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국내 사료(史料)의 빈곤(貧困) = 12
Ⅱ 우리 상고사(上古史) 이해의 전제조건(前提條件) = 22
Ⅲ 동이(東夷)는 중국대륙 문화의 주역 = 36
1. 中國이란 말의 유래(由來) = 36
2. 중국의 동이(東夷) 고조선(古朝鮮)에 대한 인식(認識) = 38
3. 한원(韓苑)에 기술된 三韓은 어디인가? = 53
Ⅳ 부여(夫餘)ㆍ구려(句麗)ㆍ한(韓)은 언제부터 어디에 있었을까? = 58
1. 부여(夫餘)ㆍ구려(句麗)ㆍ한(韓)은 BC 11세기 이전의 상은(商殷)시대에도 있었다 = 58
2. 부여(夫餘)의 발상지(發祥地)는 어디였을까? = 71
3. 한혁(韓奕)은 한(韓)의 조상인가? = 78
Ⅴ 고구려의 발상지(發祥地)에 대한 재고(再考) = 90
Ⅵ 한사군(漢四郡)은 날조(捏造)이다 = 112
1. 한사군(漢四郡)의 한반도 설치ㆍ존속 설(說) = 119
2. 浿水를 遼河 支流의 太子河에 比定하는 설(說) = 126
3-1. 洌水ㆍ浿水를 난河에 比定하는 설(說) = 134
3-2. 한사군(漢四郡)을 난河 상류에 比定하는 설(說) = 138
4. 上谷 以東 濊貊朝鮮에 漢의 2郡이 있었다 = 142
5. 衛滿朝鮮의 漢四郡은 허구(虛構)이다 = 150
Ⅶ 대방군(帶方郡)은 어디에 있었을까? = 164
1. 대방군(帶方郡)이 황해도 봉산군에 있었다는 설(說) = 167
2. 한반도에 北ㆍ南 帶方郡이 있었다는 설(說) = 171
3. 난하(난河) 동쪽에 낙랑군, 그 남쪽 하류지역에 帶方郡이 있었다는 설(說) = 176
4. 공손연(公孫淵)이 주살(誅殺)된 이후에는 대방군은 어디에 있어야 사리(事理)에 맞는가 = 181
Ⅷ 부여융(扶餘隆)의 墓誌銘에 새겨진 백제(百濟) = 186
1. 묘지명 해설 = 186
2. 백제사(百濟史)의 수수께끼 = 229
Ⅸ 신라사(新羅史)의 미스터리 = 238
1. 무슨 이유로 倭는 新羅만을 침범(侵犯)했을까? = 238
2. 영일군과 울진군의 고비(古碑)에 새겨진 신라 = 253
3. 신라의 연원은 흑해(黑海)지역에서 찾아야 하는가? = 254
4. 金氏 신라 왕실은 흉노(匈奴)의 후예(後裔)인가? = 255
5. 三國遺事에 기록된 경주의 戶數로 본 신라 = 257
6. 통일신라시대의 王陵이 중국대륙에 있다? = 258
Ⅹ 韓神을 봉사(奉祀)하는 일본 왕실 = 260
1. 사람이 이동하면 언어도 그 이동한 고장의 말에 섞여 전해지게 마련이다 = 260
2. 일본열도의 초기 지배층은 변진(弁辰)의 왕족이었다 = 276
3. 가야ㆍ신라ㆍ백제ㆍ고구려 사람들이 일본에 도래하여 개척한 길을 추적(追跡) 해 본다 = 287
4. 日本은 왜국(倭國)이 아니다 = 308
XI 伽倻族은 南方 몽골로이드(Mongoloid)인가? =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