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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897.35 ▼b 이광수 2014 | |
| 100 | 1 | ▼a 이광수 ▼g 李光洙, ▼d 1892-1950 ▼0 AUTH(211009)113350 |
| 245 | 1 0 | ▼a 나의 일생 : ▼b 춘원 자서전 / ▼d 이광수 저 ; ▼e 최종고 편 |
| 260 | ▼a 서울 : ▼b 푸른사상, ▼c 2014 | |
| 300 | ▼a 671 p. : ▼b 삽화, 초상화 ; ▼c 24 cm | |
| 500 | ▼a 색인수록 | |
| 500 | ▼a "춘원 연보" 수록 | |
| 700 | 1 | ▼a 최종고, ▼g 崔鍾庫, ▼d 1947-, ▼e 편 ▼0 AUTH(211009)37837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7.35 이광수 2014 | 등록번호 111725390 (17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97.35 이광수 2014 | 등록번호 151323699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7.35 이광수 2014 | 등록번호 111725390 (17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97.35 이광수 2014 | 등록번호 151323699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춘원 이광수의 자서전. 춘원 자신의 삶의 기록과 증언을 통해 그의 생애 전체를 볼 수 있는 자서전이다. 오랜 기간 동안 텍스트를 수집하고 해설한 정본이다. 엮은이는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한국인물전기학회의 회장이다.
한국이 낳은 문호 춘원 이광수는 자서전이란 이름의 단행본을 출간하지 아니하였다. 그렇지만 몇 가지 형식으로 자신의 삶을 쓴 글들을 발표하였다. 그것이 『이광수 전집』에 여기저기 산재하여 실려 있다. 그러다보니 춘원의 문학작품은 여러 형태로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정작 춘원의 생애를 찾아 읽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1963년에 나온 전기 『춘원 이광수』(박계주·곽학송 저, 삼중당)도 절판된 지 오래다.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기 시리즈에도 춘원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의 하나는 춘원이 일본강점기 말기에 친일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방 후에는 국민적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 후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으로 점점 ‘잊혀진 인물’로 되어갔기 때문이다. 춘원의 만년의 친일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혁혁한 독립운동을 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정치적 공과를 떠나 춘원은 무엇보다 한국에 신문학을 뿌리내린 최대의 소설가요, 시인이요, 언론인이었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에 관하여 각 대학에서 지금도 계속 나오는 석·박사 학위논문과 연구서가 1천여 건에 이르고 있고, 2007년에는 ‘춘원연구학회’가 창립되어 매년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춘원연구학보』와 『춘원연구학회 뉴스레터』를 발간하고 있다.
편자는 일찍이 인물전기학(biographics)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0년부터 한국인물전기학회(Korean Biographical Society)를 운영하고 있다. 거기에서 2003년에 <춘원 이광수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바도 있고, 그 후에도 그의 삶과 생각을 꾸준히 연구하여 왔다. 거기서 발견한 사실이, 위에 적은 대로, 춘원의 생애를 바로 알 수 있는 전기가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논쟁하는 연구서들은 많이 나오지만 일반인, 특히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전기를 제공해주지 않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편자는 언젠가 춘원의 전기를 한 권 내려고 준비 중에 있지만, 그보다 먼저 춘원이 자신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자서전으로 내는 것이 더욱 긴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지금은 편집기술도 좋아져서 자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서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대이다.
사실 춘원의 자전적 글들을 읽어보니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지나쳐버린 사실들이 엄청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해방 후 나이 5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나: 소년편」과 「나: 스무살고개」를 2년간에 걸쳐 집필하였다. 기본적으로 문학적 서술이기 때문에 춘원의 생애와 심정의 전개를 흥미 있게 알게 한다. 춘원이 「나: 소년편」을 발간한 때는 1947년 입춘 며칠 후부터 1년간이었다. 이어서 1년간 「나: 스무살고개」를 집필하였다. 그때 스스로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나라고 하는 한 생명이 이때에 이 세상에 나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줄을 안다. 여름에 사람을 못 견디게 구는 파리나 모기도 다 인연이 있어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므로 나라고 하는 한 물건이 어떤 모양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기록은 똑바로만 쓴다 하면 사람에게 무용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한 나라, 한 민족의 흥망성쇠의 기록과 다름없이 무슨 뜻을 가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권선징악의 공리적 동기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다. 루소가 그의 『참회록』에 그는 후일 심판 날에 하느님의 앞에 내놓을 답변으로 그것을 쓴다는 뜻을 말하였거니와 내 이야기는 그런 것과도 다르다. 나는 어디 답변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무슨 소용이 될는지는 모르나 어디 한번 있는 대로 적어보자는 것이다. 다만 그뿐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세상에 빛을 주고 향기를 보내자는 것이 아니다. (어찌 감히 그것을 바라랴.) 마치 이 추악한 몸을 세상에서 없이 하기 위하여 화장터 아궁이에 들어가서 고약한 냄새를 더 지독히 더 피우는 것과 같다. 한때 냄새가 한꺼번에 나고는 다시 아니 나는 것과 같이 이 이야길 내 더러움을, 아니 더러운 나를 살라버리자는 뜻이다.
춘원은 「나」 혹은 「나의 고백」이라고 제호를 적었지 ‘자서전’이라고 하지 않았다. 당시 그럴 사회적 분위기가 못 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춘원은 ‘왜곡되기 일쑤인 사회적 평가에는 눈 하나 까딱 않는 사람’(전영택)으로 그렇다면 아예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 실은 글은 춘원의 「나」(1947)와 「나의 고백」(1948), 그리고 일기와 만년의 생활기록이다. ‘나’라는 표현이 늘 나타나기 때문에 책 제목을 「나의 일생」이라 정하였다. 자서전이긴 하지만 한꺼번에 전부 단행본으로 쓴 것은 아니고 ‘나’라는 표현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루소의 『참회록』 같이 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어딘지 루소처럼 인생의 전부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깔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춘원은 ‘나’를 쓰고 공개하는 것을 매우 크고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어쩌면 그가 그렇게 사모한 톨스토이의 자전적 소설 「소년시대」, 「유년시대」, 「청년시대」를 따른 것 같기도 하다.
자서전에도 여러 형태가 있고, 특히 문학적 자서전은 흔히 자기 경험만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자서전과는 달리 상당히 자유롭고 상상력이 들어간 자서전들이 많다. 예컨대 모옴(Sommerset Maugham)의 자서전 『서밍 업(Summing Up)』도 형식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요약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나의 일생」을 읽는 데는 다소 주의를 요한다. 첫 부분 소년 시절에 관한 부분은 자서전치고는 인간의 삶의 본질적 중요성을 띄는 애정의 문제를 주안점으로 하여 소설처럼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수많은 경험과 생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루소의 『참회록』은 정도가 더 심한데, 그렇다고 오늘날 그의 『참회록』의 가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 더 위대하다고 보는 것이다. 모옴은 루소같이 자신의 치부를 많이 쓰고 다른 부분은 쓰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부분에 무관심했다고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독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고, 이는 결국 독자의 수준에 달린 것이다.
춘원의 「나의 고백」에는 개인사만이 아니라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과 민족 분단에 이르는 당시의 사회상과 국제 정세도 알게 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그리고 백여 명이 넘는 인물들이 언급되고 있다. 이들에 대해 추적하여 자세히 설명하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전기학적 과제이지만 가능한 압축하여 각주에 밝혔다.
편자로서 한 일은 텍스트를 처음으로 가로쓰기를 하면서 새로 입력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표현을 오늘날의 독자를 위해 다소 과감하게 고쳤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춘원 시대에는 “일변”이라고 쓰던 것을 “한편”이라 고치고, “것이언마는” 같은 표현은 “것이지만”으로 옮겼다. 한문으로만 된 표현은 가능하면 한글 역을 함께 넣었다. 지금까지의 ‘춘원 연보’를 종합하면서 누락된 사실, 새로 발견된 사실을 추가하여 새로 작성하였다. 문학사 위주의 시각에서 한 인물과 시대적 배경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전체적 시각에서 작성하였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이 『나의 일생 : 춘원 자서전』을 기초로 보다 심도 있는 춘원 연구에 들어가야 하리라 믿는다. 문학비평 내지 작가론의 범주를 넘어서 춘원이란 인간 자체를 심도 있게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어떤 인물에 대하여 자기의 붓대롱 안에만 비친 인물평으로 속단하는 경향이 있다. 선입관에 따른 일방적이고 스테레오타입적인 평가는 인물을 제대로 연구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춘원은 싫으나 좋으나 우리 민족의 모습이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窓)이다. 역사는 외면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춘원을 외면하는 현상은 조속히 극복되어야 하며, 연구자들의 연구와 일반인들 사이의 간격이 본서를 통하여 어느 정도 가교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김구의 『백범일지』도 춘원이 현대어 한글로 다듬어서 많은 독자가 있듯이, 본서 『나의 일생』도 춘원의 문장에 빨려서 몰입될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문학적 향취가 있으면서 한편으로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이광수(지은이)
1892. 3. 4. 평북 정주 출생. 호는 춘원(春園).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람. 1905. 일본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해 《소년》 지 발행. 1910. 귀국해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음. 1915. 다시 일본에 가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 1919.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후 이를 전달하기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도산 안창호를 만나 민족독립운동에 공감하고 여운형이 조직한 신한청년당에 가담. 1921. 귀국. 1910년 중매로 결혼한 백혜순과 이혼하고 1918년 결핵 치료에 도움을 준 의사 허영숙과 결혼. 1928-1929. 〈동아일보〉에 『단종애사』 연재. 1937.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석방 1950.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가 자강도 만포시에서 병사. 『개척자』 『선도자』 『재생』 『마의태자』 『단종애사』 『군상』 『흙』 『무정』 『유정』 『이순신』 『그 여자의 일생』 『이차돈의 사』 『그의 자서전』 『사랑』 『원효대사』 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 수필,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최종고(엮은이)
著者略歷 서울大學校 法科大學 및 同大學院 卒業, 독일 프라이부르크大學 卒業(法學博士) 미국 버클리大學 및 하버드大學 客員敎授 독일 프라이부르크大學, 미국 하와이大學, 텔아비브大學 交換敎授 중국 南京大學․山東大學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1981-2013) 現:서울大學校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著 書 現代法에 있어서 人間(三英社, 1974) 使徒法官 金洪燮(育法社, 1975) 法史와 法思想(博英社, 1980) 法과 宗敎와 人間(三英社, 1981, 1989 증보) 韓國의 西洋法受容史(博英社, 1982) 法思想史(博英社, 1983) 國家와 宗敎(現代思想社, 1983) 現代法學의 理解(서울大出版部, 1989 증보) 위대한 法思想家들(Ⅰ․Ⅱ․Ⅲ)(學硏社, 1985) 法史學入門(共著)(法文社, 1985) 法學史(經世院, 1986) 西洋法制史(博英社, 1986) 法學人名辭典(編)(博英社, 1987) 韓國法과 世界法(敎育科學社, 1988) 韓國法思想史(서울大出版部, 1989) 韓國의 法學者(서울大出版部, 1989) 하버드 스토리(고려원, 1989) 韓國法學史(博英社, 1990) 法과 유모어(編)(敎育科學社, 1991) 法은 그러나 어두운 곳에서 빛난다(철학과 현실사, 1991) 法 속에서 詩 속에서(교육과학사, 1991) 법과 윤리(經世院, 1992) 법과 생활(博英社, 1993) 북한법(博英社, 1993, 1996 증보신판) 한국법입문(博英社, 1994) 법과 미술(시공사, 1995) 新서유견문(웅진출판사, 1995) G. 라드브루흐연구(博英社, 1995) 한국의 법률가像(길안사, 1995) 총정리 및 객관식 법철학(편저)(삼영사, 1996) 법상징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 2000) 법철학(박영사, 2002) 한강에서 라인강까지:한독관계사(유로서적, 2005) Law and Justice in Korea:South and North(서울대출판부, 2005) 자유와 정의의 지성 유기천(한들, 2006) 괴테와 다산, 통하다(추수밭, 2006) East Asian Jurisprudence(서울대출판부, 2009) Gesprache mit Alexander Hollerbach(관악문화사, 2010) 한 법학자의 학문세계, 민속원, 2013 서울법대시대, 서울대출판부, 2013 譯 書 라드브루흐, 法哲學(三英社, 1976) 라드브루흐, 법학의 정신(종로서적, 1981) 레빈더, 法社會學(共譯)(法文社, 1981) 헬무트 코잉, 獨逸法制史(共譯)(博英社, 1982) 라드브루흐, 마음의 길(종로서적, 1983) 홀러바흐, 法哲學과 法史學(三英社, 1984) H. 하멜外, 西洋人이 본 韓國法俗(敎育科學社, 1989) G. 그레고리外, 착한 사마리아人法(敎育科學社, 1990) 위대한 반대자 올리버 홈즈(교육과학사, 1991) 라드브루흐, 법의 지혜(교육과학사, 1993) 라드브루흐, 도미에의 사법풍자화(悅話堂, 1995)
목차
머리말 1장 소년 시절 출생과 가계 우리 집안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 어린 사랑 이야기 양친의 별세 오산학교 교원 2장 청년 시절 스무 살 안팎 명암(明暗) 3장 독립운동 시절 민족의식이 싹트던 때 민족운동의 첫 실천 망명한 사람들 기미년(1919)과 나 나의 훼절 민족보존 4장 신생 대한민국에서 해방과 나 친일파의 변(辯) 해방정국의 사회시 5장 일기와 수상 유학 시절(1909/10) 병상일기(1938) 산거기(山居記, 1939) 산중일기(山中日記, 1946) 6장 만년의 운명(가족의 증언) 사릉에서 맞은 8ㆍ15 아버지와 돌베개 아버지 돌아오시다 반민법과 아버지 마지막 생신 6ㆍ25전쟁과 납북 추기 춘원 연보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