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계간 「아시아」 여름호에 단편 '달팽이들'을 발표하며 등단한 하재영의 첫번째 소설집. 세대론적인 현실인식으로 무장한 감수성을 서늘한 유머와 톡톡 튀는 문체로 담아냈다. 학교든 사회든, 혹은 가정에서든 '관계' 속에서 오히려 존재감을 잃고 결국 콤플렉스 덩어리로 전락하고 마는 그의 주인공들은 그럼에도 냉소하되 절망하지 않고 담담하되 유머를 잃지 않는다.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달팽이들'에는 모든 관계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원룸에 가두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자기혐오와 열등감과 콤플렉스는 타인의 시선과 상대적 박탈감 탓이라는 깨달음을 일찍이 인정한 주인공은 웹디자이너로 원룸에 살면서 텔레비전, 인터넷, 디자인 작업, 잠으로 사등분된 하루의 일상을 산다.
자전적 연작소설로 읽히는 '타인들의 타인-17세'와 '타인들의 타인-1세'는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을 법한 콤플렉스와 열등감의 경험들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애인의 폭행과 납치를 경험한 적 있어 애초에 정상적인 남녀관계를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 태제를 만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 '고도리', 혼자 밥 먹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같이 밥 먹을래요?' 등 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2006년 계간 『아시아』 여름호에 단편 「달팽이들」을 발표하며 등단한 하재영의 첫번째 소설집 『달팽이들』이 출간되었다. 세대론적인 현실인식으로 무장한 감수성을 서늘한 유머와 톡톡 튀는 문체로 담아내며,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학교든 사회든, 혹은 가정에서든 ‘관계’ 속에서 오히려 존재감을 잃고 결국 콤플렉스 덩어리로 전락하고 마는 그의 주인공들은 그럼에도 냉소하되 절망하지 않고 담담하되 유머를 잃지 않아 더욱 공감을 자아낸다. 일상의 미세한 균열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줄 아는 신인작가의 섬세한 소설미학이 빛나는 소설집이다.
콤플렉스와 관계의 사회학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달팽이들」에는 모든 ‘관계’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원룸에 가두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자기혐오와 열등감과 콤플렉스는 타인의 시선과 상대적 박탈감 탓이라는 깨달음을 일찍이 인정한 주인공은 웹디자이너로 원룸에 살면서 텔레비전, 인터넷, 디자인 작업, 잠으로 사등분된 하루의 일상을 산다. 그렇게 한달씩 바깥출입을 하지 않곤 하는 주인공의 옆집에서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한다. 가끔씩 들러서 쎅스만 하고 황급히 돌아가는 남자와, 남자가 돌아간 뒤 황망히 남았을 여자를 상상한다. 그러나 주인공 역시 대학시절 연인이었던 선배와 몇년 만에 연락이 닿아 두세 달에 한번씩 몸을 섞곤 하다 헤어진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날 형사들이 찾아와 실종사건에 연루된 옆집 사람에 대해 묻는다. 그동안 막연히 직장에 다니는 여자의 모습을 상상했으나 옆집에는 대학생이 살고 있었고, 불륜관계라고 믿었던 남자의 존재조차 혼란스러워진다.
자전적 연작소설로 읽히는 「타인들의 타인-17세」와 「타인들의 타인-1세」는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을 법한 콤플렉스와 열등감의 경험들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사춘기시절 나보다 훌쩍 커버린 여동생, 몸매며 외모에서 월등한 발레 학원 친구, 유일한 단짝친구와 그 친구를 빼앗아간 또다른 친구 등 타인과의 관계 속에 끝없이 자신의 열등함을 확인하게 된다. 「타인들의 타인-17세」에서 어린시절 옆집에 살던 성휘는 “네가 좋아”라고 고백했으나 몇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나서는 오히려 동생에게만 관심을 표한다. 또 발레 학원에서 맨 중앙 무대를 차지할 정도로 촉망받는 학생이었다가 어느날 새로 온 다른 친구에 밀려 나날이 폭식과 과식으로 몸을 불리는 지경에 이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타인들의 타인-18세」에서는 왕따였던 주인공에게 어느날 여학교마다 있을 법한 중성적인 매력의 소유자 혜준이 다가온다. 단짝으로 지내던 둘의 달콤한 우정은 혜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슷한 가정환경의 친구에게로 혜준이 떠나면서 깨어진다.
사랑받고 싶었다. 열세살 그 우울한 여름부터, 아니 일곱살 첫 입맞춤의 순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 불완전한 육체를 가지고 양수에 잠겨 있던 때부터. 사랑을 갈구하는 건 결핍감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핍을 앓을 만한 환경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며 자랐다. 결핍이란 선천적으로 내장되는 것인지 모른다, 유전적 질병처럼. 결핍감은 열등감을, 열등감은 시기심을 낳는다. 늘 누군가가 부러웠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러움은 증오로, 자기혐오로, 자주 모습을 바꾸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게 되면 판단력이 마비되면서 분노가 치솟았다. 시기, 증오, 자기혐오는 같은 뿌리에서 자란 다른 모양의 열매였다. 한 아버지의 씨를 가지고 다른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부럽다 못해 미워진 사람은 동생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다가, 시기하다가, 증오하다가, 결국 스스로를 혐오했다.―「타인들의 타인-17세」
점심시간, 혜준이는 도시락을 들고 교실을 나간다. 나는 그 아이가 누구를 선택했는지 알게 된다. 슬픔이란 감정은 터무니없이 아름답고 고상하다. 하나뿐인 친구를 잃어버린 내 마음은 슬픔이 아니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다시, 타인들의 타인이 되었다. 이 고독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 혜준이가 준 이 고독을, 나는 혜준이 없이 견뎌야 한다.
혼자 밥을 먹는다. 반 아이들 모두 내가 혜준이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 상황이 나를 더 비참하게 한다. 내 불행은 남의 입에 난도질당하겠지. 상실조차 나만의 것이 아니다. 예전처럼 ‘친구? 관심없어’라는 표정은 지을 수 없다. 아무리 애써도 차갑고 무심한 표정이 지어지지 않는다. 내 얼굴 근육은 습관 같던 그 표정을 잊어버렸나보다. 점심시간은 예전보다 길다. 하지만 수업종이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 있는 것보다 혜준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 견딜 수 없을 것 같다.―「타인들의 타인-18세」
결핍과 자기혐오와 시기질투, 그리고 열등감은 모두 궤를 같이하여 연쇄적으로 순환되는 콤플렉스의 사회학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관계와 타인의 시선이 깔려 있다. 한편 한때는 콤플렉스였던 것이 또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고 다시 누군가에게 재단되어 콤플렉스로 되돌아오기도 하며, 기실 나에게는 콤플렉스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 결국 콤플렉스는 관계와 시선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아내 혹은 엄마가 되지 못한 여성들의 길찾기’
하재영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내’도 ‘엄마’도 아니다. “아직 성인 여성이 되지 못한 소녀(「타인들의 타인」), 수없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어떤 지속적인 관계도 가질 수 없는 이십대 여성(「고도리」), 타인과의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이십대 독신녀(「달팽이들」), 삼십대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뚜렷한 직업도 가정도 가질 생각을 하지 않는 여성(「같이 밥 먹을래요?」). 하재영이 그린 여성들의 내면에는 남성과의 지속적인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이 자리하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끼리조차도 연대의 고리를 찾지 못한다.”(정여울 해설 「콤플렉스의 디스토피아」)
「고도리」의 여주인공은 애인의 폭행과 납치를 경험한 적 있어 애초에 정상적인 남녀관계를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 ‘태제’를 만난다. 몇번이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태제와는 쎅스와 고도리로 연명되는, 일견 납득할 수 없으나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된 관계를 지속한다. 임신중절수술을 경험하고 “서른살이 되기 전에 할머니가 된 기분”을 느꼈던 주인공은 아내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이나 오히려 그런 관계 속에서 안정을 찾는다.
「같이 밥 먹을래요?」에는 역시 혼자 밥 먹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다양한 직업군의 다양한 계층의 고객을 대상으로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함께 밥을 먹어주는 것만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엄마도 아내도 아닌 셈이다.
분열되고 세포화된 현대사회에서 빈부의 차, 남녀의 구분, 직업의 차이 등은 점점 더 세분화되거나 뚜렷해지기 마련이다. 그에서 비롯되는 열등감과 콤플렉스란 미세해진 듯하나 층위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아주 조그마한 차이로도 큰 결핍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의 가장 큰 장점은 신인작가답지 않은 섬세하고 균형감있는 현실인식을 토대로 현실의 미세한 균열에 초점을 맞춰 톡톡 튀는 문체가 빛나는 작품들로 풍성하다는 것이다. 욕망과 관계의 사회학을 무심한 듯 유머러스하게 담아내는 솜씨가 빼어난 작가의 앞날이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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