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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5 | 0 0 | ▼a 성찰의 시간 : ▼b 문득 멈춰선 그곳에 잠시 나를 내려놓다 / ▼d 이효석, ▼e 백석, ▼e 이상 외 지음 ; ▼e 임현영 엮음 |
| 260 | ▼a 서울 : ▼b 홍재, ▼c 2018 | |
| 300 | ▼a 211 p. ; ▼c 21 cm | |
| 500 | ▼a 공저자: 이태준, 백석, 한용운, 이효석, 채만식, 강경애, 계용묵, 김상용, 최서해, 노천명, 정지용, 이상, 이육사, 계용묵, 현진건, 노자영, 이광수, 유치진 | |
| 700 | 1 | ▼a 이효석, ▼e 저 |
| 700 | 1 | ▼a 백석, ▼e 저 |
| 700 | 1 | ▼a 이상, ▼e 저 |
| 700 | 1 | ▼a 이태준, ▼e 저 |
| 700 | 1 | ▼a 한용운, ▼g 韓龍雲, ▼d 1879-1944, ▼e 저 ▼0 AUTH(211009)126552 |
| 700 | 1 | ▼a 채만식, ▼e 저 |
| 700 | 1 | ▼a 강경애, ▼g 姜敬愛, ▼d 1907-1943, ▼e 저 ▼0 AUTH(211009)67690 |
| 700 | 1 | ▼a 계용묵, ▼g 桂鎔黙, ▼d 1904-1961, ▼e 저 ▼0 AUTH(211009)9261 |
| 700 | 1 | ▼a 김상용, ▼e 저 |
| 700 | 1 | ▼a 최서해, ▼g 崔曙海, ▼d 1901-1932, ▼e 저 ▼0 AUTH(211009)45244 |
| 700 | 1 | ▼a 노천명, ▼g 盧天命, ▼d 1912-1957, ▼e 저 ▼0 AUTH(211009)126516 |
| 700 | 1 | ▼a 정지용, ▼e 저 |
| 700 | 1 | ▼a 이육사, ▼g 李陸史, ▼d 1904-1944, ▼e 저 ▼0 AUTH(211009)28424 |
| 700 | 1 | ▼a 계용묵, ▼e 저 |
| 700 | 1 | ▼a 현진건, ▼g 玄鎭健, ▼d 1900-1943, ▼e 저 ▼0 AUTH(211009)51018 |
| 700 | 1 | ▼a 노자영, ▼g 盧子泳, ▼d 1898-1940, ▼e 저 ▼0 AUTH(211009)35629 |
| 700 | 1 | ▼a 이광수, ▼g 李光洙, ▼d 1892-1950 ▼0 AUTH(211009)113350 |
| 700 | 1 | ▼a 유치진, ▼g 柳致眞, ▼d 1905-1974, ▼e 저 ▼0 AUTH(211009)90657 |
| 700 | 1 | ▼a 임현영, ▼e 편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97.08 2018z1 | 등록번호 151343394 (1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이효석, 백석, 이상, 한용운, 이태준, 정지용 등 우리 문학을 사로잡은 큰 별들이 피서지에서 보낸 글을 엮은 휴식 에세이. '출세'와 '욕심'이 아닌 '느림'과 '비움'을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을 꿈꾸었던 문인들의 이야기는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선물한다.
책 여기저기에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오롯이 펼쳐지는 1930~40년대 피서지 풍경과 낭만, 서정 역시 짙은 페이소스를 낳는다. 80여 년의 시공간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피서는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닌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자 새로운 도약의 기회였다. 이에 한가한 곳을 찾아가 삶을 되돌아보며 재충전하기도 했고,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즐겨 찾는 장소와 성찰 방법만은 그들의 개성처럼 천차만별이었다.
예컨대, 만해 한용운 같은 이는 해수욕을 통해 심신을 단련했고, 이효석은 날마다 손수 만든 밤 샌드위치와 커피를 가지고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가 외로움을 즐기는 방법으로 피서를 했다. 또한, 춘원 이광수는 시원한 돌베개 하나에 의지해 순전히 집에서 더위를 피했고, 이상은 요양을 위해 지인의 고향에서 여름을 보내며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다는 <산촌여정>을 썼다.
‘출세’와 ‘욕심’이 아닌 ‘느림’과 ‘비움’을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었던
우리 문학의 큰 별들이 피서지에서 보내온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문장
1941년 8월 5일 오전 8시 50분. 만해 한용운은 서울발 원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만원 승객으로 인해 차 안 공기는 후끈하고 불결했지만, 환갑을 넘긴 만해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다음 날, 원산 갈마역에서 내린 만해는 명사십리(明沙十里)로 향했다. 명사십리는 그 이름 그대로 가늘고 흰 모래가 십 리에 걸쳐 있고, 해송과 해당화가 어우러진 천혜의 해수욕장이었다. 또한, 해안 남쪽에는 서양인 별장 수십 호가 있고, 해수욕 절기에는 동경, 상해, 북경 등지의 사람들까지 몰려와서 피서할 만큼 당시 최고의 휴양지였다.
그곳에 이르러 만해는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급히 옷을 벗어 던지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명사십리와 인근에 있던 송도원 해수욕장을 오가며 해수욕을 했다. 그만큼 만해는 피서의 일환으로써 해수욕을 즐겼다. 심지어 해인사 순례 길에도 짬을 내 해운대에 들렀을 정도였다.
〈명사십리〉라는 글을 보면 만해가 ‘모든 방면으로 시끄럽고 성가시던 서울을 뒤로 두고’ 모처럼 명사십리 바닷가에서 얻은 마음의 평화가 글 곳곳에 배어 있다. 특히 ‘짓궂은 물결은/ 해죽해죽 웃으면서/ 한 발로 모를 차고/ 한 발로 샘을 짓는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미소 짓는 그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하다. 이는 익히 우리가 알고 있던 근엄하고 엄숙한 만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지친 마음과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했던 문인들의 행복 통신
8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잔잔한 서사와 진한 서정의 페이소스!
《성찰의 시간》은 이효석, 백석, 이상, 한용운, 이태준, 정지용 등 우리 문학을 사로잡은 큰 별들이 피서지에서 보낸 글을 엮은 휴식 에세이다. ‘출세’와 ‘욕심’이 아닌 ‘느림’과 ‘비움’을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을 꿈꾸었던 문인들의 이야기는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선물한다. 책 여기저기에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오롯이 펼쳐지는 1930~40년대 피서지 풍경과 낭만, 서정 역시 짙은 페이소스를 낳는다. 80여 년의 시공간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름 해수욕장은 어지러운 꽃밭이다. 청춘을 자랑하는 곳이요, 건강을 경쟁하는 곳이다. 파들파들한 여인의 육체, 그것은 탐나는 과실이요, 찬란한 해수욕복, 그것은 무지개의 행렬이다. 사치한 파라솔 밑에는 하얀 살결의 파도가 아깝게 피어 있다. 해수욕장에 오는 사람들은 생각건대 바닷물을 즐기고자 함이 아니라 청춘을 즐기고자 함 같다.”
─ 이효석, 〈계절〉 중에서
그들에게 있어서 피서는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닌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자 새로운 도약의 기회였다. 이에 한가한 곳을 찾아가 삶을 되돌아보며 재충전하기도 했고,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즐겨 찾는 장소와 성찰 방법만은 그들의 개성처럼 천차만별이었다. 예컨대, 만해 한용운 같은 이는 해수욕을 통해 심신을 단련했고, 이효석은 날마다 손수 만든 밤 샌드위치와 커피를 가지고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가 외로움을 즐기는 방법으로 피서를 했다. 또한, 춘원 이광수는 시원한 돌베개 하나에 의지해 순전히 집에서 더위를 피했고, 이상은 요양을 위해 지인의 고향에서 여름을 보내며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다는 〈산촌여정〉을 썼다.
문인이기에 앞서 삶의 선배로서 삶의 요소요소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우리 앞에서 직접 이야기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꿈을 찾아 정처 없이 내닫고 싶은 마음, 한정 없이 간 곳에 필연코 찾는 꿈이 있으려니 짐작됩니다. 혹 없을지도 모르지요. … (중략) … 사람이란 천생 외로운 물건입니다. 외로운 속에서 모두 각각 자기의 꿈을 껍질 속에 싸가지고 궁싯궁싯 서글픈 평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 이효석, 〈바다로 간 동무에게〉 중에서
“인생이란 결국 물가의 모래 위에 써 놓고 가는 허무한 기록인가. 하지만 그것은 바닷물에 씻기고 또 씻기는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좀 더 크게, 좀 더 길게 써 놓고 가려고 애쓰며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 노천명, 〈해변단상〉 중에서
그들은 크고 허황한 꿈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을 꿈꾸었다. 생각건대, 그들 역시 거기서 진정한 삶의 기쁨과 존재의 의의를 느꼈으리라.
이제 곧 피서 시즌이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것들을 되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친 마음과 몸을 위로할 소중한 기회다. 나아가 그것을 기회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름휴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문인들이 그랬듯이 나만의 ‘소확행’을 이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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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백석(지은이)
(白石, 1912~1996)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로 평가받는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과를 졸업했다. 1934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고,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8월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여성』지 편집 주간,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직원, 만주 안둥 세관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시를 썼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고향 정주로 돌아왔고, 1947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분과 위원이 되어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이 외에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 편집위원,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1957년 발표한 일련의 동시로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이상(지은이)
1910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신명학교와 동광학교·보성고보를 거쳐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소설 「12월 12일」의 발표를 시작으로 이후 일문시 「이상한 가역반응」·「조감도」 등을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창작에 나서게 된다. 1933년 각혈로 배천온천에 요양을 가서 금홍을 만났으며, 서울에 돌아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녀와의 삶을 바탕으로 「지주회시」·「날개」·「봉별기」를 썼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발표하였으나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15편 연재로 그만두게 된다. 1935년에는 성천을 기행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산촌여정」과 「권태」를 내놓게 된다. 1936년에 『시와 소설』을 편집하였고, 「날개」를 발표하여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으며, 「위독」·「동해」·「종생기」 등 뛰어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10월에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실화」·「동경」 등을 창작하였다. 1937년 2월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었으며,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효석(지은이)
1907년 강원도 평창에서 한성사범학교 출신의 교사였던 아버지 이시후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일생의 벗이자 문학적 동지였던 현민 유진오를 만나면서 그와 더불어 문학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경성제국대학에 함께 진학하여 더욱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유진오 등과 함께 경향소설을 쓰며 동반자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이효석이 작품 세계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경성농업학교 교사로 재직할 무렵이었다. 이후 평양으로 직장을 옮긴 그는 안정된 집필 환경 속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고,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해마다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던 그는 1940년 아내와 아들의 잇단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잠시 만주 등지를 방랑하다가 돌아왔으며, 다시 창작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지만 뜻을 펼치기도 전에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임현영(엮은이)
40대 여성. 10년 동안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지금은 30여 년 동안 낯선 타인으로 지내오다가 15년 전부터 한집에서 함께 사는 오지랖 넓은 남편과 자신을 꼭 닮은 예쁜 두 딸을 키우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쓴 아메리카노보다는 달콤한 초콜릿라떼와 바닐라라떼를, 의미 없는 수다보다는 고독한 독서를, 복잡한 백화점보다는 오래된 책 냄새로 가득한 도서관을 즐겨 찾으며, 자기계발과 문화 창달, 지식 확장에 힘쓰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일 년에 한 번은 꼭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며, 무위도식했던 학창 시절처럼 보낸다. 교사 시절,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글과 도서관에서 틈틈이 읽었던 책 속의 감동적인 문장을 토대로 이 책을 엮었다. 남편 출근 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혼자서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 : 문인들의 소확행 _ 문득 멈춰선 그곳에 잠시 나를 내려놓다 PART 1 쪽빛 바다에서 나를 만나다 _ 바다, 강에서 보내온 소확행 통신 피서지의 하루 / 이태준 = 17 동해(東海) / 백석 = 19 명사십리(明沙十里) / 한용운 = 23 소하일기(銷夏日記) / 이효석 = 31 처녀 해변의 결혼 / 이효석 = 42 바다로 간 동무에게 - 이효석 = 45 인물보다 자연이 나를 더 반겨주오 : 피서지 통신 ① / 이효석 = 52 계절을 다시 역행하는 듯하오 : 피서지 통신 ② / 이효석 = 56 관북의 평야는 황소 가슴 같소 : 피서지 통신 ③ / 이효석 = 59 해초 향기 품은 청춘의 태풍 : 피서지 통신 ④ / 이효석 = 64 비응도의 쾌유 / 채만식 = 68 백마강의 뱃놀이 / 채만식 = 72 어촌점묘(漁村點描) / 강경애 = 81 천렵(川獵) / 계용묵 = 96 동해 사장(沙場)의 신비한 밤 / 김상용 = 100 여름과 물 - 최서해 = 103 해운대 / 최서해 = 105 해변단상 / 노천명 = 112 PART 2 푸른 솔숲에서 나를 만나다 _ 산, 고향집에서 보내온 소확행 통신 가장 시원한 이야기 / 정지용 = 117 산촌여정 / 이상 = 118 산사기 / 이육사 = 133 정릉 일일 / 계용묵 = 139 피서의 성격 / 계용묵 = 142 향산기행 / 노천명 = 145 금강산 정조(情調) / 현진건 = 155 산가일기 / 노자영 = 160 세심천의 달밤 / 노자영 = 165 여름날의 추억 / 노자영 = 168 고향의 여름 / 노자영 = 172 여름밤 농촌의 풍경 점점(點點) / 강경애 = 188 여름 풍경 / 채만식 = 193 돌베개 / 이광수 = 205 삼방에서 : 피서지 통신 ① / 유치진 = 207 석왕사에서 : 피서지 통신 ② / 유치진 = 210 에필로그 : 냉면 한 그릇의 행복 / 김남천,〈냉면〉 원저자 소개



