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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37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서정민.
서명 / 저자사항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 서정민 지음.
발행사항
파주 :   살림 ,   2008.  
형태사항
239 p. : 삽도 ; 21 cm.
ISBN
9788952208125
서지주기
참고문헌 : p. 234-239.
주제명(개인명)
세종,   조선,   제4대왕,   1397-1450.  
조말생,   1370-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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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2 2008z1 등록번호 111466998 (15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2 2008z1 등록번호 111466999 (9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3.052 2008z1 등록번호 121169770 (5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4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3.052 2008z1 등록번호 121169771 (7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5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청구기호 953.052 2008z1 등록번호 151254479 (1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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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3.052 2008z1 등록번호 121169770 (5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3.052 2008z1 등록번호 121169771 (7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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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정보

책소개

현직 검사의 눈으로 병조판서 조말생이 뇌물을 받았으니 사형에 처하자는 대간들과 그를 살리려는 세종이 벌인 논쟁과 기싸움을 담았다. 세종은 법치주의를 견지하되 중도를 따르는, 실리적 법치주의자이자, 옳다고 믿는 바를 행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군주의 모습을 보인 행한 우리시대에 본받을 리더상이다.

세종은 조말생을 유배형에 처한 후 많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훗날 그를 다시 기용했으나 그가 무죄를 주장했을 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죄는 죄대로 다스리고, 유능한 관리도 잃지 않는 유연하면서도 공정하며 합리적인 대응이었다.

당시의 법률은 어떠했으며, 세종은 어떤 논리로 반대하는 대신들의 청을 거절하며 조말생을 수호했는지, 대신들은 어떤 법을 근거로 조말생의 사형을 주장했는지, 현재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에서 검사로 재직 중인 지은이가 현대 법과 비교해가며 모든 과정을 조목조목 서술한다.

어찌하여 세종은 부패한 관리를 다시 등용했는가
대한민국 검사가 추적한 조선의 부패사건


조정에 날아든 한 장의 탄핵 상소로 드러난 병조판서 뇌물사건의 실체. 부패의 핵심 조말생을 사형에 처하자는 대간들과, 그를 살리려는 세종이 벌인 날카로운 논쟁과 치열한 기 싸움. 사건은 일단 세종의 승리로 마무리되나 꺼지지 않은 불씨는 남는다. 2년이 흐른 뒤 조말생은 복권되고, 다시 2년이 더 흐른 뒤 조말생은 관직에 복귀한다. 이를 저지하려는 사헌부·사간원의 관료들과, 뜻을 관철하려는 세종이 다시 한 번 충돌했으나 이번에도 세종이 승리한다. 어찌하여 세종은 조말생을 다시 등용했는가? 실리적 법치주의자 세종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 사건의 발단
김도련. 세종 시대의 인물로, 노비소송에서 연전연승의 신화를 이어갔다. 그와 벌인 노비소송에서 패한 자들 중 몇몇이 억울함을 관에 호소하였고, 수사가 개시된다.
세종 8년(1426년) 3월 4일, 조정에 한 장의 탄핵 상소가 날아든다. 그 안에는 권력의 핵심 인사들이 뇌물을 받고 김도련의 뒷배를 봐주었다는 내용이 씌어 있었다. 상소문에는 우의정 조연, 곡산부원군 연사종, 병조판서 조말생 등이 이름을 올렸다. 세종은 이들을 즉시 지방에 귀양 보내도록 조처하고, 엄중한 수사를 명했다. 이에 따라 조연과 연사종을 각각 황해도 수안과 강원도 인제에 부처했고, 조말생은 직첩을 회수한 뒤 충청도 회인에 부처했다. 수사는 계속되었다.

* 세종의 조말생 살리기
사헌부와 사간원에서는 조말생을 주목했다. 그는 지신사(훗날 도승지)로서 태종의 최측근으로 활약했으며, 세종 대에 와서도 병조판서를 지내고 있던 실세였다. 수사 결과 그는 이번 사건에서 노비를 합쳐 총 780관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수차례 매관매직을 했고, 절에서 관가에 바치는 은그릇 등을 횡령한 혐의도 추가로 드러났다.
사헌부는 조말생에게 교형(목매달아 죽는 형벌)을 구형했다. 부패한 관료가 받은 뇌물이 총 80관을 넘기면 사형에 처한다는 법률에 의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종은 조말생이 받은 뇌물을 모두 거두고 그를 황해도 평산으로 옮기라는 판결만을 내린다.
다음날 사헌부 관료들이 판결의 부당함을 아뢰며 세종에게 판결 번복을 간청했다. 그러나 세종은 조말생이 세운 공을 감안해 내린 자신의 판결이 중도를 얻었다는 논리를 펴며 청을 거절했다. 이에, 태종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아 태종도 그 강직함을 인정한 종3품 사헌부 집의(執義) 정연이 판결의 부당함을 아뢰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간원도 합세해, 우사간 박안신이 판결 번복을 주청하였으나 세종의 태도는 확고부동했다.
세종 8년 5월 27일, 대사헌 권도 등 사헌부 관료들이 집단 배석하여 조말생의 공이 대단하지 않다며 세종의 중용론에 맞섰다. 세종은 대신은 죽이지 않는다는 조종성헌(선대왕들로부터 시행되면서 굳어진 절대적인 관습법)을 들어 방어했다. 이에 관료들은 선대왕 때는 탐오한 대신이 많지 않아 형벌을 가볍게 썼지만 이제는 대신 차원의 부패가 자꾸 나타나고 있으니 형벌을 중하게 쓸 필요가 있다고 반격했다. 조종성헌이라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하며, 특히 형벌권 행사에 있어서 영구불변의 법은 국가질서 문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이에 세종은 정리(情理)상 조말생을 죽일 수 없다며 신하들의 이해를 구했지만, 관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세종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대들이 법에 의거하여 말한다면 그렇겠지만, 이미 그 죄를 결정하였으니 다시 청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다시 청하지 말라.”
대간들은 한발 물러 사사(사약을 내려 죽임, 교형보다 명예를 더 살려주는 방법)를 청했으나 세종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한발 더 물러 자자(묵형)를 청했지만 세종의 뜻은 완강했다. 결국 세종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야 말았다.

* 조말생의 귀환
최종 판결이 있은 세종 8년 6월 2일로부터 약 2년이 지난 세종 10년(1428년) 4월 1일, 조말생은 전격적으로 사면을 받아 귀양에서 풀려난다. 이로부터 다시 2년 후인 세종 12년(1430년) 4월 14일, 세종은 조말생에게 직첩을 돌려줄 것을 명한다. 직첩을 갖는다는 것은 관직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뜻이다. 세종의 처분에 반대해 변계손, 이승직 등이 조말생에게 준 직첩을 거둘 것을 상소했으나 세종은 듣지 않았다. 이에 대간들이 집단 사직원을 내는 등 이후 20여 일 동안 세종과 대간 사이에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세종의 뜻이 관철되었다.
다시 2년여가 흐른 세종 14년(1432년) 12월 8일, 세종은 조말생을 동지중추원사에 임명한다. 사간원과 사헌부에서는 즉시 반발했다. 죽일 죄인을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큰 은혜인데, 법을 어기면서까지 다시 쓰겠다는 세종의 뜻이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세종은 조말생이 태종의 옛 신하이므로 쓰지 않을 수 없다, 대신들과 이미 의논한 사항이다 등의 말로 반박했으나 신하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세종은 조말생이 받은 노비, 즉 사람까지 장물로 계산한 것은 잘못이라는 억지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
사간원의 상소를 시작으로 이견기의 11차례 상소에 이르기까지, 사간원과 사헌부의 관원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부담을 느낀 조말생은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했다. 그의 청에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었다.
“병오년에는 사헌부에서 문치(文治)가 한결같지 않다는 죄명을 씌웠사오나 대개 억울한 일이 많았고, 사면을 받았지만 그동안 벼슬을 받지 못하여 조정에 나와 억울한 사정을 능히 밝힐 수도 없었나이다.”
조말생이 용퇴 카드를 꺼냈지만 세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대간들은 탐관오리는 재등용하지 않는다는 법률에 근거해 자신들의 논리를 폈다. 사헌부 집의 이견기가 말했다.
“장리를 서용하지 않는 법은 법률에 뚜렷이 있사옵니다.”
세종이 응수했다.
“그대들은 법으로 말했지만, 나는 권도(權道)로 행한 것이다.”
조선에서 군왕이 권도를 언급한 것은 왕도정치를 버리고 패도정치를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대간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견기가 말생을 내치든 자신을 파면하든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세종을 압박했고, 대간들은 전원 사직 시위로 맞섰으며, 대사헌 신개가 사간원과 연명으로 조말생 등용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조말생은 이듬해(1433년) 1월 19일 함길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 무죄주장
당시 함길도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 있었다. 여진족의 잦은 침입으로 생활 터전이 망가진 데다가 명나라 사신이 조선을 오갈 때마다 공물을 징발당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진족에게 강경책 일변도로 나갈 수도 없었다. 함길도는 중앙의 행정력이 덜 미치는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국경을 침범하면 자칫 외교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었다. 지나치게 강직한 관료를 파견하면 사신과의 관계 등이 악화되어 득보다 실이 더 커질 위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군사작전 수행능력, 탁월한 외교술 등을 갖춘 노련한 인물이 필요했다. 과거 대마도 정벌 때 보여준 결단력이나, 태종을 보필하면서도 끝까지 신임을 잃지 않았던 치밀함을 볼 때 조말생이 적임자였다. 세종은 그 점을 고려한 것이다.
조말생이 함길도 관찰사에 오르는 것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세종은 신하들을 달랬다.
“내가 그대들의 말을 진실로 아름답게 여긴다. 허나 말생을 보낸 뒤에야 함길도의 백성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윤허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관직에 복귀한 조말생은 세종의 기대에 부응해 동북면을 안정시켰다. 조정의 신하들은 더 이상 별다른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세종 20년(1438년) 조말생의 막내아들 조근이 문과 한성시에 합격했다. 조근이 녹명(합격자 등록부에 이름을 올림)하기 위해 예문관을 찾았는데 예문관 관원들은 조말생의 전과기록을 문제 삼아 조근을 하루 종일 세워 두기만 하고 등록을 거부하였다. 이렇게 이틀을 보내고서야 조근은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조말생이 바로 예문관 수장인 대제학이었다.
조말생은 자기 부하들의 이런 처사에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이윽고 세종 20년 3월 25일, 조말생은 조근에 대한 예문관 관원들의 녹명 지연 사건을 두고, 아비로서 부끄러움과 상관으로서의 자괴감을 토로하며 세종에게 사의를 표했다. 세종은 의금부에 엄정한 조사를 명하여 진상을 확인한 후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했다.
같은 해, 조말생의 둘째 아들 조찬이 정6품의 사헌부 감찰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사헌부에서 조말생의 과거지사를 문제 삼아 조찬에 대해 서경(임명 동의)을 거부했다. 장오죄를 지은 인물의 자손이 다른 관직도 많은데 하필이면 감찰기관인 사헌부에 임명된 것에 대한 반대였다. 조말생은 조찬에 대한 임명 동의 거부 사건을 두고 세종에게 다시 상소를 올렸다. 그 내용이 의미심장하다.
“신의 자식 찬이 사헌부 감찰에 임명되었사온데, 고신이 사헌부에 도착한 후에 여러 번 회의를 거치고도 서경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신의 장오죄 전력 때문이옵니다. 병오년 봄에 신이 노비 사건으로 죄를 당하여 외방으로 귀양을 갔는데, 사헌부의 관리들이 평소부터 신과 나쁜 감정이 있으므로 신을 원망하는 사람들의 긴밀한 부탁을 받고 애써 심각하게 다루어 억지로 사건을 만들고 신의 죄를 얽어 만든 것입니다. …… 그러나 이제 사헌부에서 병오년에 무고하게 얽어 놓은 죄상에 의거하여 아들의 앞길을 막사오니, …… 비옵건대 유사에 명령을 내리시어 신이 범장(犯贓)한 여부를 변명 해석하게 하옵소서.”
이참에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뜻이다. 세종은 일단 사헌부에 조찬에 대한 임명에 동의하라 명하였다. 사헌부에서는 반발하였으나 세종의 거듭된 명령으로 일단 임명을 동의했다. 사건은 이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 법조인의 눈으로 본 세종
세종 21년(1439년) 5월 25일, 세종은 조말생에게 궤장을 하사했다. 궤장은 임금이 나이 많은 충신에게 하사하는 것으로, 궤장을 받는다는 것은 관료에게 크나큰 영광이었다. 세종이 연이어 자신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제는 궤장까지 내렸으니 조말생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다.
세종 23년(1441년) 10월 20일, 조말생은 장문의 상소를 올려 병오년(1426년) 뇌물사건의 재조사를 청했다. 그는 상소에서 증거조사 불충분, 자백한 바 없음, 장물 개념 오해 등의 이유를 근거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세종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세종의 무응답은 조말생이 상소에서 무죄의 근거로 든 이유를 세종이 합당하지 않게 여겼음을 보여준다. 현직 검사인 저자는 이를 법제사적 시각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첫째, 증거조사 불충분. 조말생은 자기가 곧바로 귀양을 가 진실을 가릴 수 없었다 말했다. 하지만 사헌부에서 김도련을 수사하던 중 조말생의 혐의가 명백해져, 요즘말로 하면 인지수사 할 수 있는 조건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조말생의 아들 조선이 대사헌의 집을 염탐하던 중 승려를 납치 협박하여 대사헌에게 불리한 허위진술을 받아냈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조말생 세력이 증거를 인멸해 진실을 왜곡할 가능성도 있었다. 따라서 조말생을 귀양 보내 외부와 격리시키고 수사를 조속히 마무리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자백한 바 없음. 조선시대에는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자백해야 범죄가 최종 인정되었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허용하였음은 물론이다. 고문은 증거취득의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범죄자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반성하도록 한다는 윤리적 의미도 담고 있었다. 만약 조말생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고문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종은 조말생의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고문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끼는 신하를 보호하고자 하는 세종의 뜻을 조말생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 장물 개념 오해. 조말생은 사전에 근거해, 장(贓)이 재물을 뜻한다면서 노비는 사람이지 재물이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조선시대 형사법이었던 《대명률》의 관련 규정에서는 ‘장’을 재물 및 재산상 이익과 뇌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공공의 질서를 위반하는 범행으로 취득한 재산상 이익이 모두 ‘장’이라는 것이다. 노비가 비록 사람이어서 재물로 파악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받아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조말생의 이 주장 또한 설득력이 없다.

우리 상식 속의 세종은 중국의 한문이 어려워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한글을 창제하였고, 백성들의 삶의 근본인 농사를 돕고 삶의 편의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해시계·물시계·측우기를 발명하는 등 과학기술의 발달을 꾀하였다. 동북면·서북면 여진족 및 남부 지방 왜구의 노략질과 명나라 사신 접대 등으로 고초를 겪는 국경지역 백성들을 위해서 사군육진을 개척하고,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아냈다. 아악을 창설·정비하여 음악으로써 화합하게 하였다.
그러나 탐관오리를 감싸주고, 충직한 신하들을 힘으로 억누르는 모습은 우리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의 상식이 틀린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세종은 단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때를 보아 법 적용을 유연하게 했을 뿐이다. 조말생의 경우에도, 세종은 그의 능력은 샀지만 죄는 명백히 하여 후에 유사한 사례가 있을 때 참고하도록 했다. 실제로 조말생 뇌물사건을 처리하는 동안 축적된 논의는 이후 100여 년간 장오죄의 처벌, 장오범과 그 자손의 인사 문제 등에 있어서 리딩케이스로 작용하였다.
그렇다면 세종은 누구인가? 법조인의 눈으로 본 세종은 법치주의를 견지하되 중도를 따르는 인물, 즉 실리적 법치주의자이다.

이 책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2007년 가을, 살림출판사는 ‘우리 시대의 화두’는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범주를 제도정치권으로 한정하니 리더십, 반(反)부패, 효율적인 행정구조 정도로 정리되었다. 이 세 가지 화두에 맞는 책을 2008년 새해에 출간하겠다는 목표 아래 세 권의 책을 기획했다.
올 2월에 출간된 『표트르 대제: 러시아를 일으킨 리더십』에서는 유럽의 변방이었던 러시아를 당당히 세계의 주역으로 이끈 표트르 대제의 리더십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의 방향과 리더십의 실체를 고민해보았다. 이번에 출간된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에서는 우리 역사 속에서 부패사건을 대하는 전범을 찾아 우리가 부패 문제를 어떻게 사고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부패와 무능』(가제, 2008년 상반기 출간 예정)에서는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돌아보며 국민들의 세금이 실제 행정에서 어떻게 쓰여 왔는지를 추적하고, 효율적인 행정구조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본다.
이번에 출간된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은 당초 ‘조선의 탐관오리’라는 주제로 기획된 것이었다. 조선 역사에 기록된 탐관오리 중 우리가 돌아봐야 할 만한 인물들을 뽑아 그들의 횡포, 그들에 대한 조정의 처분, 이후 기록 등을 열전 형식으로 정리할 참이었다.
하지만 대구에서 처음 만난 저자는 가슴에 하고 싶은 말을 켜켜이 쌓아둔 젊고 성실한 검사였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와 자기 생각을 깊이 돌아본다는 저자는, 여러 인물을 나열하는 것보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한 시대를 보여주고 싶다 말했다.
저자는 자기의 의지를 법조인의 향기가 나는 문자로 형상화했다. 조말생 뇌물사건 수사 과정에서 대간들과 세종이 펴는 논리들, 사형이나 장리자손금고법(연좌제)과 같은 당대의 형법, 수사 과정의 적실성과 조말생의 무죄 주장 등을 다룰 때 법제사적 관점과 현직 검사의 문제의식을 담아 날카롭게 풀어갔다. 기존의 역사서에서 보기 힘든 부분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서정민(지은이)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 법학박사 미국 보스턴 로스쿨 LLM. 수료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로스쿨 파견검사(서울대?중앙대) 법무부 국제형사과장 변호사시험위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제8, 13부장검사 (현재) 국무조정실 부패예방추진단 파견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들어가는 말 = 5
제1장 조선을 뒤흔든 권력형 비리사건 = 13
 한 장의 탄핵상소문에서 비롯된 권력형 비리의 고발
 태종조 최고의 인재 조말생
 밝혀진 사건의 진상
 철저히 수사하라
 권력형 비리의 실체
 어떤 형벌이 적합한가
제2장 조선, 부패를 논하다 = 45
 사헌부의 불복
 사간원의 합세
 말생을 죽이소서
 사사와 자자
제3장 조말생의 귀환 = 77
 논쟁의 불씨, 사면
 사면은 받았더라도 직첩은 돌려줄 수 없다
 결국 벼슬을 줄 것인가
제4장 법치주의와 실리주의 = 109
 법치주의를 거스른 세종의 인사
 자주국방의 염원
 서북면 최윤덕, 동북면 조말생
제5장 무죄 주장, 부패를 부정하다 = 153
 두 아들에게서 비롯된 새로운 논란
 부패한 자의 아들을 등용할 수 있는가
 무죄 주장 상소문에 나타난 법적 쟁점
제6장 비판과 통합, 그리고 역사의 과제 = 199
 명예로운 업적
 부패의 오점
 부패에 대한 담론, 그리고 법치주의의 관철
 유능한 인재 등용을 통한 실리주의 추구
 통합의 달성
참고문헌 = 234


관련분야 신착자료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202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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