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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오만과 문화의 울분 : 문화수용전략에 관한 융합적 연구 :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그리고 위정척사 (4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한경구, 韓敬九, 1956-, 저 김태유, 金泰由, 1951-, 저 김현철, 저 문중양, 文重亮, 1962-, 저 박훈, 朴薰, 1966-, 저 이경우, 저 임경택, 林慶澤, 1960-, 저
서명 / 저자사항
문명의 오만과 문화의 울분 : 문화수용전략에 관한 융합적 연구 :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그리고 위정척사 / 한경구 [외]
발행사항
서울 :   일조각,   2021  
형태사항
240 p. : 삽화 ; 23 cm
ISBN
9788933707937
일반주기
공저자: 김태유, 김현철, 문중양, 박훈, 이경우, 임경택  
서지주기
참고문헌: p. 229-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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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a 이 저서는 2014년도 SNU brain fusion program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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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2.031 2021z1 등록번호 111850913 (4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중 반납예정일 2026-04-15 예약 예약가능 R 서비스 M

컨텐츠정보

책소개

19세기 ‘개항의 시대’를 맞이한 동북아 3국의 선택. 대한제국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1910년에 강제병합 당한 것은 ‘문화’가 ‘문명’과의 대결에서 참패한 사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천문학 지식을 수용한 이래 아편전쟁에서의 패배를 교훈 삼아 해군 건설에 나선 것도, 일본이 1854년 ‘흑선黑船’을 몰고 다시 나타난 페리 제독에게 개항을 허락하고 존왕양이를 부르짖던 막말의 ‘지사志士’들이 문명개화로 방향을 바꾼 것도 모두 문명의 막강한 힘을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의 동북아시아는 분노에 떨면서, 그리고 그 격차에 경탄하면서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본연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서양의 진보한 기술과 제도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문화수용전략이 나타나는데, 바로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 그리고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이었다.

이 중에서도 화혼양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부국강병에 성공하게 만든 요인으로 높게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과연 화혼양재는 중체서용이나 동도서기와 크게 다른 것이었을까. 그리고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일본은 ‘성공’했고 중국과 조선은 ‘실패’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와 무엇이 그렇게 달랐을까?

근대, 받아들이냐 마느냐
사람은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곳의 관습에 따라 산다. 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문화권에서 오래 살다 보면 당연히 그곳의 문화에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갓 태어난 아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될 때 어색해한다. 특히 문명개화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과학’과 ‘개혁,’ 그리고 ‘개방’을 등에 업은 ‘근대 사회’는 사람들한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문화수용과정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익숙한 문화를 전부 낡아빠졌다면서 새로운 것을 억지로 주입한다면 그에 대한 거부감은 몇 배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19세기 동아시아에서는 한의학을 기반으로 개발되어 접종해 온 종두법(천연두 예방법)인 ‘인두법’이 있었는데, 20세기가 되기 전 새로운 접종법인 ‘우두법’이 들어오면서 기존의 종두법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부정되었고, 하물며 인두법을 발전시켰던 한의학 또한 미신 취급을 당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예로는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들여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조선에서 위생 경찰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결국 사람들한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 제도는 대한제국 시기 견고한 국가적 방역 체제의 구축을 위해 강력한 경찰 조직과 경찰력을 이용하는 행정 시스템으로서 창설되었으나, 경찰과 헌병은 전염병 환자를 찾아낸다는 명분으로 환자로 의심이 되는 사람은 무조건 구금하고 감시하면서 백성들을 삼엄하게 통제했다. 이처럼 ‘근대’의 과학은 삶을 이롭게 만드는 문명의 이기로 이용도 했지만 종종 소수의 문명개화론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별다른 문제 없이 유지되어 오던 것들을 졸지에 미신적인 데다가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고,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무서운 권력이 되었다.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중체서용의 성공과 실패
19세기 중후반에 동북아시아는 위압적인 서양 문명에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그 격차에 경탄하면서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다. 끝까지 문화수용을 강경하게 반대하는 세력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야 했고, 외래 문화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자는 사람들조차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때 감당해야 할 변화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급박한 현실에 분노했다. 이런 가운데 동북아시아 주요 3국은 각자 상황이 다른 만큼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도 퍽 달랐다. 다만 강압적인 과정 가운데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서양의 진보한 기술과 제도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수용전략의 양상 자체는 비슷했는데, 바로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 그리고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이었다.

이 중에서도 화혼양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부국강병에 성공하게 만든 요인으로 높게 평가되어왔다. 실제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패하기 전까지 조선과 중국에 무력을 행사하고 강압적인 식민 정책을 펼치는 등 위세를 펼쳤다. 그러나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일본이 택한 화혼양재는 중체서용이나 동도서기와 크게 다른 것이었을까? 처음 생각했던 대로 그들의 뿌리를 잃지 않고 원하는 만큼 선택적으로 외래의 것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일본은 ‘성공’했고 중국과 조선은 ‘실패’했던 것일까? 개항을 받아들인 이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와 무엇이 그렇게 달랐을까?

거부할 수 없는 문명의 파도와 그 저변에 깔린 복잡한 마음
어떤 것이든 시간이 흐르면 제자리에 있던 것도 변한다. 19세기 말 존왕양이를 주장하던 유신지사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학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의 숙장이었던 요시다 쇼인은 ‘몸은 비록 무사시武藏의 들판에 있지만, 스러지지 않고 마음에 새겨진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설파했다. 그러나 본연의 자리를 고수하며 세력을 지킨다는 그의 주장은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치열하게 싸운 막부 말의 번주들과 지사들 중 결국 일부는 물러나고 다른 일부는 새로운 세력과 영합하여 신정부를 세웠던 것처럼, 외래 문명이라는 파도를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면서 일본은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태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기반으로 공동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화혼양재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시도한 것으로,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민과 실천, 비판과 지지, 선택과 거부 등을 포함한 문화수용전략으로서의 화혼양재를 살펴보고자 했다. 좁게는 서양의 것을 선택적으로 고른 후 현지화 전략에 성공한 상품인 일본의 앙꼬빵과 세븐일레븐부터 크게는 요시다 쇼인이 주창한 ‘야마토다마시’가 군국주의와 영합하면서 변질된 사상과 근대화가 영향을 끼친 정치 제도, 산업혁명, 제철 산업, 그리고 과학까지 폭넓게 다룬다. 파도가 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처럼 결국 ‘수용’은 모든 분야에 미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한경구(지은이)

서울대 인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사학과에서 수학했다. 외무부에 근무했고 해군 장교로 병역을 마쳤으며 일본에서 장기 현지조사를 수행하여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대 인류학과와 국민대 국제학부를 거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 편집위원장, 한국국제이해교육학회장, 한국이민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공동체로서의 회사』, 『세계의 한민족: 아시아·태평양』등의 저서, 『인류학 민족지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공저서가 있고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등을 책임 편집했으며 『국경을 넘는 방법: 문화, 문명, 국민국가』 등을 공역했다.

문중양(지은이)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에서 통계학과 컴퓨터사이언스를 공부한 후, 동 대학원에서 한국과학사를 공부했다. ‘조선의 수리학(水利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는 줄곧 조선 후기 서양 과학과 전통과학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우주론을 중심으로 그 양상과 성취에 대해서 연구해왔다. 요즘에는 세종대 과학의 성취를 중심으로 여말선초 조선 과학기술 전범의 형성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후기 水利學과 水利담론』, 『우리역사 과학기행』,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서구 우주론과 조선 천지관의 만남』, 『의산문답―천지와 인물에 대한 우화적 일탈』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과학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임경택(지은이)

1960년에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류학과를 거쳐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메이지유신과 패전이라는 계기를 통해 변화해온 일본문화에 관한 역사인류학적 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20세기 한국과 일본의 심성체제 비교, 일본의 출판과 교육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저 『문명의 오만과 문화의 울분』 외에, 『편집자의 시대』『독서와 일본인』『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일본의 역사를 새로 읽는다』『일본인의 인류학적 자화상』『사전, 시대를 엮다』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김태유(지은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미국 콜로라도광업대학교에서 자원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박사후과정, 아이오와주립대학교 경영시스템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 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자원경제학회, 한국혁신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의 원로회원이다. 초대 대통령 정보과학기술 수석보좌관으로 신성장동력산업의 지정과 육성, 이공계 공직 진출, 과학기술부총리제도 신설, 기술혁신본부의 설치, 이공계 박사 5급 특채 등 한국 4차 산업혁명의 기초작업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국가발전 원리’라는 한 가지 화두에 천착하여 공학, 경제학, 지정학, 역사학 등의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명사학자이자 4차 산업혁명을 연구하는 미래학자이다. 저서로는 《Economic Growth》 《정부의 유전자를 변화시켜라》 《은퇴가 없는 나라》 《패권의 비밀》 《국부의 조건》 《한국의 시간》 《한국의 선택》 《대한민국 마지막 기회》 등이 있다.

김현철(지은이)

국내에서 일본 경제를 심층 연구하는 대표적인 석학으로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일본 경제를 분석한 ‘삼프로TV’의 유튜브 동영상은 288만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깊은 통찰을 주었다.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1996년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쓰쿠바대학 부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텔레콤, LG CNS, 아모레 등의 자문교수를 역임했고, 문재인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 경제보좌관과 신남방정책 위원장, 국제금융센터 이사장을 역임했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과 중소기업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 저성장 시대 기적의 생존 전략》,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포용국가》(공저) 등 4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그중 일부는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로 출간되었다.

이경우(지은이)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일본 NEC 및 KIST의 연구원을 거쳐 1996년부터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금속의 제조 및 가공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고, 서울대학교 철강연구센터 센터장 및 신소재공동연구소 소장, 대한금속·재료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POSCO 석좌교수이다. 또한 2019년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으로 원자력 발전이 안전을 확보하면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에 참여하고 있다. 공학교육학회 부회장,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수석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공학 교육 전반의 개선에 노력하였으며, 전공 분야 연구 외에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과 자유전공학부에 참여하면서 교양과 기초 교육 전반의 개선에 노력했다. 『과학기술 글쓰기』(공저)와 『공학문제해결 입문』(공저)과 같은 강의 교재 저술에 참여했으며, 한송엽공학교육상과 서울대학교 교육상 등을 수상하였다. 최근에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이해와 전망에도 관심이 있으며, 그 일환으로 『문명 다시 보기』(공저)와 『문명의 오만과 문화의 울분』(공저)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박훈(지은이)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국민대 일본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 역사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세기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체제 비교, 일본인의 대외 인식과 내셔널리즘의 형성 과정을 연구해왔다. 저서로 《위험한 일본책》,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머리말

제1부 왜 화혼양재를 알아야 하는가?
제1장·문화수용전략으로서의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그리고 위정척사
1. 중국에서도 배울 것이 없었던 문화국가, 식민지로 전락하다
2. 문화수용전략이라는 관점
3. 화혼양재는 성공한 문화수용전략이었는가?
4. 화혼양재는 의미가 불분명해야만 했다? 상징과 슬로건으로서의 화혼양재
5. 이 책의 구성

제2장·산업혁명과 이데올로기로서의 화혼양재-이제는 지식산업혁명으로

1.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2. 일본의 산업화
3. 선발국의 산업혁명 vs 후발국의 산업혁명
4. 화혼양재(和魂洋才)

제3장·화혼양재의 계보와 의미 변환-화혼한재와 야마토다마시, 그리고 야마토고코로
1. ‘화(和)’란 무엇인가?
2. ‘화혼’ 또는 ‘야마토다마시’의 행로
3. ‘화혼양재’: ‘화혼’과 외래 문화의 수용
4. 결론에 대신하여: 화혼양재에 대한 질문과 해석


제2부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현장과 사례 연구
제4장·국가의 정치제도와 근대 국가 건설과정의 화혼양재
-봉건론과 군현론의 줄타기와 한재(漢才)
1. 막말 유신기의 봉건·군현론-한재(漢才)에서 화혼양재로
2. 도쿠가와 시대의 봉건·군현론
3. 왕정복고는 군현제? ‘막부의 봉건’에서‘천황의 봉건’으로
4. 판적봉환(版籍奉還): 봉건과 군현 사이의 줄타기
5. 폐번치현과 군현의 설득: “서양 각국은 모두 군현”

제5장·일본의 산업화 초기의 화혼양재-제철산업과 근대화에 대한 검토
1. 화혼양재의 흔적을 찾아서
2. 도쿠가와 시대의 제련 산업
3. 막부 말기 서양 제철 기술의 도입
4. 메이지 유신 초기의 산업화
5. 일본 산업 발전기와 철강 산업
6. 일본 초기 산업화 과정과 성공 요인

제6장·외국 유통업 세븐일레븐의 도입 과정에서 본 화혼양재
1. 서양의 기업을 화혼의 기업으로?
2. 세븐일레븐 재팬의 성공 요인
3. 세븐일레븐 재팬을 통해 본 화혼양재

제7장·동도서기론적 과학 인식
-17~19세기 중국과 조선에서 만난 이질적인 두 과학
1.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과학’은 서양의 ‘과학’을 어떻게 대했을까?
2. 서양 과학의 ‘동아시아적’ 수용: 첫 만남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3. 조선 학인들의 과학담론
4. 서양 과학을 ‘과학’으로 수용하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근대 과학의 형성

맺음말·위장척사와 동도서기, 그리고 중체서용은 과연 실패한 전략이었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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