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0 | 00000cam c2200205 c 4500 | |
| 001 | 000046153723 | |
| 005 | 20250807113757 | |
| 007 | ta | |
| 008 | 230712s2022 ulka 000c kor | |
| 020 | ▼a 9791185153490 ▼g 03830 | |
| 035 | ▼a (KERIS)BIB000016223168 | |
| 040 | ▼a 248019 ▼c 248019 ▼d 211009 | |
| 041 | 1 | ▼a kor ▼h jpn |
| 082 | 0 4 | ▼a 895.684008 ▼2 23 |
| 085 | ▼a 896.84008 ▼2 DDCK | |
| 090 | ▼a 896.84008 ▼b 2022 | |
| 245 | 0 0 | ▼a 작가의 산책 : ▼b 오늘은 또 어디를 걸어볼까? : ▼b 일본 유명 작가들의 산책잡담기 / ▼d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외]지음 ; ▼e 안은미 엮고 옮김 |
| 260 | ▼a 서울 : ▼b 정은문고, ▼c 2022 | |
| 300 | ▼a 267 p. : ▼b 삽화 ; ▼c 19 cm | |
| 500 | ▼a 공저자: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가타야마 히로코(片山廣子),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나카하라 주야(中原中也), 호리 다쓰오(堀辰雄), 스스키다 규킨(薄田泣菫), 구보타 만타로(久保田万太郞), 기노시타 모쿠타로(木下杢太郎), 고이데 나라시게(小出楢重), 데라다 도라히코(寺田寅彦), 도쿠토미 로카(德富蘆花), 오카모토 기도(岡本綺堂), 미요시 주로(三好十郞), 오카모토 가노코(岡本かの子), 미즈노 센코(水野仙子), 와카야마 보쿠스이(若山牧水),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와카스기 도리코(若杉鳥子), 가지이 모토지로(梶井基次郞), 이마이 구니코(今井邦子), 미야모토 유리코(宮本百合子), 사이토 모키치(齋藤茂吉), 나가이 가후(永井荷風),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요사노 뎃칸(與謝野철幹), 다케히사 유메지(竹久夢二) | |
| 500 | ▼a 도쿠토미 로카(德富蘆花)의 본명은 '도쿠토미 겐지로(徳富健次郎)'임 | |
| 700 | 1 | ▼a 芥川龍之介, ▼d 1892-1927, ▼e 저 ▼0 AUTH(211009)3624 |
| 700 | 1 | ▼a 太宰治, ▼d 1909-1948, ▼e 저 ▼0 AUTH(211009)12892 |
| 700 | 1 | ▼a 北原白秋, ▼d 1885-1942, ▼e 저 ▼0 AUTH(211009)144468 |
| 700 | 1 | ▼a 林芙美子, ▼d 1903-1951, ▼e 저 ▼0 AUTH(211009)111565 |
| 700 | 1 | ▼a 夏目漱石, ▼d 1867-1916, ▼e 저 ▼0 AUTH(211009)116804 |
| 700 | 1 | ▼a 片山廣子, ▼d 1878-1957, ▼e 저 ▼0 AUTH(211009)1739 |
| 700 | 1 | ▼a 坂口安吾, ▼d 1906-1955, ▼e 저 ▼0 AUTH(211009)88729 |
| 700 | 1 | ▼a 中原中也, ▼d 1907-1937, ▼e 저 ▼0 AUTH(211009)24555 |
| 700 | 1 | ▼a 堀辰雄, ▼d 1904-1953, ▼e 저 ▼0 AUTH(211009)137945 |
| 700 | 1 | ▼a 薄田泣菫, ▼d 1877-1945, ▼e 저 ▼0 AUTH(211009)145835 |
| 700 | 1 | ▼a 久保田万太郞, ▼d 1889-1963, ▼e 저 ▼0 AUTH(211009)144469 |
| 700 | 1 | ▼a 木下杢太郎, ▼d 1885-1945, ▼e 저 ▼0 AUTH(211009)75217 |
| 700 | 1 | ▼a 小出楢重, ▼d 1887-1931, ▼e 저 ▼0 AUTH(211009)172118 |
| 700 | 1 | ▼a 寺田寅彦, ▼d 1878-1935, ▼e 저 ▼0 AUTH(211009)116744 |
| 700 | 1 | ▼a 徳富健次郎, ▼d 1868-1927, ▼e 저 ▼0 AUTH(211009)58770 |
| 700 | 1 | ▼a 岡本綺堂, ▼d 1872-1939, ▼e 저 ▼0 AUTH(211009)88016 |
| 700 | 1 | ▼a 三好十郞, ▼d 1902-1958, ▼e 저 ▼0 AUTH(211009)47360 |
| 700 | 1 | ▼a 岡本かの子, ▼d 1889-1939, ▼e 저 ▼0 AUTH(211009)9845 |
| 700 | 1 | ▼a 水野仙子, ▼d 1888-1919, ▼e 저 ▼0 AUTH(211009)79833 |
| 700 | 1 | ▼a 若山牧水, ▼d 1885-1928, ▼e 저 ▼0 AUTH(211009)172119 |
| 700 | 1 | ▼a 島崎藤村, ▼d 1872-1943, ▼e 저 ▼0 AUTH(211009)73856 |
| 700 | 1 | ▼a 若杉鳥子, ▼d 1892-1937, ▼e 저 ▼0 AUTH(211009)172120 |
| 700 | 1 | ▼a 梶井基次郎, ▼d 1901-1932, ▼e 저 ▼0 AUTH(211009)85177 |
| 700 | 1 | ▼a 今井邦子, ▼d 1890-1948, ▼e 저 ▼0 AUTH(211009)172121 |
| 700 | 1 | ▼a 宮本百合子, ▼d 1899-1951, ▼e 저 ▼0 AUTH(211009)36030 |
| 700 | 1 | ▼a 齋藤茂吉, ▼d 1882-1953, ▼e 저 ▼0 AUTH(211009)145344 |
| 700 | 1 | ▼a 永井荷風, ▼d 1879-1959, ▼e 저 ▼0 AUTH(211009)26496 |
| 700 | 1 | ▼a 與謝野晶子, ▼d 1878-1942, ▼e 저 ▼0 AUTH(211009)97635 |
| 700 | 1 | ▼a 与謝野寛, ▼d 1873-1935, ▼e 저 ▼0 AUTH(211009)145737 |
| 700 | 1 | ▼a 竹久夢二, ▼d 1884-1934, ▼e 저 ▼0 AUTH(211009)128941 |
| 700 | 1 | ▼a 안은미, ▼e 편·역 |
| 900 | 1 0 | ▼a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e 저 |
| 900 | 1 0 | ▼a 다자이 오사무, ▼e 저 |
| 900 | 1 0 | ▼a 기타하라 하쿠슈, ▼e 저 |
| 900 | 1 0 | ▼a 하야시 후미코, ▼e 저 |
| 900 | 1 0 | ▼a 나쓰메 소세키, ▼e 저 |
| 900 | 1 0 | ▼a 가타야마 히로코, ▼e 저 |
| 900 | 1 0 | ▼a 사카구치 안고, ▼e 저 |
| 900 | 1 0 | ▼a 나카하라 주야, ▼e 저 |
| 900 | 1 0 | ▼a 호리 다쓰오, ▼e 저 |
| 900 | 1 0 | ▼a 스스키다 규킨, ▼e 저 |
| 900 | 1 0 | ▼a 구보타 만타로, ▼e 저 |
| 900 | 1 0 | ▼a 기노시타 모쿠타로, ▼e 저 |
| 900 | 1 0 | ▼a 고이데 나라시게, ▼e 저 |
| 900 | 1 0 | ▼a 데라다 도라히코, ▼e 저 |
| 900 | 1 0 | ▼a 德富蘆花, ▼e 저 |
| 900 | 1 0 | ▼a 도쿠토미 로카, ▼e 저 |
| 900 | 1 0 | ▼a 도쿠토미 겐지로, ▼e 저 |
| 900 | 1 0 | ▼a 오카모토 기도, ▼e 저 |
| 900 | 1 0 | ▼a 미요시 주로, ▼e 저 |
| 900 | 1 0 | ▼a 오카모토 가노코, ▼e 저 |
| 900 | 1 0 | ▼a 미즈노 센코, ▼e 저 |
| 900 | 1 0 | ▼a 와카야마 보쿠스이, ▼e 저 |
| 900 | 1 0 | ▼a 시마자키 도손, ▼e 저 |
| 900 | 1 0 | ▼a 와카스기 도리코, ▼e 저 |
| 900 | 1 0 | ▼a 가지이 모토지로, ▼e 저 |
| 900 | 1 0 | ▼a 이마이 구니코, ▼e 저 |
| 900 | 1 0 | ▼a 미야모토 유리코, ▼e 저 |
| 900 | 1 0 | ▼a 사이토 모키치, ▼e 저 |
| 900 | 1 0 | ▼a 나가이 가후, ▼e 저 |
| 900 | 1 0 | ▼a 요사노 아키코, ▼e 저 |
| 900 | 1 0 | ▼a 요사노 뎃칸, ▼e 저 |
| 900 | 1 0 | ▼a 다케히사 유메지, ▼e 저 |
| 945 | ▼a ITMT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6.84008 2022 | 등록번호 111882591 (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중 | 반납예정일 2026-03-28 | 예약 예약가능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세상 밖으로 걸어보자.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 작가들은 하나같이 글 잘 쓰기로 너무나도 유명한 대문호들이다. 그래서일까. 묘지로, 꿈에서, 역 앞에서, 모두 잠든 거리에서, 백화점에서 그리고 낯선 나라에서…… 작가가 가는 곳은 특별하지 않지만 표현은 특별하다. 작가의 감각은 공기에 예민하다. 냄새만으로도 거리를 표현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의 색깔과 냄새와 촉각을 한껏 풍성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잡다한 문제에서 벗어나 산책하면서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 파편은 어디론가 싹 달아나지 않는가. 걸으며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 깨닫는다. 머릿속 혼란이 가라앉거나 마음속 피로가 풀렸음을.
산책은 혼란스러운 잡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걸으면서 보이는 풍경과 들리는 소리와 코로 들어오는 냄새는 머릿속을 지배하던 잡념에서 자유롭게 만든다. 그리고 인생의 더 깊은 본질이 뚜렷한 모습으로 손바닥 위에 놓인다. 그것이 산책의 묘미이자 목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 작가들은 하나같이 글 잘 쓰기로 너무나도 유명한 대문호들이다. 그래서일까. 묘지로, 꿈에서, 역 앞에서, 모두 잠든 거리에서, 백화점에서 그리고 낯선 나라에서…… 작가가 가는 곳은 특별하지 않지만 표현은 특별하다. 작가의 감각은 공기에 예민하다. 냄새만으로도 거리를 표현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의 색깔과 냄새와 촉각을 한껏 풍성하게 받아들인다.
작가뿐이겠는가.
우리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잡다한 문제에서 벗어나 산책하면서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 파편은 어디론가 싹 달아나지 않는가. 걸으며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 깨닫는다. 머릿속 혼란이 가라앉거나 마음속 피로가 풀렸음을.
다 울었으면 일어나 걷자!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세계나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도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때로는 혼자 울어야만 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자, 다 울었으면 일어나 산책을 해봅시다. 일본 근대문학에서 ‘산책’이라는 주제로 글을 골라 엮은 이 책은 『작가의 마감』, 『작가의 계절』에 이은 ‘작가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이다. 글뿐만 아니라 세세한 작가 소개가 독서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나쓰메 소세키(지은이)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1867년 현재의 도쿄 신주쿠구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의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1900년 문부성 최초의 국비유학생으로서 영국에서 2년간 유학하며 영어수업법을 연구했으며 귀국 후에는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의 강사로 일했다. 1905년 발표 및 연재한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큰 호평을 받은 후 『도련님』 『풀베개』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1907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하여『우미인초』를 연재하면서 전업 작가로서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 후』 『문』 『마음』 등의 작품을 연재하며 독자들의 사랑과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16년 12월 9일, 『명암』을 집필하던 중 거듭된 위궤양 악화로 49세에 생을 마감했다.
다자이 오사무(지은이)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군의 대지주 집안에서 11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아버지는 명망 있는 정치가였다. 1930년 도쿄 제국 대학 불문과에 입학했다. 같은 해 긴자의 카페 여급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본인만 살아남았다. 좌익 활동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경찰에 체포된 뒤 청산하고, 1933년 다자이 오사무라는 필명을 사용한 첫 작품인 「열차」를 발표했다. 1935년 「역행」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으며, 1936년 첫 소설집 『만년』을 출간했다. 젊은 시절 여러 번의 자살 시도와 약물 중독으로 자기 파괴적인 생활을 했으나, 결혼 후 조금씩 안정을 찾으며 「여학생」(1939), 「후지산 백경」(1939), 「달려라 메로스」(1940) 등 그의 명성을 확립해 준 작품들을 발표했다. 1947년 발표한 『사양』은 당시 <사양족>이라는 유행어를 낳을 만큼 큰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1948년, 다자이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쓴 소설 『인간 실격』을 완성한 뒤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가와 수로에 뛰어들었다. 서른아홉 살 생일의 이른 아침, 그는 동반자와 함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파괴적이고 퇴폐적인 감수성으로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며 전후 일본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는 사회에서 낙오하고 지쳐 버린 사람들의 대변자로서 일본 현대 문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시마자키 도손(지은이)
시, 소설, 수필, 동화 등 문학의 전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해 일본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작가다. 1872년에 나가노현(長野縣) 니시지쿠마군(西筑摩郡) 미사카(神坂)에서 아버지 마사키(正樹)와 어머니 누이(縫)의 막내로 태어났다. 도손의 가문은 1513년에 선조가 기소(木曾)로 이주해 와서 대대로 촌장과 역참과 숙박업을 가업으로 이어 왔는데 바로 아버지 마사키가 본 소설 주인공 한조의 모델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권학편》 등을 배웠고 열 살 때 도쿄로 유학을 가서 매형 집에서 기숙하며 다이메이(泰明)소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 후 여러 곳으로 전전하며 15세 되던 해에 시바(芝)에 있는 영어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정신적 스승인 기무라 구마지(木村熊二)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해 11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메이지(明治) 학원 본과에 입학한다. 한때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18세 되던 해에 동경대 교양학부의 전신인 제1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실패를 계기로 문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21세인 1892년부터 잡지 《여학(女學)》에 습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에 들어선다. 22세에는 《문학계(文學界)》 창간 동인으로 참가하고 거기에 작품을 발표하며 필명인 도손(藤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26세 되던 해에 발표한 《새싹집(若菜集)》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무명에서 스타덤에 오른다. 특히 그 안에 수록된 〈첫사랑(初戀)〉이라는 7·5조의 정형시가 독자들을 단숨에 매료한다.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국민적 시인이라는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다. 그는 연이어 네 번째 시집 《낙매집(落梅集)》까지 간행하지만 시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산문으로의 전향을 염두에 두고 습작 삼아 수필 《지쿠마가와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를 발표한다. 이 작품도 명작으로 명성을 얻는다. 31세에는 〈옛 주인(舊主人)〉이라는 첫 단편소설을 발표하는데 풍기 문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발매를 금지당하고 만다. 33세에는 결연한 각오로 자비 출판을 계획하고 장인에게 자금 원조를 부탁하는데 이 작품이 1906년 35세에 출간되는 《파계(破戒)》다. 천민 계급의 차별 문제를 픽션으로 다룬 것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출세작이며 일본 자연주의 작품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1908년, 과거 22세 때 제자를 사랑한 나머지 학교를 사직하고 여행을 떠났던 자신의 사건을 소설로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고 간행한 것이 바로 《봄(春)》(1908)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른바 사소설 글쓰기가 유행하며 이 흐름이 일본 자연주의의 주류가 되었다. 39세에는 《집(家)》(1910)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하는데 출가한 누이의 가문과 친정의 두 가문의 가부장제하의 퇴폐와 붕괴의 과정을 그린 누이의 생애를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47세에는 상처하고 혼자 지내던 중 집안일을 돌보러 온 조카를 임신시킨 사실을 소설로 써서 발표하게 된다. 《신생(新生)》(1918)은 작가 자신의 치부 고백의 완결편이지만 “노회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라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혹평을 듣기도 한다. 58세부터는 본 작품인 《동트기 전》 집필을 시작한다. 그동안 축적해 온 작가적 역량을 총동원한 비장한 글쓰기였는데 이 작품은 그가 평생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왔던 “자아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 아버지를 추적한 것이며 그 아버지라는 메타포에 자신의 내적인 성찰과 고뇌도 함께 상감해 넣었다. 그와 동시에 프랑스에 도피 도중 우연히 목격한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전쟁 참화와 그에 따른 국가의 존재를 절감하면서 정치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는 문학적인 사명감을 이 소설을 통해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4세에 이 작품을 완결한다. 그리고 72세에 소설 《동방의 문》을 집필하던 중 사망한다.
나카하라 주야(지은이)
시인. 야마구치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문학에 재능을 발휘했다. 1934년에 시집 『염소의 노래』를 출판. 1937년 서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죽은 후 동료들이 『지난날의 노래』를 출간한다. 랭보 등 프랑스 시인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사카구치 안고의「술에 따라오는 것들」에서 알 수 있듯이 나카하라는 술 버릇이 나쁘고 취하면 싸움을 걸어 그를 피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도 스승인 이부세 마스지에게 나카하라와는 교제를 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한편,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나쁜 술 버릇에는 많은 친구들이 곤란했다고 하지만, 그를 그렇게 고독하게 만든 것은 주변의 책임이 없지 않다”며, 나카하라를 옹호하기도 했다.
하야시 후미코(지은이)
1903~1951.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닌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인기 작가가 된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 『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중에게 사랑받는 한편 다수의 작품이 영화, 연극,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1948년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하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는다.
사카구치 안고(지은이)
일본의 문학가.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炳五へいご). 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와 함께 일본의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無賴派)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평가된다.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시절부터 방랑벽과 방황이 심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 소설가 데뷔. 단편소설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단편소설 <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후 1946년 2차대전이 끝난 후 패전 직후의 시대를 분석한 '타락론'과 '백치'로 당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작가가 된다. 1931년에 발표한 1932년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직접 [明治開化 新十郎探偵帖]을 쓰기도 했다. 이를 원작으로 한 UN-GO가 애니메이션화되었고, 2020년 5월에 NHK에서 시대극으로 드라마화한다. 그 밖에도 여러 편의 추리소설을 썼고, 매스컴에서 스캔들에 대해 서투른 추측를 하면 아예 내 밑으로 들어와서 추리 소설을 배우라고 일갈한 적도 여러번 있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작품은 『투수살인사건(投手殺人事件)』, 『난킨무시살인사건(南京虫殺人事件)』, 『그림자 없는 살인(影のない犯人)』, 선거 살인사건, 불연속 살인사건 등이 있다. 시인 나카하라 츄야와 가까웠다. 사카구치 안고는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도쿠토미 로카(지은이)
1868년 구마모토현 출생. 1889년 도쿄로 올라와 언론인이자 사학자였던 형 소호가 운영하던 민유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하며 톨스토이 작품에 심취했다. 1890년 소설 『불여귀』로 이름을 알렸고, 1900년 자연 사색 수필 『자연과 인생』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그해 출판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사실적 자연주의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1906년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돌아와 『순례기행』을 선보였으며, 이듬해 톨스토이처럼 교외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지렁이의 농담』, 『신춘』 등을 남겼다. 1927년 9월 18일 쉰아홉 살에 생을 마감했다.
가지이 모토지로(지은이)
가지이 모토지로(梶井基次郎, 1901-1932)는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것이 융합된 간결한 묘사와 시정이 풍부한 맑은 문체로 「레몬(檸檬)」(1925), 「성이 있는 마을에서(城のある町にて)」(1925), 「겨울날(冬の日)』(1927), 「겨울 파리(冬の蠅)」(1928), 「벗나무 아래에는(櫻の樹の下には)」(1928), 「어둠의 화첩(闇の絵巻)」(1930), 「한가한 환자(のんきな患者)』(1932) 등 20여 편의 작품을 남긴 작가이다. 그는 문단에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31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그의 작품은 사후 점차 평가가 높아져 오늘날에는 근대 일본 문학의 고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지이는 불안정하고 민감한 정신 상태 속에 있었지만, 자의식의 과잉을 일으키는 초조함과 일상의 인식으로부터 해방된 지점에서 감각 자체를 응시하고 오감을 총동원해 그의 작품을 대표하는 은밀한 미의식을 찾는 일에 매우 의식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심경소설에 가깝고 산책에서 본 풍경이나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루며 자연주의나, 사소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감각적인 측면이 강한 독자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미요시 주로(지은이)
<일본현대희곡선>
호리 다쓰오(지은이)
190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23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만나 1927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사사받았다. 1929년 도쿄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예술파 문학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불안정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신선한 심리주의적 묘사라는 문학 세계를 꿋꿋이 고수했으며, 사랑을 통해 죽음을 넘어선 곳에서 진정한 생을 발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통해 사소설(私小說) 중심이었던 당시 일본 소설의 흐름에서 ‘지어낸 이야기(픽션)’로 낭만파 문학 형식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 말기부터 결핵 증상이 악화되어 전후에는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로 요양하다 1953년 사망했다. 시의 감수성을 지닌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성가족(聖家族)』 『아름다운 마을(美しい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등이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지은이)
1892년 일본 도쿄의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14년 기쿠치 간, 구메 마사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하고 〈라쇼몬〉, 〈코〉 등을 발표했는데, 〈코〉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면서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작풍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삶을 조롱하는 자조적인 작품들을 많이 썼다. 서른다섯 살 되던 해인 1927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사에서 관동대지진과 견줄 만큼의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35년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의 사주이자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기쿠치 간이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 현재까지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야모토 유리코(지은이)
1899년 도쿄도 출생. 1916년 열일곱 살에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로 데뷔, 천재 작가로 주목받았다. 1919년 미국 유학 중에 만난 언어학자 아라키 시게루와 결혼하지만 1924년 이혼했다. 이후 러시아문학자 유아사 요시코와 공동생활하며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돼 1927년 러시아로 건너갔다. 귀국 후 프롤레타리아 작가로 활약하는 한편 문예평론가인 미야모토 겐지와 결혼했다. 1933년 남편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투옥되었고 자신도 구속과 석방을 거듭했다. 전후 사회상을 여성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노부코』, 『반슈평야』 등 역작을 남겼다. 1951년 1월 21일 쉰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다케히사 유메지(지은이)
1884~1934. 그림 그리는 사람. 때로는 글도 쓰는 사람. 20세기 초 일본 다이쇼 시대의 낭만적인 예술적 흐름을 일컫는 ‘다이쇼 로망’을 대표하는 예술가. 그림 외에도 책 장정, 일러스트, 표지 디자인, 옷감 및 종이 패턴, 광 고, 르포, 시, 동시, 산문 등 전방위에서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예술 활동을 자유로운 정신과 스타일로 펼쳐 보였다. 화가로서는 특유의 몽환적이고 쓸쓸한 여체 묘사가 사랑받아 ‘유메지식 미인도’가 시대를 풍미했다. 작가로서는 자연과 동물과 세상을 글과 그림으로 스케치한 사계절 시화집 시리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달맞이꽃」과 같은 시는 유행가로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전쟁의 서막을 알리며 경직되는 시대 분위기 속에 차츰 세상에서 밀려나 만년에는 산골 요양소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가타야마 히로코(지은이)
도쿄에서 외교관의 딸로 출생했다. 상류계층에서 성장하며 익힌 서양적 기품과 교양을 바탕으로 시인, 수필가, 번역가로 활동했다. 미션스쿨인 도요에이와여학원을 다니며 영어와 서양 문화를 배우고, 졸업 후에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사사키 노부쓰나에게 사사했다. 시가집으로 『물총새』 『들에 살며』가 있다. 마쓰무라 미네코라는 필명으로 싱, 예이츠 등의 아일랜드 문학을 번역하여 일본에 아일랜드 문학을 소개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며 쓰보우치 쇼요, 모리 오가이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노년에 집필한 수필집 『등화절』은 제3회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상했다. 가타야마 히로코는 당대의 뛰어난 문인들과 문학적으로 정서적으로 깊게 교류했으며, 호리 다쓰오의 소설 『성가족』의 모델이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흠모했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기노시타 모쿠타로(지은이)
요사노 아키코(지은이)
일본의 시인이자, 작가, 사상가이다. 1901년, 스승이자 훗날 남편이 된 시인 요사노 뎃칸과의 연애, 갈등, 성애를 주제로 한 시집 ≪헝클어진 머리칼≫을 발표했다. 근대 신여성의 욕망과 투쟁을 관능미 넘치는 언어로 노래한 이 시집을 계기로 당시 젊은이들의 선풍적인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일약 일본 낭만주의 문학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평생 약 5만 수의 시와 15권의 사회평론집, 고전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의 현대어 번역, 동화 집필 등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했다. 1904년 러일전쟁에 출전하는 남동생을 위해 쓴 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는 일본의 대표적인 반전시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시인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남녀평등에 입각한 여성 교육, 여성의 경제적 자립, 여성의 정치 참여 요구 등 다양한 여성 의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한 여성운동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했다.
나가이 가후(지은이)
1879년 도쿄도 출생. 1900년 가부키 극장 전속 작가로 들어가 야학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며 에밀 졸라와 보들레르에 심취했다. 1902년 『지옥의 꽃』을 발표해 모리 오가이에게 극찬받았다. 1903년 미국을 거쳐 프랑스에 머물다가 1908년 귀국, 이듬해 출간한 『프랑스 이야기』가 풍기 문란이란 이유로 판매 금지당했다. 1910년 게이오대 문학과 교수가 되어 『미타문학』을 창간하고 편집했다. 이후 동시대 문명에 대한 혐오감을 토로하며 탐미주의 화류소설 『묵동기담』, 산책 수필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등을 남겼다. 1959년 4월 30일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
오카모토 기도(지은이)
소설가, 극작가. 도쿄 출생. 영국 공사관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버지에게서는 한시를, 숙부와 공사관 유학생들로부터는 영어를 배우게 된다. 도쿄일일신문에 입사해 기자로 일하면서 소설 『다카마쓰성』을 발표했다. 1902년 『고가네 범고래 소문의 높은 파도(金??高浪)』가 가부키좌(歌舞伎座)에서 상연되고 이후 『유신전후(維新前後)』(1908), 『슈젠지 이야기(修?寺物語)』(1911) 등이 성공을 거두며 신가부키를 대표하는 극작가가 된다. 1916년,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아 일본 최초의 체포물인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세계괴담 명작집(世界怪談名作集)』, 『중국괴이 소설집(支那怪奇小?集)』을 편역했다. 후진 양성을 위해 월간지 『무대(舞台)』를 간행하고 계속 희곡을 집필했다. 연극계 최초의 예술원회원이 되었다.
데라다 도라히코(지은이)
187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사준 현미경으로 과학적 호기심을 키웠고, 고등학교 때 영어 교사였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문학에 눈을 떴다. 도쿄대학 이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소세키의 소개로 문인들과 교류하며 수필가로도 활약했다. 특히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한 의문을 찾아내 물리학자 특유의 시선으로 고찰한 글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1935년 전이성 뼈종양으로 쉰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연과 동물, 사회와 사람을 관찰하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글 쓰는 과학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 등장인물인 괴짜 물리학자 ‘간게쓰’ 군의 실제 모델. 일본 근대 물리학의 선구자를 묻는다면 대다수 일본인은 데라다 도라히코라고 답한다. 최초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묻는다면 이 또한 그라고 답할 것이다. 훌륭한 과학자도 많고 뛰어난 문필가도 많지만, 데라다 도라히코처럼 두 영역에서 빛난 이는 드물다.
구보타 만타로(지은이)
시인, 소설가, 극작가. 도쿄 출생으로 에도 시대의 옛 정취, 도쿄 서민들의 정서와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린 하이쿠를 많이 남겼다. 문인 하이쿠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기타하라 하쿠슈(지은이)
스스키다 규킨(지은이)
후쿠오카현 출생. 초기에는 시인으로 활동하면서,『봄이 간다』『백양궁』등의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후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에 입사하여 1915년부터 마이니치신문에 수필「차 이야기」연재를 시작. 이 수필은 매체를 바꿔 가면서 1930년까지 총 811회 발표했다. 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기쿠치 칸 등 차기 문학자들에게 발표 기회를 부여하며, 신인 발굴이라는 측면에서도 일본 문학계에 큰 공적을 남겼다.
사이토 모키치(지은이)
1882~1953년. 1910년 도쿄제국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전공은 정신의학으로, 정신과 의사이자 가인으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적광』, 『아라타마』, 『한운』, 『하얀 산』, 『동마만어』,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 『사이토 모키치 전집』(전36권) 등이 있다.
와카스기 도리코(지은이)
1892년 도쿄 시타야에서 태어났다. 1세에 이바라키현 고가시에 있는 게이샤 오키야의 양녀로 들어갔다가, 다시 다른 곳의 양자로 보내진다. 《女子文壇》에 투고를 시작하고, 요코세 야우를 스승으로 섬긴다. 16세에 중앙신문 기자가 되고, 센코 미즈노, 구니코 이마이, 이쿠타 하나요와 돈독한 우정을 쌓는다. 《創作》,《珊瑚礁》 등의 작품을 통해 1925년 《文芸?線》에서 작가로서 평가받으며, 《?旗》, 《若草》, 《婦人公論》등에 작품을 발표했다.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고, 미야모토 유리코, 사타 이네코와 《?く婦人》의 편집 활동에 참가했다. 1933년에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구류되고, 1937년 45세에 병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오카모토 가노코(지은이)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아토미 여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문예세계』, 『요미우리신문』 등에 단가, 시를 투고했다. 작은 오빠, 그리고 친구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영향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명성』과 『스바루』 등에 단가를 발표했다. 1910년에 우에노 미술학교의 학생이었던 오카모토 잇페이와 결혼하나 서로의 강한 개성이 격돌했고, 가족의 불행도 있었기에 결혼생활은 파탄을 맞이했다. 그 결혼생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부가 종교편력을 시작했고 결국에는 대승불교에 다다르게 되었다. 1936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문단에 등장. 그 후, 「모자서정」, 「가령」, 「노기초」 등을 발표했다.
와카야마 보쿠스이(지은이)
미즈노 센코(지은이)
고이데 나라시게(지은이)
이마이 구니코(지은이)
요사노 뎃칸(지은이)
안은미(옮긴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도쿄에서 일본어를 공부했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매혹된 책을 직접 독자에게 전하고픈 마음에 두 언어 사이를 왕복하는 번역가의 길에 들어섰다. 낯선 일본 근대 문학을 알아가는 마중물이 되길 바라며 ‘작가 시리즈’를 기획, 『작가의 마감』, 『작가의 계절』, 『작가의 산책』, 『작가의 서재』를 선보였다.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엮어볼까, 궁리하며 매일 작가 전집을 뒤적이고 일본 전자도서관을 들락날락한다. 옮긴 책으로는 『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꿈꾸는 도서관』, 『코드 붓다』 등이 있다.
목차
1장 동네 한 바퀴 홀로 어슬렁어슬렁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고후 정찰 _ 다자이 오사무 어허, 짝짝 _ 기타하라 하쿠슈 셋집 구하기 _ 하야시 후미코 화재 _ 나쓰메 소세키 장미 다섯 송이 _ 가타야마 히로코 다이고 마을 _ 사카구치 안고 산책 생활 _ 나카하라 주야 네잎클로버 _ 호리 다쓰오 풀 베는 냄새 _ 스스키다 규킨 2장 산책자의 마음 연말의 하루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연말 _ 구보타 만타로 꽃집 창문 _ 가타야마 히로코 거리 산책자 _ 기노시타 모쿠타로 장난이 아니다 _ 다자이 오사무 산보 잡감 _ 고이데 나라시게 백화점에서, 여름날 오후 _ 데라다 도라히코 어느 밤 _ 도쿠토미 로카 긴자의 아침 _ 오카모토 기도 걷는다는 것 _ 미요시 주로 3장 자연을 거닐다 회오리바람 _ 스스키다 규킨 복숭아가 있는 풍경 _ 오카모토 가노코 여름 들길 _ 미즈노 센코 어느 날 점심 _ 와카야마 보쿠스이 보리밭 _ 시마자키 도손 아사마산 기슭 _ 와카스기 도리코 찔레나무 _ 데라다 도라히코 벚나무 아래에는 _ 가지이 모토지로 귤밭 산책 _ 기타하라 하쿠슈 눈 녹은 물 _ 이마이 구니코 4장 낯선 거리에서 안개 _ 나쓰메 소세키 파리 가을을 걷다 _ 오카모토 가노코 나폴리의 일요일 _ 하야시 후미코 밤꽃 _ 오카모토 기도 언덕 _ 미야모토 유리코 모자를 벗다 _ 사이토 모키치 밤 산책 _ 나가이 가후 지하 묘지 _ 요사노 아키코 물 위 거리 _ 요사노 뎃칸 꽈배기빵의 노래 _ 다케히사 유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