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또옙스끼 소설에 나타난 리터러시와 비블리오테라피. 도스또옙스끼의 주인공들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 리터러시를 가지고 늘 읽고 쓰고 말하고 누군가와 소통을 꿈꾼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소외당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소일거리인 독서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상처를 치유받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도스또옙스끼의 주인공들의 리터러시가 그들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들의 독서와 글쓰기의 양상을 살피고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의 상처가 어떻게 치유되는지 추적하기 위해 쓰여졌다.
1. 바쁜 현대인들에 대한 19세기적 이해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사실 현대인들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자신도 모르게 글을 읽고 쓰는 데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부터 시작하여 트위터, 페이스북, 자신의 홈페이지, 이메일 등에서 우린 너무도 많은 것들을 읽고 쓴다. 그것이 일정한 이슈에 대한 의견의 피력일 수도 있고 그냥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의 교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읽기와 쓰기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습득하고 그것에 자동화되어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한 읽기와 쓰기가 자신 혹은 타인의 삶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것이기에 우린 누군가와 늘 끊임없이 소통하며 자신을 드러내거나 혹은 자신을 철저히 숨긴 채 스마트한 시대의 ‘새로운 문자 인간’으로 살아간다.
현대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러시아 출판 문화가 대중화되어 과거보다 더 많은 이들, 특히 인텔리들이 광범위한 독서에 노출된 19세기 러시아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스또옙스끼의 주인공들은 바로 '선천적으로 타고 난' 리터러시를 가지고 늘 읽고 쓰고 말하고 누군가와 소통을 꿈꾼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소외당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소일거리인 독서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상처를 치유받기도 한다. 본 연구서는 바로 이러한 도스또옙스끼의 주인공들의 리터러시가 그들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들의 독서와 글쓰기의 양상을 살피고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의 상처가 어떻게 치유되는지 추적하기 위해 쓰여졌다.
2. 저자 서문
그렇다면 주인공들의 독서 행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그것은 텍스트 외적인 차원에서 독자로 하여금 작가의 창작 배경과 작가로서의 도스또옙스끼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작가에게 있어 독서와 서사 행위는 모스크바 출신 작가로서 뻬쩨르부르크의 낯설음 앞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타인들과의 소통을 지향하기 위한 전략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텍스트 내적인 측면에서 주인공에 대한 밀도 있는 접근(주인공의 상처와 고통을 드러내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소통하기 위한 은밀하고 또 때로는 왜곡된 욕망을 드러내 주는)을 가능하게 해 준다. 주인공들은 자신이 읽은 내용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말을 걸거나 또 때로는 그들의 견해를 무심코 묻기도 하고 또 때로는 집요하게 매달리기도 한다. 여기서 등장인물들의 독서 행위와 그에 대한 반응은 타자와의 소통을 위한 가교이자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은밀한 욕망의 배출구인 셈이다. 또 그들의 독서 행위는 독서의 동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의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을 치유하거나 다른 등장인물들과 소통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것은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의 차원에서 밀도 있게 논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블리오테라피에서 치유의 메커니즘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주인공들은 독서를 통해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을 찾아 나가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전환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리프레이밍(reframing), 동일시(identification), 소산(abreaction), 유사성 등이다. 독서를 통해 주인공들은 타인과의 소통을 지향하며 그들의 경험세계를 넓히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몽상가가 되어 현실로부터 도피하기도 한다. 즉 주인공들의 독서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window)인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은닉하고자 하는 그들의 내면의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행위이기에 이중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표현(output)으로서의 주인공들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타인의 글에 대한 모방 혹은 문학작품에 대한 논평(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들』의 마까르 제부쉬낀의 바르바라가 권해준 「외투」를 읽고 나서 주인공 아까끼에 대한 마까르의 평가), 습작(『미성년』의 수기-소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세밀한 기록(『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로부터의 수기』) 등의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러한 서사 행위는 타인과의 소통을 지향하는 수단이 되거나 자기 자신만을 메시지의 수용자로 삼아 이뤄지기도 한다. 본 연구에서는 독서가이자 해독자인 주인공들의 다양한 독서, 말하기와 글쓰기의 담화가 그들의 내면의 상처 및 현실의 고통과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그들의 행위가 그들의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며 궁극적으로 그것이 그들의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리프레이밍하며 치유하는지 분석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독서 행위 및 독서 치료의 근간이 되는 도스또옙스끼의 주인공들의 리터러시(literacy)는 독서, 혹은 글쓰기(문학, 문학 외의 무수한 글들, 다양한 문학적 인용 등), 창작을 향한 열정을 통해 발산된다. 그러기에 작가의 소설 중 많은 소설들은 수기, 기록, 일기의 형식을 띠며 그것은 주인공들의 삶에 주요한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소설 전체의 구성, 시점, 주제 형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작가의 주인공들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자의든 타의든 간에 소외와 고독을 경험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몽상하고 또 그러한 몽상을 붙들기 위해, 혹은 몽상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쓰거나 표현하는 일에 몰두하기도 하고 독서에 집착함으로써 타인의 삶을 무섭게 빨아들이기도 한다. 이는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라 불릴 정도로 일평생 글쓰기에 강한 욕구를 보였던 작가 도스또옙스끼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늘 책을 가까이 하였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택하였을 뿐만 아니라 늘 빚에 쪼들리면서도 손에서 책과 펜을 놓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쓴 소설들을 여러 사람 앞에서 낭독하기를 즐겼다. 이러한 글쓰기 혹은 말하기 욕구는 작가가 창조한 주인공들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그의 소설의 대다수 주인공들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거나 뚜렷한 목적 없이 자신의 삶과 연관된 혹은 자신이 읽고 몽상하고 또 상상했던 모든 것을 무섭게 분출해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본서는 작가의 소설 중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삶에 주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주요한 계기를 마련하는 몇몇 소설들을 선정하여 주인공들의 리터러시와 독서 및 글쓰기의 양상을 면밀하게 분석, 고찰하여 그것의 지니는 의미를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리하쵸프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도스또옙스끼의 글을 쓰는 주인공들은 ‘연대기 작가’와 마찬가지로 시간에 쫓기듯이 서둘러 사건을 기록하고 나중에 그 사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극적 긴장감과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뿐만 아니라 글 전체에 다큐멘터리성과 사실 기술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록이 지니고 있는 문학성과 예술성을 높여주는 동력은 다름 아닌 주인공들의 리터러시와 부단한 독서의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들의 글쓰기 양상과 그들이 남긴 글의 성격과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글쓰기 저자-주인공-화자의 독서와 리터러시를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리하초프가 연대기 작가-화자-서술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글쓰기 행위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던 일부 소설들(『백야』, 『가난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지하로부터의 수기』, 『죽음의 집의 기록』,『네또츠까 네즈바노바』, 『미성년』,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등등) 중 서사를 욕망하는 주인공들의 독서와 글쓰기 행위가 잘 드러나 있으며 그것들이 주인공 및 주변 등장민물들의 치유와 연관되는 소설들 9편(위에서 언급했던 소설들 중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제외한 나머지 소설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전형적인 몽상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는 소설이자 그러한 몽상가의 서사와 몽상이 타인과의 교류로 인해 깨어지고 현실에 눈을 뜨게 됨을 엿볼 수 있는 소설 『백야』, 가난하고 상처받은 무력한 주인공들의 독서와 글쓰기, 치유가 드러난 소설들 (『가난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여 기록함으로써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는 과정에서 자아정체성을 모색하고 더 나은 미래를 살아나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1인칭 수기(『네또츠까 네즈바노바』, 『미성년』), 인문학적 독서를 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이끌려 글(팸플렛, pamphlet)을 읽고 쓰는 악령들과 이를 비판하는 소수의 대비를 보여주는 소설(『악령』), 이들 모두의 리터러시와 독서, 그것의 발현으로서의 글쓰기의 양상과 의미, 치유의 다양한 모습 등이 본서의 연구내용들이다.
하루라도 인터넷이나 트위터(twitter)에 실린 글을 읽거나 쓰지 않으면 공허함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 속에서 위에서 언급한 도스또옙스끼 주인공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짐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도 작가의 주인공들처럼 때로는 삶으로부터 도피하고픈 충동과 혹은 그와 정반대로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픈 서로 모순되는 욕망,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들고자 하는 욕구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해 타인들과 유리되고자 하는 상반된 욕구를 지닌 채 치열하게 읽고 쓰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또 치유 받으며 살아간다. 어쩌면 도스또옙스끼는 ‘나는 읽고 쓴다, 고로 나는 치유 받아 존재한다’는 명제를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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