쳤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것들은 일본의 침탈로부터 조국의 경제를 지키고자 했던 노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들이다. 비록 노력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인물들도 있지만, 이와 같은 노력이 있었기에 광복 후의 눈부신 경제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14. 근대문명의 수용
1909년은 그간 고립되어 있던 한반도가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격렬한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회, 경제,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밀려든 변화의 물결은 많은 사회적 혼란을 몰고 왔다. 자동차를 보고 놀라는 시민들의 모습이나, 지금 보면 어이가 없을 만한 광고를 신문에 자랑스레 싣던 사람들과, 야구를 처음 시작하던 학생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누리는 것들이 처음 이 땅에 등장했던 순간의 풍경들은 우리를 웃음 짓게도 하고 추억에 잠기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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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권영민(지은이)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 현대문학사의 역사적 체계를 확립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앞장섰다. 문학 연구의 기초 자료 조사 정리와 작품의 정본화 작업을 수행하면서 『이상전집』(전4권), 『이상 문학의 비밀 13』, 『오감도의 탄생』, 『이상 연구』 등을 펴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김기승(지은이)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現)순천향대학교 향설나눔대학 교수 <저서> 「한국근현대 사회사상사 연구」(1994). 「조소앙이 꿈꾼 세계」(2003). 「21세기에도 우리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2003, 공저). 「제국의 황혼」(2011, 공저). 「고불 맹사성의 생애와 사상」(2014). 「아산의 독립운동사」(2014, 공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론가 조소앙」(2015). 「유림 독립운동의 상징 심산 김창숙」(2017) 등 <주요논문> 신채호의 독립운동과 역사인식의 변화(2010). 4월혁명과 한국의 민족주의(2010). 심산 김창숙의 사상적 변화와 민족운동(2012). 한국독립당의 정치노선과 통일(2012). 도산 안창호의 대공주의와 조소앙의 삼균주의 비교 연구(2015). 언론에 나타난 신간회 해체 논쟁의 전개과정(2018). 20세기 초 독립운동가들의 사회진화론 극복과 평화사상 형성(2019). 조소앙과 ‘적자보’ 연구(2020) 외 다수
이헌창(지은이)
1955년에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3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로 옮겨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경제사학회와 한국고문서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民籍統計表의 해설과 이용방법』, 『한국경제통사』, 『조선시대 최고의 경제발전안을 제시한 박제가』, 『경제.경제학』이 있다. 편저는 『류성룡의 학술과 사상』,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경제체제론의 접근』 등이 있다. 이외에도 경제사, 사상사, 정치사 등의 분야에서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박기주(지은이)
서울대학교 경제학 박사 경제사학회 회장(2016) 현 성신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제사, 경제학설사 강의 주요 저서 『한국 경제사』(공저) 『경제이론의 역사』 『경제사회의 이해와 비판』 외 다수
전봉관(지은이)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문학 연구를 확장해 근대 한국의 살인 사건, 스캔들, 투기, 사기·협잡, 자살 사건, 가정 문제, 애정 문제 등 한국 근대 문화의 속살을 다층적으로 파헤쳤다. 최근에는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설립을 주도하고, 데이터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930년대 한국의 골드러시를 다룬 《황금광시대》, 근대 한국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을 다룬 《경성기담》, 근대 한국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룬 《럭키경성》, 근대 한국을 울린 충격적인 자살 사건을 다룬 《경성자살클럽》, 독자 문답란에 나타난 근대 한국인의 사생활을 다룬 《경성 고민상담소》를 펴냈다. 2023년부터 《조선일보》에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를 연재하고 있다.
지해범(지은이)
경북 상주 출생(1959).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 동양사학과(1983)를 졸업하고 육군 복무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1986) 사회부, 월간조선부, 경제부, 국제부 기자를 거치며 중국 난징(南京)대학에 연수하고, 주 베이징 특파원(1997~2001)과 국제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현재 동북아연구소장 겸 <中文조선> <NK조선> 편집인으로 있다.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국제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2019)를 받았다. 논문으로 “후진타오-시진핑 시기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연구: 비핵화와 경제협력 정책을 중심으로”(박사학위논문), 저·역서로 『화교 네트워크』(1998), 『원자바오』(2007), 『제국의 황혼』(공저, 2011)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서문 = 4 1 망국의 그림자 "동포 구제 팽개치고 일본관광 떠나는가" = 18 14세 신랑과 침략 일본군 = 21 "아편을 먹고 자폐하니" = 23 1달러 환전하니 엽전 한 지게 = 25 "주세와 연초세에 허리가 휘니" = 27 "음란한 연희" = 30 "조선은 온통 민둥산이라……" = 33 "서울에 똥냄새가 가득하네" = 35 63년 동안 일기 쓴 농사꾼 = 38 당시 '이천만 동포'는 정확한 숫자일까 = 41 군사 훈련이 된 운동회 = 44 1909년 세모 풍경 = 47 한국 호랑이, 궁궐에까지 출몰하다 = 50 한강 얼음판의 잉어낚시 = 52 미국으로 시집간 사진신부 = 54 만병통치약 '금계랍' = 56 사라져가는 양반제 = 59 명태, 국민 생선이 되다 = 61 "일본인 화폐 보유량은 한국인의 10배" = 64 중국 복권, 한국 시장을 휩쓸다 = 67 양잠이 농가 부업으로 부활하다 = 70 "두 팔다리 멀쩡한데 능욕을 참소?" = 73 활동사진 구경 = 75 용맹의 전통놀이 석전이 금지되다 = 78 500년 만에 종로에 절을 짓다 = 80 마지막 청국 총영사 마팅량 = 82 조선을 발판으로 중국을 삼킨 위안스카이 = 85 2 일본의 침탈 전략 사무라이 출신 데라우치의 한국 부임 = 90 일본의 간교한 '간도 외교술' = 92 일제, 적십자사까지 빼앗다 = 95 경찰권마저 빼앗기다 = 98 궁전을 헐어 동물원을 짓다 = 101 덕수궁에 석조전을 세운 까닭 = 104 신라 왕릉을 파헤친 '일본 도적놈들' = 106 일본, 한국에 공창제를 옮기다 = 109 '흰옷 금지령'이 내려지다 = 112 전국 호구 조사를 하다 = 114 일본인이 세운 한국은행 = 117 신문 광고가 보여주는 경제침략 = 119 일제 식민정책의 첨병 동양척식주식회사 = 122 "조선의 역사책은 출판하지 마라" = 125 언론침략에 앞장선 주한 일본 기자들 = 128 일본의 선전매체〈서울 프레스〉 = 130 통감부 기관지〈서울 프레스〉 = 132 언론 조선 총독부〈경성일보〉사장 = 135 총독부가 성균관을 해체한 까닭 = 138 3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해이 돌아오지 못한 황태자, 영친왕 이은 = 142 황제의 눈귀 가린 내시 강석호 = 145 국민 눈에 보이지 않는 융희 황제 = 148 순종은 온전치 못했다더라 = 151 '조연'이 된 순종의 서남순행 = 154 순종의 마지막 친경 = 157 '궁금령'으로 유폐된 황제 고종 = 160 포로와 다름없는 '한국의 여왕' = 162 망국의 날에도 훈장 주기에 바빴던 순종 = 164 영국 외교관 눈에 비친 고종과 이토 = 167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 = 169 순종의 단발 즉위식 = 172 대한제국의 마지막 국경일 = 174 영세중립 실현 못한 빈약한 국력 = 177 통감에게 문화재 선물한 한심한 황실 = 179 강병의 꿈이 좌절되다 = 182 4 친일파의 망동 합방에 반대한 친일 정치가 유길준 = 186 '변절과 아부'의 귀재, 이완용 = 188 친일 대신 송병준의 망동 = 190 '애국'과 '매국'의 괴이한 만남 = 193 합방의 나팔수 '국시유세단' = 196 일진회의 합방성명서 = 199 이재명, 이완용을 응징하다 = 202 단돈 5달러에 강탈당한 주미공사관 건물 = 205 '합병조약'이 '중요 문제'로 둔갑하다 = 208 최영년 가족의 뻔뻔한 친일 행각 = 211 나라 판 돈 화투판에서 날린 이지용 = 214 나라 팔아 얻은 귀족 작위와 특권 = 217 좌절된 '자치'의 꿈, 한성부민회 = 219 5 지식인들의 위기 대응 "이인직 씨 그 모양이 연극보다 재미있네" = 224 조선의 3대 천재 최남선ㆍ이광수ㆍ홍명희 = 227 항일 논객 박은식과 신채호 = 229 안동 유학자 이중언의 순국 일지 = 232 '불교의 파격'을 외친 한용운 = 235 안동 유학자 이상룡, 압록강을 건너다 = 237 유교, 군주를 버리다 = 240 일본 유학생들의 '합방 반대' 투쟁 = 243 죽음을 넘어선 '협동학교'의 교육열 = 246 영웅을 호명하던 시대 = 249 재일 유학생과 일본의 두 얼굴 = 251 재평가받은 박제가의 '개국통상론' = 254 일본 유학생들의 나라 사랑 = 257 주시경『국어문법』을 펴내다 = 260 국어 표기법을 정리한 '국문연구소' = 262 '호랑이 한반도' 지도와 최남선 = 265 '보성'과 '숭실'의 대한교육 운동 = 268 엄 귀비가 세운 진명ㆍ숙명 학교 = 270 서점, 학문과 독립정신을 전파하다 = 273 1년 8개월 만에 해체된 홍학회 = 276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 279 "군수ㆍ면장ㆍ동장이 다 학교를 세우니……" = 281 6 언론의 계몽과 투쟁 군복 입은 언론인 임치정ㆍ이교담 = 286 '대한'의 제호를 잃다 = 288 황현의 절명시와〈경남일보〉 = 290 일제의 언론탄압과 '벽돌신문' = 292 거리의 신문 낭독과 신문종람소 = 295 "두 신문기자는 혼이 나갔는가" = 297 통감부가 두려워한 한국어신문 = 299 〈상공월보〉, 기업인 정신을 기르다 = 302 구국 언론의 총책임자 양기탁 = 305 "이등을 잡고 방문을 박차니……" = 307 〈대한매일신보〉가〈관보〉게재를 중단한 까닭 = 309 소설과 신문 만평을 도입한 오세창 = 312 하와이와 미국 본토의 항일 신문들 = 315 연해주의 항일 신문과 언론인들 = 318 통감부 손에 떨어진 민족지〈대한매일신보〉 = 321 민족지〈대한매일신보〉를 떠난 양기탁 = 323 일본어〈조선신문〉의 기형적 성장 = 325 "크게 소리 지르며 붓을 던진다" = 328 언론에 가해진 무차별 탄압 = 331 7 민초들의 저항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 336 일본공사에게 호통친 소금장수 김두원 = 339 만주의병장의 비통한 일기 = 342 일본 기마부대와 맞선 이규홍 의병장 = 345 '호남 제일 의병장' 심남일 = 348 호남 의병, 일본군을 '우롱'하다 = 351 이설과 최익현, 황제를 꾸짖다 = 354 국채보상운동과 신문 캠페인 = 357 '이민시대'가 열리다 = 359 자유를 위해 싸운 멕시코 동포들 = 362 일인 세무서장 혼낸 상인들 = 365 간도로 간 활빈당수「소금강」 = 368 '늙은 나라'를 '소년 나라'로 = 370 아리랑, 일본 야욕을 경계하다 = 372 조선 민중, 기독교에 가슴을 열다 = 375 8 한국을 도운 외국인들 '파란 눈의 항일투사' 헐버트 = 380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를 살려서……" = 383 훼손된 배설의 묘비 = 385 한국을 도운 영국 외교관 헨리 코번 = 388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턴 = 390 외교계의 막후 실력자, 독일 여인 손탁 = 393 대한제국의 군악대 교사 에케르트 = 396 한국인의 진정한 벗, 베어드 = 399 서북 애국 청년들의 보호자 매쿤 = 401 고종의 밀서를 특종 보도한 더글러스 스토리 = 404 100년 전 외국인 눈에 비친 우리 모습 = 407 산속 의병을 찾아간 영국 기자 매켄지 = 409 경천사석탑 일본에서 돌아오다 = 411 9 정치가와 군인들의 행보 민영환 자결 후 솟은 혈죽 = 416 마지막 무관생도 홍사익ㆍ지대형ㆍ이응준 = 419 고종 양위에 반대한 박영효 = 422 '기업경영과 교육의 선구자' 이용익 = 425 이상설, 순종 황제를 부정하다 = 427 이한응 대리공사의 그림 편지 = 430 서북학회를 이끈 육군 참령 이갑 = 433 군인 이동휘, 기독교 전도사로 변신하다 = 437 장인환ㆍ전명운, 스티븐스를 쏘다 = 439 외교권 침탈에 맞선 이한응과 이범진 = 441 외부대신이 독일영사에게 폭행당하다 = 444 "폐하, 빚 좀 갚아주시옵소서" = 447 '산업 구국'에 나선 해직 군인들 = 450 양근환, 친일파 민원식을 처단하다 = 453 10 여성들의 목소리 신여성의 선구자, 하란사ㆍ박에스터ㆍ윤정원 = 458 9세 연하남과 결혼한 밀정 배정자 = 461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터 = 464 김창숙을 바로잡은 어머니의 훈계 = 467 기생조합의 탄생 = 470 남성을 비판한『자유종』여성들 = 473 11 안중근 의거 '15세의 홍의장군' 안중근 = 478 '안중근 의거'를 예언한 시사만화 = 481 하얼빈 역의 총성 = 483 "이등 처단 소식에 만세를 불렀다더라" = 486 안중근은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 489 "중국 청년이여 안중근을 닮아라" = 491 안중근 의거의 농촌 전파 속도 = 493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 496 안중근 의사 순국 보도 = 498 12 민족지도자들의 독립 구상 민족자본가 이승훈의 구국 운동 = 502 '간도의 대통령' 김약연 = 505 월남 이상재의 YMCA 운동 = 508 "상투를 잘라야 한국이 산다" = 511 미국에서 출간된 이승만의『독립정신』 = 514 평양 항일운동 이끈 안창호와 이시영 = 517 '통합' 대한인국민회 탄생 = 520 블라디보스토크 '성명회'의 결사항전 = 523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 525 절망 속의 희망 '새 나라 만들기' = 528 자치와 저항의 보루 민회 = 531 대종교를 창설한 나철과 오혁 = 534 새로운 선비상을 추구한 흥사단 = 536 유교 근대화를 추구한 김윤식 = 539 안창호의 국외 망명 = 542 13 민족자본의 활약 조선 갑부 민영휘의 '돈 모으는 법' = 546 철도 자립을 꿈꾼 박기종 = 549 수재의연금 모집, 민족의식을 키우다 = 552 일본 상공인 단체에 대항한 '상업회의소' = 554 좌절된 호남철도 부설 운동 = 557 한국 해운업, 일본 업체와 경쟁하다 = 560 강제병합으로 돈벼락 받은 김갑순 = 563 서민의 금융기관 전당포 = 566 제약업과 광고의 선구자들 = 568 서울의 물가를 좌우한 경강상인 = 571 '동양의 엘도라도' 운산금광 = 574 서울 소매상업의 중추를 이룬 시전상인 = 577 일본 상인에 굳건히 대응한 개성상인 = 580 개항장 객주의 몰락 = 583 최봉준, 한러무역을 개척하다 = 586 강한 단결력 과시한 보부상 = 589 토지가 국유와 민유로 구분되다 = 592 기업 가문 '두산' 창설자 박승직 = 595 농협의 전신, 금융조합 = 597 장사와 오락이 어우러진 5일장 = 600 수령과 아전, 징세권을 잃다 = 603 약령시에 전국의 물산이 모이다 = 606 투기판이 된 미두 거래소 = 608 100년 전의 공인중개사 '가쾌' = 611 100년 이상 존속한 민족은행 = 613 일본인이 지배한 농공은행 = 616 실패로 끝난 마지막 양전 = 619 14 근대문명의 수용 지폐의 시대가 시작되다 = 624 근대 국민이란 용어의 탄생 = 627 몽골 근대의학의 선구자 이태준 = 630 '쥣통' 혹은 '호열자' = 633 은행 네 개 세울 돈을 담배로 피워 없애다 = 636 "기생들이 일본어 학습을 시작했다더라" = 639 "윤치오 씨 자행거를 도적이 훔쳐갔네" = 641 "승강기가 몇만 길이나 떨어지는지……" = 643 하루에 천릿길을 가는 철도와 전보 = 646 천일염, 음식 맛을 바꾸다 = 648 도시의 풍경을 바꾼 전차 = 651 도량형 통일과 미터법의 도입 = 653 자동차에 놀란 서울시민들 = 656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의 탄생 = 659 자혜의원 민심을 회유하다 = 662 "신작로가 열렸네" = 664 한국의 '시간'이 바뀌다 = 667 목포에서 일어난 최초의 노동쟁의 = 670 국운은 기울어도 무역은 살아나다 = 673 "한양상회가 외국 돈을 뺏어온다 하니……" = 676 북청물장수와 영국수도회사 = 679 상표ㆍ특허ㆍ저작권에 눈을 뜨다 = 681 근대적 직업 세계의 형성 = 684 현대 용어로 바뀐 토지매매문서 = 686 "창피한 광고는 그만하오" = 689 도쿄 유학생 야구단 = 691 최초의 기술교육기관 '공업전습소' = 693 좌담 = 697 저자 소개 = 704 저자별 수록 글 = 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