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이 책은 시인이자 문예 비평가 늘샘 김상천의 오랜 지적 편력과 글쓰기 강의의 소산이다. 1부 '대중글쓰기의 기호 인식론적 기초', 2부 '시대와 형식, 그리고 의미', 3부 '우리말글쓰기의 논리와 철학'으로 구성되었다.
2014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이 책은 오랜 지적 편력과 글쓰기 강의의 소산이다
<텍스트는 젖줄이다-대중서사론 입문>(소명출판, 2014)은 시인이자 문예 비평가 늘샘 김상천의 오랜 지적 편력과 글쓰기 강의의 소산이다. 이 책이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우수출판콘텐츠 사업의 선정작이라는 사실은 그 가치가 인정받았음을 반증하는 것일 것이다.
‘인문학’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는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유령이 일세를 풍미하는 현실에서 삶의 ‘결’을 어루만지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정말 바람직한 문화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비인간화’, ‘사물화’되어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냉전 종식 이후 세계화의 펀치가 사회적 약자들을 얼마나 두드려 패고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제대로 고발하지 못하고 ‘인문학’ 공부가 한낱 교양을 쌓기 위한 지적 호사豪奢, 또는 문화적 장식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너도 나도 살아남기 위해, 아니 부자 되기 열풍에 뛰어드는 순간, ‘Have more, be less’―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인간의 본성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현실. 그리하여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맹목적인 속물주의가 활개를 치고 지상가치로 칭송받는 시대, 효율성이란 이름 아래 공공성은 철지난 상품쯤으로 취급받고 인문학은 한낱 쓰레기쯤으로 취급받고 있는 가면의 현실에서 예술적 가공도 중요한 일이다. 소비자본주의 현실에서 교환가치의 대상, 즉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포장에도 미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은 지금 부르주아 계급지배의 헤게모니가 냉혹하게 관철되고 있는 ‘반인간적’ 시공간이다. 이에 작가라면 모름지기 넘어진 자의 이름을 불러 세우는 ‘호명부’가 되어야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되묻는 ‘물음표’가 되어야 한다. 비록 거칠고 어둡지만 희망으로 수놓은 실경實景이 핍진하게 형상화되어 있는, 그러면서도 진실하고 용기 있는 작품들을 쏟아내야 한다. 저자는 그렇게 본다.
저자는 이 책을 가공되지 않은 원석, 방금 캐 올린 햇감자로 이 유치찬란하고 어두운 자본주의 현실에 알몸으로 내 놓는다. 따라서 저자는 저자의 문예철학을 바흐친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grotesque realism’과 견주어 ‘크루드 리얼리즘crude realism’ 또는 ‘대중서사시’라 부르고자 한다.
우리는 누구나 사실을 주물러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문예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그의 주저 중의 하나인 <문학이론입문>을 쓰면서, ‘문학고유의 실체는 없다’라며 리얼리즘에 기반한 생성론적 문학관을 펼치고 있듯이, 이 책 또한 기본적으로는 ‘원본은 없다’는 텍스트 논리를 그 인식론적 모토로 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원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하나의 작품이 그 실체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작품도 알고 보면 누군가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거나 궁극적으로는 숱한 농산물, 공산품이 땅에서 나온 것처럼 ‘현실’을 기반으로 한 2차, 3차 텍스트에 불과하다. 이런 작품의 텍스트성을 무시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사실절대주의와 사실상대주의라는 맹목의 세계다.
총론은 문제제기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고급문화콘텐츠가 요구되고 있는 문화산업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맹목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인식이다. ‘원숭이 정서’로 얘기될 수 있는 지식인의 허세에서부터 돈교, 미국교, 대학교라는 일반 대중들의 허상숭배 현상, 그리고 대중문화의 각종 마비성 기만논리까지 우리는 지금 거짓신화에 속아 창조적인 문화콘텐츠 생산이라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무기력하고 나약한 세계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대중서사시대’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SNS를 통한 문명의 이기가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기자이고, 글쓰기 이웃사촌이며, 다성적 목소리의 주인공인 것처럼, 우리는 지금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참여하는 이른바 웹 2.0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질적으로 우수한 콘텐츠다. 이런 질적으로 우수한 콘텐츠가 없으면 우리는 ‘꽃신’이라는 무서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래서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1부는 이런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대중글쓰기를 통해 창조적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인식론의 기초를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인터넷에 기반한 지식정보사회에서 인식의 기초는 기호를 통한 접근이 기본이다. 따라서 소쉬르의 기호학적 지식을 전제로 하면서 이를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소쉬르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안정’을 중심으로 하는 부르주아의 변질된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낡은 근대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형태form’에 대한 ‘자의적’이고 ‘고정적’ 인식이다. 그러나 이런 보수적인 관점으로는 변화의 논리를 담아낼 수 없다고 보는 게 저자의 기본인식이다. 따라서 기호는 다시 ‘사실’과 ‘가치’로 재구될 필요성이 있다면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를 논증하고 있다.
이렇게 사실과 가치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저자는 비로소 부르주아의 거짓신화를 탈은폐시킴으로써 텍스트를 창조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이론적 지주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대 대한 다양한 예를 제공하는 부분이 바로 ‘고전과 텍스트’ 부분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고전이 여전히 우리 삶에 크나큰 수원이 되고 있는 마르지 않는 샘물임을 재미있게 풀어놨다고 본다.
저자가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통시적인 전개를 시도한 대목이 제2부다. ‘시대와 형식, 그리고 의미’라는 제목은 이들이 서로 다른 게 아니라 긴밀한 상동관계에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이런 인식은 실제로 고중세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중세는 그야말로 신이 중심이 된 사회다. 물론 그 신은 집단의 우두머리들이다. 이런 집단의 우두머리가 그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던 시대, 영웅서사시는 자연 고중세의 대표양식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기술방식이 바로 주관적 묘사 ‘비유’라는 것이다.
근대의 시민서사시도 마찬가지다. 상업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부르주아가 시민적 권력을 획득하면서 시작된 근대는 자연 ‘자유’의 논리, ‘개인’의 논리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시대성을 지니고 있었고, 이는 결국 현실에 대한 자의적 개입이자 일방적 굴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대논리를 형식적으로 반영한 것이 바로 ‘소설’의 말하기와 보여주기의 분리이다. 특히 저자는 이런 논리를 루카치와 바흐친을 벗 삼아 그리스의 소크라테스까지 추적해서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흐름과 발전을 보여주고자 했고, 이를 동양과 우리의 역사에도 적용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근대의 논리는 이성이고 설명이고, 따라서 차이이자 배제라는 뼈아픈 현실을 초래했다. 그 결과가 바로 1, 2차 세계대전이고 유대인 학살이고 식민주의 역사다. 한글맞춤법, 분단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제 근대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그 폐해를 극복해야 하는 현실에 와 있다. 그러나 이런 근대 논리의 극복은 ‘대중’에 의해서만, 대중지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야만 대중들의 전체이익과 부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대중들의 기호를 전달하는 방법이 바로 ‘논증’과 ‘유비’다. 논증은 대중독자를 전제하고서만이 쓸 수 있는 변화의 언어다. ‘비평적 에세이’가 대표적이다. 근대의 일방적인 ‘소설적’ 논리로는 의미가 없다. 바야흐로 생활비평, 대중비평의 시대다.
유비 또한 중요하다. 비유가 아니다. 비유는 원관념, 주인을 전제로 한 수사법이다. 이는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성채를 빛내는 곰 털 장식일 뿐이다. 그러나 유비는 다르다. 유비는 대등 논리에 기초해 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페이스북에서 대등하게 만나고 흩어진다. 여기서 바로 텍스트의 논리가 개입한다. 만남의 근거가 텍스트이고 만남의 내용 또한 텍스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텍스트 생산의 상호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3부는 이런 텍스트 논리를 가지고 현실적으로 우리말글에 적용해보고자 한 부분이다. ‘우리말글의 구조와 특징’은 설명문에 해당하는 글로 우리말글에 대한 기본지식과 이해를 돕고자 한 부분이다. ‘한글맞춤법의 ‘근대’적 의미’는 저자가 대중글쓰기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파트다. 왜 지금 우리는 근대의 맞춤법 체계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지. 그 의의와 한계, 그리고 대안은 무엇인지를 주로 ‘짜장면’ 논쟁과 결부시키면서 다루고 있다. 국내의 그 어느 학자도 다루지 않은 독창적인 리서치라 자부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문장소文章素’를 소개하고 있는 ‘문장소의 탄생과 콘텐츠 생산’이다. ‘콘텐츠 생산’이 마지막 개념코드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이 책의 집필의도가 질적으로 우수하고 창의적인 콘텐츠 생산에 저자가 어떤 강박 같은 소명에 매달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콘텐츠 생산의 대중글쓰기 기본단위로 제시한 개념이 바로 ‘문장소’다. ‘문장소’ 개념은 아직 그 누구도 사용한 바 없다. 그러기에 저자로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 있게 선진국에 앞서 이론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장소 개념은 사실과 가치를 모두 사용하여 새로운 가치창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사실절대주의와 사실상대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대중글쓰기시대, 마치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구워 내듯이, 우리는 누구나 사실을 주물러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이 책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누구나 창의적이고 우수한 콘텐츠 생산의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데 하나의 부식토腐植土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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