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저자의 말 = 3
제1장 조선의 인물
1 이성계는 함흥차사를 모두 죽이지 않았다 = 13
함흥차사란? = 13
이성계의 1차 시위 = 16
이성계의 2차 시위: 안변차사 = 17
이성계의 3차 시위: 경기도에 의정부가 생기다 = 19
이성계의 4차 시위 = 21
이성계의 5차 시위: 조사의의 반란 = 21
2 이성계는 망우리를 이름짓지 않았다 = 24
이성계의 수릉 탐색 = 24
하륜이 양주 검암에 건원릉 터를 잡다 = 26
망우리와 건원릉 = 27
3 '용의 눈물'과 정릉 : 태종과 신덕왕후의 갈등 = 29
이성계의 후계자는 어떻게 정해졌나? = 29
정릉을 내 눈앞에 보이는 황토마루에 = 31
정릉의 수난 = 31
신덕왕후는 계모도 아니다 = 33
정릉에 세원우가 내리다 = 35
4 정도전이 조선을 건국했다(?) = 37
정도전 : 어떤 사람인가? = 37
'한 고조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쓴 것이다' = 39
정도전이 설계한 나라, 조선왕조 = 40
정도전이 지은 (신도팔경시) = 41
5 서울 인구 증가의 주범은 한명회이다 = 44
칠삭둥이 한명회 = 44
궁지기가 세조의 장자방이 되다 = 45
궁지기가 10년 만에 영의정이 되다 = 46
사신의 한명회에 대한 인물평 = 48
한명회는 왕실에 두 딸을 시집보내 겹사돈을 맺었다 = 49
중국까지 소문난 한명회의 별장, 압구정 = 50
6 연산군은 최고의 시인이었다 = 53
연산군의 실정 = 53
연산군은 역대 왕 중 최고의 시인이었다 = 57
7 소현세자는 독살당했다 = 63
소현세자의 의문스런 죽음 = 63
소현세자가 인질로 잡혀간 사정 = 64
심양에서의 소현세자의 활동 = 66
소현세자와 아담 샬과의 운명적인 만남 = 67
봉림대군의 세자 책봉 = 69
소현세자 빈 강빈의 죽음 = 70
소현세자는 독살당했는가? = 74
8 사도세자, 이렇게 죽었다 : 뒤주 속의 8박 9일 = 77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물인가? = 77
사도세자 보좌관 이광현이 남긴 일기 = 78
'너는 속히 자결하라' = 80
3정승의 구원 실패 = 83
세손을 데려오다 = 84
'뒤주 속으로 들어가라' = 85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 87
'아버지 임금님이시여. 나를 살려주십시오' = 88
'짧은 소매 옷을 가져와라' = 89
뒤주를 승문원으로… = 90
9 임윤지당은 최고의 여류 성리학자였다 = 91
성리학을 공부한 여성들 = 91
임윤지당의 생애 = 94
윤지당의 학문적 업적 = 97
윤지당의 여성론 = 99
10 김정호는 옥사하지 않았다 = 101
김정호에 대한 수수께끼 = 101
이규경의 김정호 평가 = 102
유재건이 적은 김정호전 = 105
최한기와 김정호 = 108
신헌과 김정호 = 111
《동아일보》에 게재된 김정호의 생애 = 113
(조선어독본)에 실린 김정호 = 116
이병도의 김정호 연구 = 120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게재된 김정호 = 123
새롭게 풀어본 김정호의 수수께끼 = 125
제2장 조선의 역사
1 사육신 묘역은 공동묘지였다 = 139
또 하나의 왕자의 난, 계유정난 = 139
성왕과 주공은 아니었던 단종과 수양대군 = 142
사육신의 단종복위 운동 실패 = 144
얻은 자와 잃은 자 = 147
역신에서 충신으로 : 사육신의 복권 = 149
생육식의 활동 = 151
사육신 묘역은 공동묘지였다 = 152
2 조와 종은 어느 쪽이 더 좋을까? = 155
묘호란 무엇인가? = 155
조와 종은 어떻게 붙였나? = 158
200년 후에야 묘호가 정해진 왕들 = 160
3 종루 육의전은 어디일까? = 163
육의전과 시전의 설치 = 163
육의전의 위치와 판매 상품 = 165
시전의 명칭과 판매한 상품 = 166
4 성공한 해외원정은 대마도 정벌뿐이다 = 171
대마도는 왜구의 소굴 = 171
대마도를 정벌하라! = 175
대대적인 대마도 정벌 = 177
최초로 성공한 대외원정 = 181
5 파헤쳐진 왕릉 : 성종릉과 중종릉의 비극 = 182
왜군에 의해 파헤쳐진 두 왕릉 = 182
'임금의 얼굴이 얽었다' = 184
중종의 가짜 시신 = 189
중종 시신의 도굴범 색출 = 192
6 임진왜란과 민중의 참상 = 195
임진왜란의 발발과 선조의 비참한 몽진 = 195
민중의 참상 = 200
임진왜란 발발의 징조 = 200
7 임진왜란은 이긴 전쟁이다 = 203
당시의 전황 보고서 = 203
8 조선에 외국 왕들이 망명와서 살았다 = 208
유구국 산남왕의 망명 = 208
베트남 이 왕조의 왕자 이용상의 망명 = 209
화산군 이용상의 몽고병 격퇴 공적 = 210
9 조선시대에 재벌노비가 있었다 = 212
사노 임복이 곡식 2천 석을 바치다 = 212
'하늘과 땅을 바꿀 수 없다' = 214
제3장 조선의 땅
1 조선은 삼천리의 나라가 아니다 = 219
2 조선시대 10리는 4km가 아니다 = 223
3 백두산 정계비는 이렇게 세웠다 = 228
청나라와의 국경문제가 대두되다 = 228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다 = 231
청나라, 백두산 조사를 조선에 정식요청하다 = 234
청나라 사신, 목극등이 오다 = 237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다 = 241
백두산 정계에 참여한 신하들 탄핵받다 = 243
후일 간도 귀속문제를 야기하다 = 247
4 안용복의 활약과 울릉도 지키기 = 249
울등도가 일본과의 외교문제로 비화되다 = 249
안용복, 왜인의 기를 꺾다 = 251
울릉도에 3년마다 수토사를 파견하다 = 253
5 언제부터 '동해'라고 불렀을까? = 256
'동해'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명칭이다 = 256
삼국시대의 동해 인식 = 258
고려시대의 동해 인식 = 262
조선시대의 동해 인식 = 264
6 메이지 시대 일본인의 울릉도 탐험기 = 268
'조선 죽도(울릉도를 말함) 탐험기' = 268
7 일본은 독도를 불법 강점했다 = 273
우리 나라에서 부른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 = 279
외국이 명명한 독도 명칭 = 280
일본인이 붙인 독도 이름 = 281
8 일본의 독도 조사보고서 = 282
(죽도도항일지) = 282
9 동양에서 가정 오래 된 세계지도는 조선에서 제작했다 = 298
10 (대동여지도)보다 300년 전에 만들어진 (조선방역도) = 304
(조선방역도)의 입수 경위 = 304
(조선방역도)의 제작처 = 305
(조선방역도)의 제작 시기 = 305
(조선방역도)의 특징 = 308
11 일본의 비밀요원들이 한국 측량지도를 만들었다 = 312
일제의 성립 = 312
육군참모본부의 설치 = 314
참모본부의 대한 첩보활동 = 315
육지측량부의 발족 = 321
군사비도의 제작 = 324
백성들의 저항 =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