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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고사 : 사대주의와 일제 잔재를 벗어나 사료로 우리 고대사를 보다 (2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조성훈, 1965-
서명 / 저자사항
한 상고사 : 사대주의와 일제 잔재를 벗어나 사료로 우리 고대사를 보다 / 조성훈 지음
발행사항
서울 :   북랩,   2023  
형태사항
618 p. : 삽화(일부천연색) ; 23 cm
기타표제
한자표제: 韓 上古史
ISBN
9791168366862
서지주기
참고문헌: p. 60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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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1 1 ▼a Korean ancient history : ▼b migration and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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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1 0 ▼a Cho, Seonghun, ▼e
945 ▼a ITMT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2 2023z2 등록번호 111887867 (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이 책은 사대주의와 일제가 날조한 우리 역사를 구해낸다. 일제 부역자를 승계하여 일제의 소설을 역사로 우기는 소위 강단사학자들의 비학문성을 송곳처럼 파고든다. 그리고 있었던 그대로의 우리 역사를 드러낸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야 최초로 진정한 상고사를 가지게 되었다. 낙랑군은 조한전쟁 이전의 한나라 영토에 설치된 군이다. 부여는 고구려 북쪽에 있었던 부여와, 한나라 현토군 옆 고구려 남쪽에 있었던 부여(비류백제)의 둘이다. 후한의 부용국이 된 부여는 비류백제이다. 북경은 여율왕 때부터 줄곧 고구려의 영토였다. 고구려가 후한 초기 후한으로부터 조공을 받은 사실이 후한서와 삼국사기에 기재되어 있다. 백제와 위의 전쟁은 중국의 신뢰성 있는 사서 5개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백제와 전연도 싸워서 전연에 백제의 포로가 있었다. 백제와 신라의 고향은 황하 하류 동쪽 바닷가이다. 왜와 예는 같다. 신라는 황하 하류에서 한과 왜(예)가 결합하여 건국한 나라이다. 삼국사기의 상당 수 기사들은 황하 동쪽 제수 북쪽의 韓 지역과 그 부근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은 韓지역에서 있었다(백제는 한강 이남을 상실한 적이 없다). 이 책은 韓을 회복하여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밝혔다. 백제주민인 왜가 영산강에 살았다. 이들은(포상팔국) 3세기 초 가야를 공격했다. 이들은 광개토대왕에 대항하는 백제의 심한 동원에 시달리다 399년 신라로 도망 갔고, 이들이 광개토대왕의 명령으로 나라에 옮겨진 후 대왜로 불리어졌다. 이들은 열도에서도 피지배민으로 야마토왕조를 만든 적이 없다. 송서 왜5왕은 백제 관료이다. 일본서기는 열도에 있었던 한반도 이주민들의 소국을 일본(백제의 별칭)이 다스리는 이야기인데, 조선총독부는 임나=가야라 하면서 일본서기의 내용이 한반도 남부에 대한 이야기라고 날조하였다. 이 밖에도 많은 놀라운 사실들이 탄탄한 사료적 근거와 치밀한 논증으로 서술되고 있다.

사대주의와 일제 잔재를 벗어나 사료로 우리 고대사를 보다

현재의 역사는 조선총독부가 창작한 소설이다.
이 책이 그 소설성을 입증하고 진실을 밝힌다.
상위 1%의 한국인은 반드시 이 책의 서문이라도 읽어야 한다.

역사는 창작 소설이 아니다. 사료를 통해 과거의 사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나 타국을 침략할 목적으로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상한 목적하에 쓰인 소설이 역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창작 소설 수준의 유사 역사학이 판을 치고 있다. 필자의 어조가 강하여 거부감이 들더라도 조금만 더 인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필자는 최대한 억제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낙랑군은 조선이 아니라 한나라 영토에 설치된 군이다. 당시 전쟁에 이기면 토착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주시키는 것이 관행이었다. 중국 측 사료에 의해 낙랑군이 요동고새 내부의 원래의 한나라 영토에 있었다는 것이 입증된다. 삼국지와 후한서는 단군조선이 신한(진한) 마한 변한의 삼한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부여는 추모(주몽)가 도망친 동부여와 비류가 세운 예부여(비류백제)의 두 개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중국 동해안의 백제 유민 세력을 기반으로 하였다. 대화왜는 백제 주민이었던 전라도 왜가 신라로 도망가서 포로로 지내다가 광개토대왕의 명령으로 나라의 고구려 분국에 이송된 피지배민이다. 도대체 야마토라는 왜계 정권이 성립될 여지가 없다. 열도는 가야계의 지배, 백제의 담로 지배, 5세기 백제와 고구려의 남북국 시대, 6세기 이후 백제 지배의 역사를 거친다. 칭기즈 칸은 震國王인데, 이는 그가 大震(발해)을 계승하였음을 의미한다. 백제와 신라의 고향은 황하하류이다. 추모(주몽), 즉 고구려는 한나라의 부용세력으로 출발했고, 유리왕은 왕망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홍산문화는 배달국을 증명한다. 하가점하층문화는 삼한조선(고조선 전기)을 증명한다. 치우는 배달국에서 남하하여 먼저 와서 중국인을 지배했던 황제와 싸웠다. 번조선은 중국 동부를 지배했다. 서언왕은 번조선 남부의 왕이다. 칼돈은 고조선의 화폐이고, 칼돈이 발견되는 곳은 고조선의 강역이다. 만리장성은 북경 남쪽 보정시에서 시작한다. 필자의 이러한 주장은 거짓말이거나 정신 나간 환빠의 주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주장은 객관적 사료에 기반하고 있다. 간명하게 기존의 주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아래 사례를 살펴본 후에, 필자가 정신 나간 환빠인지를 판단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삼국지』는 대방군에서 韓을 지나 남으로 동으로 7,000여 리를 가야 김해에 도달한다고 한다. 대방군이 황해도라는 소위 강단사학계의 주장은 소설에 불과하다. 『후한서』도 낙랑군의 변경 즉 대방군에서 김해까지 7,000여 리라 한다. 당시에 韓은 황하 하류의 동쪽, 제수의 북쪽이었고 낙랑군과 대방군은 韓의 서북쪽이었다.
동천왕은 관구검에게 패하였는데,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양서』 「동이전」, 『북사』 「고구려전」에 의하면 관구검은 동천왕이 옥저로 도망가자 왕기를 시켜 추격하게 하였고, 추격군은 옥저를 지나 1,000여 리를 추격하여 관구검기공비를 세웠다. 그 관구검기공비가 집안 판석령에서 발견되었다.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은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조조의 위나라가 고구려를 통쾌하게 이긴 것을 기록한 것이므로, 크게 왜곡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부분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집안 서쪽 1,000여 리에 옥저가 있었고 그 서쪽에 고구려의 수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소위 강단사학계는 옥저는 한반도 동해안에만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양서』 「동이전」, 『북사』 「고구려전」이라는 사서와, 관구검기공비를 무시하고 옥저의 위치와 고구려의 강역에 관해 소설을 쓰고 있다.
『수서(隋書)』는 고구려에 평양성 國內城 漢城의 세 도회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의 평양에서 漢城이라 기록된 고구려의 각자 성석(刻字城石)이 출토되었다. 고구려의 평양은 고려시대 때 서경이라 하였다. 김부식은 묘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경으로 가면서 안북대도호부에 이르러 다른 부대와 합류하는데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은 안북대도호부가 지금의 안주라고 한다. 그들의 말에 따라 고려의 서경을 지금의 평양이라 하면 모든 토벌군이 서경으 로부터 북쪽으로 직선거리 70㎞까지 간 것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란군이 바로 개경으로 남하하여 임금을 모시면 순식간에 반란군과 토벌군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즉 지금의 평양을 고구려의 평양으로 볼 수는 없고 고구려의 평양은 최소한 안주 북쪽에 있었고, 현재의 평양은 각자성석이 밝히는 바와 같이 고구려의 漢城이라고 보아야 한다. 소위 강단사학계는 서울 강북이 고구려의 한성이라 하는데, 강북은 주로 백제의 영토였고, 고구려가 점령한 시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국경이 도회지가 되기는 어려우며, 각자성석이라는 명백한 증거에 반하므로, 그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소설에 불과하다.
- <서문> 중에서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조성훈(지은이)

1965년에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 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제35회 행정고등고시 재경직에 합격했다. 미국 오레곤 주립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세청, 조세심판원,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했으며, 국세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글로벌한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서문
국문 요약

Ⅰ. 서
1. 연구 필요성과 목적
2. 연구 범위와 방법

Ⅱ. 환국과 배달국
1. 환국과 배달국의 성립
2. 환국과 배달국 과잉인구의 이주
3. 범집단(=예=왜)의 이주
4. 고인돌집단의 이주

Ⅲ. 조선
1. 삼한조선의 성립
2.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이 기술하는 삼한조선
(1) 진수와 범엽의 실수
(2) 조선의 삼한과 서기전 2세기 이후 삼한의 분리
(3) 강단유사사학의 날조
3. 삼조선의 성립
(1) 숙신의 辰韓 지역 지배
(2) 기자조선의 허위성
(3) 辰韓人의 남하와 番韓의 변화
(4) 강단유사사학의 동이 날조
(5) 삼조선의 관계
4. 갈석산과 연나라의 위치 비정
(1) 갈석산의 위치
(2) 연나라의 위치
5. 삼조선의 변화
(1) 번조선 남부
(2) 번조선 북부와 제의 경계
(3) 화폐가 증명하는 삼조선의 강역과 경제
(4) 한후국=산융=동호와 ‘흉노’=융적
(5) 신조선의 멸망과 대부여의 건국
(6) 무역로의 붕괴와 삼조선 체제의 해체

Ⅳ. 열국시대
1. 북부여의 건국과 열국시대의 시작
2. 예맥조선과 한사군
(1) 예맥조선
(2) 왕검성과 낙랑군의 위치
(3) 낙랑군 왜곡의 과정
(4) 한사군의 날조성
(5) 요수(遼水)의 위치
3. 번조선 지역(=韓 지역)의 변화
(1) 韓의 위치 비정과 특성
(2) 韓의 변화
4. 동옥저, 북옥저, 남옥저
5. 고두막국과 동부여
6. 고구려의 건국과 초기의 영토확장
(1) 고구려는 요동 오환이 건국
(2) 고구려의 건국 도읍지
(3) 고구려 국호와 북부여 계승
(4) 초기 수도 이전
(5) 초기의 영토 확장
(6) 고구려 초기 후한과의 관계
(7) 요동군, 요서군, 현도군의 이동
7. 신라의 건국과 경상도로의 이동
(1) 韓에서 건국
(2) 신라의 경주로의 이동
(3) 김알지의 계림국 합류
8. 백제 도읍지, 영토, 무역
(1) 백제의 시조와 건국 시 도읍지
(2) 중국 사서가 기술하는 백제의 요서 진평
(3) 백제와 낙랑군
(4) 백제와 말갈
(5) 동서(東西) 양도제(兩都制)
(6) 개로왕이 죽은 한성과 고구려의 남진정책
(7) 요동반도백제와 신당전쟁 후의 신라 강역
(8) 열도백제
(9) 기타 백제의 강역
9. 중국 동해안의 백제 유민
(1) 당나라의 백제 유민
(2) 오월국(吳越國)과 무염선원(無染禪院)
(3) 고려와 백제 유민
(4) 명나라의 백제 유민
(5) 나라는 망해도 유민은 남는다
10. 예부여(=왜부여=비류백제)
(1) 예부여의 건국과 동부여와의 구별
(2) 예부여의 변화
11. 고구려 수도의 변동
(1) 환도성
(2) 평양성(지금의 요양)
(3) 황성
(4) 장안성
12. 韓 주변의 공방
(1) 고구려의 후한 공격
(2) 고구려 예부여 韓·濊와 공손씨
(3) 백제 韓·濊와 조위
(4) 고구려·백제·예부여와 전연
(5) 고구려·백제·예부여와 후연
(6) 고구려·백제·예부여와 위
(7) 고구려와 북주
(8) 고구려와 수
(9) 고구려와 당
13. 가야
(1) 가야의 건국
(2) 新錢이 증명하는 김일제 후손의 이주
(3) 가야의 영토와 경제
(4) 소승불교의 전래
(5) 가왜·신왜전쟁
(6) 가야 왕권의 변동
(7) 가야의 멸망
14. 열도의 변화

Ⅴ. 강단·일제유사사학의 열도 고대사 날조
1. 일본(백제)을 야마토왜로 날조
(1) 「일본서기」의 일본은 백제이다
(2) 일제유사사학의 심리
(3) 「일본서기」에 숨겨진 진실
2. 일제유사사학과 강단유사사학 비교
3. 강단유사사학의 대하소설 「야마토임나」
(1) 진경대사와 강수
(2) 광개토대왕릉비의 임나
(3) 신라7국
(4) 가야의 서부 국경
(5)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
(6) 강단유사사학의 비학문성과 ‘임나=가야’ 교시 추종성

Ⅵ. 난하 갈석산설의 문제점
1. 난하 갈석산설의 무근거성
2. 난하 갈석산설의 폐해

Ⅶ. 결

참고문헌
ABSTRACT

관련분야 신착자료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202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