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0 | 00908camcc2200301 c 4500 | |
| 001 | 000045695187 | |
| 005 | 20120312165502 | |
| 007 | ta | |
| 008 | 111025s2011 ulka 000c kor | |
| 020 | ▼a 9788958624189 ▼g 07910 | |
| 035 | ▼a (KERIS)BIB000012570327 | |
| 040 | ▼a 211062 ▼c 211062 ▼d 244002 | |
| 041 | 1 | ▼a kor ▼h fre |
| 082 | 0 4 | ▼a 741.5944 ▼2 22 |
| 085 | ▼a 741.5944 ▼2 DDCK | |
| 090 | ▼a 741.5944 ▼b 2011 | |
| 100 | 1 | ▼a Mathieu, Marc-Antoine, ▼d 1959- |
| 245 | 1 0 | ▼a 신신 : ▼b 어느 날, 이름도 성도 神이라는 그가 나타났다 / ▼d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 지음 ; ▼e 김지희 [외] 옮김 |
| 246 | 1 9 | ▼a Dieu Dieu |
| 260 | ▼a 서울 : ▼b 휴머니스트, ▼c 2011 | |
| 300 | ▼a 122 p. : ▼b 삽화 ; ▼c 26 cm | |
| 500 | ▼a 공역자: 맹슬기, 안준호, 이하규 | |
| 700 | 1 | ▼a 김지희, ▼e 역 |
| 700 | 1 | ▼a 맹슬기, ▼e 역 |
| 700 | 1 | ▼a 안준호, ▼e 역 |
| 700 | 1 | ▼a 이하규, ▼e 역 |
| 900 | 1 0 | ▼a 마티외, 마르크 앙투안, ▼e 저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741.5944 2011 | 등록번호 151306007 (13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최초에 사람을 만들고, 아담에게 손을 뻗어 정기를 불어 넣어 주던 창조주, 신(神)이 인간들을 다시 찾는다면? 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생겨먹은 인간 사회 속에 그가 들어온다면?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신신>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고도의 자본주의와 소비문화 속에 신성함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 사회에 신이 돌아온다면 사람들은 신성한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반대로 신이 신성함을 벋어 던지고 세속에 정착할 수 있을까? 지금의 세기에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는 이 위태로운 상상을 깔아놓은 채, "신에 대한 재판'이라는 불온한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간다.
신의 재림이 인간들의 심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과는 달리, 신에 대한 인간의 재판이 벌어지게 된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 재판에서 신은 이 세상의 창조주로서, 만물의 운용자로서 세상을 지금의 모습처럼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문책 당하게 된다. 신에 대한 재판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신의 존재, 신의 역할, 신의 의지에 대한 현대적 논쟁이 펼쳐진다.
인간의 모습으로 신이 찾아왔다.
세상은 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인구조사 현장에 주민번호도, 신분증도 없는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나타났다.
"당신의 이름은?" "신.""당신의 성은?" "신."
한바탕 우스개로 끝날 뻔한 이 사건은 신신의 능력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거대한 사건으로 폭발한다.
모든 미디어와 문화계는 신을 소재로 한 이벤트에 몰두하고, 신에게 쏟아지는 군중들의 열정과 관심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타성에 젖은 오늘날의 일상과 일률적인 사회 체제에 전대미문의 충격이 몰려왔다.
하지만 신이 인간 사회에 준 충격은 그것만큼의 반작용으로 신에게 돌아갔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재판정에 신이 피고로 서게 된 것이다. 신을 변호하기 위해 신의 역할을 부정하고 신을 심판하기 위해 신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역설이 펼쳐지는 가운데, 신은 점점 자본주의 안으로 편입된다. 출판, 미디어, 콘서트와 공연, 테마파크, 아트, 로고, 초상권… 막대한 규모의 저작권 사업이 그를 둘러싸고 진행된다.
신은 과연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아직 신을 믿고 있을까?
신은 아직 사람들을 믿고 있을까?
무엇보다, 이 남자가 정말 신일까?
만약 창조주가 다시 돌아온다면?
최초에 사람을 만들고, 아담에게 손을 뻗어 정기를 불어 넣어 주던 창조주, 신(神)이 인간들을 다시 찾는다면? 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생겨먹은 인간 사회 속에 그가 들어온다면?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신신>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고도의 자본주의와 소비문화 속에 신성함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 사회에 신이 돌아온다면 사람들은 신성한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반대로 신이 신성함을 벋어 던지고 세속에 정착할 수 있을까? 지금의 세기에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는 이 위태로운 상상을 깔아놓은 채, "신에 대한 재판'이라는 불온한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간다.
신의 재림이 인간들의 심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과는 달리, 신에 대한 인간의 재판이 벌어지게 된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 재판에서 신은 이 세상의 창조주로서, 만물의 운용자로서 세상을 지금의 모습처럼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문책 당하게 된다.
신에 대한 재판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신의 존재, 신의 역할, 신의 의지에 대한 현대적 논쟁이 펼쳐진다.
신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은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은 인간을 믿지 못하고, 인간은 신을 믿지 못한다.
재판정 위의 신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인간, 인간 사회, 인간 세계를 비판하게 된다. 창조물과 피조물 사이의 논쟁은 이 시대의 정신, 이 시대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준다.
재판과 함께 진행되는 "신"을 이슈로 하는 다양한 돈벌이는 지금의 세계가 얼마나 강고한 것인지, 자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미디어의 영향력이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를 반증한다.
신이라는 그 남자
1부 신신: 어느 날, 신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지만 그의 비상한 정신 능력은 그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힉스보존을 발견하고, 도서관 안의 분자 수를 정확히 맞추는가 하면, 천체망원경조차 발견하지 못한 별을 육안으로 관측하는 등…. 그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군중 앞에 그가 신의 이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신은 곧 세상의 소용돌이가 되어 모든 미디어와 대중들의 관심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푸줏간 같던 이 세상', '권태로운 이 세상'은 잠시지만 신성의 세례를 받는 듯하였다. 하지만 배가 지나간 자리 뒤로 물살이 모이듯, 신의 세상에 대한 작용은 곧 세상에 대한 신의 반작용을 일으켰다.
2부 소송: 신에 대한 소송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유명해지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선전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신을 고소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 법률회사 AAA는 250명의 인력을 투입한다. 신은 이 법률회사의 최대 고객이며, 수입료는 보험회사의 제휴로 해결된다. 물론, 신은 이외의 사업을 많은 돈을 벌었지만…
17개의 청중실, 248개의 회의실, 하루 8,417끼의 식사, 97개의 커피머신이 준비된 세계 최대 규모의 재판정이 준비된다. 그리고 가장 편파적인, 재판에 참여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한, 10인의 배심원단이 재판정에 입장한다. 인류의 모든 지식을 취합하고, 종합하고, 판단할 수 있는 반신(半身) H-1이 재판정에 동원된다.
원고 측은 세상을 만든 자로서의 책임을 묻는다. 원고 측은 신이 세상을 만들었을 뿐 조율하지 않고 있다(제품은 팔되 AS는 하지 않는다?-50쪽 참조)는, 그래서 이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가 사실 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반면 신을 보호하는 피고 측의 변호사들은 신의 역할은 세상을 만든 것뿐이라고 주장(임페투스, 손가락 장난-69쪽 참조)한다. 신을 변론하기 위해 신의 전능함을 부정하는 피고 측과 신을 심판하기 위해 신의 전능함을 주장하는 원고 측의 역설적 논쟁은 팽팽한 현대 신학 논쟁을 재현한다.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신을 둘러싼 전방위적 비즈니스가 진행된다. 신조차 '그 이름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위해서는' 신의 로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연… 콘서트, 출판물, 테마파크, 아트, 매스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신의 대중적 영향력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일군의 양복 입은 남자들은 모처에서 모종의 결정을 내린다.
"너무 많이 가고 있네." (112쪽)
며칠 후, 신은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행적이 기획된 것임을 밝힌다. 작은 프로덕션이 기획한 거대한 쇼였다고. 이 모든 쇼를 종료하면서 신은 최종적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대적인 상품 프로모션을 하게 된다. 바로 H-1과 언제나 연결되어 알고 싶은 모든 문제에 실시간으로 답을 구하는 I-신 이어폰. 월 3만 4천 9백원에 서비스되는 이 통신 상품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
어쨌든 신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따로이 남게 될 것이다.
그 남자는 과연 신이었을까?
그림 이야기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에게 흑백 그림은 고유한 것이다. 그는 첫 만화 발표 이후 흑/백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만화를 선보였으며, 이후 이 매력은 그의 작품을 특징짓는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 <신신>에서는 강렬한 흑백의 명암을 일정한 톤의 회색이 받침해 주면서 차가운 섬세함에 더해 깊이 있는 명암을 보여 주고 있으며, 묵직한 주제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해외 서평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작품에서,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는 현대사회를 점유하고 있는 미디어 시스템을 조롱하고 있다.
-프랑스 만화비평가협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심오한 문제제기와 함께…
-라디오 캐나다
해학과 부조리가 한데 어우러져 유쾌한 성찰이 배가 되었다.
-프낙
이 작가는 유머를 잘 다루지만, 이따금씩 코미디와는 다른 독특한 차이를 나타낸다. 그로테스크한 면도 보이고, 날카로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텔레라마
정보제공 :
저자소개
마르크-앙투안 마티외(지은이)
사실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처럼 가진 게 많은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날카로운 백색과 걸쭉한 검은색의 대비로 이루어진 독자적인 화풍, 디테일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뛰어난 그림 실력,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수준의 풍성한 상식, 인간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별한 시각. 이런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언제나 충격 그 자체였고, 때문에 마티외의 신작이 발표되면 독자보다 출판사와 작가들이 가장 먼저 서점으로 뛰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0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꿈의 포로 아크파크』에서는 2차원의 성질을 가진 '책'을 3차원의 세계로 바꿔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물질적인 한계를 다양한 시도로 철저하게 농락했다. 또한 신이 인간 세상에 현신했을 때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작품인 『신신』은 풍자와 은유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블랙코미디의 대향연이었으며, 2011년에 발표한 『3초』는 하나의 사건을 빛의 속도에서 접근한 작품으로, 특히 이 작품에서 시도한 '반사의 무한 루프'는 그림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루브르 박물관과 출판사 퓌튀로폴리스가 함께 기획ㆍ출간하는 '루브르 만화 컬렉션’에서 니콜라 드 크레시 다음으로 두 번째 주자로 선정되어 『어느 박물관의 지하』를 발표하였고, 동료 작가 에티엔 다보도, 에마뉘엘 기베르, 다비드 프뤼돔 등과 릴레이 만화를 그린 『선사시대』에서는 경이로운 해석과 작화로 거장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ACBD 평론 대상을 비롯한 수많은 앙굴렘 수상 이력에도 불구하고 마티외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는 결코 그러한 사실들이 언급되지 않는다. 작가의 세계가 너무나 커다랗기에 세속적인 명예 따위는 단 한 줄의 수식어조차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 아티스트로 탄탄한 기반을 가진 마티외지만, 대학 친구들과 설립한 아틀리에 '뤼치 롬'을 통해서는 작품 세계보다는 다소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세노그라피와 도시 조형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2004년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서 진행한 '걸려진 숲'은 아직까지도 업계에서 회자하고 있는 걸작이다. 마티외의 작품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너무 광활하거나, 반대로 숨 막힐듯한 빼곡함에서 어디서부터 첫발을 들여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탄탄한 서사 구조와 작가에게 종속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네 독서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티외의 작품은 그렇게 불친절하지만은 않다. 언제나 그의 작품은 '여행'이고 독자는 동행자이다. 읽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헤엄치듯 작품에 뛰어들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작품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