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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군의 이름으로 : 6ㆍ25 출격 조종사이자 기록사진가 이강화 장군의 6ㆍ25전쟁 이야기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이강화 李康和, 1926- 이윤식 李允植, 1957-, 정리
서명 / 저자사항
대한민국 공군의 이름으로 = In the name of ROKAF : 6ㆍ25 출격 조종사이자 기록사진가 이강화 장군의 6ㆍ25전쟁 이야기 / 이강화 지음
발행사항
서울 :   플래닛미디어,   2014  
형태사항
431 p., 도판 [7]장 : 삽화, 초상화 ; 23 cm
총서사항
KODEF 안보총서 ;71
ISBN
9788997094530
일반주기
정리자: 이윤식  
주제명(개인명)
이강화   李康和,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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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723 2014z8 등록번호 111720705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KODEF 안보 총서 71권. 6.25 출격 조종사이자 기록사진가인 이강화 장군(예비역 공군 준장)이 겪은 6.25전쟁 이야기와 함께 자신이 직접 찍거나 소장하고 있는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130여 장이나 싣고 있어서 주목된다.

6.25전쟁 발발 이후 64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6.25전쟁 참전 용사들이 한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산 증인인 그들의 육성을 담아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을 근거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6.25전쟁에 참전한 산 증인의 생생한 육성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진들이 담겨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6.25 출격 조종사이자 기록사진가 이강화 장군의
6.25전쟁 이야기
*
“성공이든 실패든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하여
후대가 다시는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군력을 통해 본 6.25전쟁의 재해석

올해로 64주년을 맞는 6.25. 지금까지 우리는 지상군 위주의 6.25전쟁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은 어떤 활약을 했을까? 그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6.25 출격 조종사이자 기록사진가인 이강화 장군(예비역 공군 준장)이 겪은 6.25전쟁 이야기와 함께 자신이 직접 찍거나 소장하고 있는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130여 장이나 싣고 있어서 주목된다. 6.25전쟁 발발 이후 64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6.25전쟁 참전 용사들이 한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산 증인인 그들의 육성을 담아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을 근거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6.25전쟁에 참전한 산 증인의 생생한 육성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진들이 담겨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강화 장군은 대한민국 공군 1세대로서 6.25전쟁 당시 정찰기와 전투기를 타고 한반도 상공을 종횡무진 누비며 임무를 수행했고, 전쟁 후에는 공군 현대화를 위해 일했으며, 전역 후에는 공군역사기록단 자문위원으로 초창기 공군사를 발굴하고 보완하는 등 평생을 대한민국 공군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6.25전쟁 초기 한강철교 파괴 여부를 확인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특수정찰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공로로 1950년 11월에 공군 제1호 을지무공훈장을 받았고, 1952년 공지합동작전 시스템을 구축한 공로로 금성충무무공훈장을 받았으며, 1967년 공군 수송부대 파월 공로로 월남 정부로부터 명예1등훈장을 받는 등 12개 훈포장을 받았다.

이 책은 그동안 공군사발굴보완위원회와 공군역사기록단 역사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공군 정사(正史)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과 6.25전쟁 출격 조종사로서 그리고 작전장교로서 이강화 장군이 직접 체험한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1998년 9월 6일 공군참전군인회의 공군사발굴보완위원회를 설치하여 2001년 10월 31일까지 3년여 기간 동안 40여 차례 가진 회의 내용과 6.25전쟁에 참전한 인사들의 생생한 증언,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각종 자료들, 그리고 2010년 공군역사기록단 역사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회고한 내용들을 이강화 장군이 직접 찍은 사진 70여 장과 소장하고 있는 사진 60여 장과 함께 이 책에 담았다.

1949년 10월 1일 창군된 이래 대한민국 공군은 짧은 기간 동안 참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우리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 발발 당시 대한민국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는 L-4기와 L-5기 10여 대, 우리 국민의 헌금으로 1950년 5월 캐나다에서 도입한 T-6 훈련기 10대, 이렇게 총 20여 대가 전부였다. 전투기는 단 한 대도 없었다. 대한민국 공군 창설 후 3년여간 공군 1세대가 겪은 고난과 비참한 군영 생활은 상상도 못할 만큼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실상과 함께 6.25전쟁 기간 미 공군이 주축이 된 유엔 공군의 활약상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기간의 대한민국 공군의 활약상을 제대로 알려면 유엔 공군의 활약도 함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공군력을 통해 6.25전쟁의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첫째, 6.25전쟁은 항공전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 최초의 본격적인 항공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공군력을 과소평가하기도 했지만, 북한 인민군의 남진을 저지했던 항공작전, 낙동강 전선에서의 항공작전,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등은 항공전력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또한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평양대폭격작전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적의 심장부인 수도 평양을 가공할 공격력으로 맹타하여 적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은 중요한 작전이었다. 우리는 6.25전쟁을 통해 처음으로 본격적인 항공전을 경험했던 것이다.

둘째, 6.25전쟁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공지합동작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전쟁이었다. 351고지 전투 당시 351고지에 대한 함포사격이나 포사격은 고지 점령을 위한 효과 면에서 분명히 한계를 드러냈다. 351고지 전투에서 항공지원작전은 351고지에서 적과 교전 중인 지상군을 우리 공군이 지원한 항공작전으로, 항공지원작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이와 함께 6.25전쟁 당시의 공군 활약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지상군을 우리 공군이 직접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강화 장군은 실무자로서 미 공군으로부터 처음으로 공지합동작전 시스템을 배웠다. 이를 위해 미 공군의 B-29를 타고 전선 전역과 압록강 지역까지 적정을 살펴보면서 지상군에 대한 항공지원 개념을 터득했다. 그리고 당시 김영환 제10전투비행전대장의 지시로 작전처 주관으로 공지작전학교를 개설하여 명실공히 독자적인 공지합동작전을 펼칠 수 있는 요원을 자체적으로 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6.25전쟁 동안 항공전력은 결코 파괴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6.25전쟁 당시 공군은 인도주의적인 작전을 펼침으로써 비극적인 상황을 뛰어넘어 휴머니즘을 구현해냈다. 예를 들어, 평양미림기지철수 당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고아 수송작전과 장진호 전투에서 비상활주로를 만들어 미군 부상병 4,000여 명을 후송한 일, 잔여 병력의 탈출을 위해 부교 등 물자를 대량으로 투하하여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던 일 등은 6.25전쟁에서 항공전력이 파괴 임무 이외에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고,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강화 장군은 6146부대의 부대장인 딘 E.헤스(Dean E. Hess) 중령과 여의도 기지에서 수차례에 걸쳐 동반 출격을 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무고한 양민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는 헤스 중령의 모습에서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체득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 책은 대한민국 공군의 숨겨진 이야기들도 다수 소개하고 있다. 6.25전쟁 초기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제원도 모른 채 T-6기를 몰고 한강철교 파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찰하던 중 야크기의 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일, 적에게 점령당한 서울 상공에서 심리전단을 뿌리고 깜깜한 밤 귀환하던 중 활주로가 보이지 않아 사경을 헤맬 때 동료들이 준비한 차량 불빛을 보고 무사히 착륙하여 뜨거운 전우애를 느낀 일, 동료.후배 조종사들이 하나둘 돌아오지 않을 때 느낀 자괴감, 영화 <빨간 마후라> 제작 지원을 맡았던 경험, 미래의 항공전력이 될 꿈나무 양성을 위한 항공청소년단 창단 및 조종사 지원을 위한 창공회 설립, 특검단 시절 전차를 동원해 벙커 건설 비리를 밝혀낸 이야기, 월남전에 한국 지상군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공군 전투비행대대 파견을 추진했다가 무산되어 실전 경험을 놓친 이야기, 진급과 뇌물에 관한 이야기 등 이강화 장군이 직접 겪은 여러 일화들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공군의 발전 이면에는 ‘고난의 과정’을 극복한 선배들과 당시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에게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는 또 다른 방편이었다.”

‘6.25 출격 조종사’, ‘작전장교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작전통’, 그리고 그에게 또 하나의 타이틀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록사진가’라는 타이틀이다. 14살 어린 나이에 일본 유학을 가서 선진문물을 많이 배우고 오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학비를 쪼개 카메라를 구입한 것이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된 시작이었다. 그에게 카메라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통로였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는 소중한 수단이었다.

6.25전쟁 당시 이강화 장군은 조종사로서, 그리고 작전장교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모습을 틈틈이 카메라에 담았다. 위험한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면서 소중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카메라로 기록해갔던 것이다. 이강화 장군에게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는 또 다른 방편이었던 셈이다. 그의 사무실 캐비닛에 일련번호가 매겨진 앨범 수십 권에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는 이 사진들은 오늘날 공군사를 기록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책에는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사진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나의 마지막 임무는 왜곡된 공군사를 바로잡아 후대에 남기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강화 장군이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성공이든 실패든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하여, 후대가 다시는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공은 부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으로 남겨야 하며, 보잘것없는 결과나 실패라고 해서 누락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공군이 발간한 『공군사』에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중요한 창군사와 공군사를 함께 소개하여 구겨져 있는 부분을 바르게 펴서 공군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아울러 저자 이강화 장군은 6.25전쟁 당시 묵묵히 지상군 작전을 지원한 정찰비행부대의 활약상이 공군 정사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의 활약상을 발굴해서 그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말한다.

“사실을 왜곡하고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부각시키는 역사 기록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로자를 찾아내어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주고 그들의 명예를 찾아주어야 한다. 내가 공군사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왜곡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서 후대에 남겨야 한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공군 1세대로서 전역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후대에 남기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라는 말에서 그의 남다른 역사 인식과 기록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이강화(지은이)

1926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음악가의 꿈을 안고 14살 어린 나이에 일본 유학길에 올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종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 해방 후 우리 항공인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공군이 창군되면서 다시 조종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6?25전쟁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위해 대한민국 공군 작전장교로서, 그리고 조종사로서 활약하면서 당시 우리 공군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쟁이 끝나고 공군 현대화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F-86 제트기 비행훈련을 받았다. 1950년대 말부터 국방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방대학원 현대화에 기여했고, 1963~1964년 공군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전투비행대대 월남 파병을 추진하기도 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 특명으로 국방부 산하 특명검열단을 조직하고 제4부장으로 활약하면서 군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없애는 데 앞장섰다. 전역하기 전 미래 항공전력을 위한 꿈나무를 육성하기 위해 한국항공청소년단(KCAP)을 창단했다. 전역 후 공군참전군인회의 공군사발굴보완위원회를 설립하여 공군사를 발굴?보완하는 일에 앞장섰으며, 공군역사기록단 자문위원으로 활약했다. 전쟁 초기 이승만 대통령이 지시한 특수정찰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공로로 1950년 11월에 공군 제1호 을지무공훈장을 받았고, 1952년 공지합동작전 시스템을 구축한 공로로 금성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1967년 공군 수송부대 파월 공로로 월남 정부로부터 명예1등훈장을 받았다. 1943년 일본 다치아라이(太刀洗) 육군비행학교 졸업 1949년 4월 대한민국 육군 항공 소위 임관 1950년 6월 공군비행단 작전처장 1952년 6월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 작전과장 1952년 8월 미제5공군 파견(ALO) 1953년 3월 제10전투비행단 작전처장 1955년 10월 제1훈련비행단 제1훈련비행전대장 1958년 10월 국방대학원 교수 1963년 2월 최고회의(중앙정보부) 파견 근무 1963년 7월 공군대학 총장 1965년 1월 공군본부 작전국장 1965년 12월 공군본부 기획국장 1966년 10월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인사기획국장 1969년 7월 국방부 특명검열단 공군검열반장, 제4부장 1970년 9월 한국항공청소년단 단장(군외직) 1971년 3월 공군 준장 예편 을지무공훈장, 금성충무무공훈장 등 12개 훈포장 수상. 1951년 2월 25일~1952년 4월 25일 미 공군대학(Maxwell Air University) 교육 1952년 6월 10일~1952년 7월 10일 미 공지합동작전학교(Air Ground Operation School) 교육 1954년 9월 7일~1955년 4월 28일 미 고등비행훈련학교(Flying Training School Nerise A.F.B(USA) 제트기 비행교육 1956년 10월 5일~1957년 7월 29일 대한민국 국방연구원 1기생 연수 1958년 5월 6일~1958년 7월 20일 미 태평양지구연합참모대학(Pacom Joint Combaind Planing School Okinawa) 교육 1961년 단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이윤식()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건국대 법학학과와 한국외대 철학과 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1999년 『문학사상』소설 부문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비행기로 민심을 격발하고 장래 국내에 대폭발을 일으키기 위함이라』(민미디어, 2003년), 『항공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 창석 최용덕의 생애와 사상』(공군본부, 2008년), 『히말라야의 별』(책과 상상, 2008년),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 조국의 별 최용덕』(비씨스쿨, 2009년), 『대한민국 공군 정훈 60년사』(공군본부, 2009년) , 『항공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공군 청군가, 신화의 시간』(비씨스쿨, 2012년), 『항공독립운동과 임도현 비행사』(한국학술정보(주), 2012년)를 발표했다. 번역서로 『습관을 알면 문화가 보인다』(청림출판, 1997년)가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작가의 말 = 18
프롤로그 : 공군력을 통해 본 6·25전쟁의 재해석 = 22
'음악가'의 꿈, '조종사'의 길 = 35
 음악가를 꿈꾸다 = 35
 무사시노 음악학교 입학을 위해 일본으로 유학 가다 = 36
 바뀌어버린 인생 항로, 시작된 사진과의 인연 = 37
 동원령으로 후지전기주식회사에 징용되다 = 39
 일본 소년비행학교에 입교하다 = 41
탈출 = 46
 일본 육군항공대 폭격기 조종사 시절 = 46
 일본의 항복 = 48
 탈출 = 49
고향 하동으로 = 53
 나도 하동 사람이야 = 53
 악극단을 조직하여 계몽운동을 하다 = 55
 항공대 건설 동참 권유를 받다 = 57
'항공군'을 만들자 = 59
 해방 후 항공인들의 활동 = 59
 항공부대의 탄생 = 60
 공군 창군 7인의 주역 = 62
 본격적인 항공부대의 창설 = 62
"부관! 총이냐, 칼이냐?" = 66
 출신별 갈등 = 66
 사상적 갈등 = 67
 "부관! 총이냐, 칼이냐?" = 68
'공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육군항공사관학교'에 입교하다 = 70
 여자항공교육대 창설 = 70
 '육군항공사관학교'는 '공군사관학교' 전신이다 = 71
 조선경비대 초대 항공사령관 백인엽 장군과의 조우 = 72
"야, 빨리 나와!" = 74
 창군 초기의 열악한 급식 = 74
 "그래, 동초? 그럼 서초는 어딨나?" = 76
 공군 모자는 중학생 교모, 군복은 밀가루 포대로 = 77
"아, 지리산에는 언제 봄이 올 것인가?" = 78
 군 단결을 위한 공연 기획 = 78
 지리산공비토벌작전 = 80
억울한 영창 생활 = 84
 혼돈 = 84
 공산주의자들의 항공기 월북사건 = 86
 "보초님, 보초님, 담배 한 대 주이소" = 87
 또 하나의 월북사건 = 88
감격스런 공군 창군 = 90
 18172 = 90
 대한민국 공군의 편제 = 91
"나를 놀라게 하지 마!" = 92
 6ㆍ25전쟁 발발 전 우리의 상황 = 92
 "나를 놀라게 하지 마!" = 94
장작을 패다 맞은 6ㆍ25 = 97
 평온한 일요일 아침 = 97
 여의도 기지에서 수원 기지로, 다시 대전 기지로 = 98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 101
"쓰코미해라!"눈물 나는 신조어 = 103
 정찰기에서 손으로 폭탄을 던지며 싸우다 = 103
 김두만 중위의 '스핀 폭격' = 104
제원도 모른 채 조종한 T-6기 = 108
 원초적 조종 = 108
 나에게 주어진 특수임무: "한강철교 파괴 여부를 확인하라" = 112
3 대 1의 숨 막히는 공중전 = 117
 조종사에게 색적은 최선의 방어 = 117
 야크기의 기습공격 = 119
 필사적인 귀환 = 121
 미 군사고문단 L-5 연락기를 구조하다 = 123
 채병덕 장군과의 기구한 인연 = 124
 6146부대 헤스 소령과의 첫 만남 = 126
뜨거운 전우애가 이뤄낸 기적 = 128
 "제가 김두만 중위와 함께 가겠습니다" = 128
 전우애가 밝혀준 구원의 불빛 = 130
 자신의 희생을 예견하고도 명령에 복종한 조종사들 = 131
맥아더 원수 눈앞에서 벌어진 공중전 = 134
 맥아더 원수 눈앞에서 벌어진 공중전 = 134
 전쟁 초기 미 극동공군의 대응 = 137
'적전해산'이라는 오해를 부른 공군 철수작전 = 141
 우왕좌왕한 철수작전 = 141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다 = 143
남측 조종사와 북측 포병 관측장교의 조우 = 145
 나창준 조종사의 맹활약 = 145
 전구서 상사의 용감한 행동 = 147
 국민성금으로 마련한 T-6기와 7.7밀리 기관총의 활약 = 147
 천봉식 중위의 피격 전사 = 149
낙동강 전선에서의 유엔 공군 항공작전 = 152
 가공할 유엔 공군의 출현 = 152
 낙동강 전선에서 실시된 융단폭격의 허와 실 = 153
영천대첩과 공군 정찰비행대의 활약 = 156
 저평가된 낙동강 전선에서의 우리 공군의 항공지원작전 = 156
 정일권 총사령관의 뛰어난 용병술 = 159
 T-6 정찰비행대의 눈부신 활약 = 160
 행정장교 한해남 소령의 특수임무: 김천 간이비행장 건설 = 161
 F-51기의 대활약 = 162
인천상륙작전 당시 유엔 공군 항공작전 = 164
 적의 허를 찌르는 맥아더의 구상 = 164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항공작전 전개 시작 = 165
 우리 공군 정찰비행부대와 미 제5공군 전투비행부대의 긴밀한 협동 = 167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한 공군과 해군의 항공작전 = 167
 인천상륙작전 성공 뒤에는 철저한 항공작전이 있었다 = 169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인민군의 패주 = 170
여의도 기지와 평양 미림 기지 전개 = 172
 폐허가 된 수도 서울의 참혹한 광경 = 172
 서울 수복 후 북으로의 진격 = 174
 중공군의 출현 = 175
 여의도 기지 전개 = 176
 여의도 기지 작전 = 177
 평양 미림 기지 전개 = 179
 평양 미림 기지에서의 정찰작전 = 180
 영천대첩 후의 정찰비행부대 활약상 = 180
미 공군 정보장교 니콜스와의 만남 = 182
 폐허가 된 인민군 사령부 = 182
 인민군에게 끌려온 여학생들을 구하다 = 184
전란 와중에 없어진 포터블 축음기 평양에서 되찾다 = 187
 박범집 장군의 비행 사고 = 187
 전란 와중에 없어진 포터블 축음기 평양에서 되찾다 = 188
 평양의 어느 여인 = 188
전쟁이 낳은 만남과 이별 = 192
 영하 20도의 맹추위 속에서 버스를 몰다 = 192
 엇갈린 만남 = 193
 예상치 못한 미 공군대학 교육 = 195
 전쟁이 낳은 인연 = 197
전쟁고아 긴급 공수작전 = 205
 장난감 자동차 작전 = 205
 전장에 핀 꽃 = 206
장진호에서의 유엔 공군 항공작전 = 216
 전멸 위기 = 216
 역사적인 항공수송작전 = 218
미그-15기 부품 탈취작전 = 221
 제트기 간의 최초 공중전 = 221
 F-80과 미그-15기의 최초 공중전 = 223
 미그-15기 부품 탈취작전 = 223
 F-86 신예기의 활약 = 225
불꽃 튀는 대공포화 속으로 = 226
 단 2회의 F-51기 기종전환훈련 = 226
 불꽃 튀는 대공포화 속으로 = 228
 성질 더러운 야생마, F-51 무스탕 전투기 = 229
헤스와의 동반 출격 = 242
 전투기 조종사 에이스, 헤스 중령 = 242
 헤스의 주도면밀한 지상공격 = 244
 헤스 중령이 품고 있던 마음의 상처 = 246
김정렬 참모총장의 결단 = 258
 김정렬 참모총장의 단호한 결단 = 258
 육군항공대 창설을 위한 비행교육 = 260
 가족과의 재회 = 261
작전장교의 동분서주한 출격 = 263
 인정받은 대한민국 공군의 작전능력 = 263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위한 체계 구축 = 264
 지리산공비토벌작전과 ORI 검열 = 265
 '팔만대장경 수호'의 진실 = 266
대한민국 공군의 첫 단독작전 출격 = 284
 유엔 공군의 일원이 되어 성공적으로 완수한 첫 단독출격임무 = 284
 저공비행공격을 막기 위해 계곡 안에 쳐놓은 적의 그물망 = 286
 우리 공군기와 미 공군기가 뒤섞인 지상공격 = 287
 휴전협상 개시 후 미 공군의 치열한 공격과 막대한 피해 = 288
미 공군대학 도미 교육 = 316
 지휘관참모과정 교육을 위한 도미 = 316
 미국식 민주주의와 흑백인종차별 = 317
우리 지상군은 우리가 직접 공중지원한다 = 324
 공지합동작전 준비 = 324
 대한민국 공군의 높은 임무성공률 = 326
공지작전학교(AGOS) 개설 = 338
 제10전투비행단 창설과 공지작전학교 개설 = 338
 351고지 전투 지원작전 = 339
 유엔 공군의 헌신과 희생에 대하여 = 341
진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인정신'과 '신념'을 지키는 것이다 = 352
 집 마루에 놓인 쌀 한 가마 = 352
 '강릉 호랑이' = 354
 부대에 생긴 커다란 변화 = 355
빨간 마후라에 관한 여러 설과 진실 = 357
 빨간 마후라와 김영환 장군 = 357
 대한민국 공군의 상징이 된 빨간 마후라 = 359
자유당 의장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다 = 361
 여당에 유리한 강연을 거부하다 = 361
 자유당 의장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다 = 365
 마침내 좌천되다 = 368
비행단장의 꿈은 멀어지고 = 372
 국방대학원 '1년'이 '4년'이 되다 = 372
 비행단장의 꿈은 멀어지고 = 375
 미 태평양지역 연합참모대학에서 연수를 받다 = 378
영화〈빨간 마후라〉의 숨은 에피소드 = 382
 영화〈빨간 마후라〉와의 인연 = 382
 영화〈빨간 마후라〉시나리오 검토 = 383
 미증유의 히트곡〈빨간 마후라〉주제곡이 나오기까지 = 385
 기록은 곧 역사 = 387
5억 달러 군사원조지원금을 둘러싼 각축전 = 388
 "이 장군, 좀 양보해주시게나" = 388
실전 경험의 기회를 놓친 공군 = 391
 좌절된 전투비행대대 월남 파병 = 391
 월남이 더 간절하게 바랐던 한국 공군 전투비행대대 파병 = 392
 최초의 공군 해외파병부대인 '은마부대'의 탄생 = 393
 티우 대통령과의 재회 = 394
전차를 동원하여 비리를 밝히다 = 406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특검단 = 406
 특검단에 들어가기까지 = 407
 전차를 동원하여 비리를 밝히다 = 409
조건부 진급 제안을 거부하다 = 412
 조건부 진급 제안 = 412
 '일심보검' = 413
창공회 결성과 한국항공청소년단 창설 = 415
 창공회 결성 = 415
 한국항공청소년단 창설 = 416
성공이든 실패든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 426
 공군사 재정립은 나의 마지막 임무 = 426
 1단계: 공군사발굴보완위원회 발족 = 427
 2단계: 공군사발굴보완위원회 활동 및 중단 = 427
 3단계: 공군사발굴보완위원회 활동 재개 = 428
 연구 결과 = 428
 공군사, 계속 보완해야 한다 = 429
에필로그 : 나의 마지막 임무 =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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